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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회가 회복해야 할 장로교의 유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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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1  00: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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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장로교회가 회복해야 할 장로교의 유산들

박경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I. 서론
1884년 알렌과 1885년 언더우드의 입국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에서의 장로교 선교 역사가 어느덧 130년이 훌쩍 지났다. 제도와 조직의 측면에서 보아도 1907년에 최초의 노회가 결성되었고 1912년에 총회가 출범했으니 한 세기 이상이 지났다. 한 세기 만에 이루어낸 한국 장로교회의 성장은 밖에서 보면 ‘기적’과 같은 일이요, 안에서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더욱이 유독 한국에서는 장로교가 개신교 신자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장로교세가 성장하였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선배 그리스도인들의 피나는 눈물과 기도와 헌신 덕분이다. 그렇지만 최근 몇 해 동안의 한국교회 신뢰도와 호감도 조사가 말해주듯이 한국교회 전체가 위기를 겪고 있다. 교회의 신뢰도는 낮아지고, 호감도도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지나온 날들을 꼼꼼히 짚어보면서 새로운 방향설정을 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 장로교회를 포함한 개신교회가 지금까지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위도 쳐다보고 옆도 바라보면서 우리가 제대로 된 곳으로 가고 있는지 비판적 성찰을 해야 한다. 경주자에게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다. 아무리 빨리 달려간다 할지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제기하게 된다. 과연 한국 장로교회는 장로교 본래의 긍정적인 유산을 잘 보존하여 21세기 한국이라는 삶의 자리에 어울리게 정착시키고 있는가? 혹시 선배들이 피 흘리며 투쟁하여 얻어낸 아름답고 고귀한 유산을 다 잃어버리고 고아와 같이 유리걸식하는 것은 아닌가? 필자는 위의 질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가 새롭게 회복해야 할 잃어버린 장로교의 전통들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II. 본론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위기론은 이제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교회사에서 오늘날만큼 어려운 시기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위기론은 심각하게 다가온다. 과연 한국 개신교회, 특별히 한국 장로교회가 스스로 내부적 개혁을 통해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아직도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지, 30년 후의 한국교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어디에서부터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한국교회의 위기 현실을 풀어야 할 것인지, 우리의 피부에 가장 닿는 문제부터 하나씩 생각해 보자.

