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만 박사 장신대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 - 예장뉴스
예장뉴스
뉴스와 보도인물/사건/소개
몰트만 박사 장신대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
예장뉴스 보도부  |  webmaster@pck-good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5.15  10:53:20
트위터 페이스북

                                몰트만 박사 장신대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 

몰트만 박사 한국 내한 강의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개막한 제15회 학술대회에서 '도시는 희망의 장소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위르겐 몰트만 박사(독일 튀빙겐대학교 조직신학교수 은퇴, 튀빙겐대학교 명예교수)는 기독교의 도전으로서의 거대도시(Mega-City)에 대해 언급했다.

몰트만 박사는 "40년 전에 하비 콕스(Harvey Cox)는 현대인들의 세속화는 그들의 도시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명제를 대변했다"며 '세속도시(The secular City)에는 성전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15년 전에 그는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고, '세속도시 속의 종교(Religion in the Secular City)'에 관한 책을 썼다"고 했다.

몰트만 박사는 "종교는 도시화를 통하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변화된 것이다"며 "그런 점에서 그는 옳은 일을 한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도시 그 자체는 기독교에 대한 특별한 도전이 아니다. 초기의 기독교는 시(市)종교였다"며 "기독교는 농촌 백성의 자연종교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독교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서 형성됐으며 사도 바울의 편지가 보여 주듯이 지중해의 항구들과 도시들로 확장됐다"고 했다.

 덧붙여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된 것이지, 자연의 힘에 대한 경외로부터 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또 몰트만 박사는 "종교개혁은 대부분 취리히, 스트라스부르, 제네바의 도시들에 의해 지지되었다"며 "독일에서 프로테스탄트는 도시종교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에서 초기의 산업화와 더불어 자유교회는 고향도 잃고 의무도 없게 된 노동자들 가운데 퍼져 나갔다. 특히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그렇다"며 "1906년 로스엔젤레스 아주사 거리의 부흥운동 이래로 오순절 교회의 출발은 대도시의 종교현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차고나 공장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덧붙여 "산업중심지들로 이민대이동이 일어날 때 가족적인 교회 소속 대신에 개인적인 신앙의 결정과 자발적인 공동체가 들어선다"며 "대도시들 속에서 결속은 느슨해지고 선택의 자유는 증가되며, 사람들은 자동차로 인하여 더 기동력을 얻게 된다"고 했다.

메가시티에 필요한 교회는 메가교회인가, 소규모의 가정교회인가

이어 몰트만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메가-시티는 메가-교회가 필요하지 않은가를 물으며, 다른 사람들은 소규모의 기독 공동체가 더 옳다고 호언장담한다"며 "내 생각에는 그 둘이 서로 대립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그는 "모든 살아있는 공동체는 수많은 작은 공동체들로 이루어진다"며 "기독 가정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며 또 미래에도 점점 더 많이 존재할 것이다"며 "그러한 가정교회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손님을 잘 대접하는 기독교적인 친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손님을 잘 대접하기 위해서는 좋은 이웃관계가 필요하다"며 "최근에 저는 '당신의 이웃을 만나세요'라는 운동을 알게 됏는데 이러한 것은 이전에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했다. 몰트만 박사는 "현대의 아파트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오른쪽, 왼쪽, 위아래에 사는 자신의 이웃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들은 서로 존중하지도 않으며, 위급한 경우 도우러 오지도 않는다"며 "사망한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자신의 거처에서 발견되는 시신의 사례가 언제나 다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이웃관계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며 "가정교회들은 열려있어야 하며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에 능해야 한다. 그러한 가정교회가 지나치게 커지면 분립해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기독 공동체는 또한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장소이기도 하다"며 "여기서 부와 가난은 인간의 가치를 결정짓지 않는다. 여자들과 남자들은 동등한 인간 존엄 속에서 존중받는다"고 했다.

몰트만 박사는 "가난에 대한 대안은 부가 아니라 바로 공동체이다"며 "누군가가 기독 공동체에 오면 그는 즉시로 '가게나 공장에서처럼 너희는 그렇지 않구나' 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수많은 도시들 안에 있는 교회들에게 있어서 공동체의 일과 도시의 일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며 "그것은 한편으로는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일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스프를 끓여주는 '밥상'(Tafel)이라고도 불리는 스프부엌(Supperkuchen), 그리고 겨울에 노숙자들을 위한 따뜻한 방, 무료 의료봉사, 법무상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생활도우미와 호스피스 간호 등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더 큰 교회 단체들은 위에 언급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의 계획에도 참여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교회의 신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신학과 정치신학도 있다"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는 "대도시들의 미래는 이루어질 수도 있고 또한 실패할 수도 있다"면서 "생명을 선택하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우리는 희망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신학과 실천'을 주제로, 13일에는 '온 신학'(김명용 총장/장신대), '나사렛 예수로부터 배우는 리더십'(존 왈라스 총장/아주사퍼시픽대학교), '성경의 한글번역 과정에서 일어난 하나님 이름 논쟁'(임희국 교수/장신대) 발표가 진행됐다.

