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어떤 기도가 필요한가? - 예장뉴스
예장뉴스
뉴스와 보도타종교
광복 70주년, 어떤 기도가 필요한가?통일기도회 제대로 하려면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2.23  15:19:58
트위터 페이스북

광복 70주년, 어떤 기도가 필요한가?  

통일기도회 제대로 하려면

이 민족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와 다툼으로 인한 전쟁의 희생물이 되어 국토는 분단되었고 그 분단의 고착화로 인하여 정치와 사회문화, 언어와 예술 모든 것이 반토막 났다. 그러고도 남북한 정부와 지도자들은 지난 70년간 입으로는 통일을 말하면서 실은 정권의 유지와 업적을 위하여 서로 비난과 비방을 하며 상대방을 공격하고 이용하여 왔다. 남한은 국가보안법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국가를 지킨다고 하고 북한은 인민을 위한다고 하였지만 치안법으로 오히려 내부의 정적이나 반대자들을 죽이는 일에 더 많이 사용하였다. 이렇게 남한 정부는 흡수 통일론론에 북한은 3대 세습과 허망한 적화통일론에 기초해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대한민국 역대 정부는 나름대로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증진하며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여 그 바탕 위에서 정치적 제도적 법적 통일을 이루어 나간다는 통일정책을 실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72년 박정희 정부의 7.4남북 공동성명, 1991년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김대중 정부의 6.15공동선언, 2007년 노무현 정부의 10.4선언은 모두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공동번영, 그리고 통일을 향한 남북 공동 의지의 뼈대가 되었다. 따라서 모든 통일 논의는 국가든 민간인이든 교회이든 국제적 조약에 버금가는 이런 남북 합의정신과 노력을 기억하고 존중하며 무엇보다도 전쟁없는 평화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통일논의, 모두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정부 5년 간 그리고 현재 박근혜 대통령 집권 2년 간의 대북 정책은 통일을 위한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뒤짚어 운신의 폭을 더 좁게 해 놓았다. 특히 주변 4강국의 이해에 눌려 주체적인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사대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와 그릇된 우월주의로 인하여 고립을 차조하고 있다. 남북 문제의 주도권을 분단 당사자인 남북이 주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통일보다 우선하는 결과로 하루빨리 벗어 던져야 할 반 통일, 반 민족주의의 산물로 평화통일 기반 조성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렇기에 대북정책과 통일에 대한 모든 정책과 노력들은 우리 국민의 공감대를 모으고 그 차이들를 통합해 가는 실질적인 과정이 절실하다.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 되지 않는 어떤 대북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것을 지난 세월 우리는 보아왔다. 정권의 교체에 관계없이 진행하는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모든 노력에 바탕을 두고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며 남북한의 합의와 동의가 우선 되어야 주변국가들이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명분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이런 통일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중시 여기며 우리 기독교회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 민족의 평화통일운동에 기여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분단 70년이 지난 지금 남북 당국과 정치권은 입으로는 여전히 통일을 말하지만 남한은 흡수통일을 북한은 적화통일의 속내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이런 통일론들을 극복하려는 개인적인 결단과 움직임들도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거나 사회적 공감대로 올바르게 평가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김구 선생의 단독 방북, 5.16 군사혁명 후에는 황태성의 월남, 그후 손원일 제독의 동생 손원태 박사의 방북, 문익환 목사의 방북과 김일성 면담, 청년 학생대표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의 방북 등이 있어 왔다. 작년 말 신은미-황선의 북한 바로알기 토크 콘서트는 보수단체의 집요한 반대와 고교생 테러로 비극적인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런 개인들의 통일논의와 행동들은 민족통일을 위한 기반조성에 물고를 트기는 커녕 오히려 공안정국의 빌미라 되어 통일논의를 더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부수립 후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을 고대했지만 김 주석의 사망으로 이루지 못했다. 이후 고 김대중 대통령이 최초로 김정일 위원장과 최고위급 회담을 가졌고, 박근혜 의원이 민간인 신분이지만 김정일을 만났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말 방북하여 제2차 남북한 정상회담을 하지만 이런 만남들이 민족통일논의의 공동 자산으로 진전되거나 정착되지 못하고 실질적인 남북대화를 원치 않는 반통일 세력들의 방해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내 그리고 박근혜 정부 2년 차까지 남북한 관계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민족통일로의 진전에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크지 않을 수 없어 현 정부의 통일사업에 우려와 함께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PCK, 가장 먼저 광복 70주년 의미 밝혔지만
