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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신학의 길 찾기예수의 그 ‘길’ 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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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4.06  16: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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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신학의 길 찾기 - 예수의 그 '길'에 기대어

차정식교수(한일장신대)/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매코믹신학교와 시카고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하였으며 매코믹신학교 객원교수를 거쳐 1997년부터 한일장로회신학대학 신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기독교종합연구원장, 한국신약학회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http://chtimes.co.kr/lib/8350 

I. 한국신학은 가능한가?

   
 
한국신학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할 때 가장 치명적인 일격은 ‘과연 한국에 신학은 있는가’라는 맹랑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즉각적 반응으로 퉁명스럽게 ‘없다’라는 부정적 대답이 곧잘 튀어나오기도 한다. ‘한국신학’이란 조어에서 그것이 협소하게 한국에서 한국 신학자에 의해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신학, 특히 한국 역사와 한국적 삶의 정황을 태반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신학을 가리킬 때 그 한국신학이 설 자리는 지극히 위태로워진다. 그렇다고 한국신학의 범주를 ‘신학’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모든 신학적 활동이라고 최대한 폭넓게 규정한다고 해도 그 사정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다. 그때 동원되는 ‘신학’이라는 개념어는 신학이어야 함을 강변하는 당위적 수사로 겉돌고, 그것을 표현하는 한국어는 서구어의 번역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화장한 모국어이기 쉽기 때문이다.        

이처럼 냉엄하게 따지든, 너그럽게 봐주든, 한국신학의 반경은 옹색한 편이다. 혹자는 신학이라는 학문의 보편성을 들어 그것이 굳이 한국적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여기에 국수주의와 쇄국주의의 공격적 수사가 동원되기 십상이고 한국신학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신학의 명예에 개칠하는 망발쯤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편적인 가치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역사적 과정과 그 속에 개입된 이성의 간계를 무시하고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인 양 볼 수 없음은 자명하다. 신학도 시간과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저 자신의 고유한 삶의 이력을 통해 역사 속에서 갈고닦은 언어로 그리스도교의 신과 관련된 사상을 조형해온 터에, 신학이라는 이름 자체가 보편성의 보증수표로 통용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요컨대, 한국신학은 그 자체로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영역이다. 그에 대한 논의는 먼지 수북하게 쌓인 칼빈이나 어거스틴의 저작을 주워섬기며 그 언어를 번역하고 그 사상을 재포장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작업이다. 그들의 신학조차 한국어로 한국적 맥락에서 창조적으로 재서술될 때 한국신학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면에 비추어볼 때 한국신학은 한국어를 통해 저만의 색깔을 빚어내면서 보편적인 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세계 언어로의 정교한 번역만 뒷받침된다면 한국신학의 담론들은, 그것이 최상품으로 생산된다는 전제하에, 얼마든지 세계 신학과의 경쟁무대에서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몸을 비빌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컨대, 한국신학은 식민주의적 근성에 순치된 신학자들의 열패감을 벗어날 때 비로소 한국신학으로 정립될 현실적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과 전략은 그 다음의 과제이다. 한데, 그 기초 체력을 확보할 요량으로 그간 축적된 한국신학의 지형을 일별해보면 그 사정이 자못 심각한 편이다. 짐짓 부끄러운 자화상이 그간 이 땅에서 전개된 얼룩진 신학의 역사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I. 한국신학의 지형도         

형편이 이러한 마당에 한국신학을 다소 거창하게 논하고 그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는 작업은 결코 새삼스럽지 않다. 오히려 절박하다. 그만큼 한국신학의 지형이 불투명하고 상당 부분 꼬여 있으며 그 미래적 진로 역시 모호하다. 한국신학의 지형에서 양적으로 가장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흐름은 주석신학이다. 이는 보수ㆍ진보를 망라하는 제반 전공 분야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편재되어 있는 일종의 습속이라 할 만하다. 그 흐름에 편승하여 한국의 신학자는 특정한 텍스트를 기본 자료로 삼아 그것을 끄집어내서 토를 달고 해석하는 식의 작업으로 이른바 ‘복원의 해석학’(hermeneutics of retrieval)을 즐긴다. 성서로부터 시작하여 교회사 자료, 특정 신학자나 교회 지도자의 논저가 그리스도교의 내부적 자료로 충당된다면 교회 바깥에서 생산된 각종 저작물들이 역시 참고자료로 검색되고 주석이라는 공대를 받곤 한다. 그 과정에서 편하게 수용된 텍스트들은 그 의미가 재해석되며 그 위상이 복원되는 절차를 밟는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는 신학을 망각의 역사에서 기억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안간힘인 동시에 그 역사에 연속성과 필연성을 부여하려는 합리적 자리매김의 작업이다.      

