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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골 이야기(기획)REFO 500(1517-2017)
교회개혁 예장 목회자 연대 11월 에큐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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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7  22: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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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 예장 목회자 연대 11월 에큐마당

예목연 11월 에큐마당이 11월 17일(목) 대학로 아가페드림교회당에서 열렸다. 발제는 다음과 같이 진행하였다.

   
 

3분의 발제를 들은 후 참가자들은 2017년 교회개혁 500년을 맞아 예목연이 고백하는 신앙과 신학에 대하여 토론을 이어가며 선언문을 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의미의 교파적 신앙고백이 아니라 초기 교회개혁자들의 개혁신앙과 역사 속에서의 개혁교회의 신앙을 돌아보며 오늘 우리의 고백을 담아보자는 의미다.

따라서 예배예전이나 장로교회의 대의제, 아직도 남아있는 가부장적 낡은 전통과 직제, 잘못된 신앙용어 등에 대한 검토도 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12월의 에큐마당까지 자신이 고백하는 복음과 신앙에 대한 문서를 내고 초안 위원들이 종합하기로 하였다.

2017년 10월에 발표하게 될 고백문서 집필 위원으로 예목연 신학 위원장인 박경수 교수와 김인주 목사, 이승열 목사, 류태선 목사, 홍상태 목사, 성명옥 목사를 추대하기로 하였다.

   
 

다음은 발표된 원고,

1. 교회개혁 500년을 맞는 우리의 신학(신앙)  : 박경수(장신대, 종교개혁사)

1.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Identity)
종교개혁 지형도: 로마가톨릭교회, 성공회, 루터교회, 개혁교회(장로교회), 재세례파

2.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History and Tradition)
스위스 개혁교회, 위그노, 청교도, 언약도

3. 우리의 시대상황은 무엇인가?(Contexts)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환경 등.

4. 우리는 무엇을 지향하는가?(Characteristics and Directions)
& 우리는 무엇을 고백하는가?(Confession)

(1) 정신
* 프로테스탄트의 저항정신. ‘저항하라’

(2) 성경과 성령
*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 그리고 자유하게 하시는 성령.
* 성경에 대한 강조(강해설교, 프로페차이). 기준, 토대, 본질로서의 복음.
* ‘세계 내적 금욕주의’(막스 베버). 경건의 사회성 강조.

(3) 하나님의 영광과 섭리
* Soli Deo Gloria 우상에 저항하라. 그것이 어떤 종류의 우상이든지.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고백. 섭리에 투신하는 헌신.

(4) 교회와 신학,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도구
* 보편적 교회의 신학. 초대교회의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 칼케톤 정의에 기초.
* 신학과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이다.
* ‘믿음의 최상의 실천으로서의 기도’(칼뱅). 기도는 행동의 교역이다. 기도 없는 신학은 없다. 신학은 그 시대를 위한 만나여야만 한다.
*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헌신
* 문화의 변혁모델로서의 개혁교회

(5) 교회 정치
* 만인제사장직에 기초한 교회정치와 직제(목사, 교사, 장로, 집사).
* 신학교육 혁신. 신학생교육 그리고 목회자재교육과 평신도교육
* 교회정치의 필요성: 신학의 표현양식이기에, 교회의 온전성(integrity)을 위해, 교인의 훈련과 순종을 위해, 하지만 당연히 교회 정치는 복음에 종속된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 추구에 필요하다.
* 개혁교회 교회정치: 성경의 권위, 교회의 통일성, 목회자의 동등성, 교인의 목사 청빙권.
* 회중교회제도: 장 모렐리(Jean Morély), 브라운(Robert Browne), 로빈슨(John Robinson), 코튼(John Cotton), 오웬(John Owen), 지역교회의 책임성, 자발성과 교회언약. 교회의 보편성에 취약하다. 인간에 대한 낙관론에 의지한다.
* 예배: 말씀, 구제, 성찬, 기도(시편 찬양)

(6) 그리스도인의 삶
* 단순성(삶, 예전, 설교, 교회정치)
* Reformed and Reforming. 개방성. “전통은 죽은 사람들의 산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산 사람들의 죽은 신앙이다.”
* 은총에 의한 믿음을 통한 칭의, 거룩한 삶으로의 부르심. 율법의 제3사용 계승.
* 에큐메니칼 비전 

2. 한국교회에서 보는 종교개혁 :  김인주 목사(제주 봉성교회)

