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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08  22: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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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노인관

   
 

이종록 목사 (전남대, 장신대, 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요즘 사람들은 '고령화사회'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세상이 좋아져서 사람들이 예전보다 오래 살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의미와 아울러,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력없는 노인들이 많아짐으로써 사회가 이들을 부양해야할 짐이 커졌다는 부담감을 동시에 감지한다. 발빠른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에 뛰어든지 이미 오래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노인들을 경제적인 대상으로만 보려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워낙 이 시대가 경제적인 효율성을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그런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까 하는 점도 심히 염려스럽다. 불행스럽게도 그런 현상들이 만연하다. 매스컴은 20대 전후의 젊은이들만을 보여준다. 노인들은 거의 모든 것에서 소외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들어 약해지고 자신을 스스로 돌보기 어려운 노인들, 경제적 효용성도 없고, 사회적 부담감만 증대시키는 듯 보이는 노인들도 20대 전후의 젊은이들과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할 고귀한 인간임을 되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1.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창세기 1:26-27)

이것은 위대한 '인권선언'이요 '인간권리장전'이다. 본문은 인간이 더할 나위없이 귀중한 존재임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간은 신을 닮은 가장 존귀한 존재들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우리의 오랜 정신과도 일치한다. 사람알기를 하늘을 두려워하듯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 가운데 아무도 천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귀한 대접을 받고, 그리고 무엇에 노예가 되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나어린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가 다 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 뿐만 아니고, 노인들, 나이많은 사람들도 여전히,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형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2. 공경을 받아야 하는 인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에 대한 계명의 첫 번째가 바로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는 것이다. 성경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계명을 읽어보자.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출애굽기 20:12)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과 비교해보면, 5계명은 특이한 점을 갖고 있다. 사도 바울은 5계명의 특이한 점에 주목하면서, 이렇게 풀어 말한다.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한 약속입니다.(에베소서 6:1-3)

사도 바울은 먼저 5계명이 자녀들에게 주어진다는 것과, 약속이 첨부된 유일한 계명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것은 훌륭한 관찰의 결과이다. 사도 바울이 5계명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이다. "자녀이신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래야 부귀를 누리고 오래 살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복받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자녀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니고 어른들이다. 그러면 부모들은 한창 일할 나이의 장년층이 아님이 분명하다. 물론 어린아이들에게도 부모공경을 가르쳐야겠지만, 이 계명은 단순히 '부모를 공경합시다!'는 켐페인성 구호가 아니고, 우리가 국가에서 제정한 법을 지켜야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이 법은 미성년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 아니고,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다. 지금은 풍토가 달라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나이들어 생산에 종사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장성한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니 자녀들이 연로한 부모들을 돌보지 않으면, 부모들은 살아갈 방도가 없었다. 또한 부모들이 한평생 자녀들을 위해서 수고했기 때문에 나이들어 노동할 수 없으면, 자녀들이 부모를 공양하고 섬기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어떤 경우에는 짐승만도 못해서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바람에, 노인들이 버림을 받고 학대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공경을 법으로 제정해서 부모학대를 방지하려고 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모공경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도록까지 했다.

자기 부모를 때린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출애굽기 21:15)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출애굽기 21:17)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극형이어서, 과연 그렇게 법을 집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은 나이들어 자식에게 폭행을 당해도, 저주스런 욕을 들어도 어쩌지 못하는 부모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이다. 이렇듯 구약성경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식들에 대해서 매우 단호하게 대처하도록 명령한다.

어떤 사람에게, 아버지의 말이나 어머니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반항만 하며, 고집이 세어서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는 아들이 있거든, 그 부모는 그 아들을 붙잡아, 그 성읍의 장로들이 있는 성문 위의 회관으로 데리고 가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우리의 아들이 반항만 하고, 고집이 세어서 우리의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방탕한 데다가 술만 마십니다'하고 호소하여라. 그러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려 쳐서 죽일 것이다. 이렇게 하여서, 너희 가운데서 악을 뿌리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온 이스라엘이 그 일을 듣고 두려워할 것이다. (신명기 21:18-21)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모공경의 문제를 한 집안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 생각했다. 부모공경은 당시 사회를 지탱시켜주는 중대한 요인이었기 때문에, 가정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불효하는 자식들에 대해 온 공동체가 단호하게 대처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부모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임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부모 뿐만 아니라, 어른이면 누구든지 무조건 공경하라고 명령한다.