1. 목회자 문제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의 근원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제도나 신학이나 의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 특별히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목회자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교회에서 목회자가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보다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맡고 있기 때문에, 목회자의 수준은 곧 교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된다. 따라서 지금 한국교회의 목회자의 질적 수준이 어떠한지, 과연 한국교회에서는 누가, 어떤 자격을 지닌 사람을, 어떤 절차와 방법을 통해 목회자로 선발하고 있는지, 어떤 면을 가장 중시하면서 목회자를 선택하는지, 또한 목회자의 교육과 훈련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장로교회의 중요한 근거지 역할을 했던 16세기 제네바를 돌아보자. 칼뱅의 제네바는 목회자를 선발하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1541년 제네바의 교회법령에 따르면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서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그 생활이 거룩하고 순전해야 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적 소명을 받은 사람 중에서 교리와 생활의 외적 검증을 거친 사람만이 목회자가 될 수 있었다. 건전한 교리뿐만 아니라 깨끗한 생활의 검증을 요구한 이유는 생활이 거룩하지 못하다면 목회자로서의 권위를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목회 사역 자체가 망신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성적 추문, 물질적 부정행위, 명예욕과 야망으로 인해 겪는 한국교회의 고통을 생각해 볼 때, 16세기 제네바 교회에서 목회자의 자격 조건으로 거룩한 생활을 강조했다는 내용이 유난히 눈에 띈다. 제네바의 목회자 선발 기준과 방식에 현재 우리의 실상을 비춰볼 때, 한국교회에서 목회자가 되는 길이 너무 쉽고 넓고 편안한 길은 아닌지, 목회자 후보생의 영성, 인성, 지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닌지, 목회자를 안수하는 예식이 너무 형식적이거나 무미건조한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제네바의 ‘성서연구모임’은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와 개신교의 목회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제네바의 목사들은 매주 금요일 함께 모여 성서를 연구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상호 비판하는 공동체 모임을 가졌다. 때문에 제네바의 목사들은 서로 간에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 점검과 통제의 수단을 지니고 있었고, 교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질적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주석과 설교와 저술들은 어떤 한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공동체적 성격을 띠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고질병인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네바의 성서연구모임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현재의 한국교회에서는 목회자들도 한 개인일 뿐이다. 목회자 개인에 따라 능력도, 수준도, 생각도 제각각이고, 목회자에 따라 교회의 목회방향이나 목회계획도 제각각이다. 한국교회가 덩치는 크지만 개인으로, 개교회로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목회자 사이의 상호 교육, 상호 격려, 상호 비판, 상호 견책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목회는 홀로 잘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베토벤의 합창을 혼자 연주하거나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한국교회 안에, 특히 목회자들 사이에 공동체성의 회복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들의 매주 모임은 거의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만일 제네바에서처럼 목회자들이 규칙적으로 자주 만나 함께 성서를 연구하고 목양에 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그 유익은 대단할 것이다. 이와 같은 모임은 목회자들이 계속하여 성서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재교육의 훈련장이 될 것이며, 목회자의 외로움과 고립을 막아주어 탈선을 예방하는 방지책이 될 것이며, 서로 격려하고 기도함으로써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한 목회를 해가는 데 일조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경우 시찰회 모임을 단순히 행정적 업무를 처리하는 기구나 교회정치의 수단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성서연구, 기도, 독서, 상호 권면의 기능을 하는 모임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찰회는 지역 단위로 구성되기 때문에 교회들이 해당 지역사회를 위해 함께 연대하여 활동할 수 있는 계기도 자연스레 마련될 것이다. 총회와 신학교도 함께 연대하여 현장 목회자들이 일정 시간 동안 목회한 후에는 반드시 재충전과 재교육의 기회를 갖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목회자가 6년을 목회한 후에는 자신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가까운 지역 신학교에서 1학기 동안 할 수 있도록 후원하며, 다른 목회자들과 목회경험을 나누면서 자신의 목회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되고 신실한 그리고 건강한 목회자는 교회 갱신에 필수적이고 본질적이다.

