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설교 "갈릴리에서 보자" (마28:1-10)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나는 설교다
부활절 설교 "갈릴리에서 보자" (마28:1-10)
편집위원  |  oikos78@ms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02  11:13:39
트위터 페이스북

부활절 설교 "갈릴리에서 보자" (마28:1-10)

김종희 목사(전 경신학교 교목)

   

서 론

철통같이 다져진 로마의 식민총독정치가 온 제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지배 하의 모든 나라들은 로마의 강력한 무단 식민정치 하에 오금을 못쓰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유대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유대나라 이스라엘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가장 혹독하게 통제를 받은 곳입니다. 설상가상 엎친데 덥친격으로 로마의 식민지 유대나라는 종주국 로마의 꼭두각시 헤롯왕의 일인독재 권력통치하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종주국 로마에는 물론 아무도 독재자 헤롯왕의 강압정책에 일언반구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이 없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처형

이스라엘 마지막 예언자 말라기를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들도 더 이상 예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라기 예언자의 소리가 끊긴지 400년만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세례요한이 회개를 외칠때에 혹시나 700년 전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 구세주가 나타났나하고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저 광야의 사람 세례요한이 헤롯왕의 비행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모처럼 오랜만에 들려진 예언의 소리가 싹도 틔우지 못하고 힘없이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말 한마디 못하고 숨을 죽이며 명령과 지시에 노예처럼 움직였던 문자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통치되는 정막같은 이스라엘 광야에 노도같은 광풍이 몰아닥쳤습니다. 매년 일 년에 한 번씩 어김없이 돌아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기념일인 유월절 축제의 들뜬 분위기 속에 갑작스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소문이 들려온 것입니다.

AD30년 예수님이 33세 되던 해 4월 2일 일요일 안식일이었습니다. 따뜻한 봄날 저 나사렛 벽촌에서 온 촌놈 젊은 예수를 영접하는 수천 수만의 많은 무리들의 호산나 함성소리가 얼마 전 세례요한의 처형 등 무자비한 강압정치로 긴장하고 조용했던 예루살렘성을 또 다시 술렁이게 했습니다.

종교와 정치권력을 쥔 한 손에 쥔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된 성전체제의 엄청난 모순을 보고 견디다 못해 채찍을 들어 온갖 부정한 잡상들로 더렵혀진 착취와 불법의 총본산 루살렘 성전을 숙청하신 예수님의 당돌한 사건으로 독과점 잡상들의 배후세력인 당대의 기득권자들인 제사장들과 예수님의 일대 논쟁과 충돌, 당국자들의 음모 등 일연의 사건들은 무엇인가 변화를 원하고 새로운 시대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도성을 온통 호기심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습니다.

주전 700년 이사야가 메시야의 출연을 예언한 대로 이때나 저때나 옛날 성군 다윗과 같은 지도자 세상을 구원한 메시아가 나타날 것을 학수고대하던 민중들에게 큰 무리들의 호산나 환호속에 나귀새끼를 타고 원천봉쇄된 예수살렘 감시망을 뚫고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한 예수의 성전 숙청 사건은 철통같은 로마를 질그릇같이 부수고 지독한 독재자 헤롯의 압제와 썩을대로 썩은 성전체제가 무너지고 당장에라도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변화로 세상이 당장이라도 바뀔것같은 급박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호기심과 대중들의 기대는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감히 아무도 손도 못 대던 예루살렘 성전체제의 적폐를 완전 청소하려는 소동을 일으켰던 장본인인 천민들의 온거지 저 갈릴리에서 온 젊은 예수님은, 종교와 정치등 모든 권력을 한 손에쥐 고 비밀 정보정치를 일삼든 당시 타락한 성전체제의 기득권자들의 음모와 술수에 의해 예루살렘 성밖으로 추방되고,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선혈이 낭자한 비참한 모습으로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에 매어달려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고 무덤에 장사됨으로 세상은 예수의 이 엄청난 사건을 또 하나의 일상적인 사건으로 끝내고 말았습니다.

