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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존직(恒在職)이란 무엇인가?
공헌배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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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6  19: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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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존직(恒在職)이란 무엇인가?

공헌배 목사(영주노회)  
경주 출생으로 호남신학대학교 신대원(M. Div.)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Th. M.), 계명대학교 대학원(Ph. D.),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재학 중, 현 한국기독교학술원 연구교수, 간운교회 목사.
 

항존직(恒在職)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칼뱅의 기독교 강요 4권 3장, 4항에 나온다. 칼뱅의 말을 들어보자:

첫째는 사도, 다음은 선지자, 셋째는 복음 전하는 자, 넷째는 목사, 끝으로 교사이다(엡 4:11). 이 직분들 중 끝에 있는 둘만이 교회의 일상적 직분(ordinarium in ecclesia munus)이며, 앞의 세 가지 직분은 주님께서 그의 나라를 시작하실 때 세우셨으며 시대가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마다 다시 부활시키신다(라틴어 원본 번역판 기독교 강요, 4권, 3장, 4항).

이를 따르면 목사와 교사(박사)는 항존직이지만 사도와 선지자는 항존직이 아니라는 칼뱅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제2 스코틀랜드 치리서(1578)에서는 어떻게 주장했을까?:

In the New Testament and time of the evangel, he has used the ministry of the apostles, prophets, evangelists, pastors, and doctors in the administration of the word; the eldership for good order and administration of discipline; the deaconship to have the care of the ecclesiastical goods(Andrew Melville, “The Second Book of Discipline (1578),” Chapter 2:5).

Some of these ecclesiastical functions are ordinary, and some extraordinary or temporary. There are three extraordinary functions: the office of the apostle, of the evangelist, and of the prophet, which are not perpetual, and now have ceased in the kirk of God, except when he pleased extraordinarily for a time to stir some of them up again. There are four ordinary functions or offices in the kirk of God: the office of the pastor, minister or bishop; the doctor; the presbyter or elder; and the deacon(Andrew Melville, “The Second Book of Discipline (1578),” Chapter 2:6).

보시다시피, 여기서의 ‘ordinary(상시직:常時職)’는 ‘extraordinary(특정직)’에 상반(相反)된 개념이다. 즉 신약시대에 있었던 특정직으로서의 ‘extraordinary’는 중단, 즉 “영속적이지 않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직무는 신약시대의 한시적 직무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이와는 다른, ‘상시직’으로서의 ‘ordinary’를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 ‘ordinary’라는 단어를 ‘항존직(恒存職)’으로 옮길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 단어를 ‘항존(恒存)’으로 옮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에 해당한다. 즉 사람이 항존 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를 ‘항존’시켜야 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위의 본문에서도 분명하게 밝혔다. ‘four ordinary functions(4개의 항존 하는 기능들: 직무들)’ 과연 이러한 주장이 장로들의 종신직을 뒷받침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가?

좀 더 살펴보자:

These offices are ordinary, and ought to continue perpetually in the kirk, as necessary for the government and policy of the same, and no more offices ought to be received or suffered in the true kirk of God established according to his word(Andrew Melville, “The Second Book of Discipline (1578),” Chapter 2:7).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두 가지이다. ‘ordinary’와 ‘continue perpetually’인데, 여기서 주장하는 ‘상시적’이고, ‘영속적’인 것 역시 ‘사람’이 아니라 ‘직무’다.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는가? ‘These offices(이와 같은 직무들)’ 따라서 멜빌이 주장한 제2 스코틀랜드 치리서의 경우에는 사람이 항존 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가 항존한다. 즉 교회의 역할로서, 4개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행하라는 뜻이지, 어떤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직임을 맡으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17세기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치리서들 중, 사람을 항존으로 볼 만한 구절도 있기는 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THE pastor is an ordinary and perpetual officer in the church, prophesying of the time of the gospel(“The Form of Presbyterian Church-Government according to the Westminster Standards (1645),” “Pastors.”).

여기서 상시적이고, 영속하는 직무자(사람)는 ‘목사’라고 했다. 그래서 만약 어떤 직임자를 항존으로 여겨져야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목사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를 따르면 ‘장로’에 대한 규정은 짧을 뿐만 아니라 굳이 장로에게 종신직으로 여겨질 만한 구절은 소개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항존으로 여겨질 만한 구절은 ‘목사’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더러 묻는 것 가운데, 칼뱅이 목사인가 장로인가에 있다. 당연히 칼뱅은 목사다. 굳이 이걸 애써 소개하지 않은 학자를 보았는데, 주로 통합 측 신학자들인 듯하다. 그리고 모 박사의 논문을 따르면(한국조직신학논총 47집), 칼뱅이 안수 받은 목사가 아닌 것은 안수에 대한 미신적 이유 때문이라는 듯 썼는데, 이는 외국의 다른 학자도 그런 가설을 주장했다. 물론 칼뱅의 제네바 교회법령을 따르면 안수로 임직자를 세운 것은 아닌 듯하다. 즉 선서함으로 세워진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식으로 단답 형 식 답을 하면 안 된다. 동시대의 신앙고백인 제2 스위스신앙고백에서는 목사를 안수함으로 세운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안수는 목사회에서 한 듯 여겨지고, 제2 스위스 신앙고백에서도 그렇게 주장했다:

“Et qui electi sunt, ordinentur a senioribus cum orationibus publicis, et impositione manuum. Damnamus hie omnes,”(C.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280).