백발이 성성한 어른이 들어오면 일어서고, 나이든 어른을 보면 그를 공경하여라. 너희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나는 주다. (레위기 19:32)

이 구절은 어른공경하는 것을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과 동일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주다'고 말함으로써 부모공경, 노인공경이 하늘의 명령임을 분명히 밝힌다. '부모를 공경하여라'와 같은 법문형태를 '필연론적인 법'이라고 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법에는 두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하나는 '결의론적인 법'이고, 다른 하나는 '필연론적인 법'이다. 결의론적인 법은 '조건법'이라고도 하는데, '만약 ...하면, ...하라'는 형태를 갖는다. 이에 비해서 필연론적인 법은 조건없이 주어지는 명령이다. 예를 들면, '...하면 도적질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도적질은 어떤 경우에서든 금지된다. 살인, 거짓증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이면 어떤 경우에서든 당연히 준행해야할 명령이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이 붙을 수 없다. 부모공경, 노인공경이 이런 필연론적인 법이다. 아무런 조건없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부모공경, 노인공경을 강력하게 명령한다.

3. 복받은 인간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 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이 복받은 존재들이다. 사람들은 복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는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 가지 복을 이야기하는데, 우선 장수(長壽)하는 것을 큰 복으로 생각했다. 건강하고, 자녀들도 많고, 먹고살기에 걱정이 없을 정도의 재산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복받은 사람의 증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다 갖추어야 하지만, 이것들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오래살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수하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처럼 장수를 가장 큰 복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나 장수하는 것이 아니었다. 질병으로, 사고로, 재난으로 인해서 장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장수하는 것은 신이 주신 복이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본 대로, 부모공경하는 사람이 받는 약속, 십계명에 나오는 유일한 약속이 바로 '장수'하는 것이다. 성경은 장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아, 내 가르침을 잊지 말고, 내 계명을 네 마음에 간직하여라. 그러면 그것들이 너를 장수하게 하며, 해가 갈수록 더욱 평안을 누리게 할 것이다. (잠언 3:1-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결과로서 받는 가장 큰 복이 바로 '장수'이다. 이것은 솔로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나타난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서 지혜와 지식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스스로 생각하여 오래 사는 것이나 부유한 것이나 원수갚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재판하는 데에, 듣고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요구하였으므로 (열왕기상 3:11)

인간들이 가장 큰 복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오래 사는 것, 즉 장수임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장수를 강조하고, 장수하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긴 까닭은 장수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니, 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 (잠언 16:31)

누구나 장수하는 것이 아니고, 의롭게 행동해야만 백발이 되도록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절에 의하면,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성경은 장수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복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나이든 분들은 '장수'라는 가장 큰 복을 받은 분들이다.

4. 축복하는 인간

성경은 나이든 어른들이 복받은 분들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사람임을 알려준다. 이삭은 나이들어서 자기 아들인 야곱에게 축복했다(창세기 27:25-29). 그리고 야곱은 애굽에 가서 바로에게 축복했다. (창세기 47:7-10)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는 장면을 보자.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였다.

나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내가 태어난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의 목자가 되어주신 하나님.

온갖 어려움에서 나를 건져주신 천사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나의 이름과 할아버지의 이름 아브라함과 아버지의 이름 이삭이

이 아이들에게 살아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들의 자손이 이 땅에서 크게 불어나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창세기 48:15-16)

야곱 뿐만 아니고 모세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축복했다("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음과 같이 복을 빌어 주었다"[신명기 33:1]). 성경을 보면, 축복하는 것이 나이든 분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5. 지혜로운 인간

나어린 사람들에 비해서 나이든 분들이 지혜롭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솔로몬 왕이 세상을 떠난 다음,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다. 르호보암이 세겜에 가서 왕위즉위식을 거행하려고 하는데, 이스라엘 북부지역 사람들이 르호보암에게 와서, 솔로몬 왕이 중노동을 시키고 중과세한 것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청을 들은 르호보암은 그들에게 사흘 뒤에 다시 오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솔로몬 왕을 섬겼던 원로들과 상의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들의 지혜로운 의견을 묵살하고, 자기를 받드는 젊은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든 분들이 더 지혜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열성적인 인간

노인들은 무기력하고, 젊은이들은 열성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성경은 노인들이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보다 열성적임을 보여준다. 에스라서 3:8을 읽어보자.

