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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회기 에큐메니칼 정책세미나 열려위원장 이성희 목사 주제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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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19  22: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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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0회기 에큐메니칼 정책세미나 열려
   
                   * 강의 EMS선교 정책과 PCK의 에큐메니칼 실천 오현선 교수(호남신학대학교)

지난 2월 18일(목) 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총회 에큐메니칼 위원회(당연직 위원장: 부총회장 이성희 목사) 가 “변화하는 에큐메니칼 지평과 실천적 전망” 이라는 주제의 프로그램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1부 예배와 2부 강연으로 진행했다. 주제강연은 위원장 이성희 목사가 “미래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 이라는 주제로 했다. 이어 강연 1: “오늘의 에큐메니즘” 은 변창배 목사(총회 기획국장) 강연 2 “WCC 정의와 평화의 순례와 PCK의 에큐메니칼 실천” 배현주 교수(부산장신대학교, WCC 중앙위원) 강연 3은 “CWM 2016년 총회와 PCK의 에큐메니칼 실천”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강연 4는 “아시아교회 일치를 통한 PCK의 에큐메니칼 실천” 장윤재 교수(이화여자대학교) 강연 5 “EMS 선교 정책과 PCK의 에큐메니칼 실천” 오현선 교수(호남신학대학교) 강연 6은 “지역 에큐메니즘 전망” 황홍렬 교수(부산장신대학교) 가 했으며 참가자들은 강의를 듣고 함께 토론했다.

                          “미래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

이성희 목사 (부총회장, 연동교회) , 연세대, 장신대, SFTS(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 풀러신학대학원

들어가는 말
우리시대의 통합적 다중요청과 압력은 교회연합의 당위성을 제공한다. 한국교회연합의 당위성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성경적 요청이다. 성경은 야곱과 에서의 화해의 장면을 들려준다. 인간적으로 에서는 야곱을 용서할 수 없고 만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용서하고 만난다. 성경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고 한다. 하나 됨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하나님의 일이다. 교회는 연합의 주체가 하나님이란 사실을 배경으로 하나님 안에서 연합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는 시대적 요청이다. 우리 시대는 바야흐로 통합과 일치를 기조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도 더 이상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이고,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적 기조는 교회로 하여금 산업사회의 지조인 경쟁과 분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할 것이다. 시대적 요청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이다.

셋째는 선교적 요청이다. 교회의 연합은 교회의 정치적 과제나 사회적 과제가 아닌 선교적 과제이다. 교회는 선교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일치가 필요하며, 교회가 일치할 때에 선교는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선교적 요청이 정치적 과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포용력과 새로운 시대적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1. 세계화와 지방화 시대의 교회
세계화란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한 미래어이다. 세계화 혹은 지구화란 지구 전체를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현상을 의미한다. 이른바 미래현상으로 불리는 3T 즉 교통, 장거리 통신, 관광은 전 세계 인류의 생활양식과 문화이해를 공유하게 하는 세계화의 촉진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란 용어는 최근에 와서 일반화 되었지만 성경은 이미 창세기에서 세계화를 선언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지막 대 명령도 복음의 세계화에 대한 강한 명령으로 나타난다.

구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시작된 세계의 지방화 혹은 지역화 작업도 급속도로 확신되고 있다. 세계는 인종, 문화, 언어, 종교 등의 요인으로 분열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특징적 요인이 지방화를 촉발하는 계기인 것이다. 현재 191개국인 유엔의 가입국이 얼마 후에는 300내지 1000개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게 되었다. 세계화의 세계와 지방화의 세계는 같은 세계이다. 세계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하나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아닌 모순과 패러독스 속에서 발전적인 원심운동과 구심운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과학에 있어서도 20세기 후반의 과학은 미시구조에 관한 소립자 물리학이 전체로서의 우주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우주학에 합세하게 되었다. 이러한 유사한 정치적 경제적 현상을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글로벌 패러독스(Global Paradox)라고 부른다. 이러한 패러독스는 기업은 기업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분리와 통합을 반복하게 하며 새로운 부족주의(tribalism)를 탄생시켜 동질성의 체제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와 지방화는 세계의 이중구조가 아니라 하나이며 세계화와 신토불이도 이중구조나 갈등관계가 아니라 하나이다.

