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에게 SNS는 약인가 독인가?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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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에게 SNS는 약인가 독인가?진보의 전유물 아니다.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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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02  10: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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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 약인가 독인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 가 1인 미디어, 1인 커뮤니티, 정보 공유 등을 포괄하는 개념에서 기존의 언론시장 판도도 바꾸어 놓고 있다. 언론시장이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다시 태블릿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는 미디어가 재편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재편의 방식을 바꾸웠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 뉴스소비자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기사를 다시 공급하는 유통자로 푸로컨서머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 언론사나 언론인이 권력이었다면 이젠 SNS상의 네티즌이라는 가상의 권력자가 등장한 것이다. 

이 현상은 기존 국가나 학교, 정당, 교회,언론이 주도하고 이끌던 교육과 이념, 문화의 중심이 SNS 사용자에게 일정부분 넘어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복음 전달과 문화 중심축도 대형교회나 특정한 목회자에게 쏠려있던 것에서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이들에게로 이전되어 간다는 느낌이다. 단순 청자가 아닌 이를 재해석하는 중계자를 통하여 말이다.  예을 들어 복음주의권의 지성적 멘토 청어람의 양희송 대표나 4대강 반대 전도사 최병성 목사 같은 이들의 팔로우나 그 영향력은 SNS상의 대형교회 목회자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해석이나 사건의 리튜윗, 인용부, 헤시태그, 첨언은  전제적으로는 비판적 성찰이다. 다시보기, 깊이보기, 뒤짚어 보기다.  그런의미에서 SNS가 단순 정보유통이 아니라 미디어의 재편이 아닌 그 방식을 바꾸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카톡방은 원치 않아도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게 한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었지만 그 반대가 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유심히 봐야 한다.  이제는 만들어진 것들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하지만 거기서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설교든 강의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올리므로 독자들을 확보할 수가 있다. 과거 네이버나 다음의 파워 브로거와 같은 개념이다.  이제는 누구나 노력을 하면 남을 사귈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고 친구를 사귈수 있다. 적어도 내용과 예의만 갖춘다면 말이다.  페이스북의 전문적인 그룹에 가입하면 관계된 글들과 정보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식이 습득된다. 또한 자신의 관심과 상황을 알릴 수 있고 비슷한 관심의 지지자나 후원자를 형성할 수 있다. 나아가 홈페이지나 기존의 틀을 연동시켜 네트웍하여 소셜화 하면 각각의 구룹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전제는 SNS 사용자에 국한 한다. 그러나 아직은 그 사용자가 다음의 통계에서 보듯이 한국은 아직 미미하다. 페이스북의 경우 그 사용자가 세계에서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많은 데 2015년 기준으로 13억 5천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이런 분석을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전략을 짜고 있다는 것이다. 소시얼 베이크스(Socialbakers.com)의 분석에 의하면 아시아 국가 중 싱가포르의 경우 이미 전 인구의 50%가 페이스북 가입자이고, 심지어는 아랍에미리트연합도 40%가 넘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10월말 현재 173만여 명으로 근 반 년 사이에 거의 2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조사되였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인구에 3.56%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1.33%)이나 베트남(1.67%)보다는 많지만, IT 강국이 무색할 정도로 가입 인구가 낮다. 그것도 젊은이들에 집중되어 있다. 연령별로 보면 25-34세가 44%로 가장 많고, 다음은 18-24세로 32%이며, 다음은 35-44세로 12%이며, 그 밖의 연령층은 4% 미만이다. 몰론 증가할 것 이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튜이터 계정은 있으나 활동하지 않고 페북의 사용의 사회문제나 후유증으로 탈퇴자도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SNS가 젊은이들에게 편향되여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음악시장에서의 아이돌 구룹의 독식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 "Super star Korea" “쎄시봉 친구들“ 같은 것이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다.  전에는 사람들이 일어나고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 이메일(E-mail)을 열어보고, 뉴스를 보고 그 다음 다른 일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전 자다가도 대화중이나 출근중에도 페이스북(Facebook)이나 투이터(Twitter)를 열어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메일에는 개인적이고 업무적인 것들이 들어와 있지만, 페이스북이나 투이터는 실시간으로 다양한 소식들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극히 제한된 사람들의 얘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SNS는 실명으로 자기를 공개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공개되도 손해보다는 이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관리를 잘못하면 올린 글이나 사진으로 인하여 자신이나 연인, 아버지를 망가트릴 수 있다. 그런면에서는 괴물이다. 따라서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람들에겐 아직은 조심스러운 곳이다. 의례적이고 판에 박힌 인사와 안부를 나누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해가 간다. 속이야 어떻튼 정숙하고 신앙있고 신실한 이미지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자기의 글을 보고 상태를 읽고 생각을 읽고 있고 감시당하고 있고 그것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더 높아지려고 하고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그런면에서 자기의 가치와 철학 관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은 아직은 소수다. 그러나 그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의식수준이 낮고 관심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개방적인 성격으로 무엇이든 수용하고 참여하는 사람과 천천히 조심스럽게 숨어서 엿보고 가는 사람이 있다. 말안한다고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정치이슈나 선거 캠페인 연대의 국면에서 찬반과 함께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이 부동층이다. “아무도 지지 않는다“ ”관심없다“ 의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이들은 잠재 되여 있을 뿐이다. 어느 순간 네트웍에 참여한다. 때론 조소하고 분노하고 체념하지만 어떤 시기에 자기의사를 표출한다.

