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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지도자의 자질사도 행전과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위거찬(명지전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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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03  11: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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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지도자의 자질

- 사도 행전과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 

위거찬(명지전문대학)

Ⅰ. 서론
Ⅱ. 기독교 지도자의 자질
    1. 경건(piety) 2. 권위(authority) 3. 성실(integrity) 4. 겸손(humility) 5. 예의(courtesy) 6. 감수성(sensitivity)
Ⅲ. 결론


Ⅰ. 서론

바울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서 기독교과목 교수들이 지녀야 할 자질들에 관해 명시하고 있다. 뛰어난 교사요 사도인 바울에게는 기독교 과목 교수들이 갖춰야 할 하나님에 대한 깊은 헌신, 하나님이 주신 권위와 자신감, 인격적인 성실성과 정직성, 일관성 있는 자세, 겸손한 태도와 사려깊은 예절,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깊은 감수성, 자신과 하나님의 대적들에 대한 엄격한 대응 자세, 억제할 수 없는 열정, 수많은 역경과 난관에 부딪혔을 때의 담대한 불굴의 의지, 침착성, 진심에서 우러나온 적절한 표현 등이 있다. 바울의 이런 인격적인 자질들은 기독교 과목 교수들이 갖춰야 할 자질들인 것이다. 본고는 이것들 중에서 몇 가지 자질을 자세히 고찰하고자 한다.

Ⅱ. 기독교과목 교수의 자질

1. 경건(piety)

바울의 경건은 8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로 바울의 경건은 그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가 중심적인 존재였다는 데서 입증될 수 있다. 바울 안에는 그리스도만 사시고 계셨다(갈 2:20). 그의 최우선적인 목적은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었다.1)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했고 그를 본받는 데다 목적을 두었고 그와 동일시 하려고 노력했으며 그와의 연합을 추구했으며 그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서 기쁨으로 충만했다.2)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바울의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었다(갈 1:10, 살전 2:4).

둘째로 바울의 경건은 그의 기도 생활로 입증될 수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의 기도는 자연스럽고도 자발적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졌다(행 9:11, 13:1-4, 14:23, 16:25, 20:36, 21:5, 22:17, 28:7-8). 바울은 로마인들의 영적인 축복을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고린도인들의 올바른 행동과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에베소인들의 영적 통찰력과 힘을 위해서, 사랑에 있어서의 빌립보인들의 성숙과 영적인 분별력과 순수성을 위해서, 주님께 합당한 골로새인들의 행동을 위해서, 데살로니가인들의 영적인 진보와 가치있는 행동을 위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빌레몬의 적극적인 증언 활동을 위해서 기도했다.3)

셋째로 바울의 경건은 그의 예배행위 속에서 입증될 수 있다. 바울은 단식도 했고(행 13:2-3, 14:23) 자기의 서원도 지켰으며(행 18:18),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에 참여하기도 하였고(행 13:2, 16:13, 16, 25, 20:7, 24:11, 17-18, 28:8-9) 예루살렘에서 해마다 열리는 무교절과 오순절에도 참석하였다(행 20:6, 16).4)

넷째로 바울의 경건의 원동력은 바울 속에 내주한 성령이었다. 바울에 의하면 성령의 일을 생각하면서(롬 8:5) 성령의 힘(갈 5:16)으로 살아가는 것이 영적 성장의 필수요소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성령에 의지해서 살아갈 것(갈 5:16)과 성령으로 충만하기를(엡 5:18) 촉구했다. 신자들 안에서의 성령의 사역은 다양하다; 새롭게 하심(딛 3:5), 의롭다 하심(고전 6:11), 세례주심(고전 12:13), 인치심(엡 1:13, 4:30), 거하심(롬 5:5, 8:9, 11, 고전 2:12, 3:16, 6:19, 고후 1:22, 5:5,갈 3:2, 5, 4:6, 엡 2:22, 살전 4:8, 딤후 1:14), 양자로 삼으심(롬 8:15), 거룩하게 하심(롬 1:4, 15:16, 살후 2:13), 인도하심(롬 8:14, 갈 5:18), 통제하심(롬 8:6, 9), 가르치심(고전 2:13-16), 계시하심(고전 2:10-11, 엡 3:5), 자유롭게 하심(고후 3:17), 능력을 주심(롬 15:13, 19, 고전 2:4, 고후 6:6, 엡3:16, 살전 1:5),사랑하심(롬 15:30, 골 1:8), 간구하심(롬 8:26-27), 도와주심(롬 8:26, 빌 1:19), 증거하심(롬 8:16, 9:1), 부활시키심(롬 8:11), 기쁨을 주심(롬 14:17), 영적 은사를 주심(고전12:4-11),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심(갈 5:22-23), 하나되게 하심(엡 4:3), 교제하게 하심(고후 13:13, 빌 2:1), 기도하게 하심(롬 8:15, 갈 4:6, 엡 2:18, 6:18), 봉사하게 하심(빌 3:3), 소망을 주심(갈 5:5).