2. 정보사회와 통합적 사고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 의하면 제1의 물결은 농경시대로서 그다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제2의 물결은 산업사회로서 그 기조는 분열과 경쟁이었다. 이 시대에 나라는 나라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분리하여 많은 갈등을 초래하였고 모든 분야가 경쟁적 관계에 있었다. 세계는 크게 양대 강대국의 대결구도로 양분되어 있었고 이 냉전 체제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21세기를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정보 사회라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1989년에 이미 21세기는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1989년은 동구권이 붕괴되던 해인데 동구권의 붕괴란 정보 사회의 구도로 세계가 재편되었다는 의미이다. 정보 사회의 기조는 산업 사회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정보가 사회의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정보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산업 사회와 정보 사회의 차이를 개미 사회와 거미 사회란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개미란 부지런히 일하여 모든 먹이를 독점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산업사회에서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소유하게 되었으며 소유를 독점하던 시대이다. 그러나 거미는 개미가 아니다. 거미는 공중에 거미줄을 치고 사는 생물로 부지런히 일하는 타입이 아니라 좋은 길목에 거미줄을 치고 기다리다가 먹이가 걸리면 잡아먹는다. 정보 사회는 부지런함 보다 정보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승리한다. 정보 사회는 개미 사회와 같이 독점이 아니라 공유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정보 사회를 살아야 하는 우리는 정보 네트워크를 가져야 하며 모든 지식과 소유의 공유로 전환해야 한다. 발전적 정보사회는 일치와 공동창조로 나아간다. 이러한 기조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촉발하게 될 것이다.

3. 새로운 시대 교회의 예상되는 특징들
메이너드(Herman Maynard)와 머턴스(Susan Mehrtens)는 ‘제4의 물결’에서 제4 의 물결이 ‘제3의 물결’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고 하였다. 제2의 물결시대는 분리와 경쟁을 그 기조로 하였으며 제3의 물결시대는 균형과 협력시대인데 비하여 제4 의 물결시대는 통합과 공동창조의 시대라고 한다. 흔히 농경사회는 3,000년, 산업사회는 300년 그리고 정보사회는 30년이라고 한다.

한국 기독교의 제1의 물결은 이미 기독교의 전래와 더불어 지나갔으며 제2의 물결은 기독교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현재 한국교회는 제3의 물결을 지나 제4의 물결로 진입하였다. 제4의 물결은 하나의 공동창조를 그 기조로 하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생존적 자구수단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서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스마트시대’는 ‘정보사회’와는 전혀 다른 시대이다. 이러한 진단을 통하여 미래 교회에 에큐메니즘이 교회의 소중한 기조일 수밖에 없는 예상되는 실재들을 살펴본다.

가. 개교회주의의 퇴조와 에큐메니즘의 발달
미래의 성격 특히 일회성의 발달과 제3의 물결 이후의 증후군은 개교회주의를 퇴조시키고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게 할 것이다. 경쟁과 분리의 세계관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대형교회를 양산하였으며 대형교회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소유의 개념보다 대여의 개념이 발달할 미래사회에서는 제4의 물결의 증후군과 일치되어 개교회주의를 퇴조하고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일회성이란 사회현상을 넘어서 미래형 인간의 사고형태가 될 것이며 이러한 사고형태는 교회에 대한 소유개념보다 편의개념이 발달하게 될 것이다. 개교회주의를 퇴조시킬 또 하나의 미래현상은 이동성이다. 이동성의 발달은 지역교회를 퇴조하게 하고 거리개념을 희박하게 할 것이다. 이것 외에도 내부적 교회개혁의 목소리는 개교 회주의를 퇴조시키는 압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제3의 물결사조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발달하고 연합을 기조로 하는 교회운동을 활성화하게 될 것이다. 이미 최첨단 산업에서는 제4의 물결이 활성화 되어 있다. 한국교회도 통합과 조화를 넘어서 공동창조의 기조로 나아가야 하며 에큐메니즘은 이 시대의 화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평신도사역의 극대화
전세대의 카리스마적 목회자의 출현 보다 평신도 사역이 극대화되고 평신도 사역을 통한 교회성장을 미래교회는 도모하게 될 것이다. 칼 조지(Carl George)는 미래교회를 ‘메타교회’(Meta-church)라고 하였는데 메타교회의 목회자는 소그룹을 통한 교회활동을 강조하고 평신도 훈련을 위한 일에 많은 시간과 힘을 투자해야 한다고 하였다. 메타교회는 동화(assimilation), 훈련, 목회적 돌봄 그리고 전도의 센터로서의 기능을 하는 네트워크에 기초하고 있는 교회이다. 메타교회는 주일예배에 모이지만 주일 아침의 모임을 통하여 전체 목회를 달성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반면에 가정, 사무실, 그리고 다른 만남의 장소로 흩어지게 한다(decentralize). 대부분의 목회는 소그룹의 평신도 지도자들에 의하여 이끌어지기 때문에 소수의 목회자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메타교회는 목회자의 역할 보다 평신도의 역할이 중심이 된 교회이며 평신도 훈련을 강조한다. 특별히 평신도는 미래교회에서 성직자의 동역자로서의 관계와 개념으로 발전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역자”의 신학적 개념정리가 필요하다. 바울은 동역자란 개념을 포괄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지난 시대의 성직 패러다임(clerical paradigm)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평신도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이전의 목회에서 평신도는 목회자와의 종속적 관계에서의 협력자이었으나 미래 목회에서 평신도는 목회자와의 동등한 관계에서의 동역자가 될 것이다. 평신도는 목회자와는 달리 적절한 훈련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목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교회의 잠재적 자원이다. 목회자는 교회에 영향을 많이 주지만 언제나 유동적이며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교회의 조직을 장악하는 것은 목회자의 이동시 교회를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평신도는 교회의 안정된 구성요소로서 잘 훈련된 평신도는 안정된 교회의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크래머(Hendrick Krammer)는 평신도를 ‘동결된 자산’이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불후의 명작의 하나로 꼽히는 ‘기독교강요’는 칼뱅이 평신도일 때 저술되었다. 그는 방대한 신학적 주제를 성직자나 신학자의 입장이 아닌 평신도의 입장에서 저술하였고 개인의 성경연구에 바탕을 두고 기독교의 진리를 해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후에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레는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의 위치를 성경적, 신학적, 교리적으로 깊이 있게 연구하여 평신도 운동의 합리성을 그의 신학으로 선포하였고 나아가서 평신도 설교자(lay preacher)의 필요성까지 주장하였으며 실제로 그의 영향으로 평신도 설교자가 있었다.

