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군주론 - 예장뉴스
예장뉴스
CultureFood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군주론
편집위원  |  oikos78@ms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2.03  20:57:46
트위터 페이스북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군주론

   
 

군주론은 군주의 통치기술을 다룬 정치학의 중요한 고전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면 잔인하고 사악해지더라도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이탈리아의 정치가이다. 그는 메디치 가의 군주정이 복원되자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자신의 정치계 복귀를 위해 쓰여졌으며 당시 피렌체의 권력자 로렌조 메디치에게 헌정되었던 책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도덕적이며 관대한 군주가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악하고 인정에 반대되는 행동이라도 이것이 나라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거침없이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하기 때문인듯 하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개혁을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1498년 약관 29세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하여 주로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러다가 1512년 스페인의 공격에 의해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의 군주정이 복원되자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513년에 마키아벨리는 실패로 끝난 메디치 정부에 대한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같은 해에 메디치 가의 죠반니 추기경이 교황 레오 10세로 즉위하자 특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석방되자마자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정부의 공직에 참여하려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군주론을 1513년 말경에 집필했으나 그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낙심한 그는 결국 피렌체 교외에서 칩거생활을 하게 된다.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는 반메디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다른 지식인들과 어울리게 되었으며, 이들의 지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전술론과 자신의 공화주의적 사상을 담은 로마사론을 집필하게 된다. 그러나 1520년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궁정에 소개되어 동년 11월 피렌체의 역사에 대해서 저술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피렌체 사를 집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메디치 군주정은 1527년 프랑스 군의 로마 약탈, 이로 인한 교황의 도주, 인민의 신임 상실 등을 이유로 마침내 붕괴되고 공화정이 복원되었다. 이는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에게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었으리라. 그는 공화정의 복원과 더불어 예전처럼 활동적인 공직에 복귀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공화주의자들에게 마키아벨리는 한낱 늙고 하찮은 메디치 가의 가신에 불과한 인물로 비쳤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를 예감하고 낙담한 탓인지 마키아벨리는 병을 얻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시대적 상황 ( 15세기 이탈리아의 전반적인 상황과 피렌체의 상황)

15세기 말경의 이탈리아 반도는 몇 개의 큰 도시국가들(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교황청)이 상호대립하고 경쟁하면서 세력균형을 이루는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분쟁이나 전쟁을 치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벨리가 있는 피렌체의 경우만 하더라도 피사와의 전쟁(1414)에 이어 밀라노와 새로운 전쟁(1424~40)을 치러야 했고, 기타 제국 간에 소규모 전쟁이나 분쟁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1454년에 로디평화조약, 그 다음해에 이탈리아 동맹 등을 결성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누렸다. 그러나 1494년 이탈리아반도를 재앙으로 이끈 프랑스군의 침공은 이 전의 형상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 프랑스 침공이야말로 마키아벨리의 운명을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이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현재까지 마키아벨리는 길이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서 얘기하였듯이, 이탈리아 국가들은 서로 대립하며, 불안한 세력균형을 이루었는데, 밀라노의 내분에 의해서 그 균형이 무너지고 프랑스의 군대를 그들 스스로 이탈리아로 부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세력균형 당시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3국은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피렌체는 그 위치를 망각하고, 밀라노와 대립관계에 있는 나폴리를 지지하였다.

이에 고립을 느낀 밀라노의 일 모로는 그들에게 저승사자가 될 프랑스에 원조를 요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 이 시기에 마키아벨리가 있었던 피렌체는 어떠했을까? 프랑스군이 1494년 11월에 피렌체를 거쳐 가기 전에 이미 피에로 데 메디치 정권은 붕괴했다. 그리고 대 프랑스 동맹과 신헌법운동의 중심인물로 등장한 도미니크스회의 수사 사보나롤라(1452~98)가 프랑스의 지원 하에 메디치가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메디치체제를 지탱해 온 위원회들을 폐지하고 ‘대평의회’를 중심으로 참정의 폭을 확대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피사와의 새로운 전쟁으로 신공화국의 이러한 그의 개혁프로그램들은 시민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호응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반감을 사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그는 1498년에 붕괴되었다.

이러한 피렌체 공화국은 프랑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피사와의 전쟁을 계속했지만 국가의 중요한 정치기구들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귀족들 사이의 각축장으로 변했고, 시민들 사이에 불신과 증오는 더욱 팽배해 갔다. 이러한 불안한 시국에 1501년 피사에 내전이 발발하고, 중부이탈리아를 장악한 보르지아가피렌체에 위협적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에 위기를 느낀 피렌체인들은 종신제 행정수장인 곤팔로니에레를 선출하기로 귀족, 시민들 간에 합의하였다. 이렇게 프랑스 군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인해 그들은 정치적 독립성을 거의 상실하였다.

