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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교회 안용성 목사 설교잘 들어라/1(막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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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8  22: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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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루터기교회/ 안용성 목사 설교

안용성 목사(장로회신학대학교와 신학대학원, 미국 예일대학교 (S.T.M.), 미국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 (GTU, Ph.D.)  그루터기교회 담임목사 (www.christians.or.kr), 서울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들어가는 말]
예수님은 종종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특히 공관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 비유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비유라는 것이 그 의도와 포인트를 정확히 파악하면 구원의 진리를 절묘하게 전달하는 기막힌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 포인트를 파악하지 못하면 오히려 본 뜻을 왜곡하여 엉뚱한 뜻으로 잘못 해석하거나, 아니면 해석자의 그릇된 의도에 따라 비유가 오용될 수도 있습니다.

비유를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비유가 놓여 있는 맥락을 잘 보아야 합니다. 동일한 비유나 비유 속의 단어들이 문맥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마가복음 4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인데요. 이 비유에서 씨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같이 마가복음 4장 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씨가 곧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구절을 근거로 삼아, 성경에 ‘씨'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을 다 말씀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천지의 비유풀이]
누구냐 하면 신천지 이단인데요. 신천지는 여기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예레미야 31장 27절에 적용합니다. 예레미야서 31장 27절에는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신천지는 여기서 사람의 씨는 인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이고 짐승의 씨는 사탄의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다시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의 비유에 적용합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들은 예수님의 좋은 씨를 받은 사람들이고 기성교회는 가라지, 즉 사탄의 씨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 말씀을 그 맥락에서 떼어내고 자기 입맛에 따라 조합하여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레미야 31장 27절이 말하는 씨란 말씀이 아니라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짐승은 계시록에 나오는 사탄의 하수인인 짐승이 아니라, 그냥 문자 그대로 동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서 사람들의 자손이 많아지고 동물들의 새끼들이 많아지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서의 문맥을 잘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맥을 무시하고 읽으니 그런 왜곡된 해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비유풀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비유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해석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그래서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의미를 조작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단들이 비유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비유의 수사학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4장 10절 이하를 보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뜻을 계시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뜻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시거든요. 다같이 4장 11-12절을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주셨고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감추어 두셨다고 하지요. 여기에서 ‘너희’란 예수께서 선택하신 제자들이고 바깥 사람들이란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인데요.

신천지는 오늘날 그 ‘너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누구라는 걸까요? 자기들 신천지가 그 선택받은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비유를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해 놓고, 기성교회가 그것을 비판하면, 기성교회는 구원받지 못할 바깥 사람들이라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공격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자기들만 구원 받았다 주장하기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단 종파들이 비유풀이를 좋아하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선택받은 제자들이라면 성경을 정직하게 읽어야지요.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이단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성경을 읽되 정확하게 읽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신천지가 중요하게 다루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하면서 신천지의 동영상 강의들을 직접 찾아서 들어 보았는데요. 들어보고 놀랬습니다. 성경 본문을 매우 상세하게 연구하고, 강의를 상당히 명민하게 구성했더군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그 주해의 수준이 왠만한 기성 교회보다 훨씬 높아요. 그리고 재미 있고 신기합니다. 사람들이 왜 신천지로 넘어가는지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단이라 그래서 다 틀린 얘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맞는 내용이 많아요. 그리고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지요. 그러다가 성경을 왜곡하는 내용들이 간간이 등장하는데요. 문제는 그 얼마 안 되는 내용들이 전체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괜찮은 줄 알고 듣다 보니 어느새 잘못된 길로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의 상황과 구도]
오늘은 마가복음 4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함께 읽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마가복음 4장 1-2절을 보시지요. 이 두 절은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신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1절을 보면 예수님은 배를 타신 채로 말씀하시고, 무리들은 뭍에, 헬라어를 직역하면, 땅에 서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청중은 땅에 있습니다. 이 그림이 매우 중요한데요. 예수님은 배에서 말씀하시고, 청중은 땅에서 듣고 있습니다. 이 그림과 비슷하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땅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 청중을 상징합니다. 청중은 ‘듣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지요. 마가복음 4장은 ‘듣다’를 뜻하는 헬라어 동사 ‘아쿠오’를 무려 13번이나 사용하면서 청중의 듣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오늘의 본문인 씨 뿌리는 자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유는 ‘들으라’는 말로 시작하고 끝나는 수미쌍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절인 3절은 “잘 들어라” 하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9절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는 말로 끝나지요. 사실은 이것이 이 비유의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서는 교우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밭에 나가 씨를 뿌리는데, 씨들이 네 가지 서로 다른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는 길가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새가 날아와 쪼아 먹었습니다.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져서 뿌리를 좀 내리다 말고 말라 죽었습니다. 다른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특징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비유들 가운데 유일하게 예수님 자신이 친히 그 비유를 해석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이어지는 13-20절에 나오는데요. 이렇게 예수님이 친히 그 비유를 해석해 주신 이유는 이 비유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겠지요. 다같이 마가복음 4장 13절을 읽어 봅시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이해하겠느냐? 이 비유를 알아야 다른 비유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가장 중요한 비유라고 하셨기 때문에 신천지도 이 비유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래서 신천지 비유 풀이에서 가장 먼저 씨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이것을 자기들 맘대로 비틀어서 확대합니다. 마가복음 4장 13절에서 예수께서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비유는 오늘의 본문인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인데요. 이것을 씨에 대한 다른 비유들로 확대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에서 아까 말한 예레미야서 31장 27절로 넘어가구요. 거기에서 다시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의 비유로 넘어갑니다.