오랜 로마교회의 전통 가운데서 평신도는 성직자와 대칭적인 의미를 가진 일반 교인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평신도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개신교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계급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기능적으로 구분하여 평신도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평신도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한 하나님의 도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모두가 하나님의 일꾼이며 교회의 봉사자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미래 교회는 평신도 중심이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그것은 국가나 기업이나 조직에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미래 현상 때문이다. 산업사회의 중심구조가 정보사회에서는 하부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에서도 행정수반 보다 국민이 중심이며, 기업도 사장이 아니라 사원이며, 회사가 아니라 고객이며, 조직도 조직의 장이 아니라 조직원이다. 이러한 변화는 교회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간의 성직자 중심의 편중된 교회 구조를 평신도 중심의 분산된 교회 구조로 조정이 되어야 한다. 성직자에게 편중된 교회 구조를 평신도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교회와 성직자 개인에게 유익이 될 것이고 또 미래 교회는 자연히 성직자 중심의 구조에서 평신도 중심의 구조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 조직교회에 대한 반대와 영성의 부활
미래교회의 교인은 영성에 대한 관심은 증대되나 조직교회의 구조에 대한 싫증을 느끼고 조직에 얽매이기 싫어할 것이다. 종교적 조직이란 대체로 목표지향(goal )으로 시작하여 업무지향(task orientation)으로 전락하고 마침내 밑바닥에서 통제지향(control orientation)으로 타락한다. 미래사회는 인간을 조직보다는 개인의 일에 묶어둔다. 재택산업과 화상회의가 발달하고 출근 보다 근무라는 의식이, 통근보다 통신이라는 의식이 발달할 미래인에게는 교회라고 하는 통제지향의 조직은 더 이상 매력을 주지 못할 것이다. 미래교인들이 새로운 교회를 찾는 근본 목적은 그들의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미래교회의 교인들은 영성에 대한 관심은 고조될 것이다.

흔히 기독교를 예언자적 종교(prophetic religion)임과 동시에 영성적 종교(spiritual religion)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예언자적 종교로서 예언자적 기능과 영성적 종교로서 영성적 기능을 동시에 포함한다. 교회사가들은 유럽교회들의 쇠퇴 원인을 교회가 예언자적 기능에 지나치게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에
한국교회가 쇠퇴의 기미를 보이는 것은 영성적 기능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결과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두 기능 사이의 균형은 미래 교회의 건전한 성장에 중요한 과제이다.

라. 선교의 통전적 이해와 디아코니아의 발달
미래교회는 자기중심적 교회관에서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 그 중심이 이동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부분적으로 이러한 중심이동의 현상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의 교회의 관심은 교회성장이었고 선교는 개인영혼이라는 제한적 의미를 가졌지만 정보사회에서의 교회의 관심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본질적 전환으로 모색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미 선교의 개념도 개인구원이라는 제한적 개념에서 사회참여라는 진보적 개념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통전적 선교의 개념을 다음과 같은 등식으로 설명한다.

