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훈의 생활신앙 이야기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칼럼/기고/강연
정종훈의 생활신앙 이야기핵에너지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
편집부  |  chjeong59@yonsei.ac.krongh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06.09  23:38:45
트위터 페이스북

                                               핵에너지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

   
 

 정 종 훈 교수(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1. 문제제기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세계 역사 상 두 번째로 강력한 진도 9.0의 대지진이 일본열도를 강타했다. 대지진은 쓰나미를 동반했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인적 사상자와 물적 재산상의 손실을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쓰나미가 덮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는 정상적인 가동을 멈추었고, 부분적인 폭발과 함께 방사능이 누출되어 전 세계적인 공포로 이어졌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한국 사람들까지 방사선 요오드에 감염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자연 요오드를 사재는 일까지 벌어졌다.1)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멈추자 동일본의 전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져서 일부 전철운행을 중지시켜야 했고, 일반 가정에 공급되는 전력을 매일 몇 시간씩 제한 공급해야 했으며,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반경 20 km 지역의 거주민들은 집과 삶의 터전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또한 방사능의 전방위적인 오염은 일본 전역에서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없게 했고, 생선이나 야채를 검사하지 않은 채로는 먹을 수 없게 했으며, 자연재해의 위기상황에서 긴급한 복구의 노력을 주저하게 만들었다.2)

세계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모스크바 기준시간)에 발생했는데, 그로 인한 직간접의 인명피해와 자연훼손은 4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체르노빌의 사고보다 더 큰 규모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피해를 추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핵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최고의 그린에너지처럼 홍보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핵에너지를 얻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유지하고 또 새롭게 건설해야 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이다.

2. 원자력발전소의 근원적인 문제와 대체에너지의 가능성

 세계 에너지의 수요는 20년 내에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획기적인 기술의 변화가 없는 한 화석연료가 2030년까지 일차적인 에너지 수요의 81%를 감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3) 핵에너지는 오존층의 파괴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화석연료에 대한 대안으로 대두되었다. “핵발전은 값이 싸다. 핵발전은 깨끗한 에너지를 가져온다. 핵발전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핵발전은 환경친화적이다. 핵발전은 복지를 의미한다...” 과연 핵에너지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가 정당한 것인가?

핵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는 몇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다.4) 첫째는, 장기적인 방사능의 부담을 가져오는 사고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사고의 가능성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원자력발전 후에 남는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문제이다. 핵폐기물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은 수만 년이 지나도 다 사라지지 않으며, 아무리 깊은 지하에 보관한다고 할지라도 토양과 지하수 또는 공기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원자력발전소와 핵무기, 전쟁과 테러 등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원자력발전소는 핵무기 개발의 조건이 되는데다가, 이미 개발되어 실전에 배치된 핵무기는 위협용으로만 머물지 않고 언젠가는 실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과 테러가 발생할 경우에는 원자력발전소가 포격의 대상이 되어 대량살상무기 자체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의 초래로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화석연료와 상호공멸의 총체적인 위험을 안고 있는 핵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에너지의 길은 없는 것인가? 프란츠 알트는 그의 저서 ‘생태주의자 예수’에서 태양, 바람, 물, 바이오매스 등을 대체에너지로 제시하고 있다.5) 이것들은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거의 무한대로, 영원히, 공짜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이들 대체에너지들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보다 가격이 비싼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파괴로 인한 추가비용이나 기후보호 비용 또는 국가의 지원비용 등을 감안하면, 가격이 싸질 날이 멀지 않다고 본다. 태양은 인류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를 8분 만에 보내며, 1년 동안 독일 땅에 비추어지는 햇빛만으로도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네 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어느 나라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재생 가능한 대체에너지원의 잠재력은 무한하며, 환경과 기후에 대해서 어떤 해도 주지 않는 장점이 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대체에너지에 관심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에너지와 관련된 기업들과 그 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투자한 공장설비와 그들이 거두고 있는 이윤을 포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둘째는, 에너지기업들의 로비대상으로서 정치자금을 지원받는 정치가들의 무기력함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정치자금을 받는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니 기존의 에너지 정책을 대체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는, 기존 에너지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무지와 안일함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의 왜곡된 정보와 홍보를 의심치 않고 수용하니 문제를 제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3.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생태신학적 이해