교회사 이천년에 수많은 교회갱신운동을 꼽을 수 있지만, 16세기 전반에 일어난 종교개혁이 돋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짧은 기간 동안 크게 확산되었다는 양적인 평가와 나란히, 중세 말기의 천주교회와는 현저하게 다른 교회를 형성하였다는 질적인 평가를 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회의 입장에서 교회사 전체를 하나의 강으로 본다면, 종교개혁의 사건은 커다란 폭포와도 같다. 근원지가 분명히 따로 있으며, 상류와 중류도 중요하지만, 하류 직전에 만나게 되는 이 폭포는 하류의 성격을 전혀 다른 것으로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회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살피려 할 때, 종교 개혁을 바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종교개혁의 성격과 내용 이 글에서는 종교개혁의 성격과 내용을 세 가지 특징으로 설명하면서,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이것이 어떠한 구실을 하고 있는지 비판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 살피기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종교개혁은 개신교회를 논리의 종교로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종교개혁은 무엇보다도 신학의 개혁이었다. 은총과 구원의 이론에 대한 연구와 논쟁이 서방교회 신학의 특징인데, 종교개혁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또한 이 이신칭의 교리가 모든 교리와 사고구조를 압도하고 있다. 무릇 모든 종교에 교리와 이론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논리와 실천,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키려 애쓰는 점에서 개신교회는 유별나다 할 수 있다. 이는 종교사에서 볼 때 매우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개신교의 특징이다. 이처럼 이론을 전면에 내세우며 지성을 중시하는 종교는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개신교회를 제외한 다른 종교에서는 신앙과 실천을 뒤따라가며 이론이 이를 정리하는 구조를 취한다.

종교개혁자들은 대부분 인문주의 운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범주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인물로서 루터를 꼽을 수 있지만, 루터와 인문주의를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해석자들도 있다. 개혁자들의 활동의 주 분야는 신학이요 교회현장이지만, 그 방법에서는 인문주의의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들의 저술에서는 물론, 개혁운동에서도 논리를 전개하며 상대방을 설득하는 이론투쟁에 주력하였다. 성서는 말할 나위도 없으며, 교부들의 저작들과 그 주요 내용들을 충실하게 섭력하고 활용하였다.

개혁자들은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들이었고, 수사학을 철저히 익힌 논쟁가들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신자들의 삶, 그 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개신교 신앙은 출발에서부터 좁게, 그리고 선명하게 그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와 비교한다면, 천주교회의 신앙의 폭은 매우 넓고도 유연하다. 신자들의 믿음과 삶을 형성하는 것은 민간신앙이며, 이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교회는 이러한 현상들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며 교리로 흡수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예를 들면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일은 천주교회의 역사에서 고대에서부터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개혁자들에게도 크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마리아에 관한 교리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매우 발전되었으며, 아직도 미완성의 교리라고 보인다. 이처럼 천주교의 신학이 신도들의 신앙을 인정하고 교리화하는 역할을 하는데 비하여, 개신교의 신학은 성서지상주의를 내세우며 교리를 천명하고 신앙을 이로부터 빚어내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많은 교파와 교단의 분열, 그리고 교회 내의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논리가 선행하는 개신교의 구조에서 이는 피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교회의 거듭되는 어려움도 이러한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둘째로 종교개혁은 예배의 개혁이었다. 중세교회의 예배는 집례하는 사제의 일인극으로 보일 정도로 회중을 무시하였다. 이러한 잘못을 직시한 개혁자들은 희생제사의 성격을 강조하는 미사를 성서에 따른 성만찬으로 환원시키고자 하였다. 이제는, 사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식탁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잔치로 초대하는 형식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배의 중심적인 위치에는 설교가 자리 잡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총은 말씀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인식은, 중세교회가 성례전을 통해서 은총을 매개한다고 하는 이론을 배격하고, 성례전의 위치를 크게 제한하였다. 설교 위주의 예배는 자연스럽게 개신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예배의 위기
그러나,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에서 이러한 예배는 커다란 위기를 만나고 있다. 과거 설교를 통해서만 온갖 정보를 듣고 수용하던 청중들과 현재의 예배 참여자들은 엄연히 다르다. 이제 회중들은 교회 밖에서도 많은 정보를 보고 들으며 온갖 문화를 접하며 살아간다. 설교보다 더 감동적이며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매스컴을 통하여 넘치도록 흘러나오고 있다. 매우 유능한 엔터테이너가 아니고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장시간 집중시키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설교 위주의 예배는 이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개혁자들이 주장하던 말씀 선포의 역할은 예전의 설교와는 다른 형태로 제공되고 있는 현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형편에서 본다면, 설교가 아니라 성경공부가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예배 내용과 형식의 적절한 갱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래 한국교회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예배 갱신운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타당한 움직임이라 본다.