M=P.S+S.R 선교(mission)는 개인구원(personal salvation)과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의미한다. 이 개념을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M=E+N+S(S.S+S.A)+F 선교는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도와 설교, 교육, 상담, 심방 등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양육과 사회현상의 결과 위주로 사역하는 사회봉사와 문제의 원인을 수정하거나 근절하는 활동을 뜻하는 사회행동과 그리고 작고 큰 단위의 교회들의 교제, 나눔, 협력을 의미하는 친교를 의미한다. 이러한 새로운 변형의 시도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부각될 관심사는 ‘디아코니아’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사회를 위하여 남은 일이 있다면 ‘디아코니아’일 것이고 미래사회의 변동은 교회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제공할 것이다.

그간의 한국교회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한국 교회의 성장 신드롬은 사회를 외면하고 위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교회가 사회를 외면한 결과로 교회가 사회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성장 신드롬은 기세가 꺾이고 있으며 이제 다시 한국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성장 신드롬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의 교회성장기는 그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했던 은총의 기회이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성장이라는 상향 중심의 목회관에서 벗어나 성숙이라는 외향 중심의 목회관으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미래 교회는 자기중심적 교회관에서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 그 중심이 이동할 것이며 이미 부분적으로 이러한 중심이동의 현상이 한국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동안의 교회의 관심은 교회성장이었고 선교는 개인영혼구원 혹은 교회성장이라는 제한적 의미를 가졌지만 정보 사회에서의 교회의 관심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본질적 물음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래서 선교의 개념도 개인구원이라는 제한적 개념에서 개인구원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통전적(holistic) 개념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러한 새로운 변형의 시도는 사회봉사로 교회의 관심이 전환될 것이다.

‘디아코니아’는 ‘케리그마’와 ‘코이노니아’와 더불어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다. 하나 의 말씀을 선포하는 기능과 교제하는 기능과 봉사하는 기능은 교회가 교회 되게하는 중요한 기능들이다. ‘케리그마’의 내적 기운이 ‘코이노니아’라면 ‘케리그마’의 외적 작용이 ‘디아코니아’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대교회는 교회를 ‘봉사자의 집단’(Group of ministers)이라 불렀다. 그러므로 교회가 디아코니아를 상실하면 교회가 아니다.  사회봉사를 뜻하는 ‘디아코니아’는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의 용어이다. ‘디아코니아’(diakonia)라는 말은 ‘디아코네인’(diakonein)이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며 ‘디아코니아’를 수행하는 사람을 ‘디아코노스’(diakonos)라고 한다. 신약성경에서 ‘디아코니아’란 음식을 제공하는 일이었으나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남을 섬기는 것 전체를 의미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디아코니아’란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인 덕목이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며 사명이다.  교회가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지향하는데 상향(upreach)과 내향(inreach)과 외향(outreach)이다. 상향은 교회의 첫째 목표이며 교회의 존재이유이다. 이것은 예배와 전달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내향은 보이는 교회의 모습이며 힘의 집결을 의미한다. 이것은 훈계이며 축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외향은 실제적 교회이며 동시에 교회의 사명이다. 이것은 전도이며 돌봄(caring)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는 상향을 강조하여 교회의 본질에는 충실하였으나 외향에는 상대적 소홀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와는 별개의 기관이 되었고 교회가 상향을 강조하는 동안 사회를 외면하였고 그 결과로 교회는 성장하였으나 이제는 사회가 교회를 외면하게 되었다. 사이버시대의 목회는 실제적 사명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러한 교육이 미래 사회에 적응력을 회복하게 할 것이다.

앤더슨(Leith Anderson)은 베이비붐 이전세대(Pre-Boomers), 베이비붐 세대(Baby Boomers) 그리고 베이비 거부세대(Baby Busters)의 특징을 비교하면서 베이비붐 이전에는 선교와 기도, 성경공부에 관심을 가지던 교인들이 베이비 붐 세대에는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베이비 거부세대에는 복지와 관련된 프
로그램이나 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이버시대의 교회는 교회 성장이라는 제한적 선교의 의미가 아닌 ‘디아코니아’를 포함한 통전적 의미의 선교를 지향하고 교회 성숙을 이루는 교회가 되
어야 할 것이다. 사이버시대에 교회에 남아있는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디아코니아’ 와 관련된 것들일 것이며 교회는 사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마. 문화의 발달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는 이제 취미나 여가 활동이 아니라 인류의 가치이며 나아가 생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버 시대는 문화 시대이다. 문화가 발달하며 타문화가 존중되는 시대에 교회는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고 사회의 문화를 기독교 문화화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문화적 차원에서 볼 때 가장 시급한 것은 기독교의 문화를 사회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문화란 사회 구성원의 행동과 사회 체계를 형성하고 이들을 조합 연결하여 동일한 이념 가치관을 형성하는 영향력의 본체라고 한다. 기독교는 사회 구성원의 행동을 규정하고 사회 체계를 형성하는 힘을 가져야 하며 사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독교는 사회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회에 영향을 주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스도인 한사람 한사람을 보면 훌륭한 인물도 많이 있지만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집단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한국교회의 가장 큰 흠이다. 교회는 교회의 내용인 문화를 소유하여야 하며 그 문화는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으로 변화될 것이다.