여기서 전통을 ‘보수’하는 데 주안점을 둔 신학의 계통에서는 추출하려는 자료가 성서를 필두로 하여 주로 제도권 교회의 내부에서 생산된 것들, 특히 그것들 중에서도 이른바 ‘정통’ 경쟁에서 승리한 작품들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미래로 진보하길 갈구하는 계통에서는 교회사에서 이단자로 취급된 주변부의 작품이나 교회 밖의 자료들, 이를테면 길가메쉬 서사시, 영지주의자들의 저작, 불경과 유교, 힌두교 등 타종교 문헌, 단군신화와 김지하의 담시, 노동자의 현장 르뽀 등이 신학의 텍스트로 등장한다. 근본주의나 복음주의 신학이든, 자유주의 신학이든, 토착화 신학이든, 민중신학이든, 그들 담론은 기존 텍스트의 재발굴과 재해석을 통한 신학적 논리의 창출이란 공통점을 보여준다. 또 신학의 전공 분야별로 나누어 명명하는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등의 기본 방법은 이와 같은 텍스트 주석 작업의 되풀이라는 기본 패턴을 공유한다.         

차이점은 그런 인용과 주석 달기의 목적과 방향이다. 한국의 주류 교단과 교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근본주의 또는 복음주의 신학은 그 초점이 조직화된 기존 교회와 교단의 존속과 부흥ㆍ발전에 맞추어진다. 이를 위해서 세속의 도전이 침해할 수 없는 교의학적 틀을 더욱 강고하게 세워 이른바 ‘영혼의 구원’ 사업에 지장이 없도록 신학 이론을 구축하는 것이다. 물론 신앙의 순수를 표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탐욕의 수렁에 깊이 빠져가는 주류 교회들의 세태에 대한 비판적 일갈이 없지 않으나 산발적으로 제기되는 그러한 질타조차 일정한 패턴으로 갈무리된다는 것이 이 계통 신학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 신학적 노선이 개량되고 아무리 예언자적 비판의 고결한 명분을 선명하게 내세우더라도 이 계통의 신학적 흐름은 근본적으로 제도권 교회라는 기존의 성채를 넘어서거나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다시 말해, 그 신학의 구조와 본질상 자기 해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신화화된 어거스틴과 형해화된 칼빈의 지루한 반복과 재생일 뿐, 전혀 새롭고 색다른 어거스틴과 칼빈의 출현은 요원하기만 하다.        

신학하기에서 한국이라는 정황의 특수성에 착안한 결과 생산된 또 다른 신학의 줄기는 토착화 신학과 민중신학이다. 이들 신학은 공통적으로 ‘복원의 해석학’에 열정적인 ‘의혹의 해석학’(hermeneutics of suspicion)을 추가하였다. 토착화 신학은 서구의 신학이 이 땅에 부여한 보편타당한 신학적 가치에 의혹을 제기하며, 이 땅에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처음으로 진입하기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이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동양인과 한국민족의 하나님이었다는 창발적 논리에 의지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신학을 조형하고자 하는 일부의 신학자들은 이 땅의 역사를 통틀어 정신적 지주로 기여한 불교와 유교, 도교 등을 신학의 재료로 끌어들였다. 하나님이 제도화된 기독교 이전의 단계에서 어떻게 저러한 타종교를 통해서 신적인 계시를 나타냈는지, 마치 희랍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조명한 2세기의 변증론자들처럼 이들은 전통 종교와 사상 속에 잠재된 그리스도교 복음의 빛을 탐색하는 데 열중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작업은 21세기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맞이하여 타종교와의 활발한 대화를 모색하는 신학적 태반을 제공했으며, 명실공히 ‘한국신학’이라 할 만한 가치를 찾아 진지한 신학적 모험을 감행한 공로가 있다. 그러나 이 계통의 신학이 신학을 위한 신학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리기 힘든 것은 그들의 작업이 현장의 신앙공동체에 활달하게 소개되거나 이렇다 할 공명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강단의 엘리트주의적 노동으로 수렴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의 신학은 학문의 후속세대를 풍부하게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풍류신학, 유교신학, 불교신학, 역(易)의 신학, 도(道)의 신학 등과 같이 표방된 신학의 이름은 무성하나 지속성이 결여된 유행성 흐름처럼 희미한 흔적만을 남겼다. 마치 안타나 홈런 한 방 치고 뛰었지만 관중의 열띤 응원 속에 게임을 지속시키지 못한 채 서둘러 퇴장하는 선수의 뒷모습을 보는 씁쓸함이 엿보이는 격이다.               

