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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학 교수님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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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30  00: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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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학 교수님

   
*  파리의 활애(交尾) 장면 

한양대학교 교육학과 유영만 교수는 특이한 이력을 갖은 교수다. 학계는 그를 '지식생태학자' 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그는 공부만 해서 그런 평을 듣는 분이 아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전액 장학금을 주는 수도공고에 입학한 후 한국전력 평택공장 용접공으로 일했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평범한 공돌이’로 살아가던 어느 날 우연히 본 한 권의 책이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어느 고시합격생이 쓴 수기에 자신과 똑같이 공고를 나온 공돌이가 법대를 입학하고 고시에 합격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 사람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 싶어 그 날로 공부에 매달려 술과 사람을 끊고 주경야독한 결과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에 뒤 늦게 입학하여 김종량 교수(전 총장, 설립자 고 김연준 이사장의 자녀)의 방에서 먹고 자고 공부했다.

 

 

허운나 교수(전 열린우리당 의원, 사이버 전문가)의 지도로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경영혁신과 지식경영에 대한 교육을 5년 간 담당했다. 이후 안동대학교 전임강사를 거쳐 2001년부터 모교 한양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용기>, <내려가는 연습>, <상상하여 창조하라>, <청춘경영> 가 있다.

 

 

그가 일류대학에서 편하게 부모가 주는 돈으로 앉아서 공부만 했더라면 도저히 생각도 못하고 상상할 수 없는 말을 하였다. 원래 공부는 현장과 삶과 유리되기에 배부른 소리를 하고 엉뚱한 소리을 하는 것이다. 노동자 출신 유영만 교수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박사 학위는 자기 것만 알아야 받는다.

 

파리학사? 그는 파리 개론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파리 앞다리론, 파리 뒷다리론, 파리 몸통론 등 파리 각론을 배우고 졸업하기 이전에 파리를 분해 조립하고 파리가 있는 현장에 가서 인턴십 등 실습을 한 다음 파리학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이제 파리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것 같다”고 말한다.

 

 

파리석사? 파리학사는 아직도 파리에 대하여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파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다. 파리석사는 파리 전체를 연구하면 절대로 졸업할 수 없기 때문에 파리의 특정 부위, 예를 들면 ‘파리 뒷다리’를 전공한다. 파리 뒷다리를 전공하는 파리학과 대학원생은 파리 뒷다리를 몸통에서 분리한 다음 실험실에서 2년 간 연구한 다음 ‘파리 뒷다리가 파리 몸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파리 석사학위를 받는다. 파리석사는 이제 무엇을 모르는지 알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파리 뒷다리 전공자에게 절대로 파리 앞다리를 물어봐서는 안 된다. 파리 뒷다리 전공자는 파리 앞다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파리 석사는 파리에 관한 보다 세분화된 전공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파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파리박사? 파리학과 박사과정 학생은 파리 뒷다리를 통째로 전공해서는 절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없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파리 뒷다리 발톱’을 전공한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전에 파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은 전국 추계 파리발톱 학술대회에 나가서 그 동안 연구한 파리 발톱의 특정 부위 성분이 파리 발톱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런 부논문을 더욱 세분화시켜 1년생 파리 뒷다리 발톱의 성장패턴이 파리 먹이 취득 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파리 박사학위는 “나만 모르는지 알았더니 남들도 다 모르는 군.” 이런 깨달음이 오면 주어지는 학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파리 발톱을 전공한 박사 전공자 간에도 발톱 부위별 전공부위가 달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쉽게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파리학과 교수? 그는 세분화된 전공을 선택해야 교수사회로 입문할 수 있다. 교수가 전공하는 파리 부위는 ‘파리 발톱에 낀 때’다. 파리 발톱에 낀 때를 전공하는 교수들도 까만 때를 전공하는 교수, 누리꾸리한 때를 전공하는 교수, 30년산 때나 21년산 때를 전공하는 교수, 18년산이나 15년산 또는 12년산 때를 전공하는 교수로 나뉘어서 동일한 파리의 때를 전공하지만 전공영역이 달라서 때를 전공하는 교수들끼리도 사용하는 전공용어상의 차이로 인하여 커뮤니케이션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교수가 되면 “어차피 모르는 것, 끝까지 우겨야 되겠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부분으로는 전체를 볼 수 없다.