인간의 이념과 동기를 지배하는 원동력인 문화를 교회는 사회에 심음으로 사회문화를 기독교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기독교는 사회의 바른 문화를 창출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하며 전통 문화의 보존자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세계민족사를 보아도 역사 속에서 소멸한 민족은 전통가치와 문화를 소홀히 여긴 민족들이다. 원나라, 청나라가 이런 나라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통 가치와 문화를 보존하고 동시에 건강하고 새로운 사회 문화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의 발달은 문화의 발달에 연유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발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발달을 추구한다면 한국사회의 문화의 발달을 교회가 담당해야 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지배하는 민족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단일민족이다. 새로운 세기에 세계 를 지배할 수 있는 민족은 단일민족이다. 지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다민족은 점점 작은 국가로 분리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단일민족이 미래 세계를 지배할 힘이 있다. 둘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이다. 21세기는 문화 시대라는 단적인 표현까지 있을 정도로 문화는 21세기에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셋째, 교육과 기술에 투자한 민족이다. 교육과 기술은 미래 사회와 산업의 발달에 중요한 기간(基幹)이 되므로 교육과 기술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위하여 중요한 준비이다. 위의 설명을 통하여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우리 나라는 21세기를 위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문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또 교회가 사회를 위하여 문화를 창조하느냐라고 하는 기본 물음을 통하여 교회는 사회를 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의 자신을 위한 성장 위주의 교회에서 타인을 위한 성숙 위주의 교회로 탈바꿈해야 하며 이러한 사회를 위한 노력은 사회를 위한 노력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한 자구적(自救的) 노력이 될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거의 모든 구조가 교회가 성장하게 위한 성장구조이며 교회의 예산도 교회의 성장을 위한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사회봉사나 선교 등 대외적 사업을 위한 재정 보다 교회의 관리비와 인건비 등이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예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사회를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구조조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자구적 노력은 결국 기독교 문화를 사회에 심는 일이 되는 것이다.

리처드 니버는 그의 책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교회의 문화에 대한 다섯 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대립유형(Christ against culture), 일치유형(Christ of culture), 초월론적 유형(Christ above culture), 이원론적 유형(Christ and culture in paradox) 그리고 문화변혁론적 유형(Christ, the transformer of culture)이다. 다섯 가지 유형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유형은 문화변혁론적 유형이다. 교회는 끊임없이 문화의 변혁자가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적극적 문화개혁론을 주창하였다. 보수적 신앙과 진보적 문화론을 겸비한 그의 이론은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의 장이며, 문화 영역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도록 해야 한다. 대중문화가 문화의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 문화를 사탄적이라고 비판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문화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일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인 폴 케네디는 21세기에 한국이 세계 중심국가가 되는 이유 다섯 가지 이유 가운에 하나를 한국의 독창적 문화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한국 문화는 한(恨)이 중심이다. 한국의 창과 춤에 서려 있는 한은 외국인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사이버시대를 맞이하는 한국 교회는 한국의 문화를 세계화하는 매체로서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의 기독교화 혹은 기독교문화의 사회화를 위한 노력을 극대화하여야 할 것이다.

바. 여성의 교회정치 참여의 증대
미래의 한가지 특징 가운데는 남녀의 기능의 차이가 모호해지며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 향상될 것이라는 점이다. 교회에서도 여성성직자의 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예측이다. 산업사회의 부산물인 분열과 경쟁은 온갖 차별을 낳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남녀의 성적 차별이다. 그러나 남녀의 기능적 차이가 모호해지는 미래에는 차별보다 동역자로서의 의미가 강하게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우리교단의 여성안수 실현으로 여성 목사와 장로의 교회정치 참여가 두드러지게 증대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성장 모드의 목회에서는 외향적이고 힘이 있는 남성적 목회를 요청하였지만 미래의 성숙 모드의 목회에서는 내면적이고 섬세한 여성적 목회를 요청하게 될 것이다. 여성 지도력의 증대는 미래 사회의 교회에 대한 기대로 교회가 프로그램이나 기구에 대한 강조가 약해지고 양육과 인간접촉(human touch)에 대한 강조가 강해지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목회자를 기능화하여 여성만의 기능을 극대화하여 목회자로서의 효율성을 증대하는 전문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 해 우리나라에 와서 강의한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자신의 성공비결을 세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젊은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알리바바의 전체 사원 3만 4천명의 평균연령이 27세라고 한다. 둘째는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하였다. 전 직원의 48%가 여성이고 한 때는 56%가 여성이었는데 타 기업을 인수해서 여성이 줄었다고 한다. 셋째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사업에 초점을 둔다고 하였다. 그는 “여성의 중요한 역할이 회사의 성공비결이다. 여성의 특징 중 하나가 ‘유저 프랜들리’(user friendly)이다. 사용자들과 친근하고 원활하게 소통을 하는 것 이 여성들의 특징이다”라고 하였다.