2. 교회정치 문제
한국 장로교회가 장로교회다워지려면 교회정치에 있어서 장로교 본연의 색깔을 되찾아야 한다. 역사를 통해 형성된 교회정치 체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로마가톨릭, 성공회, 감리교와 같이 감독이 권한을 가지는 감독정치, 회중교회와 같이 구성원 모두가 권한을 가지는 회중정치, 그리고 장로교회처럼 회중들의 대표들인 장로들을 통한 장로정치가 그것이다. 장로교회가 감독교회나 회중교회와 다른 점은 정치형태에 있어서 한 사람의 정치 혹은 모든 사람의 정치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따른 대의정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수의 의사를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효율적인 정치제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가 정말 민주적인 대의정치 제도를 가지고 있는가?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에 의해 권한이 독점되어 주님의 교회가 마치 누군가의 교회로 변질된 것은 아닌가? 어떻게 교회에서 전횡이 있을 수 있으며 세습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교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권한을 독점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먼저 담임목사에게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칼뱅을 비롯한 장로교의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목회자의 동등성을 강조하였다. 목사는 모두가 동일한 직무를 감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항간에는 부(副)목사는 부(不)목사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의 동역자가 아니라 소모품이라는 말도 떠돈다. 목회자 사이의 관계설정이 보다 평등하고 동역하는 관계로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초기 개신교회는 한 목소리로 만인제사장설을 주창하면서 중세 로마교회에서 사제 계급에게만 권한이 집중되어있는 것을 비판하였다. 더 이상 목회자가 성도들 위에 군림하면서 하나님과의 소통을 독점하는 특권층이 아니며, 목회자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와 성도가 그 역할과 기능에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있어서는 어떠한 차이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목회자의 동등성과 만인제사장설은 목회자 사이에서 나아가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서 평등하고 상호적인 관계설정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스트라스부르의 마르틴 부처나 제네바의 장 칼뱅이 주창한 장로교회의 4중 직무, 즉 목사, 교사, 장로, 집사 직무는 모든 직분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협력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함을 강조한다. 직분자들의 관계는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상호동역의 관계이다. 따라서 한국 장로교회에서 혹시라도 목사 또는 장로가 되는 것을 신분과 계급의 상승이라고 생각한다면 장로교회의 근본정신을 떠난 것이다. 이것은 각 직분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무지와 혼동에서 기인한다. 16세기 초창기 장로교회에서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사역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오늘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그 역할설정이 매우 모호하다. 집사가 무슨 일을 맡아야 하는지, 장로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심지어 목사 직무의 권한과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 분명 집사는 초창기 장로교회에서 영속적이며 항구적인 직분이었는데 오늘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장로가 되기 위한 중간 단계의 임시직분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제 한국 장로교회는 직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가 주님의 몸을 세워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동역자라는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장로교회가 민주적인 대의정치 제도와 직분자들의 수평적 상호동역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기억할 때 최근 한국교회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교회 내의 모범정관 만들기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장로교회의 전통을 이은 청교도들 사이에 일찍이 “교회언약”을 체결하였음을 알고 있다. 오늘날 교회 구성원들의 의사를 결집한 정관을 만드는 것은 청교도의 교회언약 전통을 잇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범정관을 만들 때에는 청교도들 가운데 교회언약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역사의 교훈들을 반면교사로 삼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3. 신학교육 문제
최근 한국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인간이 단순히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를 좇아 사는 존재임을 생각할 때 인문학은 결코 폐기될 수 없는 가치이다. 신학교육은 본래 인문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교육이 지나치게 목회 기능인을 만드는 일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신학이 일반학문 특별히 인문학적 소양을 무시하게 되면 단순한 기술과 기능을 갖춘 사람을 만들 뿐이고 인간 존재를 돌보고 치유하는 전인적인 목회자를 배출할 수가 없다. 목회자가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직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신학교육이 더욱 더 간학문적인(interdisciplinary) 방향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신학이 좁은 울타리에 갇힌 파편화된 학문이 아니라, 보편성을 가진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학문과의 교류가 꼭 필요하다.

장로교회, 넓게는 개혁교회의 본거지였던 제네바에 1559년에 세워진 제네바아카데미의 교육은 지금도 한국의 신학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네바아카데미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강조였다. 초대 학장이었던 테오도르 베즈는 제네바아카데미 개원 연설에서 교육의 목표를 “여러분들은 참된 경건에 대한 지식과 학문으로 잘 준비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로 높이고 여러분들의 조국을 영광스럽게 하고, 여러분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제네바아카데미는 교회와 사회를 위해 봉사할 목회자와 시민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신학 교육과 더불어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교육에 강조점이 주어졌다. 당시의 교과과정을 살펴보기만 해도 제네바아카데미의 교육이 인문주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초등교육기관에서부터 라틴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그리스어를 배우고, 성서의 본문뿐만 아니라 베르길리우스, 키케로, 오비디우스, 이소크라테스, 리비우스, 크세노폰, 폴리비오스, 호메로스, 데모스테네스와 같은 사람들의 작품을 읽었다. 고등교육기관에서는 수사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교양과목이 크게 강조되었다. 신학과 더불어 인문학과 교양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은 특별계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학교육에서 성서를 비롯한 교회를 위한 신학과 실제적 실천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교회가 이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여서는 안 되고 세상을 품고 변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과 언어와 방식을 충분하게 습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게토가 되고 말 것이다. 오늘 한국의 신학교육이 인문학과 교양을 위한 기회들을 많이 늘려가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볼 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는 못하다고 판단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신학교육은 현장과 소통하는 신학, 실천과 유리되지 않는 신학, 세상을 변화시키는 신학의 가능성과 방향성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제네바아카데미가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요람으로 온 유럽에 영향력을 끼쳤던 것처럼, 한국 장로교회의 통전적 신학교육이 인간존재와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근원이 되기를 바란다.