1972년 로마클럽은 인류의 상황에 대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를 출판했다.6) 로마클럽은 이 보고서에서 지구의 유한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천연자원의 고갈, 공해에 의한 환경오염, 개발도상국의 폭발적인 인구증가, 군사기술의 진보에 의한 대규모 파괴력 등으로 인해 인류가 위기 가운데 직면했음을 지적하면서, 그러한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세계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에 나온 이 보고서는 위기의 실상이 과장되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과소평가 되었으며,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존재하는 자원이용의 불균형을 희석시킴으로써 불평등한 경제관계를 강화한다고 비판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로마클럽의 보고서는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성찰하도록 도전한 계기가 되었다.7)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와 로마클럽의 보고서 이후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기독교의 생태신학은 인간의 생태학적 책임에 대해 깊은 인식을 하고 상황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물론 성서가 원자력발전소나 핵에너지와 관련된 지침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성서와 생태신학을 통해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세울 수는 있다.

첫째는, 창조론에서 비롯된 입장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셔서 당신의 뜻에 따라 창조세계를 관리하는 청지기로 삼으셨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는 선언과 함께 창조세계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보증하신 하나님께서는 창조세계가 당신의 청지기인 인간에 의해서 유지되기를 바라셨다. 성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로 대변되는 에덴동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인간을 타락한 죄인으로서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잘 보전되도록 관리하는 책임을 지금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의 과정과 핵폐기물의 보관과정은 수만 년 동안 창조세계에 대해서 엄청난 부담을 줄뿐만 아니라, 이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사고는 인간과 창조세계에 대해 너무도 큰 피해를 주었다. 그러므로 청지기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제대로 보전해야 하는 차원에서 원자력발전소는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둘째는, 인간론에서 비롯된 입장이다. 성서는 인간에 대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무한한 가능성과 ‘죄인’으로서의 불가능성을 동시에 견지하고 있다. 기독교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이 둘 가운데서 양자택일하기보다는 변증법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 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인간을 “simul justus et peccator”(동시에 의롭고 죄인인 자)로 규정한 바가 있다.8) 우리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만 이해하면 현실을 무시하는 낙관주의에 빠지고, ‘죄인’으로만 이해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비관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지만 ‘죄인’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죄인’으로서 불가능한 현실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소는 기후변화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전기를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을 무색하도록 하는 핵무기와 방사능의 위험성, 인간의 실수와 오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재고되어야 한다.

셋째는, 하나님 나라의 이해와 종말론에서 비롯된 입장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하고 있다. 성서는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도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 가운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임하도록, 하늘에서 이룬 하나님의 뜻을 땅 위에서 이루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완성하는 주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종말이 올 때까지는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에 근사치적으로 접근하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신봉자들은 이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인간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며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기술만능주의의 신봉자들은 이 세상의 어떤 문제도 인간의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을 부추겼다. 원자력발전소와 관련해서 말한다면, 천년왕국의 신봉자들은 어차피 세상은 망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핵무기를 통해서 세상을 심판하실 수도 있다면서, 원자력발전소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반면에 기술만능주의의 신봉자들은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위험성은 매우 낮으며, 그 낮은 위험성조차도 발전된 과학기술로 해소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고전 10:23)라는 권고대로 원자력발전소를 재고하고, 대체에너지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4.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기독교윤리적인 입장 찾기\

독일의 신학자 마틴 호네커(Martin Honecker)는 핵에너지에 대한 윤리적인 평가를 하면서 입장이 다른 세 학자를 소개한다.9)