이미 기독교대한감리회 제31회 총회 임시입법회의에서는 ‘여성할당제’ 통과하였다. 여성 총대를 15%로 할당하는 제도를 입법화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1년 경상비 3,500만 원 미만의 미자립교회 목회자에 대한 이중직도 허용하였다. 여성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역할이며 우리교단에 이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요청된다.

사. 포스트모던 리더십의 개발
전환기의 목회는 목회자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강력한 목회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대이다. 지금까지의 목회자는 일반적으로 권위적인 인상이 리더십의 인상 보다 강하였다. 또 소위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교회성장을 이루었던 것도 사실이다. 카리스마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리더십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리더십 보다 권위적인 표현이 강한 것이다. 물론 권위적인 것이 리더십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리더십이란 권위적이고 통제적인 것보다는 화합적이고 협동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행정학에서는 교회행정을 세 가지 용어를 가지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용어는 교회행정의 세 가지 형태이다. 첫째는 리더십(leadership)이다. 리더십이 지배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환상을 제시하는 업무(envisioning task)와 모델을 만드는 업무(modeling task)이다. 둘째는 관리(management)이다. 관리란 기획 하는 업무(planning task)와 감독하는 업무(monitoring task)이다. 셋째는 경영(administration)이다. 경영이란 보조하는 업무(supporting task)와 향상시키는 업무(enhancing task)이다. 이와 같은 정의에서 보면 리더십이란 목회자의 행정업무이며, 관리란 장로의 행정업무이며, 경영이란 집사의 행정업무이다. 교회행정이란 어
느 한 직제가 가지는 독점적 업무가 아니라 모든 직제가 고유한 업무를 가진 교회의 업무이다.

위에서 본대로 리더십이란 통제와 지배의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공하는 지혜이다. 그리고 리더십이란 조직 운영에 있어서 구심적인 힘을 형성시키는 것이며 조직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하나로 나아가게 하는 역량이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해야 하며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는 강력하고 창조적인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리더십이란 조직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유지되기  위하여 필요한 업무를 수행해 나가는 기능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조직의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하나로 나아가게 하는 역량을 의미한다. 지도자가 가지는 역할을 일반적으로 리더십이라 하는데 어떤 상황에서 수행되고 의사소통을 통하여 특별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향력을 리더십이라 한다. 결국 리더십이란 조직의 목표 성취를 위한 힘의 동원 능력을 의미한다.

교회는 좋은 지도자를 원하고 지도자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한다. 교회의 리더쉽은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만들며, 의미 있는 예배를 드리게 하며,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하여 활기 찬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책임이 있다. 결과적으로 목회자의 리더십은 성도들에게 영향을 주며 교회의 모양을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리더십을 상실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현대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인 갈망은 강력하고 창조적인 리더십이다. 미래 사회는 그 변화의 다변성과 급속성에 비추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청되며 이러한 요청은 미래 교회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큰 요인은 목회의 창의력 보다 기존의 패러다임에 의존하여 모방에 의존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목회의 초기는 모방으로 시작하지만 이 모방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자신의 창조적 목회 보다 모방에 의존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이다. 지속적 창의력 개발을 위해 서는 축적된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이 요구된다. 하나의 핵심 역량은 또 다른 기술의 개발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핵심 역량이 있는 목회자는 경쟁력이 생기고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도 굴하지 않는 독창적 목회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가시경영(可視經營)에는 몇 가지 중요한 접근방법이 있다. 첫째는 교회가 그 목표를 지향하는 방향이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목표와 상황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경영의 흐름이나 목표의 전개가 모든 교인들에게 보이게 해야 한다. 이러한 가시경영은 경영자의 리더십을 가늠하는 중요한 점이며 목회자의 리더십은 가시경영을 통하여 목회의 효율성을 증대하게 된다. 목회자의 리더십은 교회의 방향성을 좌우하며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요인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권위적 목회의 틀을 벗어나서 리더십 있는 목회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거미사회의 리더십의 형태는 이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한다. 모두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기에 한 사람이 모두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대에는 남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끄는 것 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이것을 ‘셀프 리더십’이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셀프 매니지먼트’도 발달한다. 현대는 ‘셀프’시대이다. 자신을 리드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세 가지 힘이다. 이 세 가지 힘이 있어야 자신을 이끌 것이고, 자신을 이끄는 힘이 추종자들을 이끌게 될 것이다. 이 세 가지 힘은 영력, 지력 그리고 체력이다.

