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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빈 목사 소천(1943-2014)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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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28  23: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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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빈 목사(1943-2014) 소천

   
고 박창빈 목사

박창빈 목사가 세상을 뜨셨다. 9월 28일 주일, 이렇게 갑자기 가시다니. 박 목사를 아는 이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우선은 건강한 분이었고 현역에서 은퇴를 하셨지만 아직은 동기들과 친구들이 멀쩡한데 이렇게 갑자기 가시다니 모두 충격이다.  현재 보라매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계시며 입관은 29일(월) 11시에 신목교회 주관으로, 발인은 1일 이북에서 월남한 세대들의 모임인 오도회에서 주관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선배는 1943년 신의주에서 출생하셨지만 곧 월남하여 대광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8년 한신대에 입학을 한다. 그리고 연대도시문제연구소(소장 노정현 박사) 내에 개설된 지역사회 조직가(CO) 교육을 받으시고 부산에서 부두노동자로써의 현장활동과 김진홍 목사왁 같이 송정동, 청계천 뚝방에서 주민 조직 활동도 하셨다. 1980년 장신대에 입학하여 73기로 늦깍기 졸업을 한다. 또 숭실대에서 사회복지 공부도 하시고 총회 사회부에서 간사와 총무를 역임한다. 또 독일 팔츠주의 선교동역자로 유학하신 후 귀국하여 총회 자선사업재단 사무총장과 총회 연금재단 사무국장도 잠시 역임한다. 그리고 한아봉사회 사무국장과 윌드비젼 북한사업팀장과 북한사업 총괄 부회장을 끝으로 은퇴를 하셨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교회환경위원장과 화해통일 위원장을 지냈다. 가족으로는 성백엽 사모와 딸 박선옥(재미)을 두웠다.

   

자서전

박 목사님은 올해 6월 15일  기독교회관에서 자신의 마지막 16년 동안의사역이었던 북한사역과 일생을 정리하여 “감자 꽃이 피다”이라는 자전적을 출간하였다. '감자꽃'은 중세 유럽의 구황작물로 유명한 감자가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을 위하여 가장 빨리 또 간단히 식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물로 목사님께서 그 종자 보급에 압장을 서셨던 것에서 기인한다. 박 목사는 이 책 서문에서 세계적인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것에서  영감을 얻어 지난 2000년부터 북한을 드나들며 일한 수첩의 깨알같은 메모를 기초로 하여 이 책을 구상하였다.

비교적 좀 이르게 자신의 자전적인 책을 완성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책을 남기지 않으셨다면 그의 많은 족적은 파편으로 여기 저기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그의 열정적인 시간과 정성으로 한 권의 옥고를 후진들에게 남기 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부모님을 따라 월남 후 영락교회에 출석하면서도 기장계통의 한신대 학부를 다녔는데 인명진 목사(갈릴리교회) 권호경 목사(전 NCCK총무, CBS 사장)과 동문수학했다. 한신대 입학 전에 군징집영장을 받았지만 장교에 뜻을 두고 한국해양대학에 지원하여 합격하였지만 신체검사에서 폐렴 증상이 발견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외항선원의 길이 아니라 이쪽 길로 인도하시려던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겠나 한다.

키가 큰 호남형의 박 목사님은 우리 기독교 빈민운동의 1세대로 미국 장로교회 죤 화이트 목사가 내한하여 연세대학교에 세운 도시문제연구소(소장 노정현 박사)에서 주민조직훈련을 받고 부산의 부두에서 노동자 조직활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부산에서는 김정광, 청계천에서 빈민운동의 대부 제정구,  김진홍,  망월동의 이상량을 만나서 활동을 함께 하기도 한다.  평생 반려자인 사모 성백엽은 사대부고를 나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문학소녀 출신 현역 시인으로도 책도 낸 전직 국어교사였다.  어려서는 영월군 상동읍의 동양최대 주석(텅스텐) 광산 소장이였던 부친을 따라서 광산의 관사에서  살기도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최근 사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들을 했는 데  박 목사가 앞서신 것이다.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1호 반대 시위로 친구들과 구속(이규상 이해학  인명진 김진홍) 되어 남산 정보부에서 취조를 받고 형을 살기 직전 문막 성당의 마이클 신부와 영락교회 박조준 목사의 보증으로 석방된다. 그리고 망원제일교회 이상량 전도사의 권유로 장신대에 입학을 한다. 그러나 장신대 학장인 이종성 학장으로 부터 운동권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학교에 다니면서 총회 사회부 간사로 추천이 되어 일하다가 1983년 총회 사회부 총무 시절 경주에서 열린 한국교회 100주년 세미나에서 “민중과 함께 하는 한국교회” 라는 제하의 강연을 하기도 한다.

