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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회장 김형태 목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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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28  00: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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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총회장 김형태 목사 별세
   
 

김형태 목사가 지난 6월 27일(월) 숙환으로 소천하셨다. 그동안 지병인 당뇨로 투병하셨는 데 사모님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셨다.  88세로 생을 마감하신 김형태 목사는 총회장을 역임한 분들중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지신 분이기도 하지만 이 분이 시무한 연동교회(121년)는 설립자 게일 선교사 부터 모두 총회장을 지냈는 데 이번에 본 교단 부총회장인 이성희 목사가 올 가을에 총회장으로 취임하며 모든 목회자들이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는 전무후무한 교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어른은 총회 일을 하면서 우리교단의 에큐메니칼신학과 입장을 확고히 다지신  분이다. 우선 그 자신이 일찌기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당시 생소한 기독교교육으로 종교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지만 귀국후 1960년 한국기독학생 총연맹(KSCF) 총무를 맡기도 했다. 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와 교목으로도 사역한 분으로 일반목회만 하신 분과는 달리 시야와 통찰력이 남다른 분이다.

WCC 문제로 합동측과 1950년 대전총회에서 분열된 후 우리교단이 다시 참가하자는 헌의를 할 때에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의 내락을 받고 당시 총회에 서울노회 수송교회(김용준 목사) 당회가 헌의하고 홍성현 전도사등이 돕도록 하시기도 했다.  그 이전 부터 자비를 들여서 WCC 총회에 참가하시기도 했지만 카나다 벤쿠버 총회에서  중앙위원이 되셨다.  무엇보다 1988년 NCCK의 한반도 88선언 당시 NCCK 통일위원장이었다. 재일대한기독교가 주선한 남북최초의 민간교류인 기독교 지도자 모임(일본 도잔소) 회의의 한국대표이기도 했다.

우리 총회 제72회(1987년) 총회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1989년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제 22차 한국총회(연대세학) 한국준비위원장을 맡았고 총회장 재임중 해외교회와의 교류도 활발하게 하여 독일의 팔츠주와 바덴주, 화란개혁교회, 스위스교회등과의 교류의 첫문을 열기도 했다.

김 목사는 경북 포항에서 부친 김은석 목사의 4남 3녀중 셋째로 출생한다. 조부 김영옥 목사는 항일운동을 하신 분이다. 유아기는 부친이 일본 나고야교회의 목회자로 시무하여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다. 김 목사의 4형제는 모두 우리교단의 목회자가 되었다.

김 목사의 처가는 조선일보 설립자 방우영 선생가문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그분들의 고향교회에서 잠시 목회를 하던 중 피난차 왔다가 작지만 다부지고 똑똑한 청년 전도사를 보고 딸을 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처가 덕이나 영향을 받으시지는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김 목사는 문경에서 목회하던 조부의 권유로 서울신학대학으로 진학하였으나 대구에서 1952년 총회신학으로 편입하여 장신대를 졸업한다.
   
 

1954년 경서노회에서 안수를 받고 은퇴전 까지는 서울노회 연동교회에서 시무하다 1989년 65세로 조기 은퇴하셨다. 은퇴후에는 목회교육원등 후진들의 일을 도와 주셨다. 대중과의 마지막 접촉은 2014년 4월 우리교단이 한기총에서 탈퇴하도록 하자는 운동을 할때 직접 연동교회에 나오셔서 한기총등 기독교연합기관들의 문제를 열거하시면서 비판적 강연을 해주시기도 했다. 
   
 

총회에서는 서기와 총회 총무대행,  서울노회장을 역임했으며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회장,숭실대학교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75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열린 WCC 5차 총회에 참가를 하신 이래 일평생 에큐메니칼신학과 독사독재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당시 장청운동을 지원해주시고 평화와 통일의 신학을 펼치시기도 했다.
   
   * 1987년 새문안교회에서의 시국기도회 설교중 태극기 뒤로 윤두호 목사, 이종윤 목사가 보인다.

김형태 목사가 시무할 때 연동교회를 시국기도회와 목회자 개혁 모임등으로 개방했으며 뒤에서 많은 도움을 주시기도 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이 전국을 뒤엎을 때 우리교단 인권위가 주관한 새문안교회에서의 기도회중 밤샘 농성장에 부 총회장으로 직접 오셔서 성경 요한 18:36-37 "교회와 국가" 라는 제목으로 직접 설교하시고 격려하신 것은 역사에 남을 일이다.
   
                               * 87년 6월 22일 새문안교회에서 연좌 농성중인 목회자들에게 설교중인 김형태 목사

대형교회의 목회자로 시국문제에 있어서 신앙과 양심의 소리에 나름대로 응답하신 분이다. 그 외에도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개설과 교수로 사역하신 것도 새로운 사실이다. 장지는 연동교회 부활의 동산이며, 유족으로는 부인 방순영 여사와 딸 혜정 혜선, 아들 홍규 중규 등 2녀 2남이 있다.

고인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 1호실이며, 4일장으로 진행된다. 교단의 장례예식은 오는 30일(목) 연동교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저서로는 많은 설교집과  자신의 목회 회고록을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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