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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교회
양재섭 교수  |  philhu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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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20  00: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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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가능한 교회                                      

   
 

양재섭(대구대 의생명과학과 교수, 필휴먼생명학연구소장)

 『神에게 솔직히』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 성공회 소속 존 로빈슨(John A. T. Robinson) 감독은 일찍이 ‘교회의 죽음’을 예견한 바 있다. 신학을 전공한 전문가나 목회자들에게는 익숙한 주제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네 같은 평신도로서는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의아하고 불경스럽게 느껴진다. 교회가 죽다니!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유럽의 교회가 이미 쇠퇴하였고,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미국의 교회도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어느 통계 그래프를 보니, 미국의 교회는 1964-5년을 정점으로 개신교와 가톨릭이 비슷하게 내리막길로 돌아섰고, 몇 년 전 미국 방문 때 들은 이야기로는 매년 한 노회 당 한 교회씩 그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섬뜩하게 들리는 이 말이 더욱 두렵게 다가오는 것은, 비단 남의 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벌써 진행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006년 통계청의 종교 자료는 우리의 공포에 불을 질렀다. “이제 한국교회는 지속가능한가?” 라는 절박한 물음을 정말 솔직히 물어야 할 시점이다.

국제사회는 예전부터 성장 대신에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개념을 논의해왔다. 1987년 유엔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는 ‘우리의 공동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고,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모였던 유엔 환경개발회의는 이 개념을 정리하여 세계적으로 쟁점화한 바 있다. 과학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다음 세대들의 몫까지 에너지와 기타 자원을 앞당겨 탕진하고 있는 경제지상주의를 깊이 반성하고 미래 세대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쩌랴? 우리는 말끝마다 경제가 제일이라고, 성장만이 살 길이라고 하면서, 성서적 교훈과는 반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 기독교인 맞아?”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이른바 기복신앙에 찌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돌로 떡을 만들고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며 악마에게 절하는 허영의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지속가능한 교회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하여야 할까? 21세기에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전략이 ‘더불어 삶’이라면, 이제는 교회가 그 개념을 일찌감치 발전시켜 온 기업이나 환경단체로부터 벤치마킹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다른 측면에서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오늘날 기업이 겉으로 강조하는 ‘지속가능성’의 요점은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이며, 그래서 전략적으로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le investment; SRI)를 한다는 것이다. 흔한 표현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지 않고 이윤추구만을 앞세우는 회사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500년 동안 부를 유지했다는 경주 최부자집의 가훈은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고, 정해진 이상의 부와 명예를 금지하며, 지나가는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등,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절제와 이웃사랑을 통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어 오히려 우리가 되새길 만하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자체 조사에 의하면, 교인 수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기독교의 대외 이미지 실추와 사회변화의식의 부재였다. 말하자면 한국의 기독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F학점을 받은 셈이다. 사실상 지속가능성의 원리가 이 새 계명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데, 우리가 지키지 못했다는 점을 뼈저리게 반성해본다. 독실한 기독교인의 표준을 성수주일, 새벽기도회 참석횟수와 헌금액수 등 외형적인 요인에 고정시키고, 선교를 교회당 크게 짓기와 마당 넓히기 그리고 교인 수 늘리기 정도의 수준으로 폐쇄적 사고를 하는 한, 교회 밖의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할 것이고 나아가 왕따로 대응할 것이다.

교회 안 사람들도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은 별개로 생각하여 교회 다니지 않는 그리스도인(churchless christian)이 양산될 염려가 다분하다. 물론 필자는 성도의 열심과 발전적 확장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수단과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교회의 본질과 사명은 어떤 경우에도 보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신속하게 사회의 변화를 읽으면서 ‘다양성’을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훈련해야 지속가능의 희망이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경제지상주의에 대한 반성과 사회적 책임’에 있다면, 교회의 지속가능성은 ‘성장제일주의에 대한 회개와 이웃사랑 실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사이 유행하는 코미디를 원용하면 “교회가 교회다워야 교회지”라는 말이다.

이제 교회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한다면, 무엇보다도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를 넘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본다. 교인을 교회 안에 붙잡아 두려하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성령의 능력을 발휘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철저히 교육하자. ‘모이는 교회’에 연연하지 말고, ‘흩어지는 교회’가 되는 자신감과 성숙된 의식을 갖자. 결론은 너무도 명확하다. 성서로 돌아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변화산상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좋은 집짓고 그냥 살자”고 조르던 철없는 베드로에게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설득하시던 주님의 모습은 오늘도 여전히 눈물겹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교회 안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또 산위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고 설파하는 장면은 예수께서 몸소 연출하신 명장면이다. 아무 누구도 하나님의 영역을 감히 축소시키는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며. 기독교의 세력 확장과 교회의 성장지상주의가 하나님의 영역과 충돌하는 아이러니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마치 예수가 꿈꾸었던 하나님의 나라와 제자들이 착각했던 권력의 나라가 동상이몽이었던 그 교훈을 잊지 말자는 말이다.

한국교회의 지속가능성 지수(SI; sustainability index)는 결국 영성 지수(SI; spirituality index)를 의미할 것인 바, 혹 영성을 박제된 종교의식이나 열광적 종교행위와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교회 밖 사람들에게 교회의 이미지가 시끄럽고 낯선 곳으로만 비쳐진다면 우리의 본뜻과는 다르게 선교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복음의 진수를 깨닫도록 부지런히 배우고 기도하며 실천함으로 스스로 자신을 가다듬고, 서구교회를 타산지석 삼아 이 사회의 ‘참 좋은 이웃’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바야흐로 지금은 지속가능한 교회의 일원으로서, 예언자적 예지를 가진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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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125.XXX.XXX.48)
혹 이런 글도 그렇게 살지는 않으면서 글 팔아 먹는 글이 될까 두렵습니다.
(2012-07-26 17:29:20)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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