그 비유풀이의 핵심은 예수님의 좋은 씨앗을 받은 자들이 자기들이고 기성 교회는 짐승의 씨앗을 받은 자들인데, 그들이 자신들을 박해한다는 것이지요.

[씨 뿌리는 자의 비유 해설]
그럼 예수님이 이 비유를 어떻게 해설해 주셨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13-20절에 나오는데요. 먼저 씨란 곧 말씀이라는 것을 14절에서 확인했구요. 그럼 이 비유에 나오는 네 땅은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요? 먼저 15절을 보시지요. “길가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다음은 16절을 보시지요. “돌짝밭에 뿔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다음은 18절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달리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마지막으로 20절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이 비유에서 네 가지 서로 다른 땅은 서로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가리키지요. 마음 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네 종류의 땅을 한 사람의 네 가지 마음 상태라고 해석합니다. 말씀을 적용하는 단계에서 그렇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기성교회도 그렇게 해석하고 신천지도 그렇게 해석하는데요. 그러나 마가복음 본문이 말하는 직접적인 의미는 마음 밭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그룹의 사람들입니다.

아까 비유의 상황을 보니 예수님은 배를 타고 말씀하시고, 청중은 땅 위에서 듣고 있었지요. 땅은 청중,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 중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비유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아니라 “씨가 뿌려지는 땅의 비유”입니다. 똑같은 말씀이 뿌려지는데 땅에 따라 다른 결실이 나오지 않습니까? 땅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1) 길가
그럼 네 종류의 땅은 각각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걸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이 다 설명해 주시지요. 먼저 15절을 봅시다. 길가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씨가 뿌려질 때에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곧 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그 말씀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거 사탄이 나쁘네!’ 이렇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바이러스가 숙주 없이는 활동할 수 없듯이 사탄은 그 숙주가 되는 사람이 없이는 작동하지 못합니다.  내가 사탄의 지배를 허용하지 않는 한 사탄은 내 안에 들어와 일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와서 우리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이유는 우리가 사탄에게 그리 하도록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서 길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같은 유대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 저항하며 예수의 적대자로 등장하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이미 파라오의 질서에 넘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2) 돌짝밭
어떤 씨앗은 돌짝밭에 떨어졌습니다. 돌짝밭과 같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16-17절을 보시지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들 속에 뿌리가 없어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결실하기까지 믿음을 지켜내지 못합니다.

신천지는 이 박해가 기성교회로부터, 신천지 교회 밖으로부터 자기들에게 오는 박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천지 사람들이 파라오의 질서가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파라오의 질서는 교회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작동합니다.