민중신학은 역동적이고 극렬한 현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학자의 강단이나 일부 명망가의 한국적 영성에 국한된 토착화 신학에 비해 현실 참여적이었고 전투적이었다. 외부에서 한국신학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민중신학은 7,80년대 역사의 격변기에 변혁의 주체로 각성된 민중의 존재를 발견하였고, 그들의 해방에 복무하는 것을 주된 사명으로 삼았다. 물론 그 해방은 개인의 실존적ㆍ내면적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이라기보다 정치ㆍ사회ㆍ경제의 구조적 질곡으로부터의 총체적 해방을 의미하였다. 이를 위해 민중신학은 해방신학의 사회과학적 분석을 받아들여 소외된 기층 민중을 의식화ㆍ조직화하고 그들의 투쟁에 호응하는 신학적 논리를 제공하였다. 이 부류는 해방 담론을 매개로 전통 문화와의 개방된 접속을 시도하였지만, 무엇보다 ‘운동’(movement)으로서의 신학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이러한 전투적인 신학은 제도권의 성채에서 안주하던 기성 교회에 충격과 함께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였고, 고난당하는 민중의 생생한 삶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현존을 발견하려는 몸부림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위로부터의 계시에 접맥된 기존의 신학 전통을 전복ㆍ해체하고 아래로부터의 영성에 주목함으로써 민중신학은 신학적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한국사회 구조의 또 한 차례 격변 과정에서 민중신학은 예전의 치열함에 부응하지 못하는 감퇴된 체력으로 허덕여왔다. 종전에 명쾌하게 분별되었던 민중신학의 계급적 당파성이 희미해지고 민중신학 계열에 몸담았던 이들이 상당수 사회의 지도층으로 기득권화함에 따라 신학적 리더십이 예전에 비해 위축되었다. 아울러, 학문적인 심화에 지지부진하고 학문적 후속 세대 확보의 여건이 점점 열악해짐에 따라 종전의 가열찬 실험에서 비롯된 후유증이 민중신학의 학문적 현실을 압도해온 형국이다. 이에 따라 민중신학이 신학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학문적으로 더욱 섬세하고 정교해지며, 그 신학에 공명하는 현장과의 지속적인 연대와 조직화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국면에 처해 있다. 이를 위해 2,3세대 민중신학자들은 현대사회의 문화를 신학에 깊이 이입시키는가 하면 국내에 거주하는 제3세계 외국인노동자와 IMF 사태 이후 양산된 노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새로운 민중의 현장을 발굴하여 그들의 삶을 신학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III. 한국 신학자의 초상            

21세기에 들어 기존의 신학적 지형이 더욱 고착된 상태에서 이 땅의 신학자들은 각기 확보한 신학적 영토의 확장 및 심화에 골몰하고 있다.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애당초 신학의 출발점과 전제가 상이한 터라 근본적인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시도는 극히 미미한 형편이다. 설사 어떤 운동이나 행사가 조직적으로 그러한 명분을 표방하더라도 그것은 그들만의 영역에 울리는 메아리로 그치기 십상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적 환경과 그것의 구조적 한계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한국에서 신학이라는 분야의 전문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다수는 교단에 속한 신학대학에 적을 두며 활동하고 있다. 교단의 정치적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그들은 소신껏 자신의 신학적 신념을 담론화하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일부 자유로운 학풍을 일구어온 소수 신학대학을 제외한 다수의 교단 신학자들은 이른바 ‘교단신학’이라는 틀 속에 자신의 신학적 사유를 저당잡히고 있다. 근래 한국 교회의 배타적 교단주의 경향은 더 심화되어 소수의 개방적 신학대학조차 예의 규율적 틀을 잣대로 소속 신학자들의 지적인 작업을 통제하는 퇴행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 대학의 신학과나 종교학과에 속한 신학자들이 창의적인 신학적 사유의 빛을 발할 만큼 결기 충만하고 학문적 탐구의 의욕이 왕성한 것도 아니다. 그들 또한 각 학과에서 배출하는 신학생들의 일자리 확보와 재정적 후원을 받기 위해 기성의 교회와 교단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21세기 신학자들의 일그러진 초상은 비단 신학대학의 구조와 제도적 여건 또는 직업인으로서 신학자의 생존과 직결된 현실적 환경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욱 심각하게 이 땅에 신학자의 명패를 내거는 자들의 직무유기에 따른 결과이다. 그 직무유기 또는 직무태만은 한편으로 그들이 외국에서 습득한 신학 지식을 이 땅의 삶의 현장에서 나의 언어, 우리의 담론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주체적 자의식의 결핍에 잇닿아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 병통은 그들이 이 땅에서 생산되는 신학적 담론을 공들여 치밀하게 읽어내고 그것들의 성취와 결핍을 엄밀하게 진단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냉정한 비평가가 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논문이든, 저서든, 신학자는 여타 분야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글로 만들어낸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학자의 소속 대학이나 이름, 특정 보직이나 무슨 조직과 단체의 직위는 물론 그의 출신 배경이나 연령 따위와 무관하게 신학자는 그때그때의 학문적 성취로써만 신학자 행세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 아무리 거창하고 화려한 외투를 입고 있어도 그는 스스로 내놓는 글이 태작(駄作)이냐 수작이냐에 따라 동료 신학자들로부터 엄정하게 검증받고 또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학자로 입지를 세우는 기본이라는 것은 모든 학문 분야에 두루 통하는 상식 중의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이 땅의 21세기 신학자들은 무국적의 학문으로 자신의 학자연함을 내세우길 좋아하며 끼리끼리의 연고주의에 얽매여 서로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는 열심을 낼망정 냉정한 학문적 경쟁자로 나서길 꺼려한다. 1년에 한두 편씩 써내는 번역투의 논문들은 저자의 자폐적 문법 속에 갇혀 소통하려는 독자의 시선을 퉁겨내곤 한다. 설사 그것이 제법 창의적인 발상을 가지고 직조된 논문이나 저서라 할지라도 저자만의 문체와 담론화 방법으로 소화해낸 지난한 싸움의 결과라기보다 많은 경우 빤한 결론을 추인하는 동어반복이거나 자신이 읽은 원전의 권위에 상납하는 지적 식민주의자들의 조공에 그치기 십상이다. 신학자들의 논문을 읽으면서 우스꽝스럽고도 참담해지는 것은 그 어색하고 서툰 문장이나 무색무취의 덤덤한 문체 외에도 각주와 참고문헌 목록에 펼쳐지는 황당한 풍경 때문이다. 독일어나 영어 등의 외국어 원전이 즐비하게 나열된 연후 제가 쓴 논문이나 책의 목록이 몇 개 군더더기로 붙는 현상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일하게 지속되는 패턴이다. 그 자리에 제 스승이나 친분 있는 동료 신학자들의 이름이 더러 발견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학문적 인용조차 연고와 친분을 따져가며 한편으로 잔인할 정도로 인색하고 다른 쪽으로는 비굴할 정도로 관대한 취향을 내재화해 온 것이다. 그러니 학문적 성과가 그 냉정한 비평을 거쳐 옥석이 가려지고 신학의 이름으로 정당하게 온축되고 역사화될 리 만무한 것이다. 그 대신 신학자들의 무딘 손가락 노동을 유인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만한, 그리하여 하나마나한 주석 달기의 지루한 되풀이이며, 연구의 소재 또한 한때의 유행에 편승하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그러진 신학자의 초상은 근본적으로 신학자로서 응당 갖추어야 할 주체적 자의식의 결핍에 기인한다. 현재 이 땅에서 신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신학을 하고자 하는가, 내 신학은 어떤 방법과 형식을 통해 담론화될 수 있는가, 내 속에 어떤 욕망과 이념이 있어 나로 하여금 특정 개인/집단의 특정 자료를 대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며 그것들을 인용하여 각주화하고 참고문헌화하도록 부추기는가, 내 신학적 담론의 인격으로서 문체는 내 신학의 질과 수준을 얼마나 창조적으로 뒷받침하는가, 내가 읽은 독서물들은 어떻게 되새김되고 어떻게 소화되며 어떻게 내 신학의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되는가, 내 신학 작업은 내 선학이나 동학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헤어지는가 등등의 심각한 질문들을 자신의 것으로 물고 늘어지며 씨름하는 결기가 증발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학하는 주체의 섬세한 자의식이 결여된 신학적 글쓰기는 학문이 되기도 전에 매장될 위기에 처한다. 아무도 그것을 읽어주지 않고 아무도 그것을 엄밀하게 평가하지 않는 신학적 글쓰기는 그저 교수의 업적 평가와 승진 평가를 위한 억지춘향의 통과절차로 전락할 뿐이다. 이러한 인습적 행태에는 신학의 제스처는 있을지언정 신학의 생기가 자생할 수 없는 법이다.        