14일 대회는 오후 1시부터 '아시아 태평양의 맥락에서 바라본 공적 신학의 전망과 방향'(제임스 맥도날드 총장/샌프란시스코신학교), '사도적 공동체의 형성'(하가 츠토무 학장/동경신학교),'사회주의 국가 안에서의 교회 건설'(원거 교수/남경신학교) 발표가 진행했다.

몰트만 박사 장신대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

한국을 방문하여 5월 13일 장신대에서 강의를 한 몰트만 박사에게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공헌했으며 한국의 제자들을 많이 길러내 한국 신학에 공헌"한 점을 들며 10인 이상 교수의 추천으로 학위를 수여한다고 밝혔다.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이날 "학위수여는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이다"며 "한국과 가졌던 오랜 관계의 역사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역사는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는 역사였으며 점점 깊어가는 우정의 역사였다"고 말했다.

"감사의 표시로 그간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며 그는 "한국과 저의 인연은 1970년 케냐 나이로비의 세계개혁교회 연맹 총회에서 시작됐다. 그때 박봉랑 교수(조선신학교 초기 교수, 한신대 명예교수)가 내게 와서 한국으로 초대했다. 그와는 많은 서신을 주고 받았고 그는 자신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을 튀빙엔으로 보내서 제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했다. 그 사람이 연세대 교수 되신 김균진 교수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후에 1975년 한국으로 처음 오게 됐는데 당시 저는 '국민의 투쟁 안에 있는 희망'이라는 아주 위험한 강연을 준비해왔다. 당시 한국 국민은 군부 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었으며 그 고통과 응어리을 쏟아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때 한신대에서 민중신학을 발전시킨 안병무 교수와 교도소에서 방금 풀려났거나 연금된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강제로 삭발 당했다고 말했다"며 "그 중에 한 학생에 대해서 얘기를 들었는데 교도소 안에서 7명의 동료 수감자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 사형선고 받아서 그를 위해 변호했지만 (정부로부터)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사면됐고 일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 그때 장신대 이종성 학장님과 마펫 학장님을 만났다"며 "아주 추운 날씨라 낡은 난로에 손을 녹이며 나무로 된 판잣집에서 1975년 설교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당시 제3세계 국가였고 지금처럼 하이테크 국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신앙과 신학에 대한 배고픔이 대단했다"며 "이 신학교에서 저 신학교로 옮겨가며 강연을 했다"고 기억했다.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다음 나에게 중요한 방문은 1981년이었다"며 "서울 중심지에서 강연을 하도록 요청 받았는데 금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이화여대로부터 해임됐던 서광선 교수와 함께 학생들과 함께 경주로 가서 경주 관광을 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1981년 정치범으로 수감된 사람들의 어머니들이 검은띠를 두르고 시위를 했으며 안병무 교수는 투옥됐고 김지하 시인은 사형선고를 받았다"며 "병원에 있는 부상 당한 장로교 목사들을 방문했고 독일에서 '한국 눈물과 희망의 나라'라는 글을 썼다"고 했다.

이어 "1984년 한국 교회들이 백주년기념행사를 하면서 저를 초대해 기장 총회와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화해에 관한 강연을 했다"며 "그것은 예상치 못한 영광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몰트만 박사는 "저만 한국에 온것이 아니라 한국이 튀빙엔으로 왔다"며 "9명의 박사 과정의 학생 가운데 김명용 교수, 김도훈 교수가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튀빙엔대학교와 장신대가 상호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튀빙엔대학교와 장신대 총장 다 내 제자이다. 독일에서는 '박사 아버지'라고 하는데 박사 아버지는 매우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학에 있어서 한국과 독일의 협력은 참으로 중요하며 특별히 많은 결실을 거두게 될것으로 보인다"며 "또 저는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신학적 확신을 갖고 돌아간다. 이러한 공동체를 저는 언제나 깊히 느껴왔다"고 했다.

이 의미있는 자리에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서광선 박사(pck 저 현대교회 목사) 가 축사를 했다. 서광선 박사는 몰트만 박사와 지난 40여년간 함께한 학자적 우정과 몰트만 교수의 한국 사랑에 대하여 회고했다.  그리고 몰트만 교수의 정치 신학이 “(오늘의 세계와 교회의 우상이 된) 맘몬과 절대 권력에 저항하고 타파하는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평가했다.

서 박사는 몸소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학자와 교수로써 해직을 당한경험이 있기에 몰트만이 주창하 희망의 신학이 큰 힘이 되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돈과 맘몬을 숭배한 결과로 맞게 된 세월호 참사는 한국인들에게 몰트만의 십자가의 신학을 상기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몰트만 박사는 사실상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라고 절규하는 우리의 물음에 ‘저 바다 물속에, 진도 앞바다 뱃속에 갇혀서 죽어 가는 아이들과 함께 계신다’는 대답을 들으라고” 말하고 있다. 거기에는 우리가 “눈물을 씻고 다시 일어나 ... 부활의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이 실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 박사는 몰트만 교수를 “20세기와 21세기 세계를 향하여 선교하고 설교하는 선지자”로 칭했다. 