 

현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축과 틀은 학교와 공장과 교회다. 그 정점에서 대학은 Technocrat(기술관료)를 생산하고 공장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창출하고 교회는 그들의 부를 축복하고 사회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은 그런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기성사회나 어른들이 원하는 공부만 하지는 않는다. 세계 어느 곳이나 학생운동은 모든 저항 운동의 시작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파리의 68혁명, 독일의 학생운동, 일본의 전공투(1960년대,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가 그렇다. 간혹 과격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열병과 같은 젊은 시절을 보내는 것이 대학사회의 양면이다. 그들이 꿈꾸는 혁명은 아직 일어나지 않는 데, '20대의 공산주의자가 아닌 자도 없고 50이 넘어도 공산주의자라면 미친 놈'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이 살아남기 위하여 하는 짓이 경영이다. 그래서 CEO 총장을 선호한다. 그러니 기업 클러스터(Cluster)를 위하여 기업자금을 끌어드리고 학문의 영역을 자본으로 지배하고 있다. 학제 간 연구나 크로스오버, 퓨젼이라는 말이 대학에서 시작되어 시장의 용어가 되었다. 타 학문이나 업적에 대하여 그것을 융합하고 발전시키는 개념이다.

 

 

부분으로는 전체를 이해 할 수 없다. 말로는 파리를 연구한다고 하지만 연구를 위한 연구다. 파리를 연구하려면 파리 전체를 이해한 다음 각론으로 들어가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리 특정 부위가 파리 몸통 전체와 어떤 구조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 없이 파리를 이해할 수 없다.

 

 

학제 간 교류

 

교수들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서나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기 전공에 대한 좁은 틀로는 안 된다. 모든 인류가 이룩한 학문의 성과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것과의 연관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교수들이 얼마나 될까? 모두 자기가 전공하는 것이 최상이고 최고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근대 학문의 출발인 인문주의(르네상스)를 알아야 한다. 인류가 공헌하고 논쟁해 온 모든 것을 받아 드려야 한다. 인문주의는 신(神)에 도전하는 학문이다. 신이 부여한 질서에 대하여 최초로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야 과학과 문명은 앞으로 더 나아갈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의 지동설은 물론이고 모든 학문과 지성을 억압하고 있었다. 신과 왕, 영주와 기사, 농민과 노예로 구성된 사회구성체였다. 움직일 수 없는 신분제다. 그러나 그 신분제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역사다. 농민들이 영주의 땅에 가서 노동으로 다시 현물로 그리고 마침내 화폐시대로 바뀌면서 시작된 중상주의(mercantilism, 重商主義)는 모든 것을 바꿔놓게 된다.

 

 

신분제는 부와 군대 그리고 도적과 질서에 신의 뜻이라는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 질서의 정점은 바로 가톨릭교회다. 프랑스의 소설 노틀담의 곱추의 종지기 콰지모도가 그것을 비웃고 있다. 당시 신분제를 비판하고 넘어선다면 그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상류층의 이권이자 종교문제로 죄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서 사회는 이행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것의 마지막을 1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직조기의 발달은 많은 양모를 필요로 하였고 농촌의 경작지는 목장으로 밀어버리는 엔클로저(enclosure)가 나타난다. 급격한 매뉴팩처(manufacture)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위하여 농민과 농노들을 도시로 오게 하는 정책이 추친된다.

 

 

역사는 흐른다

 

이때 소위 프로테스탄트라는 신교 선각자들은 구교의 제도와 종교의 제한적 개혁으로 시작하였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은 사회개혁으로 치닫는 것을 두려워 한다(토마스 뭰춰) 그러면서 새롭게 출현한 신흥 부르주아들의 이익을 대변하게도 된다. 영주에게 예속한 이들이 신흥 도시의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하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국경을 개방하게 되고 베네치아나 이태리의 초기 은행(실상은 고리대금)을 합법화하는 데 칼뱅은 신약성경 달란트 비유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

 

 

우리가 말하는 종교개혁은 종교만의 개혁이 아니다. 유럽 전체가 변화를 하게 된다. 그 중에도 우파와 좌파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자면 한이 없으니 그만 줄이고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라는 말이 있는 데 우리는 이를 우익과 좌익이라고 한다. 바로 균형이다. 이미 선진국은 사회주의 정권(프랑스, 그리스, 맥시코 등)이 집권을 하기도 한다. 좌파 공산당 마저 합법화 되어 있다. 그 만큼 그 사회에 대한 자신감이 있고 역사적 교훈이 있다. 한 사회가 발전하고 건강하게 서려면 진보와 보수가 공존해야 한다.