이 비유에서 말하는 박해란 이단 교회 다닌다고 기성 교회가 비판하는 그런 박해가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며 살고자 할 때 파라오의 질서로부터 오는 박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돌짝밭에 제일 가까운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들의 대표가 베드로이지요. 베드로가 헬라어로 ‘페트로스’인데, 돌짝밭은 헬라어로 ‘페트로데스’입니다. 베드로는 마가복음에서 돌짝 밭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의 이름이 ‘반석’이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반석이라는 비유어가 마태복음에서는 굳건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서는 돌짝밭과 같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동일한 비유어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비유를 읽을 때는 맥락을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3) 가시덤불
셋째는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씨입니다. 18-19절을 보시지요. 가시덤불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그 밖에 다른 일의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돌짝밭이 파라오의 질서의 채찍이라면 가시덤불은 파라오의 질서의 당근이라 하겠는데요.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따르려니 파라오의 질서가 주는 유혹이 너무 강해서 차마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마가복음에서 가시덤불을 대표하는 사람은 부자 청년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청년이라는 말은 없고 그냥 부자라고만 나옵니다만, 이 사람이 예수께 나와서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를 따르라 말씀하시지요. 그러나 그는 재산을 포기할 수 없어서 슬픈 기색으로 근심하여 떠나 버립니다.

총독 빌라도나 헤롯 같은 사람들도 이 부류에 넣을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임을 알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른 로마군 백부장들처럼 그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의의 기회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4) 좋은 땅
마지막은 좋은 땅입니다. 20절이 말하는 것처럼, 좋은 땅에 뿌려진 것들이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아마도 예수의 주변에서 늘 함께 했던 무리들과 무덤에까지 함께 갔던 여인들이 이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네 땅을 가르는 기준]
이 비유에서 네 땅을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씨, 곧 말씀에 대한 반응이지요. 잘 듣는 사람이 좋은 땅입니다.  다시 오늘의 본문을 시작하는 3절로 가 봅시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동일한 명령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수미쌍관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비유는 3절에서 “잘 들어라” 하는 말로 시작되어 9절에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는 말로 끝납니다.

헬라어에서 듣는다는 말은 귀로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과 함께 순종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도 "말을 듣는다” 그러면 그 말대로 순종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얘는 통 말을 안 들어!” 그러면 그 말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이구요. 그러므로 예수께서 “들어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는 길가와 같은 사람도 있고, 돌짝밭과 같은 사람도 있고, 가시덤불과 같은 사람도 있고, 좋은 땅과 같은 사람도 있는데, 무엇이 그들을 구별시키는 것일까요?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에 따라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11절에서 이 비유를 가리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 말씀하십니다. 또 25절과 30절을 보면, 이어지는 비유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이처럼 마가복음 4장의 비유들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인데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마가복음 전체의 주제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이시지요. 이 비유의 네 땅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될 때 그 복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나뉘는 것입니다.

길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돌짝밭은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루여 하나 파라오의 질서로 인해 고난이 따르면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가시덤불은 파라오의 질서가 주는 이익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주 되심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땅이란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이루어 가는 사람입니다.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무조건 아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아멘 하는 사람은 이단에게도 아멘 하기 쉽습니다. 잘 듣는 것은 성경을 정확히 읽고 깨닫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일차적인 목적은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TV에서 하는 명사들의 인생 강의를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설교의 일차적인 목적은 성경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 뜻대로 살기 위해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자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전달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감동까지 더해주면 금상첨화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설교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교는 인조이(enjoy)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능동적으로 경청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설교를 듣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청중의 관심은, 설교자의 경험과 학식과 달변이 아니라, 그 설교를 통해 성경 말씀이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중이 스스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되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정확하게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일설교를 들으신 후에 집에 가셔서 그 본문을 다시 읽어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시되 내 선입견을 성경에 덮어씌우지 않고 설교에서 배운 것을 활용하여 성경을 다시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정확히 읽는 것은 아닙니다. 내 선입견을 뛰어넘어 본문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가 중요한 것입니다

또 설교를 듣되 무조건 아멘 하지 않고, 설교의 내용을 성경에 비추어 검증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반추하며 성경을 다시 읽으시되 그 말씀의 맥락이 되는 앞 뒤 본문들도 함께 읽어보십시오. 그렇게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한 주간 그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은 신천지 같은 이단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은 그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주되심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비유에 나오는 좋은 땅처럼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이루어 냅니다.  그 좋은 땅과 같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힘쓰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여 하나님의 주되심을 이루기에 힘쓰는 그루터기교회의 사랑하는 모든 교우들이 되시 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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