다섯째로 바울의 경건은 주님께 대한 굽힐 줄 모르는 믿음에서 입증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이김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시켰다(고전 15:57). 바울이 로마로 가던 길에 배가 난파당하려고 할 때 바울은 선원들에게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배에 탄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로마 감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의 감금 상태와 복음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섯째로 바울의 경건은 그 자신의 소망에 근거했다. 그는 하나님이 미래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5) 죽은 이들의 부활(행 23:6; 24:15), 구약성서에 나온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 이행(행 26:6-7; 28:20), 그리스도의 은총 공유(롬 5:2; 고후 3:11-12; 골 1:27) 현재의 속박으로부터 새 창조를 통한 해방(롬 8:21), 우리 몸의 구원(롬 8:23-24), 고통으로부터의 구원(고후 1:10), 그리스도가 되돌아 왔을 때 완전한 정의 실현(갈 5:5, 딤후 4:8), 하나님의 부유함을 물려받음(엡 1:18, 14), 영원한 삶(딛 1:2; 3:7), 주님의 재림(딛 2:13). 미래의 이런 하나님 행위에 대한 바울의 확신으로 인해 바울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과 동일한 확신감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랬다. 그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소망 중에 즐거워”(롬 12:12) 하기를 권면했다.

일곱째로 바울의 경건은 그의 결백한 양심에 근거했다. 재판받을 때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에 자신의 “명백한” 양심에 대해 이야기 했고(행 24:16) 벨릭스에게도 자신의 “흠없는” 양심에 대해 언급하였다(행 24:16). 그의 양심은 자신의 정직성을 단언하게 되었고(롬 9:1, 고후 1:12) 디모데에게 사도로서 자신은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있다고 확언하였다(딤후 1:3). 바울은 디모데에게 “선한 양심”(딤전 1:19)을 지닐 것을 권면하였고 집사들도 “깨끗한 양심”을 지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딤전 3:9).
여덟째로 바울의 경건은 자신의 삶을 주님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신다고 느끼는 그의 감수성에 있었다. 로마의 신자들을 방문하려는 그의 바램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그의 의지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롬 1:10; 15:32).

바울의 삶 속에서 이 여덟 가지 요소들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하나님과의 친밀성을 입증해 준다. 성령으로 충만한 바울의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은 매우 효과적인 전도 사역과 교육 사역에서 지배적인 토대로서 역할 하였다. 이와 같은 필수적인 자질(경건)이 없었더라면 바울의 임무는 성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였을 것이다.

2. 권위(authority)

기독교 과목 교수는 권위있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거만한 방식으로 학생들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지식을 뽐내거나 다른 사람들 보다 우리 자신을 더 우월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영적인 측면에서 권위를 갖고 가르치는 것은 명령의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예수의 12사도들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권위 있게 말할 수 있었다(고전 9:1; 15:9). 두 차례에 걸쳐 바울은 “주님이 자신에게 주신 권세”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고후 10:8; 13:10). 이것은 바울이 사람들에 의해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은 것임을 의미한다(갈 1:1). 그리고 이것은 그의 메시지가 그 자신이 조립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의미한다(갈 1:11-12).

