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鶴駕山의 스콧트 니어링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지금 찾아갑니다.
경북 안동 鶴駕山의 스콧트 니어링이천우 목사가 사는 방법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8.20  21:30:04
트위터 페이스북

                            경북 안동 鶴駕山의 스콧트 니어링

이천우 목사의 사는 이야기 
   
 
   
 
 

 

 

 

 

 

 

 

 

 

 

 

 

 

 

 

 

 

 

 

 

 

 

 

37년간의 경북 안동에서의 목회를 마감하고 지금은 경북 안동시 서후면 광흥사길 14의 해발 882m 아래 터전을 잡고 산과 자연을 벗하여 유유자적하는 이천우 목사를 소개하고 싶다. 이 목사님은 1936년 생이시니 올해로 8순이다. 그러나 이 목사님을 최근에 만나고 본분들의 눈에는 아직 청년이다. 입은 옷도 그렇고 가방을 허리에 메고 걷는 걸음하며 도대체 그 생기발랄한 비결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말들이다. 성미도 급하셔서 마음에 안들면 누구고 큰 소리를 내시고 야단을 치시기도 하고 이내 얼굴을 붉히고 사고도 자주하시는 분이다. 모두 정의로운 공분이요. 그 분의 성격이었다. 지금도 1개월에 한번은 서울에서의 인권동지회(7-80년대 초교파적으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활동하던 원로들) 모임에는 빠짐없이 올라오신다.

이 목사님은 포항 영일군 기계면에서 태여나셨다. 그러나 청년기와 학업은 대구에서 목회의 마무리는 안동에서 하셨다. 고교졸업후 61년 영남신학교를 거쳐 장신대는 64기로 졸업을 하셨다. 동기들로는 오창학, 유한귀, 장성규 목사등이 계시다. 우리주변에 목회를 잘하시고 은퇴를 하신 분들이 부지기수이고 장신대를 졸업한 분들만도 한 두분도 아니고 저마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생을 사시고 후진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 목사님 만큼 다방면으로 박식하고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분도 드물다. 평생 옳곧은 성품으로 인하여 지금도 인권목사, 운동권 목사를 달고 다닌 다.  목회는 대구 대봉교회 전도사, 영주영광중학교, 안동북부교회를 거쳐서 안동 동안교회를 개척하여 21년간 목회를 하셨다. 그외에도 영문고, 경안성서신학대학원,영남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과 상담심리를 강의하기도 하였다.
   
 

이런 팔방미인 어른을 지난 8월 중순에 참 오랜만에 뵈었다. 그리고 한들출판사에서 지난 6월에 작으마한 책자를 발간하고 기념식을 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6월 20일 안동에서는 이 목사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서 출판기념회를 하였다.  사회는 안동교회 정경상 장로가 기도는 김중한 목사, 말씀증거는 홍성현 목사(갈릴리신학원 원장), 축도는 조준래 목사가 했다. 이어 이 책을 펴낸 한들 출판사 정덕주 목사, 신학동기인 오창학 목사,  평통사 대표 문규현 신부, 인권운동 후배인 광주의 김병균 목사가 축하의 인사를 하였다. 이 책의 제목은 그분의 정체성 그대로 “정의를 흐르게 하라” 인데  목사님의 칼럼 집이지만 이 책에서 이 분의 사상과 철학이 짓게 나타나 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이론을 토대로 짧은 글들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독자들에게 꼭 소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출판비용은 자녀들이 마련했는 데 축사를 하신 장로님은 얼마나 감동을 하셨는지 우셨다고 들었다. 요즘 하루에도 수도 없는 책이 많이 나오고 공짜로 주는 책도 많치만 나는 감히 자신의 목회가 힘든 사람, 의미있는 목회를 하고 싶은 사람, 큰 교회를 숭상하고 노회장 총대, 총회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목사님과 안어울 것 같은 사모님은 윤미지 교수님이시다.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지적이고 미인일지 상상이 가는 가? 목사님은 목회 중 노후을 상관없이 자신이 섬겼던 교회건축을 위하여 전 재산을 아낌없이 드렸고  아무 조건 없이 은퇴를 하셨다. 그리고 사모님의 퇴직금으로 작년에 학가산에 거처를 준비했는 데 이 책을 사모에게 헌정하고 있다. 이 목사님은 교통이 안좋은 경상도 내륙지방에 사셨지만 더 배우고 알기 위하여 계명대, 고려대학에서 상담학을 공부하시고 싱가풀 하가이 인스티튜트와 프린스턴에도 다녀왔다. WCC, CCA, WARC 총회나 모임에도 참석하여 세계교회의 흐름과 에큐메니칼신학과 운동에 대해서도 열심히 배우고 정리한 에큐메니스트다.  NCCK의 인권위에서는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전두환 군부독재에 저항하고 이한열 열사 대책위, 국복법철폐운동본부, 현재 “안동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상임대표를 지내고 지금도 공동대표로 있다. 평통사는 모든 시민운동단체 가운데 이 정부가 가장 주목하고 예의 주시하는 곳으로 구속자도 많이 나온 단체이다.