셋째로, 종교개혁은 교회 구조의 개혁이었다. 독일에서는 교황교회의 폐해가 크게 지적되었다. 주교제도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내용상으로는 영주들이 그 직책을 겸직하였다. 스위스에서는 성도들의 공동체로서 지교회의 독자성이 강조되면서 또한 귄위를 갖게 되었다. 교회의 계층구조는 타파되었고, 모든 교회는 자결권을 갖는다고 주장하게 되어. 신약시대의 감독 목사 장로 등이 모두 동일한 직책이라는 주장에서 모든 목사들이 동시에 주교라는 이론을 개혁교회가 채택하게 된다. 그리고 설교와 목회의 일선에 나서지 않는 행정가로서의 주교제도를 비난하였다.

스위스 개혁에서는 또한 평신도들의 참여가 훨씬 큰 폭으로 실현되었다. 이는 직접 민주제를 오랜 전부터 실시한 정치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정치보다 오히려 귀족정치에 가까운 장로제를 채택하고, 더군다나 종신직의 장로제도를 받아들인 한국교회는 교회 내의 대의정치라는 명분마저도 상실한 채 새 천년을 맞고 있다. 온갖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는 교회 안팎의 형편을 감안한다면 많은 지교회들이 긴장과 갈등 속에서 지내는 안타까운 현실은, 이러한 역사적 경과의 필연적 귀결이라고도 보인다.

이러한 점들을 늘어놓으며 종교개혁의 공과를 단순히 판정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문제는, 종교개혁의 몇가지 단편적인 사항들을 열거하면서, 다시 종교개혁으로 복귀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만능이 아니다.
또한 그 내용이 우리들의 목표가 아니며 기준이 될 수도 없다. 한때 자랑이었던 것들이 현실에서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거나 족쇄가 되어 우리들의 신앙과 사역을 방해하기도 한다. 종교개혁의 내용에 충실할수록 현실과는 더욱 유리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상황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현황을 살펴볼 때, 전통적인 교리와 교회 구조에 집착하는 교회일수록 사회 및 문화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보게 된다. 종교개혁의 형태와 내용을 이어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개혁의 정신, 역사적 거시적으로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 안목과 용기를 되찾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학이 새로워져야 한다. 획일적인 문답으로 틀에 박힌 지침을 강요하여 교회의 사역을 제하하는 역할을 벗어나야 한다.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자승자박의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 지상주의를 표방하는 것을 빌미로, 결국 사회와 문화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교류하는 모든 창구를 폐쇄하는 정책이 신학의 알파와 오메가가 될 수는 없다.

모든 개혁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개혁의 중심 주제와 부수적인 문제들을 확연하게 구분하였다는 점이다. 세세한 점에서는 개혁자들 사이에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구조에서는 동일하다. 이는 복음의 핵심을 분명히 하고, 개혁의 전열을 정비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일이다. 신학·신학교육 달라져야 종교개혁 후일의 신학이 모든 문제를 구원에 직결시킨 적도 있었고, 정치적으로 상황이 어려워지면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귀결시켜 저항정신을 고양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강경일변도의 논리를 철저히 배격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상황에서는 적절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신학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미래의 사역을 구상하며 이에 창의적이며 능동적으로 대처할 일꾼들을 양성하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종래의 틀과 내용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사역자가 되기를 자원하는 이들의 잠재력을 한층 더 깊이 개발하고 전문화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목회자들 역시 오늘의 구체적 상황에서 교회 공동체에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개신교회의 목회자들은 그 어느 종교의 성직자들에 비해서도 과중한 교역을 감당해야 하며, 또한 개개인이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보인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논리 위주의 교역이 또한 목사와 장로의 협의에 의해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불가피한 현상이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일관성 있는 목회정책 설정과 탄력성 있는 운용으로 이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이제 종교개혁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는 것은 예전의 그 내용을 답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의무는 오백년 전의 교회가 맞닥뜨렸던 과제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새로운 과제에 성실히 답하는 것이야말로 종교개혁의 뜻을 바로 계승하는 일이 된다.