이와같이 바울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공유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권위있게 또 확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행 13:5, 7, 44, 46, 49, 14:25, 15:35, 36, 16:6, 32, 17:13, 18:11, 19:10, 20, 20:32, 고전 15:2, 골 1:5, 25, 살전 1:8, 2:13, 4:15, 살후 3:1, 딤후 2:9, 4:2, 15, 17, 딛 1:3, 9). 이것은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해당된다. 우리는 신적인 진리(삶을 변화하는 진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권위있게 가르친다. 하나님의 힘있는 말씀을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을 전파함을 의미한다(고후 4:5). 권위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단순히 하나님의 권위를 지닌 메시지 뿐만 아니라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능력을 잘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성령의 힘(혹은 하나님의 능력)은 바울의 전도 사역과 관련된 바울 서신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다.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도록 하였다(롬 15:18-19). 바울의 메시지는 성령의 능력을 나타낼 때 효과적으로 제시되었다(고전 2:4). 따라서 바울이 전도하고 가르치는 노력의 결실은 하나님의 능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전 2:5). 바울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도이기 때문에 그에게 부여된 권한이나 능력은 바울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고후 13:4). 바울 자신이 말한 대로 바울은 복음을 단지 말로만 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했다(살전 1:5). 그의 영적인 잠재 능력은 바울 자신이 개종한 직후 다메섹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거기서 그는 힘을 더 얻어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행 9:22).6)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자신은 절대로 권위를 남용한 적이 없으며 또한 권위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가혹한 방법을 선택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고후 13:10). 왜냐하면 자신이 사용하는 권한은 바로 주님이 주신 권한이기 때문이다(고후 19:8; 13:10). 하나님의 권위있는 메시지를 갖고 있고 영적인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부끄러워 하지 않고 대담하게 소심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겁먹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진리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울은 개종 직후에 다메섹(행 9:27)과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담대하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후 바울은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말하였다. 바울은 아그립바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변론할 때에도 그들에게 담대하게 말했다(행 26:26). 특히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자신이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엡 6:20).

“두려움 없이 선포하다”라는 헬라어 동사(parresiazomai)는 종종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언론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 parresia는 담대함과 자신감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것은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행 2:29, 4:13, 30-31, 28:20, 고후 7:4, 엡 6:19). 바울은 어떤 장소에서 복음을 가르칠 때 그는 특별한 권위와 개성의 힘을 가진 사람(즉 모든 방면에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7) 우리들도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할 때 자유롭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며, 반대 상황에 부딪히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고 부끄럼 없이 전할 수 있어야 한다(롬 1:16, 빌 1:20, 딤후 1:8, 12, 2:15).

3. 성실(integrity)

그리스도인이 한편으로 복음을 가르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복음을 불신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비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비웃게 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기독교 과목 교수들이 부도덕적인 행동이나 범죄를 저지를 경우 비기독교인들이나 기독교인 학생들이 얼마나 낙심할까? 이와 같은 위선을 바울에게서는 볼 수 없다. 그는 온전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관성 있게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성실과 정직 그리고 일관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본보기였다.8) 기독교 과목 교수들은 사도 바울이 성령의 도움으로 진실하고 일관된 삶을 살아온 것을 열심히 흉내내야 한다.

소극적인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부도덕한 동기를 품은 적이 전혀 없으며 더욱이 사기를 쳐 본 적도 없고(고후 4:2) 아첨이나 감언이설을 한 적도 없었다(살전 2:5). 바울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갈 1:10, 살전 2:4) 사적인 이익을 얻거나 탐욕 때문에 선교 사업에 뛰어든 것도 아니라고 역설했다(고후 7:2). 누가에 의하면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자신은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탐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행20:33). 반면에 적극적인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자신의 말의 성실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언하였다; “우리는…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그가 말한 내용은 언제나 진실한 것이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롬 9:1, 갈 4:16)고 단언하였다. “진실한 말”은 바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길을 얼마든지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해 준 속성 중의 하나였다(고후 6:7).