학가산의 스콧니어링
이 목사님의 하루 일과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일어나 학가산의 숲과 나무 바위와 돌을 만나고 그들과 인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감사하며 자연이 준 것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그리고 500평의 땅에 집을 짓고 인근 텃 밭에서 손수농사를 짓는 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60kg의 몸으로 20kg의 자연퇴비를 지고 자연농법으로 먹거리를 만들고 산에도 오른다. 노동은 반나절만 하고 나머지는 철학과 사색을 하고 틈만 나면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시민운동단체에 젊은이들을 만난다. 그렇게 읽은 책의 결실로 틈틈이 쓴 글을 발표조차 할 곳이 없어 모았는데 이번에 이 책에 담은 것이다.  이제라도 이 목사님의 삶의 여정과 자취가 빛을 보고 후진들에게 소개하게 되어 감사할 뿐이다. 
   
 

책의 한 대목을 소개하면 지금 교단의 내노라 하는 분들에 대해서도 가감없는 비판을 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지역과 노회에 힘있는 교회와 목회자에게 줄을 서고 알아서 기던 시대에도 일절 없이 자신이 갈길을 간 분이고 비판을 한 분이다. 그 흔한 노회장도 안했다. “가증 러운 총회장의 눈물” 이라는 제하의 글에서는 전 총회장으로 사학법 문제로 삭발을 한 것을 비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르는 분도 아니지만,  "가짜 박사를 축하한 총회장" 이라는 글에서도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는 큰 교회 교권행보 목사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4부 구성되어 있는 데 1부는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인가”에서 기독교의 행태를 비판한 글이다. 2부는 “사랑이 무엇인가“ 로 사랑으로 권면한 글과 해외 방문기다. 3부는 ”나는 갈릴리 좌파다“ 인데 여기서는 주로 정치성 짖은 글을 올렸다. 이 목사님의 혜안은 이 글에서 나타나는 데 갈릴리도 우파와 좌파가 있다는 표현은 처음으로 제기하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뭉퉁그려 갈릴리라고 해서는 안된다. 성경지명으로의  갈릴리에서 갈릴리의 예수운동으로 용어만 쓰거나 왜곡되고 잘못된 갈릴리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이 목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은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암5:24)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그렇게 잡은 것으로 보인다. 책의 서문에서 “지난 30년 군사독재가 저지른 불의하고 부정한 문화를 청산해야만 이 나라가 진정 건강하고 정의로운 나라가 될것이라“ 라고 강조한다. 이목사님의 삶과 목희의 자리는 철저하게 ”교회와 세상“ 이었다. 아닌 사람이 어디있는가?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교회(영적) 세상(사회적) 이 둘을 온전히 조화롭게 실천한 사람은 그렇게 많치 않다. 우리시대에 개혁이요 진보라고 칭할 수 있는 분들 가운데서 이 목사님 만큼 철저하게 끝까지 산분은 많이 않다. 젊어서는 큰 일을 할 듯이 하다가 중간에 변절되거나 투항하거나 권력화된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그 피가 후배들까지 유전되었다.는 비판이다.  정직하게 변절자로 자임하고 조용히 사는 것도 아니다. 