백성이 하나님의 터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지 이태째가 되는 해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들의 나머지 동료 제사장과 레위 사람과 사로잡혀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모든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스무 살이 넘은 레위 사람을 주의 성전 건축 감독으로 세웠다.

바벨론은 유다를 멸망시키고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유다인들은 바벨론에서 60여년 정도 생활하다가,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가 선포한 칙령에 의해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성전을 다시 건축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보자. 돌아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60여년을 바벨론에서 살았다면, 30세에 끌려간 사람은 90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30세 전후에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은 거의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거리가 800마일 정도이기 때문에 젊은이들도 쉽게 돌아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첫성전을 본 나이많은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가문의 우두머리들은, 성전기초가 놓인 것을, 크게 통곡하였다. (에스라서 3:12)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나이많은 노인들, 첫성전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의 나이는 최소 70세쯤 되었을 것이다. 이들이 800마일이라는 엄청나게 먼 거리를 걸어서 예루살렘까지 온 것이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다시 보는 것이 꿈이었고, 그곳에서 성전건축하기를 열망했다. 그 열성이 있었기에 그토록 먼 길을 걸어서 기어코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것이다.

7. 결단을 촉구하는 인간

성경에서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은 이제 주를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오직 주만 섬기시오.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여러분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를 섬길 것이오. (여호수아 24:14-15)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백발노인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어느 길을 가야할 것인지를 분명히 정하라고 한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에 비해서 노인들이 훨씬 더 결단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백발 노인 다윗은 자기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솔로몬에게 이렇게 촉구한다.

다윗은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서,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였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간다. 너는 굳세고 장부다워야 한다. 그리고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주께서 지시하시는 길을 걷고, 주의 법률과 계명, 주이 율례와 증거의 말씀을 지켜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다. 또한 주께서 전에 나에게 '네 자손이 내 앞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여서, 제 길을 성실하게 걸으면,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 오를 사람이 너에게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하고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 (열왕기상 2:1-4)

우리는 자신의 삶을 마치는 순간에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윗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확신을 갖고 말한다. 이렇듯 백발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8. 미래를 소망하는 인간

성경은 노인들이 미래를 소망하는 인간임을 알려준다.

요셉이 아버지의 집안과 함께 이집트에 머물렀다. 요셉은 백년하고도 십년을 더 살면서, 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고, 므낫세의 아들 마길에게서 태어난 아이들까지도 요셉이 자기의 자식으로 길렀다. 요셉이 자기 친족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곧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돌보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를 시키면서 일렀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돌보실 날이 온다. 그때에 너희는 나의 뼈를 이곳에서 옮겨서, 그리고 가지고 가야 한다.' 요셉이 백열살에 세상을 떠나니, 사람들은 그의 시신에 방부제 향 재료를 넣은 다음에, 이집트에서 그를 입관하였다. (창세기 50:22-26)

요셉은 애굽인이었고,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애굽을 위해서 헌신했다. 그는 애굽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요셉이었지만, 그는 결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미래를 소망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실텐데, 그때 자기 뼈도 가져가 달라고 부탁한다. 요셉은 출애굽을 소망했던 것이다. 생전에 출애굽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죽어서라도, 뼈로라도 출애굽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요셉의 모습에서, 죽는 순간에도,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도 미래를 소망하는 강한 믿음을 본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우리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요셉은 죽음 이후의 세상을 현실보다 더 분명하게 소망하는 것이다.

요셉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 역시 미래를 소망하는 인물이었다.

나는 이미 부어드린 제물처럼 바쳐질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월계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만이 아니라 주께서 나타나실 것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6-8)

사도 바울은 이렇듯 죽음 이후를 소망하는 강한 믿음을 보여준다. 이들 이외에도 미래, 죽음 이후의 삶을 소망하는 성경의 인물들이 많다.

우리는 지금까지 노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공경을 받아야 하는 인간, 복받은 인간, 축복하는 인간, 지혜로운 인간, 열성적인 인간, 결단을 촉구하는 인간, 그리고 미래를 소망하는 인간임을 살펴보았다. 결국 살다보면 누구나 노인이 될 수 밖에 없는데, 경제적 효용성과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이 사회에서 자칫 노인들이 무가치한 존재, 사회적 부담만 안겨주는 골치거리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지금도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기 원한다.

백발이 성성한 어른이 들어오면 일어서고, 나이든 어른을 보면 그를 공경하여라. 너희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나는 주다. (레위기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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