사도 바울은 또한 자신의 행동의 성실성에 대해 확언하였다;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고후1:12)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고후 7:2).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 선한 일에 근심하려 함이라”(고후 8:21).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아 교인들에게 자신이 경건하고 정당하고 결백한 삶을 살아 왔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각인시켰다(살전 2:10). 바울은 매우 개방적이고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은 너희가 아나니”(행 20:18, 33-34)라고 말했으며, 디모데에게도 “나의 행실을 보고 알았거니와”(딤후 3:10)라는 글을 써서 보냈다. 바울의 행동은 언제나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과 일치하였고 그의 협력자인 디모데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전 4:17). 다섯 차례에 걸쳐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의 증언자가 되어 주셨고 자신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단언하였다[롬 1:9, 고후 1:23, 5:11, 살전 2:5,10(빌1:8 참고)].

사도 바울은 흠이 전혀 없는 정직한 사람으로서 절대로 자신이 지니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잘난 체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과 죄 사이의 갈등(단점, 두려움, 사람들 앞에 섰을 때의 떨림, 자신의 약함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능력에의 의존)을 포함한 자신의 부족을 인정했으며(롬 7:15-20), 자신은 아직도 영적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시실을 인정했다(빌 3:12-13).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도록 배우는 사람들이 낙담하게 되는 지름길 중의 하나가 바로 언행의 불일치로 인한 것이다. 교사들이 자기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실제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을 보게 될 때, 학생들은 교사들에 대한 신뢰와 성경에 대한 신뢰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주님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반면에 교사들이 가르치는 진리를 모델로 진실한 삶을 이끌어 나간다면, 학생들은 용기를 가지고 그들 자신들 속에 있는 비슷한 자질들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우리가 가르치는 진리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만이 그 진리 내용을 강화하는 것이며 우리의 말의 영향력을 더욱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9)

예수처럼 바울은 자신의 삶과 가르침 사이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면 그는 독자들에게 겸손해 지라고 촉구하면서(롬 12:3, 16; 엡 4:2, 빌 2:3-4) 자신도 겸손한 자세로 임했다(엡 3:8, 딤전 1:15).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라고 촉구하면서(엡 5:18) 자기 자신도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행 9:17; 13:9). 그는 디모데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충고하면서(딤후 1:8) 자신도 복음을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롬 1:16, 딤후 1:12).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고 가르치면서(갈 5:13) 자기 자신도 그렇게 실천하였다(고후 4:5). 이와 똑같은 상황이 오늘날의 기독교인 교사에게도 해당된다.

4. 겸손(humility)

바울은 부활한 주님을 직접 본 적이 있었으며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사도들의 대표로서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가장 겸손한 사도들 중의 한 명이다.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따르면서(고전 11:1) 그는 그리스도가 지니고 있었던 것과 동일한 겸손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빌 2:5-8).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시 루스드라에 사는 사람들이 바울을 허메(Hermes)라고 부르면서 제사 드리려고 하자 바울은 루스드라 사람들의 이와 같은 행동을 일축하고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행 14:15)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제3차 전도 여행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작별인사를 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온유이며”(행 20:19).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뇨”(고전 1:12)라고 반문하면서 자신의 겸손을 나타냈다. 자신이 농부처럼 씨앗을 심기는 했지만 그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나도록 한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고전 3:6). 바울은 “심는 것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전 3:7)고 말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고전 9:16, 고후 12:5, 고후 10:13, 15).

사도 바울이 자신의 겸손한 태도를 설명한 두 가지 방법은 자신이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도(고전 15:9)이며 죄인 중의 괴수(딤전 2:4)라는 표현이었다.10) 바울은 자기 자신이 모든 하나님 백성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글을 남겼을 때(엡 3:8) 예상 밖의 단어인 elachistoteros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최상급에 비교급이 보태어져 생성된 단어로서 깊은 겸손함을 암시한다. 게다가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롬 1:1, 갈 1:10, 빌 1:1) 하나님의 종(딛 1:1) 모든 성도들의 종(고후 4:5)이라고 지칭함으로써 자신의 겸손을 표현했다. 예수가 자신은 “봉사를 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처럼(눅 22, 27), 바울 역시 성도들에게 봉사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롬 15:25). 이들 두 개의 구절에서 `봉사한다`는 것으로 번역된 diskoneo라는 단어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일을 수행하는 것” (예를 들면 책상 위에서 기다리거나 가사 일을 돌보는 것)을 가리킨다.11)

