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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의 입장에서 본 <공통체>제제의 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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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04  18: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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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자의 입장에서 본 <공통체>

 
공통체. 총 593쪽의 긴 글의 연속인 공통체. 왜 공통체일까? 공동체가 아니고?
the common의 wealth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가 핵심이라 보여지는 공통체.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란 도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물질적, 정신적 환경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복잡다단한 것들의 총체를 공통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the common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에서부터 오랜 문명으로 발달된 의식체계, 문자체계 등 사회적 생산물까지를 총칭한다. 이들 공통적인 것은 그 어떤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고 모두의 소유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이들을 마치 자기의 소유물로 전횡하는데에 저자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자본은 왜 인류의 공통적인 것까지 사유화하여 마치 자본이 가치증식을 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일까?

현대의 사회는 비물질적 생산이 물질적 생산보다 우위를 점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정보, 지식, 코드, 사회적 관계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으며 인지노동, 서비스 노동의 새로운 개념이 출현하면서 상품생산이나 물질생산을 하는 노동이 주체가 아니라 삶이 주체가 되는 현상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허상 즉, 자본이 가치증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를 재분배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꼬집으면서 물질적 자본보다 더 가치생산적인 공통의것에 자본이 기생하여 사유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한다. 또 막는 것에 끝나지 않고 재점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저자의 관심은 빈자다중에 있다. 빈자다중이란 공통의 것에 기생하여 부를 축적하는 자본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빼앗김을 당하는 사람들을 가르킨다. 다수의 빈자들. 그러나 다중의 가난은 비참함이나 박탈, 심지어 결핍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사회의 주체적 생산에 의해 활성화되는 모든 사람들로 이뤄진 형성체를 뜻한다. 빈자다중이 공통체를 만날 때, 사회적 삶이 주체화되게 된다. 생산과 분리되었다고 생각한 내가 나중에 알고 보니 사회적 삶의 주체로서 생산의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길고 긴 지면을 통해 공통의 것과 빈자다중을 만나게 하려 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생산에 빈자다중이 좀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여서 공통의 것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크고 작은 공동체를 통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만 각자의 색다른 사회적 삶에 구체성을 가져서 자유롭게 연합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공통의 것을 부각시켜 빈자다중의 삶을 주체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인간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소수에게 넘기지 말아야 할 절대적 이유를 거론하여 특히 교육하는 이들에게 큰 도전을 준다. 지식은 지식 자체로서 가치창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체의 구조창출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지식을 자본주의적 통제의 무기로 쓰여지게 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자본의 통제를 벗어나는 가치로서 사용되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교육을 자꾸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정해진 틀에 가두고 이것을 외워서 합리적으로 대답하여야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고 자꾸 유혹한다. 이 룰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넌 낙오자라고 비웃기라도 한 듯 제멋대로 지식을 통제의 수단으로 휘두른다. 
애초에 지식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지식은 지식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사고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유의 힘에 있음을 잊게 만든다. 그리고 낙오자가 될지 모르는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다. 난데없이 지식에 룰을 만드는 자들. 

사유하는 힘을 다시 길러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의 공통의 것이 소수에게 독점되어 오히려 우리 자신이 소수의 횡포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겠다. 스스로 사고하는 아이들로 가르쳐서 그 아이들이 더 큰 세상을, 더 멋진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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