이런 가운데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본 교단은 한국 기독교회의 장자로서 이미 2년 전부터 치유, 화해, 생명(치-화-생)이라는 10년의 장기적 주제를 걸고 남북한의 평화통일의 기반 조성을 위한 작업을 왔다. 그러나 사실 20년 전 만해도 우리에게 평화라는 말은 그렇게 쉬운 단어가 아니었다. 특히 남북한 문제에 있어 북진 통일, 멸공, 반공의 구호 아래 평화적 관점으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1988년 NCCK가 주관한 “88 평화통일선언” 후 평화라는 말은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평화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든 엄청난 공헌이었다. 또  99회기 총회 주제 “그리스도인, 복음으로 사는 사람”의 연장선 상에서 올해 초 PCK 신년 하례회에서 발표된 “민족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평화통일을 위한 2015” 가 제시된 것은 이 민족의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선각자적인 제시였다. 이에 발 맞춰 다른 교단과 연합 차원에서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집회와 모임들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족의 교회요 기독 신앙인으로서 평화는 우리 믿는 자들이 지켜야 할 핵심가치이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평화란 자연히 이뤄지거나 조성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마태 5:8)” 이라는 말씀에서의 "Peace Maker"는 평화를 조성하고 이루어가는 자라이기에 평화는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인 우리의 헌신을 요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가정과 사회, 교회와 국가 어느 곳에서든 우리는 평화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인내하고 노력하고 만들어가야지 저절로 평화가 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남북한의 문제는 어떠한 목적이든 간에 그 기저는 평화여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시의적절한 우리 총회의 지침과 사업을 온 교회들이 잘 기억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지만 이번에도 과거처럼 모였다가 흩어지고마는 형식으로 흐를 우려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것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조성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천의 의지가 턱없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평화통일과 민족의 화해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나 장애물들의 해소를 위한 방안들은 커녕 그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조차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연합기관들의 통일기도회 이대로는 불안 
작년 말부터 시작된 기독교 연합기관들의 “통일기도회”와 연초 판문점에서 “광복 70주년 기념 통일 기도회”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월 16일 김삼환 목사를 중심으로 한 명성교회에서의 3.1과 81.5 “통일기도회” 가 있을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이 기도회를 주관하는 이들의 면모를 볼 때 지금까지의 형식적이고 체제유지를 위한 정부 주도의 통일론에 협력하고 기득권과 보수층을 대변하는 세력 과시용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기도회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늘 그랬듯이 이 행사를 주도하는 분들의 목회와 설교에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진지한 내용은 물론 목회적 실천 과정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다만 대중 동원를 통한 자기 이름내기와 보여주기식의 행사에 끝날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회는 순식간에 북한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모임으로 전환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도하는 이들의 과거 행적에서 그들에게서 일관성 있는 평화 통일의 의지나 입장 표명 또는 실천들을 볼 수 있었던가. 남북한 문제나 평화통일을 위한 그 어떤 생각도 없이 오직 보수 정권의 나팔수로 봉사했던 경력들만 보인다. 그러므로 이들이 주장하는 소위 평화통일 기도회는 평화통일 조성을 위한 결의와 실천을 위한 기도회라기보다 정부의 들러리를 자처하는 것으로 이념적 갈등의 한 축이 될 소지가 농후하다.