그리스 사람들은 그렇게 비천하고 위엄과 품위가 없어 보이는 일을 경멸하였다. 그들은 지혜와 자유에 대해 대단한 열정을 지니면서 봉사자에 대해서는 거의 가치있게 여기지 않았다. 봉사 정신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봉사활동(딤전 1:12)에 대해 언급했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봉사활동(고후 9:1, 11:8)에 관해 언급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봉사자로서(고후 11:23), 하나님의 봉사자로서(고후 6:4) 그리고 새로운 약속을 이행할 사도로서 (고후 3:5) 복음의 사도로서(엡 3:7, 골 1:23) 그리고 교회의 사도(골1:25)로서 자신을 표명하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두 번이나 “도움을 주는 자(hyperetes)"라고 자칭했고(행 26:16, 고전 4:1) 또한 그는 종교적 의무를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행 27:23, 롬1:9, 딤후1:3).12)

이렇듯이 겸손하고 '영적인 노예/봉사자/도움을 주는 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해지라고 촉구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다(엡 4:2, 빌 2:3-4, 골 3:12). 자랑과 교만은 신자의 삶에서 있어서는 안될 요소이다(롬 12:3, 16, 고전 3:21, 4:7, 13:4). 왜냐하면 “자랑은 선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5:6). 만약 자랑한다면 그 자랑은 주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1:29, 31, 고후 10:17). 가르침은 봉사하는 일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주님에게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을 높여 말하거나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다. 만약 교수들이 자신의 학생들 앞에서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배움의 과정을 멈출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훈계하였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겸손한 마음으로 감싸야 한다(골1:12).

5. 예의(courtesy)

바울의 성격 중에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아하고 예의 바른 자세이다. 이미 청중에 대한 태도에서도 그래왔듯이 사도행전에서도 바울은 진정한 신사도를 보여 주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그는 유대인들을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바울 자신이 그들과 인종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행 13:26). 바울은 철학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 17:22)라고 칭찬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을 때도 그는 침착하고 친절하게 지휘관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유대인에게 자신의 변호를 시작하면서 그는 정중하게 “형제 자매 여러분”이라고 말하였다(행 22:1).

바울은 매질을 당하려는 순간에도 로마의 백부장에게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고 욕을 퍼붓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로마의 백부장에게 일격을 가할 만한 통찰력 있는 질문을 하였을 뿐이다(22:25-26). 그는 산헤드린에게 “형제들이여”라고 불렀다(23:1,5-6). 그리고 두 차례에 걸쳐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왕이라고 정중하게 대했고(26:2, 27) 베스도에게 “가장 훌륭한 베스도여”라고 불렀다(26:25),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점과 영적인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하나님의 각도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점에서 기독교인들은 “형제들”이다. 누가 역시 기독교인들[소아시아(행15:36, 40), 루스드라와 이고니온(16:2), 빌립보(16:40), 데살로니가(17:10) 베레아(17:14), 고린도(18:10,27), 두로의 남쪽 톨레미(21:7), 예루살렘(21:17), 다메섹(22:5), 이태리 브테올라(28:14)]을 언급할 때 이 단어를 종종 사용했다.13)

