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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사례비의 적정선과 상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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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7  13: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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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사례비의 적정선과 상한 선

목사의 사례는 교인들 헌금에서 나온다

장로교회에서 목회자가 안수를 받으려면 첫째로 반드시 시무지의 청빙이 있어야 하며 둘째로 그에게 사택과 일정액의 생활대책을 하겠다는 서약서가 첨부 돼야 한다. 이 말은 적어도 교단은 목회자를 배출할 때 사역할 임지없이 안수나 파송하지 않으며 생활대책을 목사 개인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전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법을 만든 것은 장로교회의 전통이며 이유가 있는 데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것은 무임목사를 양산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갖고 살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로 반드시 그 시무처에서 책임을 지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렇게 소박하게 출발한 목사들의 사례비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교회 목회자들의 사례는 거의 100%, 교인들이 낸 헌금에서 지급된다. 그 중에는 외부활동(부흥회, 강연회)과 부인들의 사회활동통한 수입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자기 목회자의 최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PCK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노회가 적정선(평준화)을 정하고 나머지를 지원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교단이 목사 후보생의 수를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고 경영논리만 가지고 있는 학원들의 요구대로 무작정 배출하고 있으니 임지가 없는 무임목사가 늘고 있다. 목사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사역을 하고 자신도 살겠다는 사역이 이제는 자기 생존을 위하여 교회를 개척하게 된 지가 오래다. 

천주교는 신부 개인이 임의로 성당을 세울 수 없다. 불교의 승려들은 암자나 사찰을 경치 좋은 곳에다 무허가 암자를 만들어 신도들을 모으고 장사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로교회법도 사실 목사 개인이 함부로 교회를 세울 수 없게 되어 있다. 노회의 전도부가 개척지와 후보자를 택하고 목사를 파송하거나 위탁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이제는 목사 개인이 주관적으로 장소를 정하여 개척을 시작하여 노회에 가입해 달라기도 하고 또 어려우니 지원해 달라고 하는 형편이다. 겉으로는 사명, 소명 운운하지만 부목사도 할 수 없거나 임지가 없어 졸업 후 생활 대책을 위해 임지를 찾는 동안 임의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한 마디로 생계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세운 교회들이 모두가 자립하고 성장해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면 또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그런 꿈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 자립 성공률이 10%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자기가 결단하고 자력으로 한 개척교회이니 고생이든 영광이든 본인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교단은 이미 생활비 평준화에서 이제는 자립화 대상교회 지원에서 '동반성장'이라는 개념으로 교단 내에서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일정 기준에 맞추려고 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나오는 얘기는 사회법의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대로 같은 영역의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 격차가  10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짐승은 자신이나 새끼의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하거나 먹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만은 그렇지 못하다. 배불러도 먹을 것을 구하고 또 그 이상을 구한다. 지금은 문제는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먹고 더 많이 먹는 문제이다. 그리고 먹는 문제가 아니고 쌓는 문제다. 더 많이 받아서 투자하고 자식 것까지 비축해 둔다. 그런 풍조는 우리 사회의 미래 불안에도 있지만 돈이 있는 이들을 가만히 두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목사들도 부동산과 건물을 사 놓고 펀드와 주식에 심지어 증권과 중고차에 보험 장사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거대한 욕망 덩어리로 왜 목사를 하는 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목사의 사례비 문제는 신앙적 상식 안에서 그리고 목회자라는 최소한의 윤리 수준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교회 목사, 얼마 받는지 모르는 교인 많아
더 큰 문제는 정작 자신들이 헌금해서 섬기는 교회의 목회자가 정확히 얼마를 받고 있는지를 아는 교인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또 실제로 본봉은 크지 않지만 각종 부대비용으로 포장하여 실제는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많다. 교인들의 생활은 여유 있는 분도 있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신도들은 목회자들이 자신들보다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큰 반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이런 것을 이용하여 “주의 종이 먼저 복을 받아야 하고 잘 살아야 본이 된다" 거나 "목회자가 생활로 인하여 근심하거나 어려운 생활을 하는 것은 덕이 안 된다" 는 식으로 신화를 만들고 조장하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교회나 목회자가 사회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고 있는 문제들은 주로 연합기관을 무대로 활동하는 대형교회의 목회자들과 그들의 시종이 되어 몰려다니는 정치 목사들이다. 그들은 결코 개인 생활비로 그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 몇 년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회장 선거와 관련한 갈등 과정에서 자신은 회장이 되기 위하여 목사들에게 금품을 주었다고 폭로한 이광선 목사로 말미암아 일반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조차 교계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의 타락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이 돈은 결국 교회 재정을 갖다가 쓴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성직자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권력과 자리 앞에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돈이고 폭로전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 후 한기총은 국민들과 교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해체의 압박과 회원 교단 탈퇴와 분열의 열병을 앓고 있다.