3. 우리총회 21세기 신앙고백 : 이승열 목사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신앙고백서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공산 동구권의 붕괴와 구 소비엩 연방체제의 해체 이후, 인류 공동체는 급격한 지구화(globalization)의 과정 속에 말려들고 있으며, 남북한은 화해와 교류의 급류를 타고 있다. 시장경제 원리(신자유주의)의 지구화와 기술과학의 지구화, 특히 지식정보화와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혁명 및 인간복제를 포함한 생명공학의 발달과 사이버세계의 확산으로, 북반구와 남반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삶의 질에 있어서 괴리와 소외와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나아가서 우리는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고, 여기에 더하여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개인주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도적 신앙내용을 거부하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그리고 사유화되고 감성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다원화 종교와 같은 “후기 근대주의”(post-modernism)의 부정적인 가치들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상과 같은 세계사적 도전과 이 시대의 징조들을 바로 읽고, 우리의 신앙과 신학의 방향을 가늠해야 할 것이다. 선교 제2세기에 돌입하고 있으며, 한국 장로교 회가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하나를 지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면서 다른 장로교회들과의 일치 운동은 물론, 다른 교회들과도 일치 연합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사도신경 이외에 이미 12신조(1907),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및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을 사용해 오고 있고, 1986년엔 우리 나름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손수 만들었다. 그러나 새 술은 새 가죽 부대를 요구한다. 1997년 제82차 총회는 헌법(1. 교리와 신앙고백, 2. 정치, 3. 권징, 4. 예배와 예식)개정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이미 “정치”와 “권징”의 개정은 노회들의 수의과정을 거쳐 확정되었다. 그리고 헌법개정위원회는 “교리와 신앙고백” 및 “예배와 예식”의 개정을 위하여 각각 전문 위원들을 위촉하여 연구케 하였다. 하지만 교리와 신앙고백 분과 위원회는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에 앞서 그것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먼저 “21세기 한국장로교의 신앙과 신학의 방향”이라고 하는 문서를 내놓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과정을 거처서 나오게 된,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와, 예배를 위해서 6항목으로 축약된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는, 이미 우리가 사용해 오고 있는 기존의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에 하나 더 첨가된 것이다.

Ⅰ.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예배용)

1.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거하시며, 사랑과 생명의 근원이시요, 찬양과 예배를 영원히 받으실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섭리자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온 인류와 만물을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교제(코이노니아)로 부르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 죄에 빠져 타락한 인간 때문에 파괴되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어졌음을 믿습니다. 그 결과로 인류와 다른 모든 피조물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음을 믿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말씀으로 영원히 거하시며, 성령님의 역사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성육신 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과 참 인간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구속하시고,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를 회복하신 화해자요 중보자이심을 믿습니다.

4. 우리는, 생명의 부여자이시며 성부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 영원히 예배와 영광을 받으실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복음에 대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시며, 하나님과의 새로운 교제를 이루게 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5.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 세상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님의 전임을 믿으며, 성도의 교제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믿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실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삶을 실현하고, 복음전도와 정의, 평화, 창조보전의 사명을 받았음을 믿습니다.

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 세계는 부활한 하나님의 백성과 새롭게 된 만물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랑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을 믿습니다.

Ⅱ.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1. 사랑과 생명의 근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우리는 한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는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조명과 능력으로 신구약성경에 의해서 자기자신을 계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탱하시며, 구속하여 성화시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사 영화롭게 하시며, 영원한 사랑의 교제(코이노니아) 를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인류사회의 공동체성,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사랑과 생명의 교제의 근거이시다.

2.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 깨어진 교제
우리는 선하게 창조된 온 인류와 다른 모든 피조물들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단절되었고, 이로 인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 교제가 파괴되었음을 믿는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2: 11), “죄의 값은 사망”이며(롬6: 23), 모두가 길 잃은 어린양 처럼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품을 멀리 떠나 방황하고(눅15: 11-32; 사1: 3-15; 호1: 2; 9: 10), 나아가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다(롬3: 19; 2: 5). 뿐만 아니라 모든 나머지 피조물도 역시 허무한데 굴복하고, 썩어짐에 종노릇하고 있다(롬8: 20-21). 타락한 모든 인류와 나머지 모든 피조물들은 사탄의 권세와 죄의 지배아래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하여 저주 가운데 떨어져 영원한 멸망 이외에 다른 소망이 없다(창 3 : 1-24).  

