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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 헤스 대령
김인주 편집인  |  thpr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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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4  13: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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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 헤스 대령

김인주 목사 (봉성교회)

   

한국전쟁을 소재로 만들어진 미국의 영화로 “전송가”(戰頌歌; Battle Hymn , 1957)라는 작품을 본 일이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연결된 우연이었다. 1957년 작인데 헐리웃에서 당대 최고의 훈남으로 꼽히던 록 허드슨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였다. 공군 조종사 딘 헤스가 6.25에 참전하고 많은 고아들을 제주도로 수송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내용이다. 여주인공으로 인도 배우가 출연한다는 점은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화면에서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안필립(必立)과 전쟁 고아들을 만날 수도 있다.

헤스는 목사였는데, 2차대전에 참전하기 위해서 자원하였다. 전선에 나갈 나이는 이미 아니었으며, 군종장교로 복무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최전선으로 갔다. 젊었을 때부터 경비행기를 몰던 취미가 발전하여 독일을 폭격하는 공군장교로 복무하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다시 목회자로 돌아왔지만, 전쟁의 상흔은 사역을 어렵게 만들었다. 혹여, 자신의 폭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살상되었으리라는 가책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공군에 입대하였고 일본으로 배치되었는데, 마침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 개봉 당시 국도극장의 포스터

전쟁의 와중에서 많은 고아들을 제주도로 공수하는 과정에 그는 크게 도움을 주었고 이 이야기가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아리조나에 어설픈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하였다고 하지만, 전화에 시달리는 한국의 형편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장면들도 많이 보인다. 50년대와 60년대 초반까지 한국전쟁을 소재로 적지 않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월남전이 전쟁영화의 소재로 부상했기에 더 이상 6.25에 관한 헐리웃의 관심은 소멸 되었다.

화면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각색된 부분도 있지만, 내용은 현실을 꽤 반영하고 있다. 여주인공은 황온순 여사(1902-2004)로서 우리나라 복지사업의 선구자이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유관순 열사와도 가까운 사이였다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나기 전부터 그의 보육 활동은 널리 알려져서 배우 황정순을 주인공으로 출연시킨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제주로 이송한 고아들을 위해서 이승만 대통령은 그에게 특별히 이 일을 맡도록 강권하였다. 한국 보육원은 전쟁이 끝나면서 수도권으로 이전하였기에 제주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이후 황온순은 휘경여고를 세웠고, 원불교를 대표하는 일꾼으로 기억 되기도 한다. 이화학당과 이화여전에서 성장하였지만 1930년부터 원불교의 신앙을 택하였고 교회와는 멀어진 것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해석과 추측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 부부와 함께한 헤스 대령

영화가 공개된 이후 여러 사람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을 하기도 하였다. 실제 서울에서 제주로 화물기에 실어 고아들을 수송하는 일을 추진한 사람은 미군 군목으로 종군하던 중령 러셀 블레이즈델(1910-2007)이었다. 이 일을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밀어부쳤다는 이유로 그는 군사법정에서 징계 받았다. 군법회의 최후진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일이 죽음에 내몰린 아이들을 죽게 놔두는 일이라면 전역하겠습니다.” 2013년에 그의 동상이 광주 양림동에 세워져 그의 사역을 증언하고 있다.

두 사람의 활약이 하나로 합쳐져서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점을 헤스는 시인하였다. 그가 1951년 5월 귀국하여 한국전의 경험을 쓴 자서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크게 변명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책이나 영화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이 전쟁고아들을 위해 쓰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실 게임에 몰두하지 않을 것을 부탁하였다. 실제 그는 한국의 보육사업을 위해 아낌없이 쾌척하였다.
   
   복지사업의 선구자 황온순과 헤스 대령

그는 또한, 한국공군의 창설 교관이었다. 어려웠던 전쟁 시절 잠시나마 공군훈련이 제주에서 이뤄지기도 하였다. 공군사관학교는 대정초등학교에서 태동하였다. 그의 교육으로 조종을 익히고 처음으로 제주에서 출격한 공군 중에는 주영복도 있었는데, 1989-1980년 신군부가 권력을 잡던 당시 그는 공군참모총장이었고 이어서 국방부 장관이 되기도 하였다.

2015년 3월 4일에 딘 헤스가 향년 98세로 사망하여 7일에 장례식이 치러졌다고 보도 되었다. 대한민국 무공훈장 수훈자에 대한 고마움을 국방부와 공군이 기억하고 조문하였다 한다. 이 이야기의 세 주인공이 신앙과 종파를 초월하여 협력했고 말년까지 우정을 이어갔던 이야기는 흐뭇하다. 모두가 건강하게 장수하였다. 우연이라 할지라도, 어려웠던 시절의 미담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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