4. 공공성의 문제
종교개혁의 여러 분파들 가운데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공동체를 책임지려는 공공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사회 속에서 교회가 얼마나 공적 기관으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교회는 우리 역사 속에서 그동안 사회를 계몽시키고, 선도하며 이끌고, 유익을 끼치는 역할을 나름대로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지금은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아니 단지 곱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왜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그저 외부적 요인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문제가 없는지 자성해야 할 때이다. 사회가 교회에 대해 부정적 선입관을 가지게 된 데에는 교회의 공공성의 결여가 한몫을 차지했다고 생각된다.
처음 장로교회는 결코 사회의 공적인 영역의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다. 장로교회 전통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칼뱅은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인 제네바가 복음의 정신에 따라 변화되기를 원했다. 따라서 그의 종교개혁은 단지 교회의 가르침과 예전의 개혁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과 도덕과 구조의 변혁으로 이어졌다. 그는 “민주정치에 근접하는 귀족정치”를 제안함으로써 민주주의로의 길을 예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베버(Max Weber)를 통해 알려진 대로 그의 “직업소명설”과 “세상 안에서의 금욕주의” 사상은 근대 자본주의 정신 형성에 일정 부분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이전까지 금기시 되던 이자 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하고 독창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이전에는 터부시되던 상업의 가치를 인정하였으며, 노동과 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의견을 개진하였다.

특히 칼뱅은 부의 불균등한 분배로 인해 고통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부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신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라고 위탁하신 것임을 알고 선한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다하라고 강력하게 설교하였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복지기관을 만들어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복지사역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는 제네바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회복지 기관인 종합구빈원(General Hospital)에 대한 성서적 전거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봉사하던 구빈원장과 행정관들을 교회와 긴밀히 연결시키는 역할을 감당하였다. 또한 종합구빈원만으로는 복지 수요를 다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따로 프랑스기금(Bourse Française)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프랑스기금은 주로 프랑스에서 제네바로 망명을 온 피난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구였다. 이처럼 칼뱅을 중심으로 한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종교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면에서도 제네바에 진정한 혁명을 가져왔다.

이처럼 장로교회의 전통은 세상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공적인 영역들을 복음의 정신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개인과 함께 공동체를 구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의 주소는 어떠한가? 교회만을 위한 교회, 개인의 구원만을 가르치는 복음, 저 세상을 위한 믿음으로 축소되고 왜곡되어 버리지는 않았는가? 참된 경건은 환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가르침은 루터를 따라 그저 “지푸라기 서신”의 넋두리로 치부해 버렸는가? 장로교회는 세상의 풍조에 빠져드는 세속주의도 경계하지만 동시에 내세적ㆍ피안적ㆍ신비적 도피주의도 배척한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성서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며, 세상 속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세상 안에서의 금욕주의”의 정신이다. 그렇기에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도 장로교회 전통은 복음과 세상을 동일시하지도 않고, 대립시키지도 않으며, 복음으로써 세상을 변혁시키는 모델에 속한다고 평가하지 않았던가. 장로교회는 사회의 공적영역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그곳에도 하나님의 복음의 정신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게 해달라는 주님의 기도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이제 한국 장로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하여 개인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책임지는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5. 예배와 예전 문제
교회는 무엇보다 예배공동체이다. 예배에는 신앙의 고백과 실천이 고스란히 녹아 응축되어 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어느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면 그 교회가 어떤 교단에 속한 교회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로마가톨릭, 동방정교회, 성공회, 오순절교회가 저마다의 특색이 있듯이 장로교회도 다른 전통들과 구별되는 장로교회 예배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오늘 한국 장로교회가 과연 장로교회 예배의 중요한 특징들을 잘 보존하고 이어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제 2세기에 들어서는 한국 장로교회는 초창기 장로교회가 추구했던 예배의 아름다운 유산들을 이어받아 계승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6세기 제네바의 개혁자 칼뱅에게 있어서 예배의 회복은 참된 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자 마지막 단추였다. 그는 사도행전 2장 42절의 말씀,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는 말씀 안에 예배의 중요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는 것이요, 서로 교제한다는 것은 성도 간의 섬김과 세상을 향한 구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요, 떡을 뗀다는 것은 성만찬이 거행된다는 것이며,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칼뱅은 말씀선포, 구제, 성만찬, 기도(찬양)가 예배의 핵심적 네 요소라고 보았다.