아래는 서 박사의 축사 전문이다.  이날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에는 교단의 원로 목회자 이   순(천안중앙교회은퇴) 도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축사 속에 이를 언급하고 있다.

                                 서광선 박사의   축        사      전       문  

 오늘 장로교 신학대학 창립 113주년을 기념하는 복된 자리에서 독일이 나은 세계적인 신학자 유겐 몰트만 교수님과 한국의 목회자 이순 목사님 두 분이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받으시는 것을 축하하는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몰트만 교수님의 첫 번째 신학 책 『희망의 신학』은 제가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을 때, 디트리히 본회퍼의 저 유명한 『옥중에서 보낸 편지』와 함께 애독한 신학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1971년 아시아 태국 방콕에서 열린 WCC의 선교대회에서 만나 신학적 친구가 되었고, 1975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박정희 유신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민주주의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기본 권리를 위하여 투쟁하던 그 험난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여,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몰트만 교수님은 한국 신학자들과 한국 교회와 한국의 기독교 지성들과 학생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의 신학은 우리의 희망의 신학이 되었고 힘이 되어왔습니다.

 몰트만 교수님의 정치 신학은 오늘의 우상이 절대적이며 독선적인 정치권력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돈과 맘몬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야 말로 오늘의 세계와 교회의 우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정치 신학은 맘몬과 절대 권력에 저항하고 타파하는 십자가의 신학이었습니다. 몰트만 교수님은 20세기와 21세기 세계를 향하여 선교하고 설교하는 선지자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온 국민은 우리 서해 진도 앞바다, 춥고 어두운 깊은 바다 한가운데 엄마와 아빠를 목 놓아 부르며 숨져 간 우리 아이들을 건져내지 못한 것 때문에 절규하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슬픔과 분노로 하나님 앞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우리를 버리시나이까?)를 외치며 십자가 위의 예수님과 함께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신학자 몰트만 교수님은 오늘 다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의 어른들이, 한국의 교회가, 돈과 맘몬에 눈이 어두워, 권력이 인간의 생명보다는 권력 그 자체를 위해서 허둥거리고, 무책임과 무능으로 아이들의 귀한 생명을 바다 속에 버렸습니다. 우리의 아들 딸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이 오늘의 우리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엄마 아빠를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며 사라져 갔습니다.

 이 비극의 봄, 우리의 4월과 5월은 우리 역사상 가장 잔인한 달로 기억되지만, 2014년의 4월과 5월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잔인한 봄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절규하는 우리 물음에 “저 바다 물속에, 진도 앞바다 뱃속에 갇혀서 죽어 가는 아이들과 함께 계신다”는 대답을 들으라고 몰트만 교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물을 씻고 다시 일어납니다. 부활의 희망을 가집니다. 그 희망을 위해서 우리는 힘을 내고 다시 일어납니다.

 오늘 몰트만 교수님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받으시는 명예신학박사 학위는 위기와 절망에 빠진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주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몰트만 교수님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독일의 신학자에게서 신학을 배우고 실천하는 장신대 총장 김명룡 박사님과 장신대 이사진과 교수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몰트만 교수님과 함께 나란히 명예박사학위를 받으시는 천안 중앙교회 ‘젊은’ 원로 목사이신 이순 박사님은 오늘 초면이어서 저의 축하의 말씀이 실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1970년대 유신 군사독재 시대에 장신대에서 목회의 뜻을 키우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 한결 같이 지방 교회를 섬긴 착하고 진실한 주님의 종, 교회 위에 군림하는 우상이 아니라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참으로 보기 드문 목회자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3대 사명, 케리그마,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 즉, 복음 선포와, 친교와 봉사와, 가르침의 목회신학을 말로만, 신학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신 목사님, 여기에 더하여 예수님처럼 목수가 되어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 주는 해비타트 일을 하셨습니다. 나아가서 그의 선교적 열정은 남아메리카 서해안에 위치한 페루라는 나라의 장로회 신학교의 이사장직을 맡아 해외 선교로 뻗어 나갔던 것입니다. 

오늘, 모교인 장신대에서 영광스럽게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받으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끝으로 제 개인적으로 군사독재 시대 해직교수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추방되었을 때, 625 당시 평양에서 공산군에게 순교 당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예수교 장로회 목사가 되려고 결심하고 장신대에서 1년 동안 공부한 뒤 목사 안수를 받은 장신대 출신 목사로써 이 영광된 자리에 초청받게 된 것을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자랑, 장신대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5월 13일

예장뉴스 보도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5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6
장로교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7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10
이재철 목사 강연내용 일파만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