이러한 원인은 군사적으로 약한 것도 있었으나, 그 외에도 그들이 취한 고립적 낙관주의와 이탈리아반도를 극심한 대립상태로 이끈 제국간의 반목 및 지역주의 등이 있다. 특히, 피렌체는 불신과 증오, 이기주의와 계급대립, 당파, 용병제 등 부정적 요소가 심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마키아벨리는 서기 직에 진출하여 국내외의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며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의 전반전인 정치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군주론의 핵심 : 위대한 군주가 되는 방법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중세 유럽의 사회질서는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기독교 왕국 사상’과 군주와 신하(영주)가 서로 충성 계약을 맺는 ‘봉건제도’로 이루어져 있었음. 하지만 집필 당시 이것들이 무너지고 자기민족에 대한 의식이 싹트게 되었는데 군주들은 이러한 민심의 변화를 읽어내고 민족을 내세우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감. 이때 군주들에게 힘이 된 세력이 도시의 상인들인데, 이들은 영주를 견재하고 나라를 통합해 큰 시장을 만들어 주고, 해외무역에서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아줄 수 있는 강력한 군주를 원함.

하지만 그 당시 이탈리아는 분열되어 유럽의 삼류국가. 로마의 교황은 이탈리아의 통일을 막고 순종과 겸손을 강조하고 세상을 경멸하도록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을 나약하게 만듦. 사악함과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부패사회의 표본.

이런 상황에서 마키아밸리는 선한 것을 찾으려는 모든 노력이 헛되다고 생각함. 이탈리아에는 절대군주가 없는 것이 부패와 타락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 강력한 절대 군주가 되려면, 사자의 힘과 여우의 꾀를 상황에 따라 잘 사용해야 함을 이야기하려고 함.

군주론은 일반국민들에게 군주들의 행실과 생각을 알려줌으로써 현재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

< 군주가 명성을 얻는 법 >

* 이웃하는 두 군주가 서로 싸울때에는 과감하게 한 쪽을 지지할 것이 더 유리함. 지지한 군주가 승리했을경우 그가 강하게 되어 나를 그의 수중에 넣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 신세를 졌고 나와 그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가 성립되었기에 나를 공격하지 않음. 설사 내가 지지한 군주가 패한다 하더라도 그는 나에게 도망갈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임.

*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나라를 치기위해 나보다 강한 군주의 힘을 빌려서는 안됨. 내가 승리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됨.

* 군주는 재능이 있는 사람을 아끼고 환대하며, 우수한 특수 기술을 가진 사람을 크게 대접한다는 것을 과시해야함.

* 분열정책은 군주의 무력함을 나타냄. 군주들은 그들에게 닥친 고난과 장애물을 극복할 때 위대하게 됨.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음.

* 정권을 물려 받은지 얼마 안된 군주는 대개 흔쾌히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들을 등한시하면 안됨. 이들도 자신들의 처지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군주에게 충성스럽게 봉사하려고 함.

* 군주가 권력을 잡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잘 분석해 봐야 함. 군주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이 아닌, 이전 군주 밑에서 불행했기 때문이라면 이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음. 새 군주 또한 역시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

< 군주가 신하들을 잘 다루는 방법 >

* 분별력 있는 군주를 알아보려면 군주의 주변인물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음. 신하들이 유능하고 충성스러우면 그 군주는 현명함. 비록 군주가 스스로 깨닫는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두뇌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신하들의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들을 평가하여 좋은 행동은 칭찬하고 나쁜 행동은 교정해 줄 수 있음.

-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아첨꾼들로 둘러쌓이기 때문. 군주론은 절대 권력지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함. 절대 권력을 갖되 잘 이용해야함. 현명한 사람들을 몇 명 골라서 그들만이 군주에게 진심을 말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 그것도 군주가 요청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 허용해서는 안됨. 

*  이와는 별도로 군주는 다른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그가 세운 목표를 즉시 그리고 동요 없이 끈질기게 추구해야함.

편집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5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6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명성교회 후임 청빙위원회 발표
9
원주제일교회 성도들 주일 날 상경 시위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 17길 10 A동 202호   |  전화 : 02-469-4402  |  행정 : ds2sgt@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054  |  발행인 · 편집인 : 유재무 |  대표 : 이명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 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