말라기의 메시야 예언을 마지막으로 예언의 시대가 끝나고 바벨론 파사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는 외세의 압제와 왕권의 위협이 될만한 인물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형하고 심지어 자기의 장모와 부인과 두 아들마저 의심하여 죽이고 마는 폭군혜롯의 폭정하에 말 한 마디 못하고 숱한 세월을 벼르고 별러 모처럼 세상이 바뀔 것에 기대를 걸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같은 예수의 끔찍한 십자가 처형 사건은 뜻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제자들의 실망뿐만 아니라 삼 년씩이나 따라다니며 목숨을 걸고 새나라 건설을 굳게 약속했던 예수님의 12제자들마저 예수 처형 후 당국의 화를 피해 혼비백산 도망쳐 모두 제 갈길로 가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또 다시 거칠고 고요한 사막같은 정적의 비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골고단 언덕 위에 십자가 돌풍을 일으켰던 예수가 없는 세상은 적막한 광야의 정막함 그대로 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으로 이스라엘은 다시 고요와 어둠이 깔리고 일반 대중들은 못처럼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고 3년간 따르던 예수의 제자들마저 종족을 감추었지만 예수님 생시에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매력을 느껴서 기회가 있을때마다 미력이나마 예수님의 선교운동을 도왔던 뜻있는 많은 여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용감한 세 여인

안식후 첫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되신 지 삼일째 일요일(주일) 만물이 잠들어있는 이른새벽 예수님 생시 예수님을 따랐던 세 명의 여인들은 불안한 마음과 떨리는 심정으로 돌로 굳게 막고 아무도 못 열도록 헤롯왕의 옥쇄로 인봉한 무덤을 행해 총총 걸음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리고 살로매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과 돌무덤에 장사하는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았던 그들이 그 무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는 그렇게도 흥분과 소동으로 들끓던 소요는 다 끝나고 말 그대로 정막하고 조용한 그리고 아직도 어두운 새벽 미명이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둡던 동쪽 하늘에 먼동이 틀무렵 무덤을 행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걷고 있던 그들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헤롯왕의 옥쇄로 인봉하고 네 명씩 4개조로 조직된 로마 군인들이 밤을 새워 지키는 그 크고 육중한 돌문을 누가 열어줄까 하는 의심은 씻은 듯 사라지고 예수님을 굳게 묻었던 돌문은 활짝 열여져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자기들의 눈을 의심했지만 가까이 다가간 그들앞에 활짝 열린 무덤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용감하게도 무덤속에 들어간 여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놀랍게도 천사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갈릴리로 가라. 너희가 찾고있는 예수님은 그가 말한대로 살아나셨고 갈릴리로 가셨으니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가서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기뻐하며 그 빈 무덤을 뒤로하고 혹시 예수와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잡혀갈까봐 바깥 출입도 못하고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 있을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려고 급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였습니다. 갑자기 여인들 앞에 나타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찌어다." 샬롬(peace be with you-마태28:9-) 여인들은 가까이 가서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가서 네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라 거기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여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마디 부탁이었습니다. 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예수의 아이러니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불의한 자들의 부정한 손에 의해 굳게 닫힌 무덤문을 박차고 다시 살아나신 이적과 기적의 주인공, 죽음마저 극복하신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서, 이제 그 죽음까지도 이기신 부활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정치의 중심지요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성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추앙과 흠모의 도시 화려한 예루살렘성에 가서 그야말로 모든 권세를 한손에 쥘 수 있는 절효의 기회가 되었는데, 도대체 왜 하필이면 그 저주받고 버림받은 땅 갈릴리에 가서 거기서 보자고 하셨을까. 말입니다. 누가 보아도 얼른 이해가 안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예수님은 수도 예루살렘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갖은 풍요와 부를 누리며 사치와 방탕으로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환락과 타락의 도시 수도 예루살렘, 그리고 기존질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기득권자들, 말하자면 정치 종교의 모든 권력을 한손에 쥔 지도자들과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를 원하면서도 조그만한 위협과 고통에도 의기소침 움추리는 변덕스러운 소시민적 오합지졸, 또한 예루살렘 성내에 존재하는 안일과 안주에 혈안이 된 약싹빠른 무리들에게는 예수님이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은 마치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판단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정치 종교 기득권자들의 온갖 부정과 불의로 가득찬 죄악의 도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을 미련없이 완전히 포기하신 것이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전 성전을 숙청하고 눈물을 흘리시며 성전 당국자들과 논쟁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예수님은 그의 간절한 호소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처형한 당국과 단돈 몇 푼에 매수되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소리지른 백성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수도 예루살렘에 희망을 걸 수가 없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갈릴리에 희망을, 갈릴리에서 보자