 

 

정신 개조가 목표인 국정교과서

 

우리나라에 한정해서 말하면 남북의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사상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이 법이 악법이고 위헌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합법적으로 개정되지 않았으니 이 법은 살아 있다. 악법이라는 이유는 이 법이 자유와 민주를 지키는 법이 아니라 정권을 지키고 정적을 죽이는 법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 법의 제정은 일제 하의 독립운동가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었고 군사 쿠데타와 신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법으로 학생운동, 시민사회운동 지식인들을 억압하고 재갈 물리는 데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지금도 우리 사회는 60만 군대와 경찰력, 국정원 등 국가 요소요소에 안보를 위한 기관들이 우리의 30배나 못 사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 많은 인력과 예산으로 장군들과 고위층을 위한 군비강화와 로비에 가져다 쓴다.

 

 

그런데도 사이버사나 국정원 등 대선에 개입하는 등 정권의 시녀로 전락을 했다. 국가적 범죄다. 그런데도 지금 정치권이 교수들, 학자들까지 동원하여 국민를 상대로 학생들의 정신 개조를 꿈꾸고 있다. 그리고 좌파 척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기야 미국도 '매카시 선풍'으로 그 난리를 벌렸지만 지금 21세기 백주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저들에 의해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는 '미래엔 검정 교과서'이다. 거기 혁명을 찬동하고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등의 주장이 있다는 말이다.

 

 

자기들이 검증한 책인데도 문제를 삼고 획일화된 이론만을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내용 중 그 동안 저평가 되어 왔던 해방전후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한 집필은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을 갖고 이렇게 나라가 곧 무너지는 것처럼 엄살을 부리는 것이다.

 

 

유영만 교수의 "파리교수" 얘기는 작금의 세태를 비웃는 말이다. 지식 기사들의 자기반성이 필요한 때다. 자만과 교만에 차서 늘 가르치려고 하는 우월의식으로는 안 된다. 대학은 이미 돈벌이로 혈안이 되어 있고 돈이 차고 넘친다. 그리고 모든 대학들의 유지는 상위 1%을 위하여 돈을 내고 대학을 유지시키는 99%가 있다.

 

 

99% 의 토대 위에서 장학금을 받고 연구들을 하고 박사들이 되고 교수가 된다. 신학박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박사들이 연구안하고 논문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세상이 안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모든 학자들이 그런 식으로 연구하고 교수로 채용되고 가르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유 교수 입에서 나온 이 파리박사 우화는 우리 세태를 말한다.

 

 

신학대학 논쟁 풍성하게 했으면

 

김철홍 교수 발 장신대 논쟁은 학문적인 논쟁은 아니지만 시국 문제고 사상의 문제고 정신의 문제이고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김철홍 교수가 논리적으로는 조악하지만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모두 말조심 몸조심을 하느라고 논쟁을 못하고 있다. 섭섭하지 않은 것은 학생들 참여가 있어 다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신대는 세계적인 대학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라기는 좀 여유를 가지고 생산적인 논쟁을 하면 좋을 것이다. 관점을 명료히 하고 열린 마음으로 논쟁들을 이어가면 좋겠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러나 오늘날 선생다운 선생이 있는가? 하는 지적에 누가 자신있게 대답을 하겠는가? 일부는 정실과 이권 편법으로 교수가 되고 그러고도 신앙과 신학을 가르치니 기적이다. 그러니 이런 시국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찬성이든 반대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철홍 교수의 자신감은 높이 사고 싶지만 논쟁다운 논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이런 식은 대학의 자랑인 지성이나 학문이 아니다. 논쟁을 두려워 하고 논쟁을 불온시 하는 풍토가 더 문제다. 논쟁은 계급장을 떼고 해야 하는 데 이번에 논쟁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한다.

 

 

최근 고려대학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는 전태일의 행동은 20대만이 지닐 수 있는 기개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결국 역사를 끌어온 수레는 항상 20대의 것이었어. 자연의 섭리와 부합하는 최선의 순수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 노동과 민주화의 역사를 돌아봐. 명예와 권력에 끌려다니지 않는 청년들은 앞으로도 역사의 정신적 지주로 활약할 거야.”

그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오염된 현실과 타협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허황된 지식과 부도덕한 자본에 취해버려선 안 돼. 그건 형(전태일)이 이야기했던 ‘기계’와 다를 게 없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야.” 하고 청년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했다. (관련 자료, 보기) 그렇다. 우리는 모두 조연이다. 김 교수도 차 교수도 주연이 아니다. 학생들이 중요하다. 그들이 이 나라의 미래이고 교회의 미래다. 이 논쟁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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