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의 역사 속의 오늘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칼럼/기고/강연
김인주의 역사 속의 오늘쯔빙글리(1484-1531)
김인주 기자  |  thpr001@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10.10  20:01:23
트위터 페이스북

                                          김인주의 역사 속의 오늘

쯔빙글리(1484-1531)가 10월 11일 카펠전투에서 패하였고, 처참하게 죽어갔다. 1929년 10월 초, 마르부르크에서 그는 루터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였다. 양측의 성찬에 관한 견해는 좁혀지지 않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라졌다. 1530년 6월에 소집된 제국의회에서는 개인적으로 신앙고백을 제시하였지만,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이 확산되었다고 하나, 산악지대는 아직도 천주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하며, 전쟁도 불사한다는 태세를 갖추었다. 평야지대의 개신교 진영은 물자공급을 봉쇄하며 압박하였다. 1530년 두 번째 전투가 벌어지고, 열세의 병력으로 전장에 나갔던 개신교 진영의 대패로 종결되었다. 쯔빙글리의 시신은 찢겨졌고, 화장되어,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의 역할이 병사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군종장교는 아니었다고 보인다.

열세의 전쟁터로 나가면서, 자신의 최후를 예견하였다. 카펠은 쮜리히 남쪽방향 7km 정도 되는 지점이다. 그의 아내 안라 라인하르트(1487-1538)은 1522년부터 그와 동거하다가, 1524년 4월 2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세 자녀가 있는 과부였는데, 첫 결혼을 시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어려운 처지였다. 개혁자와의 사이에서는 네 자녀를 낳았다. 후임자 불링어가 유족을 돌보았다.

김인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3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4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5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장로교회의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10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 성동구 성덕정 17길-10, A동 202호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왕보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