비판적 지성인의 삶
총회적으로 무엇이 되기 위하여 전화를 내놓고 서로 품앗이들을 하는 짓들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 목사님 처럼 자유하는 영혼으로 자신을 따르고 좋아하는 교인들과 행복한 목회를 꿈꾸고 실현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지 묻고 싶다.  5공때는 하도 데모를 하러 다니고 정치권 비판설교를 하니 장로들이 순수한 복음을 전해달라는 요구에도 알았다고 하고는 다시 또 예레미아와 같이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정의의 외침을 누를길 없어 또 다시 외쳤다는 것이다. 경찰들의 회유와 감시 이간질로 목회에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해고와 투옥 심지여 목숨을 버리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뜻을 굽히지 않았던 열사들을 잊을 수 없었고 그들의 외침을 삶을 배반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계시다. .

근현대사의 위대한 인물들 김 구, 조봉암, 여운형, 인혁당의 억울한 죽음, 광주학살, 이만열, 박종철이 죽음은 모두 악마의 짓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 목사님의 비판 글에는 “변칙세습” 이라는 제목의 글이 압권이다. 이 글은 내가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와 재판을 한다고 해서 편드는 것은 아니다.  이 책 31쪽에 보면 명성교회가 부목사인 자기 아들 김하나에게 교단이 세습을 하지 못하는 법을 만들자 변칙으로 부목사 4명, 교육전도사 2명, 교인 600명을 떼어주어 개척을 하는 변칙세습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명성교회의 이 기상천외한 일이 경북 안방인 안동의 은퇴목회자에게 어떻게 보여졌는 가를 알수 있다. 이분이 인터넷 신문 예장뉴스도 보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김 목사는 아들을 위하여 자기 돈도 아닌 교회 돈을 사용하여 큰 교회를 주었는데 불법이고 비성서적이라는 것이다. 수 많은 목사들이 빈손으로 빈땅에서 개척을 하고 피눈물을 흘리는 데 큰 교회의 목사 아들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삼환 목사, 시작은 창대했으나 나중은 미약하게 되었다” 라고 쓰고 있다. 그 외에도 실명으로 실명을 들어 이종성 학장, 김동길 교수, 김기수 목사, 나채운 교수, 이종윤 목사, 전광훈 목사, 인명진 목사등 발언과 행동은 매우 정치적이면서도 중도 혹은 복음으로 위장한 종교귀족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 한기총, 증경 총회장 칭호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이 목사님은 많은 독서를 통하여 그 자신의 철학적 사고의 기반을 넓히셨는데 협소하고 주관적인 신앙관을 완전히 벗어나서 참 자유하는 신앙인이 된 것이다. 이 책에서 감명깊은 책이라고 소개하는 1999년 동아일보가 추천한 책인 미국의 스콧트 니어링 부부가 집필한 “조화로운 삶” 도 소개하고 있다. 나도 이 책을 매우 감명 깊게 본바 있다. 스콧은 1983 100세에 버몬트의 산간마을에서 자신이 지은 집과 노동을 하며 부인과 해후하면 세상을 떠난다. 그는 한때 사회주의자로 유팬과 톨래도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아동노동 착취와 제국주의에 대하여 저항하며 전쟁을 반대하는 토론회의 주강사였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에 찌들고, 오염되고, 경쟁하고 부패한 뉴욕의 도시생활을 접고 메인주의 버몬트라는 산골에서 단풍나무 시럽을 만들고 빵을 만들어 생존할 수 있을 만큼만 자급자족하며 노동의 낭비를 경계했다. 가난하게 순수하게 만족하며 생활한다. 그래서 그는 장수했다. 한해의 양식이 마련되면 더 이상 일하지 않았고 먹고 남은 채소와 과일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채식을 위주로 술, 담배, 커피, 차, 흰설탕과 밀가루 소금과 가공식품과 고기를 멀리했다. 깨끗한 양심과 깊은 호흡을 유지하는 것을 삶의 대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면에서 이 목사님의 노후의 생활은 바로 스콧트 부부의 삶과 잂치하는 면이 있었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대안적 삶
헬렌 니어링은 그의 부인이다. 아버지의 친구벌인 스코트 니어링과 결혼을 한 것이다. 미국은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1932년에 뉴욕의 대도시에서 살다가 요즘 말로 귀농을 하여서 자신들만의 원칙과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철저히 지키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간다. 그러면서 도시생활에서 얻지 못했던 자족감과 풍족함을 얻는다.  비판적으로 보면 그들은 현실도피자나 도시생활의 실패자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현대문명의 비판자며 동시에 현대문명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든 일들에서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가 처음에 십 년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우리 삶의 중심 원칙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하나,우리가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윤 추구의 경제에서 할 수 있는 한은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대공황은 몇 백만이 넘는 가장들을 위기에 몰아넣었다.사실 이것은 시장에서 생필품을 사다 쓰는 사람들을 늘 위협하고 있는 문제였다.  일당이나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은 스스로의 일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자기들과 상관없이 경제 정책이 결정되고,정책을 수행하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뽑지도 못한다.다시 말해 이때의 수많은 실업자들은 자기 잘못으로 일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모든 생필품과 살림살이들을 돈 주고 사야만 하는 경제 구조 속에서 그이들은 직장을 잃은 것이다.