3. 복음을 통하여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과 인간과 피조물 사이의 교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말씀으로 영원히 거하시며, 성령님의 역사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성육신 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주심”(요3: 16 ;요일4: 9-10)으로 온 인류와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3년 어간의 공생애와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하여 인류와 모든 피조물과의 새로운 교제를 이룩하셨다(고후5: 19 ; 골1: 20).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과 참 인간(vere Deus, vere Homo)으로서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키신 중보자(딤전 2 : 5)로서 죄악과 저주를 대신 짊머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시며, 부활하시고, 그의 삼중직(예언자직, 왕직, 제사장직)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화해사역을 성령님을 통해서 완성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와 나머지 모든 피조물에 대한 칭의와 성화와 영화롭게하심을 계시하고 약속하셨다.

4. 성령을 통하여 이 땅위에 실현되는 하나님과 인간과 피조물 사이의 교제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서 “생명의 부여자시요,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381) 성령님을 이 땅 위에 보내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역,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게 하심으로써 인류와 우주만물을 구속하시고, 새 창조를 약속하셨다고 믿는다(계 21 : 1-6). 첫 번째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였으나, “새 창조”(계 21 : 1-6)란 “첫 창조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것(creatio ex vetere : transformation and transfiguration)이다.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함께 성령님을 이 땅 위에 보내셨고, 특히 교회에게 성령을 부어 주사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믿는 사람들은 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역사로 이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야)로 받아들여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아 회개에 이르고(롬 3 : 21-26 ; 롬 6 : 1-23), 성화와 영화롭게 됨에로 나아가며(롬 8 : 30), 영원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게 된다. 성령님의 교제케 하심과 감화와 감동, 그리고 역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화해사역은 믿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며, 이들은 복음에 대하여 믿음, 소망, 사랑으로 반응한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역사로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몸이요(엡 1 : 23), 하나님의 백성이요(벧전 2 : 9-10 ; 고전 6 : 16), 성령님의 전(고전 6 : 19 ; 엡 2 : 21)인 교회를 세우셨다.

5.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우리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되고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 위에 실현하기 위하여 이 세상 속으로 파송받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임을 믿는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하여 죄의 지배 아래에서 저주에 빠진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며, 하나님이 지으신 선한 창조를 회복하시고, 새 창조의 세계를 약속하셨다.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381)로서 죄와 죽음의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모이는 교회일 뿐만 아니라(행 2 : 27-47 ; 요 17 : 14, 16), 이 세상을 위하여 이 세상 속으로 파송받은 흩어지는 교회이다(요 20 : 21). 이 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가치관과 인생관들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재정립하여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의 보전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

6. 새 하늘과 새 땅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룩될 것을 믿는다(계 21 : 1-6). 그 세계는 부활한 하나님의 백성과 새롭게 창조된 만물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영원한 교제를 이루는 영생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 7 : 15-17 ; 22 : 3-5).

우리의 사명

1. 우리는 교회가 하나임을 선포한다. 삼위일체되신 성부, 성자, 성령께서 나뉠 수 없는 한분 하나님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인 교회는 하나가 되어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을 돌리며, 복음선교에 힘쓴다

2. 우리는 사도적 복음과,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을 포함한 사도적 신앙을 공유하고 있는 모든 교회들과 더불어 함께 예배하고, 세례와 성찬과 직제에 있어서 일치를 추구하며, 협의를 통한 교제와 공동의 결의와 공동의 가르침을 지향하고, 나아가서 선교와 사회봉사에 함께 참여한다

3. 우리는 인간과 모든 나머지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누릴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 위에 공의와 사랑이 강같이 흐르는 사회를 건설해야 하고, 하나님의 복음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변혁시키며, 나아가서 자연을 보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물들거나 세상 속에 용해되어서는 안되고, 오직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항상 자기개혁에 힘써야 한다.

4. 우리는 시장경제와 과학과 기술의 지구화, 특히 정보기술의 혁명으로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이 위기에 직면한 나라와 민족들, 비인간화되어 가는 수많은 대중들, 착취되고 파괴되어 가고 있는 자연세계, 인간을 착취하는 구조악들을 사도적 신앙으로 변혁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사명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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