첫째는, 핵에너지를 지지하는 볼프강 클룩센(Wolfgang Kluxen)이다. 그는 점증하는 세계인구가 많은 에너지의 수요를 필요로 하고, 그것은 경제성장을 통해 많은 사람의 복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 개인은 자발적으로 빈곤을 선택할 수 있지만, 삶의 형태로서의 빈곤은 사회에 부과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인 성장은 합법적이며 도덕적으로 장려되어야 할 목표라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경제성장을 위해 배제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핵에너지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핵에너지에 대해 조건 없이 반대하는 로버트 슈페만(Robert Spaemann)이다. 그는 국가란 기술공학의 부작용과 위험요소는 물론이고 미래세대에 대한 위험요소를 검토하는 책임의 주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핵분열과 방사능 누출의 위험으로 여러 세대 동안 인간과 환경에 장기적인 부담을 주는 원자력발전소를 국가가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유해하지 않다는 확신을 결코 줄 수 없는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은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셋째는, 앞의 두 사람의 입장을 다소 중재하는 빌헬름 코르프(Wilhelm Korff)이다. 그는 핵에너지의 이용 자체를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 의무론적으로 질문하기보다는 현재 상황에서 올바르냐 잘못되었느냐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핵에너지에 대한 찬성은 조건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것이며, 오히려 매우 단호한 조건들 하에서 찬성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현재 상황에서 핵에너지의 사용 없이 살 수 없지만, 위험한 요소를 충분히 숙고하고 위험을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원자력발전소의 존재와 핵에너지의 사용에 대해서 기독교윤리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첫째는, 책임의 입장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가능성과 죄인으로서의 불가능성 양면을 지니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동료 인간과 미래세대 그리고 창조세계에 대해 동시적인 책임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지금의 에너지 상황을 고려할 때 핵에너지의 사용을 무조건 중지하고,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하라고 요구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위해 철저히 대책을 마련할 것과 위험요소를 다분히 지닌 핵에너지보다는 자연에너지로 정책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전환할 것을 책임있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생명 우선의 입장이다.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유치하는 과정을 보면, 지역경제의 발전이라는 물질적 욕망이 우선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문제와 위험을 감독하고 근원적 대책을 마련해야 할 공무원들, 정치인들이 뇌물 또는 정치자금과 연결되어 대안의 정책개발과 제대로 된 감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기술과 건설의 수출을 성장산업으로 보는 경제관료들과 관련업계의 종사자들은 거대자본의 창출에 관심하고 있다. 결국 돈과 자본으로 대변되는 맘몬의 숭배가 문제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이자 우리의 책임인 온생명의 인식 속에서 생명에 대해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삶의 방식을 전환하는 입장이다. 지금 우리는 에너지 수요가 많아지니 더 많은 공급을 위해 발전소를 만들어야 하고, 발전소가 넉넉한 에너지를 공급해주니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도 좋다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 있다. 지구는 지난 40억년 동안 석유에너지나 핵에너지 없이 태양에너지만 가지고도 잘 살아왔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에너지에 대한 과소비를 줄일 뿐만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위험천만한 핵에너지 없이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5. 맺는 말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가능성은 ‘천만분의 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말할 것도 없이 작은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대형사고는 이미 일어났으며, 또한 언제 어느 곳에서 새로운 대형사고가 일어날지는 예측할 수도 없다. 인간의 최대 약점 가운데 하나는 한번 내딛은 잘못된 발걸음을 파국이 올 때까지 되돌리지 못한다는 어리석음에 있지만, 우리는 이번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대재난의 사건을 통해 에너지 정책과 삶의 방식에 대해 철저히 숙고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지금 우리가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의 시대로부터 태양에너지나 기타 자연에너지의 시대로 넘어가는 문명사적인 대전환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인류의 내일은 희망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대재난이 주는 교훈을 기억하고 문명사적인 대전환의 기회를 만들어낼 때,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보전될 뿐 아니라 인류는 지구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희망을 만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냐 맘몬이냐, 윤리냐 돈이냐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우리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프란츠 알트가 제안한 다음의 대안을 이해함으로써 문명사적인 대전환을 이루는 일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무기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태양에너지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더 멋진 일이 될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생태적으로

사는 것이 더 멋진 일이 될 것이다. 화학농약과 비료를 쓰는 농부보다 생태적 농사꾼이 되는 것이 더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엄청난 양의 휘발유를 태워 없애는 자동차보다 태양에너지로 가는 자동차를 타는 것이 더 멋진 일이 될 것이다.”1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2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3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4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5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6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7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쓰레기 시멘트 '맞짱' 뜨던 목사, 이렇게 산다
10
본 교단 채영남 총회장 행보 언론들 주목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발행인 : 유재무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 17길-10   |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주사무소 : 상동발행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