돈과 권력 앞에서는  모두가 같다.
결국 성직자의 신앙적 양심이라는 것도 돈과 권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런 가운데 그 원인을 추론하면 이같은 일이 생겨난 목회자들의 돈 관리 상식이다. 한 마디로 교회 돈을 자기 맘대로 갖다가 쓰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나고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의 재정 시스템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교회 재정에 목사의 개입을 최소화 하고 목사의 지출과 함께 재정 담당부서의 관리를 다각적으로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목사부터 교회 돈에 탐을 내고 쓰려고 하기에 장로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또 목회자 사례비 책정도 그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교회마다 형편과 사정이 다르고, 목회자마다 능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목회자들의 적정 사례비에 대한 논의를 아예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아는 데 외국 교회의 사례도 그렇고 사례비에 대한 적정선 논의는 시작해야 한다. 기본은 공무원처럼 기본급에 시무 연수와 부양 가족수와 학업을 하는 자녀 등의 경우를 고려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낯설지 않은 제도이다. 그러나 일부 교회성장을 이룬 목회자들이 주도하는 총회나 노회의 상층부나 관례는 이런 방식보다는 개교회의 형편에 맞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이는 결국 본인만 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는 제도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때이다. 적정한 사례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며 이것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목회자 생활비 산정 방안에 대한 원칙은 교회는 물론 사회에서 받아드릴 만한 것이어야 하고 너무 세분화하기 보다는 포괄적으로 개 교회의 형편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큰 틀로 상한선을 두자는 것이다. 이는 목회자들의 생활비 가이드라인을 제공함으로써 “너무 가난해서 또는 너무 부유해서 잘못되는 일이 없게”하라는 성경 말씀과도 맞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교회들은 “나 벌어 나 먹기” “ 내 교회 내가 부흥시켰으나 내 것” 이라는 소유 의식으로 발전하여 재정과 인사 후계까지 독점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목회자라면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위해서 살지 않아야 한다는 결단을 한 것 아닌가? 그러나 목회현장에서 그런 결심과 헌신이 무너지는 이유는 자신의 신념을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들를 스스로 벗어나기 때문이다. 개 교회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그래서 스스로 자기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고 그 속에서 그것을 자랑하며 누리는 태도 때문이다. 개 교회의 법이나 관행은 모두가 “당회장 목회방침” 이라는 좋은 말로 통제하는 것이다. 그 방침은 성경도 교단 법도 노회법도 초월한다. 그렇게 되면 윤리성이 약해진다.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교단 법과 정서 중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드리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적정 사례비는 논의를 위하여
적정 사례비 논의는 도시와 농촌, 교회 규모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택을 제공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 퇴직금이나 은급비를 계산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도 계산이 달라야함은 물론이다. 물론 급여 이외에 교회 내 목회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업무 비용은 생활비와 별도로 책정돼야 하지만 그것도 기준은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지금 일반 사회나 직장에서 하는 방식대로 모든 것을 영수증 처리하고 제직회의 동의 없이는 누구도 교회 재정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장로교회이다.

그러나 교회 내 공식적인 급여 이외의 외부 강사비, 교인들로 부터 받는 비공식 사례도 보고 되어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외국에서는 한 마디로 외부 활동과 관련하여 교통비나 부대비용을 주지 않는 데 반하여 우리는 갖은 출장과 회의비 등의 명목으로 받아간다. 또 부흥회 등의 집회를 통하여 아는 사람들과 인맥을 맺고 서로 후한 사례들을 주고 받는 풍토가 있는 데 이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 성찬식을 하고 낸 헌금을 통채로 가져가거나 목회자 헌금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계을 태워주듯 목사에게 따로 주는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사례비 액수가 커지는 것은 정치성 집회나 인본주의적인 사귐과 품앗이라는 것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목회자들의 생활비 상하한선은 사회적으로 정해진 최저생계비에 준하되 교단 총회에서 같은 연령대 같은 경력의 일반인들 평균 임금에 준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하는 방안이 좋다. 따라서 목회자들도 결코 일반인들 평균임금보다 더 많이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즘 추세이다. 그래야 내 교회라는 소유의식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교회, 공교회 교단의 교회라는 공유 의식을 갖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목회를 하게 될 것이다. 지금 자기가 개척해서 성장한 교회를 담임하는 분들 중에 자기 사례비를 아무런 기준 없이 맘대로 정하는 일이 많다.

교회 재정 투명성 확보와 같이 가야
그러나 무엇보다 강조돼야 할 것은 교회의 재정 투명성 확보이다. 기독교인들 중에 자신의 교회 목사가 얼마의 사례비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이미 질문했다. 대다수 교회들은 투명하지 못한 회계 처리 때문에 목회자들의 사례비가 감춰져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차마 말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 매월 결산 보고서를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교회도 있는 데 이를 통해 성도들은 그 달의 담임목사 급여는 물론, 기타 목회 활동비 명목으로 얼마가 사용됐는지 등을 1원 단위까지 상세히 알 수 있다. 헌금 내역은 물론, 선교 헌금 사용내역, 경조사비 지출 내역, 심지어 식당에서 사용하는 세제 구입비까지 원하는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교회 재정의 투명성은 개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교회의 문제이다. 교회에서 돈이 차고 넘치는 것을 교인들이 알면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이월금이나 비축금을 따로 관리하고 큰 일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까지는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가 있다.  교인들 모르게 관리하다가 사고가 나면 큰 낭패인 것이다. 실제로 그런 금전 사고가 난 곳도 있지 않은가. 교회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길은 교인들의 요구가 아닌 지도자들의 결단으로 가능한 일이다. 개 교회의 형편이 넉넉하고 하는 일이 많은 분에게 많이 지급할 수는 있으나 그것도 최저와 최고의 상한선은 있는 것이 성경적 원리요. 하나님의 관점에서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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