그렇기에 지금은 우리 기독교가 통일과 관련한 기도를 해야 한다면 “주여 통일을 주시옵소서”라는 식의 의미없는 소원빌기식의 유치한 기도모임에서 벗어나 각론있는 성숙한 기도회를 해야 현재 꽉 막힌 정부독점의 통일논의를 다변화시키고 그 물고를 트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기독교가 민족 화해의 가시적이고 중보적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 한 가지라도 실천적인 것을 선언하고 도모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남북한 간에 가장 심각하고 첨예한 것은 군사적 대결로 인한 긴장이므로 이것을 완화해 가는 일일 것이다.

이것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현재의 정전협정(휴전)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상호불가침(전쟁 금지)조약을 하자는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현재 남북대화의 걸림돌인 팀 스피리트 훈련 중지나 축소, 대북 삐라살포, 상호비방을 중지하라고 하는 것까지 말할 수 있을 때 그 모임이 진정한 평화 통일을 위한 기도회가 되는 것이다. 기도회의 내용에 가이드라인을 두어 사전 제한하거나 위축되어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행사 위주의 집회가 될까 걱정하는 이유는 과거 그들이 주관했던 집회들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작년 6월 1일에 명성교회당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위로 기도회”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기도회는 현직 교단장들이 주관한 합의를 저버리고 명백히 분열시킨 모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정말 희생자 가족을 위한 것이었는지, 정부의 안전문제과 보고체계에 대한 질타였는지, 믿는 자들의 자성과 회개였는지 아니면 자기과시형의 집회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도회였기 때문이다.

또 이 기도회에서 가장 비판이 되는 부분은 국가 안전에 대한 책임의 최고 정점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긴습상황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를 했느냐고 그 책임을 물어도 시원찮을 당사자를 자기들의 기도회에 초청하여 축사를 하게 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것은 '세월호'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 위로 기도회라는 것이다. 또 그 기도회 순서에 자기 이름을 올렸던 이들만 봐도 그렇다. 대형교회 목회자에 사회적으로 구설수에 휩싸였고 특정한 교회와 개인적인 관계들로 서로 엮인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보여주기식 집회, 자신들의 허망한 위상과 세를 과시하기 위한 인위적인 목적의 집회였기에 성경적으로도 그것을 기도회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 모여 동일한 성격의 집회를 이번에는 '평화 통일'을 빌미로 또 열겠다고 하니 이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한 화해기반 조성을 하는 데 전혀 상관이 없는 뻔한 조합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통일기도회가 제대로 되려면 
이런데도 자신들의 통일 기도회가 동서독 통일의 기폭제가 된 동독의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시작된 작은 촛불기도회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기도회는 독일 통일의 한 가지 노력 중의 하나였지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기도 운동이 저들처럼 대규모 군중 동원식기도회도 또 많은 순서자들을 줄줄이 강단 위에 올리는 기도회가 아니었고 그런 인위적인 대규모 동원 집회로는 한 사람 한사람이 결단하여 민족 통일의 제단 위에 평화의 제물이 되겠다는 진정성을 일으킬 수도 모도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십 년에 걸친 동서독 교회의 통일 논의와 실질적인 노력들이 서서히 퍼져나가 정부와 국민들의 행동을 수반하였고 마침내 베를린 장벽을 무너트리는 데까지 나갔던 것이다. 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한 길이다. 시간이 필요하고 진정성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경제적인 대가도 지불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와 같은 군중 동원 대중집회로는 도리어 통일구호나 남발하는 통일쇼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민족의 역사적 과제인 통일의 기반조성에 실천 가능한 대안 즉 진정한 민족 화해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용 있는 진정한 기도회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주여, 통일을 주시옵소서.” ”통일 대박“이라는 등의 통일장사 안보장사식의 성숙치 못한 기도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가로 막고 있는 진짜 걸림돌은 무엇인지 그것들의 제거를 위하여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단계까지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우리는 정부에 대하여 통일논의 과정의 민간 참여자로 협력을 요청해야만 한다. 공안정국과 종복몰이 적대적 통일론을 추종하는 반 평화론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통일논의의 주제나 장을 넓혀가는 것이 우리 기독교가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정부의 정보 독점과 전문가 집단 위주의 통일론으로는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 이제는 민간차원의 통일운동단체들과의 간극을 좁히고 함께 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척박하고 보수적인 우리 교단의 풍토에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신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선구자적인 노력을 한 희생적인 선배들도 이제 은퇴들을 하고 기억에서 지워져 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선진들의 노력과 신학 그리고 신앙적 실천들을 기록하고 이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주제로 정기적으로 만나고 배우고 격려하고,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올해 초 봇물처럼 쏟아놓고 있는 교단이나 기독교 연합회 차원의 광복 70주년 행사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통일과 화해를 위한 진전이 아니라 일회성 행사에 그치거나 그 방향이 정부주도나 보수세력의 대결식 통일론으로 한 순간에 바뀔 우려가 많다는 비판을 했다. 우리는 만약에 그런 모임들이 우려한 대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거나 정부주도의 관제 집회가 된다면 이를 비판하고 올바로 견인할 수 있는 이론적인 정당성과 힘도 지녀야 하고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성경적 관점에서 바른 목소리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어야 한다.