이 땅의 다수 신학자는 제 전공 분야의 지식을 골동품처럼 보듬으며 자랑하지만 그것에 인접하는 학문과의 소통에 매우 둔감한 편이다. 이러한 경향은 보수주의 계통의 신학을 견지할수록 심한데 이처럼 미약한 학제적 연대의식은 자기동일성의 심화를 부추긴다. 이는 결국 신학 외부의 자양분으로 오늘날의 신학을 일구어온 역사의 진실을 외면한 채 단성생식을 고집하는 쪽으로 신학을 기형화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생산되는 신학인즉 학문적 타자가 없는 불구의 지식일 뿐이다. 신학 내부의 세부 전공별로 그 자폐적 병통은 자못 심각하여 동일한 텍스트나 사건을 해석하면서도 지식의 교류와 상부상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학자들이 신학 이외의 인접 학문을 배우고 서로 대화하며 이를 신학적 지평의 확대를 위한 밑천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너무 미미한 형편이다. 일찍이 민중신학과 토착화 신학에서 사용했던 사회과학적 방법과 비교종교학의 방법이 그나마 한국 신학계에 학문적 타자의 존재를 시위한 바 있지만, 그 또한 공들인 독서와 깊은 공부가 우러난 결과라기보다 몇 가지 이론의 얼개를 동원하여 제 주장을 정당화하는 식으로 피상적 적용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체로 판단하건대 사회과학의 세세한 전공 분야뿐 아니라 신학적 사유의 보고인 인문학과의 만남은 너무 산만하거나 격조했다. 철학이 신학과 동거하다가 작별한 지 너무 오랜 세월이 흐른 탓인지 철학에 문외한인 신학자가 적지 않으며, 문학과의 접속은 더 심각한 역량 부족을 드러낸다. 역사가 그나마 방법론적 소통이 잘 되는 편이지만 그 또한 객관적 사실의 복원이라는 고전적 역사학의 테제를 맴돌 뿐 오늘날 역사학의 동향을 면밀하게 따라잡고 있는 신학자는 드물다. 요즘 생명공학, 유전학, 천체물리학 등과 같은 자연과학의 지식을 신학 담론의 갱신에 선용하려는 시도들은 때늦은 감은 있지만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신학의 자생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이 땅의 역사와 지리, 사상과 문화 전통에 대한 개방된 관심의 결여와 인문학적 상상력의 고갈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그 빈구석을 민감하게 의식할수록 이를 채우기 위해 보수적인 다수 신학자의 머릿속에 번식하는 것은 제각각 내세우는 정통신학의 교의학적 틀이나 특정 신학자에 헌정된 찬사 어린 신학적 해설, 그리고 그 계보에 맞춰 유형화된 자가 봉사적 논리이다. 진보적 부류의 신학에 몸담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 또한 고정관념 속에 점점 이데올로기화하려는 그들의 신학적 전제를 치열하게 성찰하고 과감하게 해체하여 시대의 전위를 선취하려는 모험에 굼뜨거나 무기력한 경향이 있다.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서는 것은 진보신학이 표방하는 몇 가지 선언적 명제들의 식상한 동어반복이다. 한때 신학자는 신의 계시에 민감한 지성의 촉수를 들이대서 땅속의 광맥을 발견하고 보석을 캐내는 광부였거나 인간의 역사적 삶의 자취를 더듬어 그 흔적을 발굴해내고 그 당대적 실상을 복원하는 고고학자에 비유될 만했다. 그런데 이제 21세기 한국 신학자의 초상은 예의 열악한 위상으로 말미암아 모든 면에서 시대의 전위가 되기는커녕 점점 더 뒤처지고 마침내 천연기념물이나 박물관 유리상자 속의 유물처럼 전시될 위태로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IV. 예수로부터 배우기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의 전통적 틀 안에서 성장했지만 마침내 그 틀을 넘어선 모험적 인물이었다. 그는 물론 강단의 신학자가 아니라 갈릴리 변두리의 예언자였다. 그러나 그의 예언과 가르침에는 전수된 신학과 함께 그것을 새로운 역사의 지평에서 주체적으로 변용하는 창조적인 안목과 통찰이 있었다. 그는 가령 동시대 걸출한 유대교 신학자였던 필론(Philo) 등과 달리 신학을 변증과 해설의 소재로 삼지 않았다. 그에게 신학의 방법이 있었다면 문자를 통한 담론화가 아니라 목소리를 통한 생생한 이야기였다. 그는 당시 신학의 보고(寶庫)였던 토라의 핵심 교훈을 새로운 삶의 정황 속에 획기적으로 재해석하는 도전적 의욕도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그렇게 토라를 재해석하여 가르치고 갈릴리 민중들의 신산한 삶의 현장에 동참하여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함으로써 그가 겨냥한 목적의식이 있었다면 그것은 앎과 삶이 겉돌지 않고 깊이 소통하는 것, 이로써 개인과 공동체의 삶 속에 잠재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우치고 그 가치를 십분 누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예수는 어록과 비유 등의 형식을 매개삼아 제자들과 군중을 가르침으로써 계몽과 각성을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너희는...라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라고 말한다’라는 산상수훈의 발화 방식은 그가 전수받은 전통을, 그것이 설사 가장 권위 있는 토라의 전통이라 할지라도 남들이 말하고 이해하는 방식대로 수용하길 거부한 예수의 견결한 비판 정신을 반영한다. 이 전복적 발화 방식에 담긴 예수의 메시지는 진리는 고착된 언어의 감옥에 유폐될 수 없고 시대의 변천과 상황에 부대끼면서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활력 있게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토라의 문자주의적인 해석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그것의 핵심 정신을 응축시켜 재서술함으로써 당시 식민지 백성들의 일상적 삶에 연동시켰다. 그 결과는 예수의 가르침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가르침과 질적으로 다르게 만든 ‘차이’의 해석학이었고, 이는 진리에 목마른 대중들에게 경이로운 반응을 야기했다. 나아가 그 차이는 마침내 대중지도자로서 예수의 권위를 배태시켰다(마 7:28-29). 이는 신학자의 정체성이 엘리트주의의 아성에 고착된 상태에서 자폐적 문법을 구사하며 일상과 학문이 겉돌고 앎이 삶을 소외시키는 것이 다반사인 우리의 신학계에 충격적 성찰을 요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예수에게 그 해석의 차이는 적용 대상의 차별화로 연계된다. 예수는 만민에게 동일한 기계적 규준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한때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이 집중 과녁이 된 적이 있었고(마 10:6, 15:24), 수로보니게 여인이나 이방인 백부장처럼 이방인이 위대한 믿음의 모델로 부상하기도 했다(마 8:10, 15:28). 제자들도 그를 따르는 무리 가운데 추려 특별히 열둘이라는 상징적 숫자로 구성했고(막 3:13-19) 그 가운데 셋을 별도로 친근히 대하기도 하였다(막 5:37, 9:2, 14:33). 그는 굶주림과 질고에 시달려온 소외된 민중들을 향해서는 긍휼과 애끓는 연민으로 음식을 나누고 병을 고쳐주었다. ‘먹보와 술꾼’이라는 오명을 감수하면서도 그는 여자와 아이들, 죄인 중 수괴로 여겨진 창기와 세리들과 함께 어울리며 같은 식탁에서 먹고 마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당시의 종교적 지도자로 행세하던 기득권자들을 향해서는 주로 논쟁을 통해 그들의 교활한 간계를 역으로 찌르며 공박했다. 이를 ‘평등주의’나 ‘계급적 당파성’이라 칭하는 것은 개념화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현대 이데올로기의 미끼로 포획되어 그 진가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        