수입은 끊겼지만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모아놓은 돈은 바닥났고,결국 그이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렇듯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구조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그 두려운 일들을 받아들이거나,아니면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내야만 했다. 우리가 생각해 낸 대안은 절반쯤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이었다. 

둘,우리는 돈을 벌 생각이 없다.또한 남이 주는 월급을 받거나 무언가를 팔아 이윤을 남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바람은 필요한 것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손수 생산하는 것이고,그럼으로써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일차 목적이다.  한 해를 살기에 충분할 만큼 노동을 하고 양식을 모았다면 그 다음 수확기까지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돈을 번다'거나 '부자가 된다'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매우 그릇된 경제관을 심어 주었다.

우리가 경제 활동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것이다. 돈을 먹고 살 수는 없으며,돈을 입을 수도 없고,돈을 덮고 잘 수도 없다.  돈은 어디까지나 교환 수단일 뿐이다.식의주(食衣住)에 필요한 물건을 얻는 매개체이다.중요한 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이지 그것과 맞바꿀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현금에 맞추어 돈을 벌려고 했다.  필요한 것이 마련되었다고 판단되면,그 해의 남은 시간 동안에는 더 이상 농사를 짓지도 않았고 돈을 더 벌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먹고사는 것만 해결하고자 했으며,이렇게 일단 기본 생활 수단이 마련되면 다른 일들에 관심을 돌려 열중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사회 활동,그리고 독서와 글쓰기와 작곡 같은 취미 생활이었다.

셋,우리는 모든 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우리가 가진 돈만으로 치를 것이다. 은행에서는 절대로 돈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땅이나 집을 담보로 넣어 융자를 얻은 뒤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제 구조에서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배를 두드리며 편히 산다.  개인이든 은행 같은 기관이든,돈을 빌려주고 담보를 잡으며,이자와 경매 처분으로 얻는 수익금으로 살을 찌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무엇을 생산하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안락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한편 돈을 빌려다 쓰는 생산자들은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하며,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기의 모든 재산을 잃는다.  대공황 때 몇 천 명에 이르는 농부들과 가장들이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이나,어느 날이나,어느 달이나,어느 해나 잘 쓰고 잘 보냈다.  우리가 할 일을 했고,그 일을 즐겼다. 충분한 자유시간을 가졌으며,그 시간을 누리고 즐겼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할 때는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결코 죽기 살기로 일하지는 않았다.그리고 더 많이 일했다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사람에게 노동은 뜻 있는 행위이며,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일이고,무엇을 건설하는 것이고,따라서 매우 기쁨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이 되면 평소와는 달리 먹고살기 위한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아무 계획도 없이 하루를 보냈다.  일요일 아침에는 대개 음악을 감상했다.그리고 저녁에는 종종 함께 모여 토론을 벌였다.  누군가 소리내어 책을 읽기도 했는데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나무 열매를 쪼개거나 콩 껍질을 벗겼으며,바느질이나 뜨개질 같은 자질구레한 자기 일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급자족을 통해 이윤추구의 환경을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돈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더욱이 땅이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는 절대 돈을 빌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코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았다. 