행사위주의 통일기도회 안 하느니만 못해 
또 민족통일과 평화조성 사업은 장기적인 과제이므로 영속성과 안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행사위주의 통일 장사와 광복기념식에 묻혀버린 통일논의들를 대응할 수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 형성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 먼저 깨어난 자들이 하나님께 바르고 구체적인 기도와 연구을 실천하면서 민족통일 논의의 공간을 확보하고 진전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전문가, 탈북자, 해외학자 등과 네트워킹 하는 민족화해의 모임을 확장해 가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19일(월) 연동교회당에서 미국장로교회의 최초 동양인 총회장을 지내신 고 이승만 목사님의 한국 추모예배가 있었다. 그 모임에서 일부 보여지고 증언된 이승만 목사님의 신앙적 실천과 삶의 여정은 우리 민족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 준 것이었다. 아버지의 순교와 월남, 입대, 도미 등으로 세계 최강의 국가에서 주류가 된 한 젊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성장 변화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이 목사님의 헌신으로 뉴욕에서 시작된 작은 기도모임이 한국민주화운동의 지원과 연대의 불을 지폈던 일 등이 바로 그에 대한 단초들이다. 이제 우리는 이 민족의 화해를 위한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살려내고 큰 불로 일으켜야 할 때이다. 분단의 피해자에서 화해자로의 삶을 사신 그의 3국(북한-남한-미국)에서의 삶과 죽음은 우리 시대 비극의 한 단면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남과 북은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있다.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야 하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한 북한은 민족공동체를 함께 이루어가야 할 협력의 상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정부를 무조건 붕괴시켜야 한다거나 무조건 포용해야 한다는 양 극단의 사고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남북관계를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원칙들에 대하여 국민적 합의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근래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관계 자체가 단절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이런 역류 현상을 되풀이 하지 않고 평화와 통일의 한 길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일관성 있는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을 마련하는 데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나아갈 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때, 대북정책을 둘러싼 소모적인 갈등과 분란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남북관계도 상호 신뢰의 토대 위에서 평화를 다지고 통일로 나아가는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뜻과 힘을 모으고자 하는 취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
 

         '통일 화해 기반 조성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

첫째, 대한민국의 국가발전과 전 민족의 이익을 위해 남북간에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하고 민족공동체를 회복하여 통일로 나아가는 것을 남북관계의 기본 축으로 삼는다.

둘째,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빠른 시일 내에 종전을 위한 협상을 개시하여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도록 한다. 이를 위해 남북 당국은 정치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해 나간다.

셋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 북한은 민족을 공동의 파멸로 몰고 가는 핵무기 개발을 중지해야 한다. 북한은 국제 사회와 맺은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체제의 안전과 경제발전을 보장하는 길임을 직시하고, 우선적 조치로 핵 물질 생산, 핵무기 기술개발, 그리고 핵물질 이전 등 일체의 핵 활동 중지를 선언해야 한다.

넷째, 심각하게 우려할 상황에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것이 중대하고 시급한 과제임을 인식하면서, 북한에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 개선될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한다.

다섯째, 대북 인도적 지원은 남북간의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산가족들의 한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 다각적 해결 방안을 지체없이 추진한다.

여섯째, 남북간의 민간 경제교류 협력은 민족의 공동번영과 통합기반 조성 차원에서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남북 당국이 보장하는 제도적 틀 안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

우리는 남북 당국이 위와 같은 원칙에 따라 남북 관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고, 민족 구성원 모두가 평화의 토대 위에서 자유롭고 번영된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다. 

[관련기사]

유재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5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원주제일교회 성도들 주일 날 상경 시위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10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 17길 10 A동 202호   |  전화 : 02-469-4402  |  행정 : ds2sgt@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054  |  발행인 · 편집인 : 유재무 |  대표 : 이명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 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