그리고 예루살렘을 포기하신 예수님은 수도 화려한 예루살렘의 형편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무시된 저 북쪽 소회된 사람들의 온거지 갈릴리 사람들에게 그의 눈을 돌리신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희망을 걸었던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문을 박차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는데 그 갈릴리는 어떤 곳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북쪽 갈릴리 바다를 중심한 지역 이름입니다. BC(주전) 721년 앗수르에 병합된 후 예수님 당시까지 700년이 넘도록 586년 바벨론 538년 페르샤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하의 그리스 등 줄곧 주변 강대국들의 점령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민족이 이주해와서 거주했습니다. 주전 63년에는 로마의 씨저와 크라수스와 함께 삼두 정치의 하나인 폼페이우스 장군이 그리스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점령하는 등 수 없이 주인이 바뀌면서 유대나라 중에도 이 갈릴리는 숱한 고난을 당했고 잡다한 민족들의 살았던 곳입니다.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 9:1에 이 갈릴리를 가리켜 언급한 이방의 갈릴리라는 표현은 잡다한 사람들의 모인 곳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갈릴리는 행정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혼합 민족의 통칭입니다. 순수한 유대인은 극소수이고 우상종교가 성행하고 유대 정통신앙이 이들에 의해서 변모해가고 있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 지역을 가리켜 흑암에 거하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가난과 학정에 시달린 지역임을 말해주고 있다. 수도 예루살렘 돈 많은 부호들은 비옥한 땅 갈릴리에 가난한 농민들의 논과 밭을 싼값으로 매수하고 땅을 판 농민들은 그들의 소작인이 되거나 관리인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좋게 말해서 소작인이고 관리인이지 소위 수도 예루살렘에 사는 부재지주들의 앞잡이요 스파이 노예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릴리는 윤리나 도덕에 무관심한 곳입니다. 무관심했다기 보다는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덕목들은 유대지주들의 착취로 혹독한 가난과 헤롯왕의 무자비한 억압정치에 시달리는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은 사치였다고 함이 옳을 것입니다. 거칠고 염치없는 천민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본질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수도 예루살렘에서 안정을 누리면서 호의호식하며 사치스럽게 사는 집권 기득권자들의 눈으로 볼 때 그렇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천하에 폭군으로 이름난 헤롯왕도 그 지역을 통치하기 어려운 지역이었고, 모든 점령지역을 모두 로마화한 로마의 강한 군대의 힘도 그 갈릴리지역을 로마화하는데 실패한 곳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약삭빨라야 했고, 체면을 무시하였고, 나라에서 정한 온갖 제도와 율법은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율법은 그들에게 복을 주기보다 저주를 가져오고 그들을 억압하는 굴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득권자들이 자기들 유리하게 만들어 놓은법을 따를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실은 당시 국가제도와 윤리도덕은 기득권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동양의 덕목 중에 과거 박정희가 좋아했던 충효나 수진제가치국평천하 같은 덕목은 바로 그런 것들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실은 법과 도덕이 사람들을 범법자로 쌍놈으로 만들었습니다. 실은 예수님도 몰락한 다윗 왕족의 한 사람으로 조상 때부터 목수로 연명해 나가는 갈릴리 천민(쌍놈)이었다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곳