어쨌든, 그는 오랜 메시아 대망의 숙원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높은 산이 깎여 낮아지고 낮은 골짜기가 돋우어짐으로써 평탄케 되는 인간 세계의 꿈을 그렇게 치밀하게 체현하였다. 예수의 이러한 전략적 대응은, 2천년 동안 축적되어온 서구의 신학 전통이라는 높은 산을 그대로 앙모하고 백년 또는 2백년 조금 넘는 교회사의 일천한 신학 전통이라는 이 땅의 낮은 골짜기에 대한 상습적 열등의식을 학자연하는 제스처로 분식하면서 이 학문의 기형구조를 그대로 방치할뿐더러 더욱 공고히 온존시키는 한국신학의 자화상을 서늘한 거울 앞에 비추어 보여준다. 요컨대, 시계가 거꾸로 돌지 않는 한 100년이나 200년은 2,000년을 추월할 수 없고, 그 식민주의적 신학의 지형에서 단호한 가로지르기 없는 따라잡기는 백년하청의 황하에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메시아됨은 그의 안이한 방관 상태에서 시대가 저절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상기한 전략적 수법에 따라 예수의 비범한 투자가 뜨겁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예수의 치유 활동은 그의 대표적인 사역에 해당된다. 병자를 치유하여 건강한 심신을 회복시키는 것은 생명이 생명답게 향유되기 위한 생존의 필수 요건이다. 예수는 이를 통해 당시 질고로 신음하는 밑바닥 인생들에게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갱생과 재활의 길을 열어두었다. 예수는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는 무리들을 향해 ‘목자 없는 양’을 대하는 듯한 긍휼을 느꼈다(막 6:34). 그 긍휼은 예수의 몸을 통해 애끓는 연민을 낳았고, 그것을 매개로 예수는 비루한 청중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주객의 거리를 초월했다. 이는 상징적으로 예수가 자신의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먹고 마시게 하는 마지막 식사예식을 통해 극대화되었는데, 이로써 예수는 나/너의 주객 분리를 넘어 ‘상호 내주’(mutual indwelling)의 관계로 서로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예수의 삶에 구현된 신학적 통찰은 오늘날 이 땅에서의 신학적 글쓰기가 ‘나’를 최대한 감추고 객관성의 미신에 얽매여 저자와 저서가 따로 놀고 필자와 논문이 서로 소외되며 그 글의 내용이 글쓴이의 일상을 배반하는 균열과 괴리 현상에 대한 또 다른 성찰의 유비적 단서를 제공해준다.        