아. 목회 네트워크의 활성화
미래사회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독자적 행보를 용납하지 않는다. 미래교회는 철저하게 연합이 되어야 하고 팀을 이루어야 효율적이고 발전적인 목회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우선 미래사회는 다양화 사회이기 때문에 목회도 다양화 목회가 되어야 하고 다양화 목회는 ‘나홀’로 목회가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하여 가능한 것이다. 미래의 팽창하는 지식과 정보는 개인의 능력으로 소유하기란 불가능한 사회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발달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타인의 능력까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호 의존과 상호 활용의 지식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목회에서의 네트워크는 목회자 개인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것을 느끼게 하고 또 가능하게 한다. 첫째, 자신이 실제의 자신 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한다. 네트워크란 결국 내 자신의 증대이다. 네트워크란 나를 증대시키며 나를 풍요하게 한다. 둘째, 나홀로 목회가 성취할 수 없는 목표를 성취 가능하게 한다. 나홀로 목회가 가지는 약점이란 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것과 개인의 능력으로는 현대 사회의 다양화를 좇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팀의 시대’(Time to Tea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마 ‘네트워크의 시대’(Time to Network)라고 부 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세계화의 한 특징은 블록(block)의 발달이다. 지금 지구는 수많은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블록들로 가득 차 있다. 거대한 유럽연합(EU)을 위시하여 아시아태평양경제 협력회의(APEC),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아세안 자유무역지대(AFTA) 등 많은 블록들이 세계를 분할하고 있다. 국가 간의 연합인 블록을 대처하기 위하여 또 다른 기구와 경영기법이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가 발달하여 동류의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블록이나 다른 기업에 대처하기 위하여 상호보완적 제휴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벤치마킹’, ‘아웃소싱’ 등 현대 언어들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개념어들이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는 미래 목회의 중요한 개념이다. 교회는 세계의 변화와 거대한 세상에 대항하기 위하여 전략적 제휴가 필요한 것이다. 교회의 전략적 제휴인 네트워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모든 일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모두가 함께 하는 연대와 협력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기업의 전략적 제휴가 그러하듯이 교회의 전략적 제휴인 네트워크나 목회의 전략적 제휴인 팀 목회도 상호 신뢰가 우선되어야 한다. 셋째는 상호 제공할 수 있는 목회적 기술 이 있어야 네트워크가 가능하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의 목회는 개인주의적인 목회이었고 개교회주의가 성하였으며 교단주의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3의 물결의 증후군인 에큐메니즘의 발달은 나홀로 목회에서 네트워크 목회로 우리의 목회를 전환하게 할 것이며 이러한 전환은 교회로 하여금 하나가 되게 하는 새로운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특별히 정보통신의 발달로 전자 네트워크를 통하여 정보의 교환과 사업이 활성화될 미래를 위하여 목회현장에도 네트워크 형성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목회 현장의 변화는 인터넷을 통하여 상호 목회 정보의 공유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 메일을 통한 정보의 교신 및 네트워크도 활발하게 되었다.

교회연합에 있어서의 네트워크의 성과는 첫째, 교회의 사기가 올라간다. 둘째, 업무의 생산성의 향상이다. 셋째, 네트워크는 개인적, 교단적 훈련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넷째,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함이다. 전자 네트워크를 통하여 정보의 교환과 사업이 활성화될 미래를 위하여 목회현장에도 네트워크 형성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네트워크 목회는 하나의 교회를 추구한다.

블록(block)이 발달하고 있는 시대, 전자 네트워크를 통하여 정보의 교환과 사업이 활성화될 미래를 위하여 목회현장에도 네트워크 형성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제 3의 물결의 증후군인 에큐메니즘의 발달은 목회자와 목회기관 간의 네트워크를 더욱 활발하게 할 것이고 긴밀한 네트워크는 목회 전문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목회기관의 네트워크의 양상은 대개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첫째, 국내 교단과의 네트워크이다. 지금도 교회협의체가 있지만 미래의 네트워크의 수준은 협의체로서가 아니라 목회정보, 목회자, 목사후보생의 교류가 더욱 긴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경쟁적 대상이 아니라 협력과 공동창조의 파트너로서 미래 사회에 적합한 목회자 양성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어느 한 지역에서의
경쟁적 목회를 지양하게 할 것이다. 특별히 NCCK, 한기총, 한교협, 한 장총 등은 네트워크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교단 내의 목회자간의 네트워크이다.