게다가 바울은 일곱 사람 개개인을 자신의 형제라고 지칭했다; 구아도(롬 16:13) 소스데네(고전1:1), 디모데(고후 1:1, 골 1:1, 살전 3:2, 몬 1), 디도(고후 2:13), 두기고(엡 6:21, 골 4:7), 에바브로디도(빌 2:25), 오네시모(골 4:9, 몬 16). 바울은 자신의 편지들 중 일곱 편지(롬, 고전?후, 갈, 빌, 살전?후)에서 수 차례 기독교 출신의 독자들을 형제들이라고 지칭했다. 사도 바울이 신자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 신자들을 얼마나 사려 깊게 격려하였는지를 우린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는 고린도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 풍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환호를 보냈다(고전 1:4-5). 그리고 여러 가지 영적 미덕을 지니고(고후 8:7) 다른 신자들을 물질적으로 도와 주는 열정적인 마음을 지니고(9:2) 에베소 교인들과 골로새 교인들의 주님에 대한 신앙과 다른 성도들에 대한 사랑(엡 1:15-16,1:4-5)을 지니고 있음에 대해 격려하였다. 그리고 빌립보인들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바울과 연대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빌 1:5)과 골로새 교인들이 질서정연하고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는 점(골 2:5)과 데살로니가인들의 노력, 신앙, 사랑, 인내심, 희망 그리고 증언에 대해 환호를 보냈다(살전 1:3, 8, 4:10).

한 마디로 바울은 효과적인 의사 전달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우수한 자질을 지닌 사람으로서 모든 교사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유능한 스승은 자신들의 학생들을 염려하면서 친절을 베풀고 상냥하고 사려 깊고 절대로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며 퉁명스럽지도 않고 무뚝뚝하지도 않는다. 그들을 학생들의 요구사항이나 질문 그리고 관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들이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본다. 유능한 교사는 학생들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 자매라고 본다.

6. 감수성(sensitivity)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을 반복적으로 표현한 것을 주목하지 않고서는 바울의 편지들을 거의 읽을 수 없다. 위대한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주제는 그가 개종하기 이전 시절과는 놀라울 정도로 대조를 이룬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공언했던 사람들에게 과거에는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나중에는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변하였다. 만약 바울이 진심에서 우러난 감수성이나 연민 그리고 따뜻한 사랑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가르침은 귀머거리에게나 통하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수들은 사랑이 부족한 교수들에 비해 학생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 몇 가지 특징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감성적이고 따뜻한 애정을 드러내 보여 준다.14)

첫째로 바울은 종종 눈물을 흘렸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비탄과 고민에 잠겨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쓴 일을 상기시켰다(행 20:18-19, 고후2:4).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메시지를 반대하는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면서 염려하였다(빌3:18). 바울에게 있어서 용기있고 강한 지도자가 되는 것과 감수성이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가 되는 것 사이에 어떤 갈등도 갖고 있지 않다.

둘째로 바울은 자신의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 바울은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그의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살전 2:7)라고 말했다. 영적인 부모로서의 바울의 따뜻함과 이타심은 교육자로서의 그를 더욱 빛낸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전도하는 자신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

셋째로 바울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쁨을 드러내었다;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롬16:19). 고린도 교인들과 골로새 교인들이 없는 동안 바울은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고전 5:3)라는 편지를 썼다(골 2:5).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다”(고후 2:3)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고후 7:4)라고 말했다.

넷째로 바울은 죄를 지은 신자들에 대해 깊은 슬픔을 표현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전 15:34).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글을 쓸 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관심과 우려를 보여 주었다. 바울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의 믿음이 파선되었다고 말했고(딤전 1:19-20),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데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비난했다(딤후 1:15). 그리고 바울은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고후 11:29)라고 말했다.

다섯째로 바울은 자신의 동료들에게 사랑과 우정과 관심에 대해 언급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디모데를 “나의 아들”(딤전 1:18, 딤후 2:1) “나의 친애하는 아들”(딤후 1:2) “우리 형제”(고후 1:1, 골 1:1, 살전 3:2, 몬 1) “사랑하는 아들”(고전 4:17, 딤후 2:1) “동료”(살전 3:2) 그리고 “사도”(빌 1:1)라고 불렀다. 디도는 “나의 진정한 아들”(딛 1:4) “나의 형제”(고후 2:13) “동료”(고후 8:23) 그리고 ”나의 파트너“(고후 8:23)라고 불리웠다. 다른 경우에도 바울은 전 교회 성도들에게 “친구” “친애하는 친구들” “형제들” “친애하는 형제들”(롬 12:19, 고전 10:12, 15:58, 고후 7:1, 8:1, 12:19, 빌 2:12, 4:1) “사랑하는 자녀들”(고전 4:14, 엡 5:1) 또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갈 4:19)이라는 말을 썼다.