예수가 몸으로 보여준 신학은 성채나 요새의 안전장치에 숨은 익명의 담론이 아니라 기동력 있게 유랑하는 그 몸의 동선에 따라 자신의 묵시적 상상력을 지혜롭게 이 땅에 접목시키면서 끊임없이 거듭나길 꿈꾸는 길 위의 신학이었다. 그의 발화에는 주체로서의 ‘나’와 그 주체가 추구하는 이념형으로서의 ‘하나님 나라’가 원융의 일치를 이룬 구경(究竟)의 경지가 엿보인다. 유대교의 신학 전통에 기댈 때 예수에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타율적으로 임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백성들이 주체적으로 보고 분별하여 들어가는 선택적 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타자는 내 안에,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일체화된 삶의 궁극이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예수의 신학적 유산은 혈통 가족을 필두로 하는 온갖 연고주의의 찐득한 샤머니즘적 관계를 파탈하고, 다시 길 위에서 새롭게 걸으면서 이질적인 타자를 내 안에 영접ㆍ환대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의 발견을 부추긴다. 나아가 그 유산에는 그렇게 새로워진 자신을 주체적인 언어로 적극 표현하며, 그 가운데 싹튼 공동체적 삶의 연대의식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그 공명과 소통의 질서는 ‘나’를 배제한 건조하고 메마른 껍데기의 신학적 담론으로 감당해낼 수 없다. 신학적 글쓰기에 전략적으로 더욱 표나게 ‘나’를 앞세워 내 속에 잠재된 무수한 타자들을 발견하고 그로써 ‘나’ 밖의 타자들과 소박하게 어우러지며 지식과 운명이 버무려진 삶의 향연을 일구어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V. 향방과 진로  

