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넘어 다가오는 하나님의 경이를 맛보다 - 예장뉴스
예장뉴스
CultureCine
침묵을 넘어 다가오는 하나님의 경이를 맛보다기독교적 영화보기 <위대한 침묵>
기획 편집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07.03  00:35:18
트위터 페이스북

                                     침묵을 넘어 다가오는 하나님의 경이를 맛보다

위대한 침묵 (Die Große Stille) 

2005 프랑스, 스위스, 독일, 168분

   
기독교적 영화보기 <위대한 침묵>

   

            필립 그로닝 감독

 

   

 

 

 

 

 

 

16년 만에 허락받아 찍은 영화

숨소리조차 부담스러울 만큼 조용한 가운데 영화를 보라고 하면 “싫다”라고 대답하는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소름이 돋는 공포영화도 아니고 은밀한 성적인 장면도 없어 재미라고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내용을 168분 동안 소리 내지도 않고 본다면 인내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칭찬받을 일이다. 그런데 그런 영화가 최근 소리 소문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바로 <위대한 침묵>이다.

필립 그로닝 감독이 16년 만에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허가를 받아 만들었다는 <위대한 침묵>은 영화내용만큼이나 인내를 가지고 만든 영화다. 그런 만큼 국내개봉은 종로 후미진 곳의 아트선재에서 시작됐다. 별 흥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8개가 넘는 곳에서 상영되고 있을 만큼 입소문으로만 관객이 몰려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침묵>은 다큐영화다. 아트선재에서에서 매진이 계속되어 종영을 거듭했던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없다. 그저 알프스의 깊숙한 산 속에 있는 수도원의 일상이 나래이선 없이 화면에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줄거리 없어보이던 영화에는 감독의 분명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침묵 속에 발견하는 새로운 언어

그것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침묵’이다. 말이 없어도 감독은 화면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현대 사회의 분주함이 자연스러운 일상인 현대인에게는 <위대한 침묵>의 장면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언어가 사라졌음에도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의 일상은 아무 문제없이 잘 진행된다.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책임을 맡고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지시가 없다. 하지만 이미 암묵적으로 수도사들은 자신이 맡은 책무를 무리 없이 잘 감당하고 있다.

알프스산맥 해발 1300m에 위치한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봉쇄수도원인 그랑드 사르트뢰즈 수도원은 가장 엄격한 금욕수도원이다. 영화는 겨울의 풍광으로 시작해서 겨울의 풍광으로 끝을 맺는다. 거기에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순환된다. 감독은 자연의 장엄한 풍광을 아무런 설명 없이 관객들에게 비쳐준다.

침을 넘기는 소리조차 부담스럽게 영화는 지독하게 침묵이 영화를 끌고 간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놓치기 쉬운 발자국 소리, 물 떨어지는 소리, 바람소리, 삐걱거리는 문소리, 책을 넘기는 소리들이 귀속으로 확연하게 들린다. 거기다 감독은 수도사들이 개인적인 잡담소리를 담아 관객들의 긴장을 풀게 한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그 빛 속으로 춤추는 미세한 먼지 따위들을 비쳐준다.

 
   

                                눈이 내린 수도원의 모습

 침묵의 향연과 경이

감독의 이런 의도적인 앵글의 눈은 자연 속의 경이들이다. 침묵의 고요 가운데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침묵의 향연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햇빛은 공간의 어두움과 명확한 경계선을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경이로움이 있다. 그것은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쉽게 놓칠 수 있는 공간의 움직임이다. 특히 고요를 깨는 종소리는 문득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게 하는 경고음 같이 들린다. 고요를 즐기다 어느 때가 되면 수도사는 어김없이 긴 줄을 당겨 종소리를 낸다. 그것은 고요와 침묵을 깨뜨리고 수도원에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도사들은 독방에서 공동체의 장소로 모이고, 미사와 송영을 부른다. 계속 반복되는 찬미의 송영은 하나님의 위대함이 전부라는 고백으로 들린다. 침묵 가운데 사물의 움직임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놓치는 경이들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삶에서 만들고 있는 각종 사업과 비즈니스적인 관계, 가공식품으로 배를 채우는 현대인들은 고요한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경이를 놓치며 산다.

의도적인 침묵을 통해서 주변에 일어나는 경이들을 맛볼 수 있음을 영화를 말하고 있다. 수도사들의 일상은 독서, 묵상, 미사, 찬미 등의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일상을 쉼 없이 반복한다. 그런 가운데 감독은 가끔씩 성경구절들을 반복해서 내 보낸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주님께서 나를 이끄셨기에 지금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구절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수도사로 부르시지 않았다. 수도원은 그곳으로 이끄심으로 있는 수도사의 몫이다. 우리는 시장터로 부르시고, 회사빌딩으로, 학교로 부르신다. 그곳에 “지금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경이를 발견하게 한다.

이 영화의 초입에는 두 명의 신입 수도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이 수도원에서 침묵 수행을 시작하고자 들어왔고, 입회식을 치르고 침묵수행에 들어간다. 감독은 영화 중간 중간을 이용해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의 얼굴을 화면 가득 채운다. 수도사들은 아무런 감정과 동요 없이 카메라를 응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수도사들은 약간의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말이 없다.

수도사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영화는 겨울을 지나 봄, 여름으로 흐른다. 따뜻한 날의 산책에서 수도사들의 잡담과 호기심 있는 토론들은 침묵의 깨뜨린다. 세상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 그리고 자신들의 의견들을 나누는 모습 속에서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도 여전히 세상과 연결된 삶이 있음을 목격한다.

<위대한 침묵>은 단순히 침묵이 좋거나 나쁘다를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 나래이션이 없는 것처럼 관객이 취향에 따라 영화를 감상하고 느끼면 된다. 심오한 무엇을 제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런 삶도 있다는 것과 그런 삶이 주는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한다.

 
   
             산책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수도사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행복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시 오면서 감독은 자신이 의도했던 주제를 하나 드러낸다. 그것은 죽음이다. 영화가 마무리될 무렵 새하얀 긴 눈썹의 노수도승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노수도승은 자신의 눈먼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를 말한다.

“나는 맹인이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맹인이기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었고, 하나님께 가까운 만큼 행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백을 통해 인생의 성숙한 삶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그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섭리, 그리고 그 섭리 가운데 누리는 인간의 행복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과거가 없습니다. 오직 현재만 지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그분은 우리 삶 전체를 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선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만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영화는 자연의 풍광, 시간의 변화, 그리고 죽음을 앞둔 한 노수도승을 클로즈업한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 서두에 등장했던 신입 수도승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영화를 마무리된다. 시작과 끝에 대한 인생의 반복, 그러면서도 여전히 세상은 조용히 하나님의 경이를 드러내고 있음을 영화는 침묵을 통해 말하고 있다.                                (2010.2.1.교회와 신앙 양봉식)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5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원주제일교회 성도들 주일 날 상경 시위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10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 17길 10 A동 202호   |  전화 : 02-469-4402  |  행정 : ds2sgt@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054  |  발행인 · 편집인 : 유재무 |  대표 : 이명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 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