한 마디로 갈릴리 지역은 폭동과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곳으로 기득권자(양반)들의 눈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우범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곳 갈릴리를 제자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하신 것은 예수님의 복음의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뭐니뭐니해도 갈릴리는 예수님의 심중에 지워버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우선 예수님의 복음사업의 출발지입니다. 예수님의 선교 초기에 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막1:14-15), 나사렛 회당에서 설파하신 그의 사업의 내용(말하자면 메시아 취임사), 저 유명한 불후의 설교 산상보훈, 베드로와 야고보와 사도요한이 평생을 잊지못하게 그렇게도 인상적이었던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이 바로 이 갈릴리 지역이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32가지 비유 말씀 중 19가지가 이곳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33가지 사건중 25가지 사건이 이 갈릴리 지역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젊은 시절을 보내신 곳도 바로 이 갈릴리요 삼 년 간의 예수님의 공생애도 대부분이 이 갈릴리가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11명이 이 갈릴리지방 출신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교육한 교육의 내용과 장소는 갈릴리바다 주변 들판의 곡식, 밭들, 어부들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알곡과 가라지 비유, 씨뿌리는 비유, 사람낚는 어부, 바다에 그물 던지는 얘기, 풍랑을 잔잔케하심, 물 위로 걸어가심,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마리 기적 등 모두가 이 갈릴리 지역을 말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사건들입니다. 더구나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바친 한 작은 아이의 그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신 갈릴리 동북쪽 벳세다 들판에서의 5병 2어 표적을 행하신 사건은 그 지역이 얼마나 가난에 시달린 농어촌 지역인지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 이스라엘 수도, 왕과 그의 비속들의 총 본산에서 온갖 부정과 강압통치로 갈릴리 등 전지역을 착취하고 억압하던 소위 기득권자들에게 너무나도 억울하게 터무니 없이 십자가를 스스로 지시고 죽임을 당하셨다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이 갈릴리 지방에 매력과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라난 곳이라던가 가난하고 순진한 이웃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그의 선교의 중심지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특히 갈릴리 가버나움은 각 지역에서 상인들이 많이 몰려오는 상업도시요 항구도시입니다. 일종의 국제도시로서의 성격을 띤 곳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나라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갈릴리 사람들은 날 때부터 투사이며 용감한 사람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은거지였습니다. 악명 높은 하스몬가 치하에 많은 유대인들이 남쪽으로부터 이주하여 이 북쪽 갈릴리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들 중 바리새주의 열심당들은 반 헬라, 반로마, 반 헤롯운동가들로 이 사람들에게서 각종 데모와 민중운동이 태동 되었음을 신약 성경이여러 군데서 보여 줍니다.

갈릴리의 역사

예를 들면 주후 40년 로마 가이우스 황제가 자신의 신상을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세우도록 명령했을 때 그것은 신성모독이라고하여 반대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40일 간 시위를 벌인 이들이 바로 갈릴리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로마가 주전 63년부터 식민지로 통치하는 동안 계속해서 독립투쟁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곳 갈릴리지역은 독립운동 또는 민중운동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다시 일어나려는, 물락한 귀족들의 유폐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유대의 몰락한 귀족의 후예임이 분명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예수님은 몰락한 왕족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다윗의 후손임을 말해주는 성경의 기록이 그것을 증언해 줍니다. 갈릴리지역은 언제 어느 때 폭팔할지, 한 치도 예측할 수 없는, 말하자면 기득권자들 눈에서 볼 때에는 우범지대요 취약지역이요 계속적인 감시의 대상지역입니다.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지역이었습니다. 로마는 이스라엘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군대를 이스라엘에 파견했고 헤롯왕은 갈릴리 지역을 감시하기 위해 그 군인들을 동원하였고 그것도 모자라서 헤롯왕은 비밀사복경찰을 갈릴리에 상주시켰습니다. 부호들에게 땅을 팔고 소작인이나 관리인이 된 사람들까지도 기득권 세력의 스파이로 만들었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제자들 중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열심당원(독립투사)으로 활약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최초 기독교 세계선교사로 유명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6 이하에서 500여 명의 형제가 예수님 부활 후에 동시에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는데 그곳이 바로 갈릴리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같이 갈릴리사람들은 동족과 이방 민족에 의해서 멸시를 당하고 천대를 받고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기를 서슴치않는 대담하고 용감한 혁명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일찌기 예수님 나시기 전 700년 예언자 이사야는 이 갈릴리지방을 가리켜 말하기를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리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잡다한 민족의 혼합지역 가난과 질병의 온산지요 그러나 용감한 혁명투사의 은거지입니다. 독립운동의 본거지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지역입니다. 예수님도 유대광야에서 40일 시험받으신 후 갈릴리 가버나움에 가셔서 웅거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곳 갈릴리에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