한국의 신학자는 자신의 신학이 자생적인 한국의 신학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 어떤 위대한 신학이 있어 인류의 영원한 유산으로 남는다 할지라도 그것에 자신의 신학적 물꼬를 대고 그 신학에 멋진 주석을 붙임으로써 제 신학인 양 분식하는 노력은 무국적의 공허한 담론만 되풀이할 뿐이다. 어거스틴과 칼빈, 바르트와 불트만의 신학을 삼켜 배설물로 소화하지 않고 되새김질만 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고상한 개념과 사상으로 포장해도 이 땅에 착근하여 한국의 신학으로 거듭날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따라가기는 있을망정 가로지르기가 없고, 안이한 모방과 맹목적 추종은 있을망정 자생적 토양에서 배양된 안목과 통찰은 없으며, 우상화된 서구의 원전들은 있을망정 기동력 있게 종횡무진 걸어가면서 지식과 사상을 견결한 삶으로 체현한 예수의 신학 정신이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한국의 신학자는 그동안 신학의 이름으로 생산해온 담론에 대한 발본적 성찰이 요청된다. 이를 통해서만 자신이 터한 현재의 위치와 자신의 신학적 자화상을 정직하게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수에 의해 인습적으로 공유된 타율적 ‘들음’의 전통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말하기’의 도전을 통해 새로운 신학적 사유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신학이 한국의 신학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학 연구의 방법론적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모든 지식이 특정한 관점과 방법의 산물일진대 신학의 방법론 또한 몇몇의 정석에 고착되기보다 다변화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신학의 역동성을 제고시킨다. 아울러, 방법론의 다양한 계발은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다양한 신학적 글쓰기로 이어져야 한다. 전통적인 논문의 형식 하나에 신학 담론의 생산을 맡긴다면 지금까지 이어져온 폐단이 되풀이될 뿐이다. 똑같은 주제라도 이전과 다르게 말하고 새롭게 표현하는 자발적 의욕과 선택이야말로 창조적 신학 활동을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물론 그 신학적 글쓰기 작업에는 정밀한 분석과 풍요한 해석에 곁들여 ‘나’의 목소리가 주체의 입지를 살리며 그 가운데 뚜렷이 기입되어야 한다. 나아가 예수의 선례를 참조하여 글 쓰는 저자와 글이 상호간의 공명과 메타적 성찰의 과정을 통해 하나로 어우러지고, 글 속에 호출된 사건과 사상, 인물들이 그 자리에 초대된 독자들과 만나고 사귀며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여백의 제공이 긴요하다. 담론의 내용뿐 아니라 그 형식이 곧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신학적 글쓰기의 역동적 모험에서 파생되는 장르의 확산과 분기, 해체와 재구성의 파노라마는 한국신학의 외연을 확대할 뿐 아니라 그 자생적 토대를 튼실하게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신학적 글쓰기 지평의 확대를 위해 이 땅의 신학자들은 새로운 신학적 사유의 문법을 계발하는 차원에서 이질적인 타자의 말을 배우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상투화된 개념어를 탈피하여 그 개념을 낯설게 재조명하거나 새롭게 충격하는 자기 해체적 언어를 개입시키는 것, 자신의 체험적 일상에 기초한 진솔한 고백과 삽화들을 객관적 진술과 내접시키고 삼투시키는 것, 자신이 배치한 어휘와 문장이 자신의 현재 글을 뒤집어 성찰하는 메타적 거울이 되도록 중층적인 글의 구조를 살려내는 것, 글 속에 육화된 신학적 사유가 공감각적 대화의 장을 만들어 제시된 논지를 독자와 더불어 향유할 수 있도록 글의 유희적 장을 만들어내는 것 등은 창조적인 신학의 물꼬를 트고 그것을 담론화하기 위해 요청되는 단지 몇 개의 참조사항일 뿐이다.  이와 같이 기존의 신학 문법에 변형을 가하고, 그것으로부터 자기 해체적 섭동(攝動)의 모험을 감행할 때 신학담론은 비로소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혼돈의 여정을 통과할 수 있다. 그 쉽지 않은 긴 여정 가운데 비록 기형적 언어와 생경한 표현이 생성되고 그로 인한 소통의 비용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안이한 동어반복의 신학적 문법이나 하나마나 한 천편일률적 주석달기식 신학보다는 낫다. 거기에는 제 신학적 언어와 그것의 무늬를 담보하는 문체의 탄생이 무르익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의 신학은 정기학회의 논문 발표장에서 관례화된 대로 특정한 유행 사조에 편승하여 뚜렷한 논제도 없이 결론이 빤한 종합 정리식의 글로 장중을 도배하거나 협량한 소재주의에 편향되는 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참신한 신학의 자료 발굴에 전향적 관심을 보여야 한다. 신학이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종교적 명상과 주관적 계시의 강변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관여하는 이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천태만상의 유의미함에 섬세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특히, 이 땅에서 자생하는 신학의 미래를 위해 투신한다면 신학자는 인간과 사회, 자연과 민족과 관련하여 이 땅에서 모국어로 생산되는 지적인 담론과 그 문자화된 텍스트를 하나님이 내신 생명의 신진대사라는 인식하에 다각적으로 포획하고 신학적 표현의 대상으로 영접해야 한다. 물론 그 텍스트로 직조된 담론과 지식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우리 각자의 일상적 삶에 공명하는 메시지로 수용되고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인간의 삶에 초월적 정신을 불어넣고 삶의 질적 성숙에 기여하는 문화 예술의 제반 양식을 신학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 신에 대한 인문학적 지평과 인간에 대한 신학적 지평이 서로 합류하고 공조할 수 있는 담론의 개방된 공간 창출에 힘써야 한다. 왜 이 땅의 신학자는 이 땅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영화와 소설, 시와 미술, 만화와 연극, 음악과 건축 등으로부터 신학을 추출해내지 못하는가. 그 또한 하나님의 활동이 내재하는 영역일진대 이 땅의 정치와 경제, 언론과 교육뿐 아니라 예의 문화 영역을 풍성한 신학의 보고로 여겨 그 일상의 현장에 적극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작업 반경의 개척과 참여를 위해서 한국의 신학을 자임한 신학자들은 명민한 비평적 자의식을 갖춘 창조적 비평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신학 연구가 강단의 메마른 논문 언어에 중독된 자폐적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고 시대적 삶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세상의 모든 징조들을 해석하고 그 방향을 선도하는 전위적 신학 비평으로 진화할 수 있다. 한국의 신학자는 비평가로서 이 땅에서 생산되는 숱한 담론의 숲을 관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삼류와 일류의 작품을 두루 읽어 꿰차며 그것에 삼류와 일류의 자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개인적 친소관계와 연고주의라는 비뚤어진 동류의식에 기생하는 주례사비평 따위의 장막은 이제 철수되어야 한다. 바울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 각각의 담론들을 헤집고 자리매김하는 비평가의 성실한 독서와 냉정한 평가는 그렇게 정리되고 역사화되어가는 작품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스캔들’(skandalon)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태작을 양산하는 신학자와 목사들에게 그 비평적 메스는 거치는 장애물이 될 터이지만, 땀과 눈물의 씨앗으로 자기만의 신학 언어와 스타일을 확보한 자들에게 그것은 더할 바 없는 보상이 될 것이다. 비평적 메스가 날이 무뎌서는 비평의 대상인 텍스트를 적확하게 베어내고 산뜻하게 요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비평가로서 신학자의 글은 날렵한 언어와 앞서 언급한 참신한 문체를 개척해야 한다. 신학자로서의 비평가, 비평가로서의 스타일리스트가 넘쳐나는 이 땅의 신학 마당은 그 담론의 양을 경제적으로 조절하고 그 질을 담보하는 쟁쟁한 공론의 장으로 성숙되어갈 것이다.