교단 내의 목회자들의 네트워킹은 목회자들의 사기 향상과 정보교환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며 효과적인 목회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셋째, WCC, CWM, CCA 등 세계 교회 기관과의 네트워크이다. 한국 목회의 세계화와 발전을 위하여 세계적 연합기관과의 유기적 네트워크의 형성은 필연적일 것이다. 네트워크는 자매기관의 차원이 아니라 정보와 교환에 있어서 동질적 파트너를 의미한다. 넷째, 목회자와 교회와의 네트워크이다. 미래교회는 선교와 목회의 긴밀한 관계를 요청할 것이고 이러한 요청은 네트워크를 통하여 충족될 것이다.

자. 한국 신학의 세계화
130년의 한국 개신교 역사 가운데 한국교회는 세계적 목회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그러나 세계적 신학자는 상대적으로 배출하지 못하였다. 세계적 신학자가 없는 교회에서 세계적 목회자가 배출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교회이지만 신학과 목회의 내용에 있어서는 세계적이라고 하기는 부끄러움이 있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신학은 세계적 신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교리적이고 교파지향적인 종래의 신학교육이 초교파적이고 에큐메니칼 지향적인 미래의 신학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성서적-역사적 지향성의 종래의 신학교육은 성서적-상황적 지향성의 미래의 신학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성서적-본문 비평적 분석의 종래의 신학교육은 사회, 인류학적 분석의 미래의 신학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한국 신학은 서구 신학의 방법론을 채택하였으므로 성경적 의미가 퇴색되고 문화인류학적 접근법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세계화란 세계의 것을 수용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며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세계적 교회이듯이 한국 신학을 세계적 신학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이 한국 신학의 과제일 것이다. 히브리적 사유로 기록된 성서는 헬라적 사유를 가진 서구인들 보다 히브리적 사유를 가진 동양인들에게 더 익숙하며 더 유능한 신학자를 배출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여기에 한국 신학의 세계화의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교회의 소외경험과 해방경험은 한국 신학의 개별성을 세계화할 수 있는 신학적 경험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역사적 경험과 한국교회의 성장의 경험과 한국적 문화의 이해 등은 한국 신학의 세계화에 소중한 자료들이 될 것이다. 세계화란 우리의 것을 버리고 세계의 것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신학도 이런 논의에 예외일 수 없다.

나가는 말
성서의 고등비평과 다윈의 진화론을 배격하고 전천년왕국설을 주창하던 근본주의자들이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분립되던 1925년을 미국장로교회는 ‘고통의 때’(time of agony)라고 한다. WCC와 NAE로 대변되는 진보와 보수의 충돌은 한국장로교회에도 여지없이 찾아와서 한국장로교회는 1959년 분립되었다. 1959년은 한국의 ‘고통의 때’이다. 한국장로교회가 분립될 당시에 가장 큰 과제는 WCC 참여 문제였다. ‘통합’이란 이름을 가진 ‘연동측’은 에큐메니칼을 주창하는 교회들이었고, ‘합동’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승동측’은 에큐메니칼을 거부하던 교회들이었다. 우리교단은 에큐메니즘 시대에 에큐메니칼을 주창하는 교회인 것을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제10차 WCC 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교회로서 우리교단은 교회연합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며 세계교회로서 공헌을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세계에서 가장 넓게 퍼져 사는 민족이다. 유대인이 100여개 730만 명의 디아스포라가 있고, 화교가 130여 개국에 4,543만 명이 있는 반면, 한국은 175개국에 동포 726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보도에 의하면 2015년 말 현재 한국선교사 현황은 171개국에 27,205명의 선교사가 복음전파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교단 가운데 1,0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한 단체는 예장합동 총회세계선교회 (GMS), 예장통합 세계선교부, 감리회선교국 등이다. 우리교단은 2015년 12월 24일
현재 91개국에 752가정, 1,41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교단은 WCC, CWM, CCA 등에 인재를 파송하여 세계교회 연합기구들을 섬기게 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 살고 있는 민족,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교회 중의 하나로서 이제 더 많은 세계 교회연합 기구에 인재를 파송하여 세계교회에 리더십을 세워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이것이 세계화 시대에 세계화에 가장 적합한 민족, 적합한 교회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교회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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