사랑하는 명지인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갈릴리로 가야합니다.오늘날 갈릴리가 어디입니까. 분명히 오늘날 나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갈릴리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수도 서울은 너무나도 사치와 환락과 방탕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서울은 갈릴리가 아니다. 지난 날 저 잘났다고 큰 소리만 외치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물론 재력과 권력을 한 손에 쥔 기득권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윤리와 도덕에 대한 불감증에 빠져 있습니다. 정의감에 대한 의분심도 없습니다. 이웃사랑은 물론 나라사랑에 대한 열정이 없습니다. 모두가 의기소침한 소시민적인 나르시즘에 빠져있습니다. 갈릴리하고는 거리가 먼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을 상실한채 개인주의적인 기복신앙과 황금만능주의 번영신앙에 매료되어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였던 지극히 작은 자들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돌린 채 하나님의 나라를 사후의 나라로 왜곡하고 헛소리만하는 종교사기꾼들의 잡소리만 허공을 치는, 타락한, 희망을 볼 수 없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한국땅에 나타나신다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아마 포기하실 것입니다. 이런 서울에 사는 정치적으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방탕한 서울사람들 심지어 종교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성취할 수 없다고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갈릴리

그러면 오늘날의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멀게는 계속적인 기아와 질병의 만연으로 하루에도 수천명씩 죽어가는 아시아 아프리카 수많은 아사자들이 있는 곳, 영양실조와 질병, 더러운 식수로 인해 다섯살이 채 되기도 전에 1/3가량이 죽어가는 오늘날의 지구촌, 오늘날 지구촌에서는 하루에 5만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의 열강들과 재벌과 군벌들의 이해가 얽힌 끝없는 전쟁놀이에 무차별로 쏟아지는 포화를 피해 정든 고향과 살던 집을 뒤로하고 한 손으로 아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에 무겁게 얹힌 보따리를 잡고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너고 국경을 넘어 정처없이 방황하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난민들이 있는 곳, 해방이 되었으나 50년이 되도록 아직도 이산의 쓰라림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짖는 이산가족들의 발걸음이 멈추는 곳,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무한경쟁 속에서 극빈자의 수렁에서 혜어나지 못하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가난을 후손에게 이어줄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적 희생자들이 몰려사는 도시 주변 쪽방마을 산꼭대기 달나라 별나라 사람들이 산는 곳, 대기업들의 갑질과 경제금융 한파로 실직하여 직장을 잃고 식구에게 알리기도 괴로와 직장에 가는 척하고 하루종일 고민하며 헤메다가 저녁이면 빈손들고 집에 가는 아버지들의 마음 속.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갈 곳도 없어 지하철역사에 피하여 잠을 자는 사람들이 있는 곳, 심지어 부도난 회사를 살릴 길 없고 직원들에게 줄 봉급이 없어 자살하는 사장들과 몇 달씩 밀린 봉급을 받지도 못하고 직장에서 힘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어깨처진 사람들, 입시 경쟁에 밤낮없이 시달리는 오늘날 수천 수만 명이 있는 학교 현장, 비정의 자식들이 버린 어버이들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한숨 짓고 있는 밤이면 겁에 질려 떨며 잠못 이루는 양노원 후미진 방 구석(평생을 여전도사로 희생봉사하시고 고아들과 노인들의 수용소에서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내는 어느 여전도님의 고백),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시장길 바닥에서 노점행상을 하며 끼니를 이어가고 누나는 등록금을 못내서 고등학교마저 중퇴하고 빵집으로 식당으로 전전긍긍하고, 아들의 등록금을 못내서 안타까워하는 절망적인 가정, 까닭없는 이유로 뇌성마비에 걸려 사지를 못쓰고 방안에서 일생을 살아야하는 장애자들이 있는곳, 자기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상사들의 갑질로 강제 성추행, 성폭력을 당한 쓰라린 상처를 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난의 밤을 지새는 기구한 인생을 한을 품고 잠못 이루는 곳.