첫째로, 장로교회 예배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하고 있다. 장로교회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와 설교를 특별히 강조하여, 교회력에 따라 정해진 성서본문만을 설교하던 로마가톨릭과 루터파의 관례를 비판하고 성서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설교하는 강해설교 방식을 출발시켰다. 뿐만 아니라 장로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은 매주 빠짐없이 성서본문을 읽고 해석하는 성서연구모임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전통을 확립시켰다. 둘째로, 장로교회는 구제를 예배의 중요한 한 요소로 다루고 있다. 칼뱅은 사도행전의 서로 교제한다는 구절을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구제를 예배의 한 요소로 삼은 것은, 구제가 교회의 부차적인 의무가 아니라 본질적인 사명임을 천명한 것으로 대단히 인상적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의 순서를 포함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은 장로교회의 구제 전통을 잘 대변하고 있다. 셋째로, 장로교회는 빵과 포도주를 모두 베푸는 성만찬을 가능한 대로 자주 행하였다. 16세기 제네바에서 칼뱅은 비록 의회의 견제로 인해 1년에 4차례 성만찬을 행하는 것으로 만족하긴 했지만, 그는 기독교강요에서 매주 성만찬을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성만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를 통한 구속의 은총과 형제자매와의 일치를 확인하고 감사하게 된다. 넷째로, 장로교회는 예배에서 기도(찬양)을 매우 귀하게 생각했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성직자들만이 라틴어로 찬송을 부르던 관습에 반대하여, 칼뱅은 신자들이 모두 함께 자신들의 언어로 노래하는 회중찬양을 옹호하였다. 더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서는 시편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편찬송을 선호하였다. 그리하여 1539년에 18곡이 수록된 <제네바시편찬송가>를 처음으로 출간하였으며, 1562년에는 시편 전체를 찬양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장로교회 안에 초창기 장로교회가 지니고 있던 예배의 4가지 요소가 잘 표현되고 있는가? 혹시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개인의 신변잡담이나 경험담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예배 시간에 가난한 자를 위한 연보를 실천하고 있는가? 성만찬이 두렵고 떨림으로 감격하는 순간인가 아니면 시간에 쫓겨 형식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지나가는 순서일 뿐인가? 한국 장로교회 안에 몇 교회나 시편을 노래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는가?
물론 16세기의 전통을 오늘날 그대로 재현하려고 하거나 고집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렇지만 원래의 정신과 원리를 오늘날의 예배에 되살려 접목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구제를 예배와 분리시키지 않고 예배의 한 요소로 본 점이나, 시편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합당한 노래를 부르려고 했던 점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취사선택하지 않고 전체를 빠짐없이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선포하려고 한 정신이나, 주님의 본을 따라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만찬을 매주 베풀고자 했던 정신만은 여전히 살려야 할 것이다. 예배의 주인공인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예배, 신자들이 감격하고 새로운 삶을 위한 도전을 받는 예배, 삶의 부분이 아니라 삶 전체로 드리는 예배야말로 교회의 핵심적인 존재이유(raison d’etre)가 아닐까?