그것은 개인의 성격상의 취향으로 평소는 편하게 즐기고 보고(눈팅)만 하다가 나온다. 무응답은 “생각 없음” 이 아니다. 생각중이거나 “좋지는 않치만 니가 알아서 해라“ 다. 이들은 정치와 사이버공간서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세력이다.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플” 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이렇게 SNS의 영향력은 유용한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도 하다.  얄팍한 지식으로 여론 주도층인 것 처럼 하여 계정이 없는 가르치거나 무시하려는 경향, 아무데서도 인증샷 찍어 만나기가 무섭다는 사람, 자신의 하는 일과 먹은 것, 하는 일을 조급하게 알리고 인정을 받고 자 하는 심리는 중독성에서 온다.  그래서 사순절 금식이나 가족으로 부터의 금지요청도 받았다고 한다.  가꿈 사라진 인간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페북 친구의 초기는 가까운 이들이다. 그러나 점점 생각과 취미 이상이 같은 사람들로 확대된다. 지난 해 민중궐기 대회에서 보면 모든 현장과 일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다. 과연 직업형 미디어 종사자들이 따라올 수 있을 까?  그러나 아직은 정식으로 인사한마디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친구라는 바운다리에 넣고 있다. 그에 비하여 카록방이나 밴드도 소통의 장으로 유용하지만 아직도 그의의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시도 때도 없는 발신질이나 사적의견을 공용방에 올리거나 하는 행위다.

또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이들은 무슨 정리를 한다고도 한다.  그들은 말이 없지만 카테고리안에서 유유자적하는 것이다. 이유는 신분상 자기 노출를 꺼리기도 하지만 자기의견을 말하는 데 매우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중도적 신앙인들이 더 할 것이다. 오히려 보수나 진보 성향 사람들은 안하무인이다. 꼭 노방전도하는 식이다. 왜 자신의 소리만 하고 남이 싫어하는 것을 더 보여주려고 할까?  그것이 믿음이거나 우월적 의식의 표현이라고 잘못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한국인의 특성중 "은근과 끈기" 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 데 이 안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하고 있다. 호기심과 망설임, 낮가림의 문화가 있다. 경기도에는 윗 사람이 시킨 일에 대하여  "할갑쇼" 라는 말이 있는 데 이 말에는 그야 말로 많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면접에서도 너무 아는 척을 하는 것은 손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양인은 자기의 장점을 드러내지만 우리의 덕목은 겸손과 중용이다. 인터넷에서도 그런 예절을 알아야 한다. 개인계정은 사적 공간이다. 거기다가 비판 글이나 반대의견을 달고 그것과 관련있는 인용을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글럽이나 논쟁을 원한다면 다르지만.....

페북의 적극 활동인자들은 사상적으로나 목회적으로도 그렇고 성격적으로 자유롭고 그의 교회분위기도 개방적이며 그 활동을 통하여 자신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여건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만약에 현재 우리와 네트웍이 가능한 인자들을 중심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일을 한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현대문명의 이기와 이해가 필요하지만 좀 천천히 갈필요가 있다. 그래도 충분하다. 신차가 나왔지만 돈이 없기도 하고 좀 충분히 타야 한다. SNS는 시대의 괴물이며 거부할 수 없는 상품이지 필수품은 아니다. 수공업적인 방식 그것은 오래 간직해야 할 유산이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그것의 절충이 필요하다. 선수끼리의 소통과 넌크리스천을 향한 소통은 그냥 SNS를 통하여 하면 된다. 그러나 교회의 미래와 사회적 책임을 향한 책임 있는 일원으로써의 노력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내야 하고 만나야 한다. 교회는 교회다운 방식으로 더디지만 진화하는 것이다.

“느리게 걷기” 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거나 하는 말은 급속하게 변하고 발전하는 문명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이다. 이런 저항을 통하여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고 그래서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다. 내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지만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스게 얘기로 한때 유행하여 일본에 까지 수출된 Nate의 싸이월든가 망한 이유중 하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1촌을 걸면서 부터라는 우스게 얘기가 있다 사이버에서 까지 시집살이를 살진 않겠다는 것이다. 남의 집에 가서 서슴없이 씹는 댓글의 훈장질 문화를 버리지 못하는 한 페북도 마찮가지다.

나는 한 페북 친구의 예명으로 "실명제 목사" 라는 칭호를 주었다. 만나는 사람 하는 일 가족의 소소한 일에서 부터 교회의 목회사역과 노회 연합회의 일까지 올린다. 거기 조연으로 등장하는 분들이 좀 불편할 수는 있지만 건강한 일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의미있는 일을 한다지만 간혹 남모르게 만나서 공개적이지 않은 대화들을 나눈다 .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 비하면 헐씬 건전한 일이다. 먹는 것 까지는 좀 가끔하면 좋을 것이지만  

왜 우리는 다른 이들의 글과 관심을 있는 대로 봐주지 않는 것일까? 왜 거기다가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들을 할까?  논리적으로 정확한 주장도 아니고 그져 단편적인 한두마디로 평을 달까? 이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 짧은 댓글 보다 링크해서 자기주장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 아니면 자기 계정을 만들어서 반대글이나 주장을 펴야 한다.  SNS에는 끊임없이 발신만 하는 사람, 수신만 하는 사람,발수신을 다 하는 사람, 자기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서 표현을 하는 사람, 이것도 저것도 반응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떤 반응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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