오늘날 농촌 현장은 어떻습니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전옥탑 다 팔아서 자식 공부시키고 졸지에 땅 한평 없는 소작농으로 전락되어 살 길이 막막한 피폐한 농촌, 흉물스럽게 허무러져가는 빈집이 있는 곳, 땅 팔아 공부시켜 남부럽지 않게 길러 놓아더니 낳아주신 늙은 부모 본체 만체 제 살길 찾아 도시로 사라지고, 농사일에 지치고 자식 공부시키랴, 전답토 다 자식들에게 빼앗기고 따뜻한 밥 한끼 해줄 자식도 볼 수 없고 그야말로 가난이라도 물려줄 자식마저 온데간데 없이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농촌의 고령자들이 있는 곳, 자기가 판 땅에 그럴듯하게 전원주택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고래등 같은 호화별장을 짓고 그 안에서 온갖 사치를 누리고 호의호식하는 서울 부호들의 철없는 짖거리를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박탈감에 대한 의식이나 울분과 분통 한 번 터트릴 줄도 모르고 조상대대로 대려오는 비 새고 다 쓰러져가는 초라한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그것을 오히려 자신의 무능으로 탓하며 속으로 가난을 삼키는 순진한 농부들의 기죽어 사는 오늘의 농촌마을(특히 수도권 농촌지역).

국제적인 경제제제에 묶여 아무리 자기식 대로 살려고 발버둥쳐도 기아를 벗어날 수 없어 목숨 걸고 탈출할 수밖에 없는 북조선 가난한 주민들이 사는 곳(서독의 평화통일위원이고 유명한 작가 루이제린저의 북한 이야기에서), 한 마디로 오늘날 농촌의 주택구조가 부자와 가난한자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중 구조로 되어가므로 박탈감과 상대적 빈곤을 느끼게 되고 심하면 질투와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게 될지도 모르는 갈등구조의 모순이 있는 곳... 여기가 바로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이런 갈릴리로 가야합니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같이 철저하게 소외된 장소야 말로 예수님께서 매력을 가지셨던 갈릴리입니다.

갈릴리가 어디인지 분별하는 지도자

오늘날 한국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 우리 뜻있는 선각자들은 갈릴리가 어디인지를 알고 거기에 적절하게 대처했습니다. 일제하에서 우리민족이 고난과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앞장서서 갈릴리로 갔습니다. 가지는 못하더라도 온 교회는 그 곳에 재력 인력을 파송해야 합니다. 학문과 신앙을 겸하여 균형있는 교육의 금자탑을 쌓는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오늘날의 갈릴리가 아디인지를 분별하고 확인하는 혜안과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모름지기 오늘날 대학의 금자탑에서 머리를 싸매고 학문을 닦는 젋은이들이 앞으로 공부해서 실력을 길러서 가야할 곳, 관심 가져야 할 곳은 바로 이 갈릴리입니다.

해방이되고도 70년이 넘도록 분단되고 이산가족이 되어 서로 오가도 못하고 가슴 조이며 통일 염원에 애타는 조국을 하나로 만들겠다고 대화와 화해로 화합과 통일을 이루겠다고 불철주야 애쓰고 힘쓰는 오늘날 이 나라 지도자들의 애타는 심령 속, 거기가 갈릴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서나 만날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가 어디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갈릴리로 갈 준비를 하십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예루살렘으로 서울로 갈 때에라도 우리들은 갈릴리로 가십시다. 거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곳에 먼저 가 계십니다. 거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거기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예수님은 그 세상을 바꾸시러 오셨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지도자는 갈릴리로 가야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편집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5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6
명성교회 후임 청빙위원회 발표
7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10
본 교단 채영남 총회장 행보 언론들 주목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 17길 10 A동 202호   |  전화 : 02-469-4402  |  행정 : ds2sgt@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054  |  발행인 · 편집인 : 유재무 |  대표 : 이명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 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