사회부 재직 시절 전국 노회의 중간 지도자들을 모아 사회선교 실무자들를 훈련시켰고 복지의 선진국 독일을 방문하기도 한다.  강원도 태백의 이정규 목사님이 하시던 광산지역사회복지회 초기 사업에 독일 EZE 나 EMS의 지원을 받도록 애쓰시고 오랫동안 이사로도 재직하셨다. 그리고 당시 독일 지한파 게르하르트 프리츠 목사의 추천으로 팔츠주 선교 동역자로 3년 간 훈련을 받는다. 1985년 아주 늦은 나이에 독일로의 출국을 앞두고 모인 송별회(영등포 산선)에서의 모습이 선하다. 그리고 3년의 짧은 시간 속에서도 독일어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설교를 하실 정도로 유창하였다.

총회에서 사임 후 안식년을 보낼 때 총회 임원회는 봉원교회 이원태 목사를 통하여 예장의 에큐메니칼 인재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하여 당시 NCCK에 부총무로 파송하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총무 김동완 목사도 평소 아는 사이로 거의 성사 직전이었다. 그런데 그때 선명회 회장으로 부임을 하게 되는 오재식 선생(주민조직 선배)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실향민인 박 목사에게 북한 사업을 제안한 것이다. 박 목사는 북한 주민의 가난과 학정에 대하여 평소 빚진 자의 심정이었던 터라  북한주민을 돕는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였다. 고민하던 중 마침 보건 복지부 장관었던 손학규 장관의 권유도 있어 선명회로 방향을 틀게 된다.

박 목사의 북한사역의 배경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내가 2000년도 의정부 동부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박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셨는데 자신의 부친께서 신의주 제 3교회를 목회하시던 한경직 목사님을 따라서 영락교회로 온 일과 유치부부터 영락교회에서 성장한 일 등 많은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언제나 한 목사님 앞에서 '제가 박형숙 집사 아들입니다' 하면 또렷이 알아보시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가 통일되면 신의주 제 3교회 재건을 하여 목회하겠습니다' 하고 무릎을 꿇자 한 목사님은 박 목사님의 당돌함이 기특했던지 기도를 해주셨다고 한다. 이 날의 증인이 최창근 장로님이라고 박목사님이 자랑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2012년 은퇴 후 미국을 방문하여 딸과 에리조나 세도나를 여행 후 딸이 자신의 스튜디오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여 “축복의 샘 블래싱, 스프링” 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살던 보라매 인근의 사가를 2012년 리모델링하여 Blessing Spring Mission(BSM) 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 옥탑방에 기도실을 꾸미고 항상 기도하며 찬양하며 평생 살기를 원하셨는데 너무 이르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모두가 기억하는 박목사님은 말도 부드럽고 인자하시며 서두르지 않으시며 그리고 원하시는 바는 모두 성취하신 분이다. 목회의 길을 가지는 않았지만 기관목사들에게 부족한 기도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역설하시는 선배였다. 신앙과 신념. 이론과 이치,  일과 사람 이것들 사이를 조화롭게 이뤄가시 분이다.

   
지난 9월 팽목항에서 안산까지 걷기를 마치고 후배들과 함께 한 고 박창빈 목사(맨 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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