그러나 의욕과 계획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물질적 하부구조가 뒷받침되지 않는 그 어떤 신학의 기획도 애당초의 바람대로 성과를 거두기란 난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신학의 활성화를 위한 재정적 기틀의 확립이 필수적인데, 이는 후원 집단의 조직을 통해 가능해질 터이다. 현재 신학의 활성화에 기여할 만한 물적 토대의 구축은 한국의 신학 세우기에 뜻이 있는 교회와의 연대를 통해 추진될 수 있다. 교회와 신학자는 건강한 창조적 긴장관계로 맺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건강’하다는 것은 교회의 현장 사역과 신학의 길이 궁극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이를 구현하는 상이한 방법과 이에 따른 서로의 독특한 직능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것이 긴장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신학은 교회의 신학적 명분을 존중하고 그 절박한 필요에 맞춰 적절히 섬기되 그 맹목적 시녀가 되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교회가 물신의 포로가 되거나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그릇된 우상화에 빠질 기미를 간파하여 사전에 경계하고 비판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신학자의 사명이다.

그런가 하면 교회는 자폐적 이론의 최면 속에 되풀이되는 신학자의 지루한 탁상공론의 자리에 생동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신학자의 정신에 활력을 공급하고 그 담론의 무미건조한 형해화를 경계하는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 견제와 비판은 그 둘 사이의 긴장을 파괴적인 정죄와 비난의 빌미로 삼기보다 창조적인 발전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바로 그때 신학이 제도권 교회의 억압적 기제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교회를 섬길 수 있으며, 교회도 눈앞에 보이는 실리를 따지지 않고 신학의 미래를 위해 활수하게 투자하고 후원할 수 있다. 써먹을 수 없는 하나님을 따르며 믿음으로 생을 순례하는 자들이라면 신학자든 목회자든 써먹지 못하지만 소중한 것들의 미래를 위한 배려에 대담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의 결실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구원의 현실태로서 계몽과 성숙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껏 제 자리에 공궤된 물질의 눈물겨운 신진대사로 한국의 신학이 꽃필 수 있다면 그 물질 또한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 될 수 있으리라.

 차정식, "한국에서 신학의 길 찾기-예수의 그 '길'에 기대어",   562(2005, 10), 264-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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