여섯째로 바울은 자신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들을 보고 싶어했다. 그는 디모데가 고린도에서 마케도니아에 있는 자신에게 와 주기를 고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고전 16:11). 그리고 자신에게 디도가 온 것은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고후 7:6). 바울이 아테네에 혼자 있었을 때(살전 3:1) 그는 실라와 디모데가 가능한 빨리 베뢰아에 와서 자신과 합류해 주기를 바랬다(행 17:15). 그리고 나중에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그는 디모데를 보고 싶어서 하루 빨리 자신에게 와 줄 것을 부탁했다(딤후 4:9).

일곱 번째로 바울은 병들어 있는 동료에 대해서도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관심을 둔 동료에는 에바브로디도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거의 병이 들어 죽을 고비까지 넘긴 적이 있다(빌 2:26-30). 게다가 드리비모(행 21:29)는 밀레도에서 병을 앓은 적이 있는데 이 와중에 바울은 그를 두고 걱정하면서 떠나야 했다(딤후 4:20).

여덟 번째로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다가가도록 갈망했다. 이러한 사람들에는 이방인들도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들도 포함되었다.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방황은 그에게 엄청난 슬픔과 끊이지 않는 번민과 고뇌를 가져다 주었다(롬 9:2, 10:1).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복음을 계속 나누어야겠다는 마음을 내적으로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고전 9:16, 고후 5:11).

아홉 번째로 바울은 자신이 세웠던 교회와 교회 신도들에게 관심을 표명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소아시아로 첫 번째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그리고 안디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교회를 격려하고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행 14:21-22).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때문에 날카롭게 대립했는데 그 와중에 바울은 실라와 함께 시리아와 길리기아로 통해 나아갔다. 이 지역은 바울의 출생지인 다소가 위치해 있는 곳으로서, 이곳을 지나간 목적은 바로 그곳에 있는 교회들에게 원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함이다(행 15:39-41). 바울은 갖 가지 학대와 고생을 경험하면서도 자신이 세운 모든 교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고후 11:28). 이것은 바로 자신의 제자에 대한 연민의 발산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바울은 자기 제자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와 같은 요청은 적어도 그의 서신 중 다섯 개에서 찾아볼 수 있다(롬 15:30-31, 엡 6:19-20, 골 4:3-4, 살전 5:25, 살후 3:1-2).

열번째로 교회 신도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바울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자신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을 완전하게 인식하면서 교회 신도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바울에 대한 동정심을 표출함으로써 상호 답례하였다. 밀레도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에 그들과 함께 기도 드리면서 크게 울었다(엡 20:36). 이것은 상호간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친구이자 사제이자 스승으로서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몸짓이었음에 틀림 없다. 갈라디아 교인들도 바울이 마치 천사(심지어는 그리스도)가 온 것처럼 바울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들은 가능하다면 자신의 눈을 빼서라도 눈병을 앓고 있던 바울에게 주었을 것이다(갈 4:14-15). 바울에 대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사랑은 너무나도 깊고 지고지순해서, 바울은 이들 부부가 자신을 위해서 목숨의 위협을 무릅쓴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롬 16:4).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자신에게 열렬한 관심을 가졌고(고후 7:7) 또 자신에 대한 사랑을 열렬하게 표현했다(고후 8:7)는 사실에 대해 한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러므로 기독교 지도자들응 바울처럼 타인의 요구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구제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나는 책임감과 제자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 그리고 다양한 위치에서 신앙인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나타내는 사도 바울의 위대한 모델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Ⅲ. 결론


참고 문헌
William M. Taylor, Paul the Missionary(New york: Doran, 1881)
Reginald E. O. White, Apostle Extraordinary(Grand Rapids: Eerdmans, 1962)
Roy B. Zuck, Teaching As Paul Taught(Grand Rapids: Baker Books, 1998)
J.Oswald Sanders, Paul the Leader(Colorado Springs: NavPres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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