이들은 현대인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현대인들은 이윤추구와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낀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투자목적으로 땅이나 집을 담보로 잡힌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한다. 그 과정에서 현대인들은 쳇바퀴 돌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시인들은 이 쳇바퀴를 가장 열심히 달리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현대적 도시생활을 그리워하는 시골사람도 있고 반대로 도시생활에 찌들어 귀농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삶을 선택하든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은 문명이 주는 흥분,분주함,매혹,편의 시설,기호품 등에 얽혀 대안적 삶을 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이 내 삶의 유일한 양식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들의 삶이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궁극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도시의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의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결국 「조화로운 삶」이 고전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문명이란 사실 불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끝없이 늘려가는 것"라고 말했다.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을 너도나도 소비하는 과정에서 현대인은 소비의 마법에 빠져 자기를 상실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오히려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무엇이 진정한 풍요로움인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조화로운 삶」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그는 천상 목회자였다.
이 책의 마지막은 목회자로써의 열정과 교인사랑으로 맺고 있다. 그런면에서 나는 이 목사님은 성공한 목회자라고 본다. 성도들이 베풀어준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는 진정한 목회자다. 실패한 목회자에 대하여 이 목사님은 쓰시기를 "성도들이 주는 돈으로 사랑으로 분주하게 다니면서 먹고 쓰고 한 것을 목회로 끝을 맺으며 공로라고 공로 패받는 데 이것이 어찌 공로라는 말인가? 오히려 부끄러운 일" 이라고 하시면서 사도바울도 로마서 마지막에 수고한 사람들의 이름을 천거하였는데 복음을 위하여 핍박받고, 헐벗고, 굶주리고, 흘린땀이 있는 사람이 수고한 사람아닌 가?

그래서 그는 원로 목사 추대식 답사에서 말하기를 “ 21년동안 제단에 엎드려서 교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는 데 이제 마지막으로 장로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다가 목이 메었다” 또 “동안교회가 나를 먹이고 입히고 그 품안에서 살고 그 품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다. 동안교회는 나의 인생의 전부였고 나의 청춘과 눈물과 땀과 사랑이 베어있는 곳이다“ 라고 적었다.

이 목사님의 집은 학가산 822고지인데 앞에는 650m 천둥산이 있고 뒤에는 500m의 복지봉이 있다. 그는 사슴처럼 산을 뛰어 다닌 다. 안동주변에는 많은 산이 있다. 갈라산, 천둥산, 천지갑산, 아기산, 비봉산, 청량산, 주왕산, 소백산이 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지역의 동지들과 산을 오르고 1년에 한번은 먼거리 여행도 한다. 평통사, 시민연대, 전교조, YMCA, 은퇴목회자,NCCK, 소위운동권들과 사이클 축구을 한다. 밤에는 영어 성경을 보고 K1 격투기도 본다고 한다. 동물의 왕국도 좋아하고 낮에는 고전음악을 들으며 낮잠도 자지만 밤에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모님과는 취미가 달라 각방을 쓰신 단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안동대학, 시립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한다. 열린사회를 위한 안동시민 모임, 안동시민포럼에 참가하여 돈도 내고 돕고 있다. 안동의 후배들이 이 까다로운 은퇴목사들을 잘 보필하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라고 인사하고 싶다.

                                   * 2015년 5월 28일, 한들출판사, 15,000원(251페이지) 

유재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5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원주제일교회 성도들 주일 날 상경 시위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10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 17길 10 A동 202호   |  전화 : 02-469-4402  |  행정 : ds2sgt@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054  |  발행인 · 편집인 : 유재무 |  대표 : 이명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 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