그래서 목사의 안수는 목사회(senioribus)에서 하면 되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영어로 번역 된, 미국 판 제2 스위스 신앙고백의 오류이다. 영어로 옮긴 미국 판 제2 스위스 신앙고백에서는 ‘장로들(elders)’에 의해 안수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는 원래의 제2 스위스 신앙고백(1566)의 원문에는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 삽입 및 변질 시킨 것으로 봐야한다. 16세기 당시, 스위스 교회의 구조를 볼 때, 장로들은 주로 ‘컨시스토리’에서 활동했고, 또한 장로들은 ‘선서’함으로 세워졌으며, 그 도시에서 목사들을 도와 주로 ‘치리’문제를 맡았는데, 장로의 임기는 1년이었다. 그들의 신분은 대체로 시의원들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장로들에 대해 ‘안수’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장로들이 목사들의 입회식(임직식)에서 ‘안수기도’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 판 제2 스위스 신앙고백의 오류를 깊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렇다고 치고, 과연 칼뱅은 목사의 안수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까? 칼뱅의 말을 들어보자:

더욱이 안수가 그 자체의 참된 의미를 회복한다면 그것은 결코 헛된 표징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영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떤 것을 교회 안에 세우지 않으신다면, 이 예식도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으므로 미신적으로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온 무리가 다 그 사역자들에게 손을 얹은 것이 아니라 목사들만 그렇게 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여러 목사들이 언제나 안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중략) 그(바울)는 디모데전서에서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딤전 4:14), 나는 이것이 장로들의 무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임명 자체(ordinationem ipsam)를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틴어 원본 번역판 기독교 강요, 4권, 3장, 16항).

이를 따르면, 굳이 칼뱅이 목사안수를 부정적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즉 칼뱅도 목사안수의 긍정적 기능을 인정했다. 그런데 그 칼뱅도 목사안수는 목사가 하는 것이지, 그 안수를 장로에게 맡긴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학자들 중에는 더러 칼뱅이 교직(교회직원)의 평등성을 주장했다고 하는데, 이는 오해하기 좋은 주장이다. 칼뱅을 깊게 연구한 바우스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자기의 성직자주의를 여러 방식으로 변호했다.(중략) 사제적 권위는 “교회의 선을 위한 필수적 굴레”로서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또한 사제직의 부성적(父性的)권위에 호소했다.(중략) “말씀의 사역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다스릴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부모의 관계로 대해야 하며, 그들이 주님의 부름을 받아 여러분들 가운데서 행하는 봉사를 존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는 또한 널리 알려진 중세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성직자를 교회의 “영혼”으로 (때때로 칼빈은 심장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평신도를 단순히 교회의 몸으로 묘사했다. 칼빈은 되풀이해서 평신도 위에 있는 성직자의 권위를 인정했다.(중략) 제네바의 성직자들은 평신도로 구성된 시의회가 교회를 지배하려고 하는 데 대항해서 “용감하고 대적할 수 없는 열성으로” “침해해서는 안 되는 거룩한 권세”를 위해 싸웠다(W. J. Bouwsma/ 이양호, 박종숙 옮김, 󰡔칼빈󰡕 (서울: 나단, 1991), 513-514).

사실 칼뱅은 목사들의 권위를 매우 높게 잡았다. 이는 제2 스위스신앙고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시대의 서유럽에서는 아무나 목사가 될 수 없었다. 즉 목사 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다. 다시 말해 목사를 어렵게 세워, 명예롭고도 권위 있게 존중해주고, 목사들에게 권력을 주었다. 굳이 요사이 말로 표현한다면 칼뱅시대의 목사들은 고위직 공무원에 해당한다. 그래서 칼뱅이 목사들의 권위를 높이지 않은 것처럼 주장하는 학자들은 사실 상 엉터리다. 물론 칼뱅시대의 매뉴얼에 평등적인 점도 있다. 그러나 이는 같은 직책자들 사이에서의 평등과 비슷하다. 이를테면 목사들끼리의 서열화를 반대한다는 식의 평등은 가능하다. 그러나 목사와 장로가 평등하다든가, 목사와 집사가 평등하다고 여긴다면 이는 칼뱅시대를 잘 모르는 발상일 듯하다. 칼뱅은 충분할 정도로 목사의 권위를 인정했다.

*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문가의 거짓말들을 알아낼만한 일반인들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전문가들이 생략한(삭제한) 진실을 일반인들이 알아내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전문가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일반 교인들에게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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