6. 연합의 문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펴낸 칼뱅 안내서의 한 논문에 “분열은 한국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현저한 특징”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이것이 외국의 학자에게 비쳐진 한국 장로교회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펴낸 공식자료에는 대한예수교장로교라는 간판을 가진 교단이 200개가 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마치 장로교회는 원래 분파주의인가 라고 오해를 할 지경이다. 분명 우리는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라고 믿고 고백하고 있는데 도대체 “하나의”라는 형용사는 무슨 의미인가? 도에 지나친 분열은 분명 한국 장로교회의 고질병이다. 그러나 부디 불치병은 아니기를 소원해 본다.
장로교의 아버지인 칼뱅의 주저인 기독교강요 중에서 교회론을 다루고 있는 4권의 처음 장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참된 교회 안에서의 분열을 혐오하고 있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참된 교회로부터의 분리는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더욱 이 사악한 분리를 피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교회개혁운동의 선배였던 루터(Martin Luther)와 츠빙글리(Huldrych Zwingli)의 불화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면서 중간에서 이들을 화해시키고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일치를 회복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분열하고 있는 데 큰 슬픔을 느꼈으며, 교회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권고하였다.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만 살펴보더라도 초창기 장로교회는 연합에 힘을 썼다. 한국에 들어온 장로교회는 미국 북장로회, 호주 장로회, 미국 남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순서로 4개 선교회가 들어왔지만, 이들은 서로 연합하여 장로교공의회를 조직하여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1905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하여 복음주의연합공의회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한국 땅에 대한예수교회라는 하나의 민족교회를 세우고자 애썼다. 이들은 교단을 초월하여 강단을 교류하며 부흥회를 인도했으며, 인적ㆍ물적 자원의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지를 분할하고, 성서번역뿐만 아니라 찬송가ㆍ신문ㆍ잡지를 공동으로 출판하였으며, 연합으로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칼뱅의 교회일치를 향한 열정과 한 세기 이전 우리 선배들의 연합을 위한 노력을 생각해 볼 때, 오늘 한국 장로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놀랄 수밖에 없다. 지금 선교지 분할정책이라는 것을 생각이나 할 수 있는가? 장로교와 감리교를 하나로 묶는 것은 고사하고 장로교회만이라도 하나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다른 교단은 차치하고 장로교에 속한 학교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가? 통합이니 합동이니 기장이니 고신이니 하는 이름을 버리고 함께 모여 연합사경회라도 할 수 있는가? 초기 한국교회처럼 복음화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교육, 의료, 언론 등에서 연합할 수 있는가?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질문들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곧바로 할 수 없게 한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해서 그것은 천상의 불가시적 교회에서만 가능하지 현실의 가시적 교회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포기하는 태도나, 교회의 분열이 교회의 성장을 가져 왔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나, 어떤 한 교회나 교파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가짜라는 배타적인 태도로 교회 분열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의 분열 자체가 아니라 분열된 교회가 서로 사귀지 못하는 것이 진짜 스캔들이다. 분열보다도 분열의 죄에 대해 둔감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질적인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주님의 간절한 기도 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장)

III. 결론
필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눈앞에 두고 기쁨보다는 안타깝고 두려운 마음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였다. 한국 장로교회가 어디쯤에선가 잃어버린 본래의 아름다운 유산을 회복하여 장로교회의 역동성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 비판적 성찰을 하였다.
무엇보다 첫째로, 교회의 목회자가 바로 서야 한다. 전문성과 더불어 영성ㆍ인성ㆍ지성을 갖춘 사람을 정당한 방식으로 선발해야 하고, 목회자에 대한 지속적인 재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로 교회정치에 있어서도 장로교회의 민주적인 대의정치 제도를 바로 세우고, 목회자의 동등성과 만인제사장설에 입각한 동역관계를 확립해야 한다. 셋째로, 신학교육에 있어서는 세상을 품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교육을 확대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 넷째로, 교회가 사사화(私事化)되거나 개인화(個人化)되지 않고 공적인 영역들에 대해 복음적이며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발할 수 있어야만 개인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로, 장로교회의 예배와 예전의 회복이 필요하다. 예배의 본래적 의미를 살리고 말씀, 구제, 성만찬, 시편찬양이 어우러지는 장로교회의 고유한 예배를 실현해야 한다. 여섯째로, 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을 해하는 중대한 범죄임을 깨닫고 성령께서 이미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름다운 일치의 모습을 힘써 지켜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진리를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21세기 한국 장로교회의 개혁은 하나됨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어야 한다.

한국교회 특별히 한국 장로교회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놀랍다. 복음을 받아 들인지 130여년이 지난 시점에 온 세계가 주목하는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된 것은 그 자체로 은혜이다. 그러나 장로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오히려 지금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기억해야만 할 때이다. 혹시 한국 장로교회가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는 무화과나무와 같이 되지는 않을 것인지,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갖춘 교회로 전락하지는 않을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할 때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는 오롯이 우리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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