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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경쟁자인가, 동역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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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5  21: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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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경쟁자인가, 동역자인가?

김성교 목사(두란노자원봉사센터(NPO) Center Chief, 누란노 교회)

빌4:1-3 (시찰회 개회설교)

저는 15년 전에 이곳 수원 화서동 지역에서 저희 가족만 내려와서 처음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수원지역에 연고라고는 전혀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개척을 하면서, 지금도 그렇지만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연고가 없는 지역이다 보니 모든 것이 낮설었고 외로웠기 때문입니다.

어딜 나가는 것 조차도 힘들었습니다. 길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네비게이션이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변변한 네비게이션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방향만 잡고 갔는데 가야할 곳은 남쪽인데 제 차는 북쪽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참 하나부터 열까지 힘들었습니다.

말 동무도 없었고, 누구도 주변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목회 자체도 힘들었지만, 외로움은 참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개척 전까지만 해도 늘 목사님 목사님 하고 절 따르던 성도들이 있었고, 일주일 내내 식사 약속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밥먹는 시간은 거의 전무하다 싶이 했습니다.

어떤땐 집에 들어가면 의례히 밖에서 먹는 줄알고 밥도 없었습니다.일주일 내내 성도들과의 약속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바쁜 생활을 하다가 개척을 하고보니 남는게 시간이었습니다. 사택이 떨어져 있어서 늘 새벽에 나와서 밤늦게 교회에 있으면서 혼자 밥을 해먹었습니다.

아무도 찾는이도 찾아 갈 곳도 없었습니다. 심방을 하고 싶어도 심방할 성도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매일 사모랑 전도를 나갔습니다. 헌금 하시는 분도 없고, 사례비도 없어서 전도지를 만들 엄두도 못냈습니다. 그래서 무한리필 프린트기로 주보지를 전도지 삼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도지를 가지고 동네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전도지를 주면 사람들이 다 갈기갈기 찢어서 길바닥으로 팽겨쳐서 동장님의 전화가 와서 그 전도지 치우러 다닌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자정에 전화가 와서 자기 집 우편함에 전도지를 보고 빼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자정에 자다가 그 집 우편물에 넣어두었던 주보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새벽마다 십자가 밑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억울해서도 아니고, 힘들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한국교회 개척교회 현실을 이처럼 몰랐던 제 자신에 대한 회개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부목사로 또 임시였지만 잠시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미자립교회 혹은 농어촌교회, 해외 선교사들에게 매월 선교금이랍시고 5만원 십만원 보내면서 영수증 보내라, 재정보고서 내라, 행정적으로 사무적으로 자료나 요청하고, 기간이 지났으니 내년에 재정지원이 어렵다. 이딴 말은 했지.

단 한번도 지원하는 교회를 찾아가서 형편을 돌아보거나,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형편에 있는지는 한번도....단 한번도 동역자의 목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렵다고 찾아온 교회목사님에게 한번이라도 그 사정을 살펴 볼려고 노력해 본적도 없었습니다. 솔직히 관심 자체가 없었습니다. 오직 내 목회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것이 자랑이었습니다. 한번도 단한번도 그 목사님을 나의 동역자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개척을 하고보니, 제가 얼마나 그동안 사역을 잘못했는지 얼마나 개척교회 목사님들, 작은 농어촌 교회 목사님들 해외에 나가서 선교하는 선교사님들의 고생과 힘듬이 무엇인지 헤아려 본적이 없었고, 아무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말은 동역자라고 하지만, 그분들을 단 한번도 나의 동역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저는 큰교회목사 행정목사로 사무적인 처리만 했지, 내 동역자의 아픔과 힘듬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생각해 본 일이 없고, 찾아가서 이야기해 본적이 단한번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그분들의 입장에서 개척교회를 하고보니, 저의 과거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목회를 해오고 엉터리 목사였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아시는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교회는 지하입니다. 여름에는 습기차서 곰팡이로 가득하고, 하루 종일 교회에 있다보면 온 몸이 근질근질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지하라 배수펌퍼가 4개나 됩니다. 어제도 그 중에 한곳을 제가 직접수리하고 왔습니다. 이곳저곳에서 펌퍼가 망가지면, 오폐수 물들이 교회바닥으로 넘쳐와서 온 교회에 똥물 냄새 오물냄새로 한달 넘게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수펌퍼가 고장이 나서 오물이 교회당으로 넘어와도 어떻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넋이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꼭 하필 토요일이면 그 사건이 터집니다. 사람도 못부르고, 부르면 돈입니다. 암담했습니다.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고, 찾아가 하소연 할 곳도 없었습니다. 오롯이 내가 해결해야 했는데 그게 얼마나 서러웠던지....

그런데, 어느날 새벽 문득 하나님께서 제 현재의 모습을 통해 과거 제 목회 모습을 떠올려 주셨습니다. 니가 그전에 얼마나 엉터리 같은 목회를 하고 있었는지 알겠느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엉터리 같은 목회를 하고 있었던 것을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아마 제가 개척을 하면서 제일 많이 회개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동안 엉터리로 목회해온 제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마 절 아시는 목사님은 아시겠지만, 우리경기노회 안에 미자립교회들이 모여서 경기노회 미자립교회 협의회라는 일명 '경미협' 을 만든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교회를 좀더 돌보자, 그리고 어려움이나 힘듬이 있으면 우리서로 그 짐을 좀 나눠지자는 취지에서 저와 뜻이 맞는 몇몇목사님이 모여서 결성한 단체였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가장 많이 생각했던 단어가 바로 동역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와 우리 창단맴버들 목사님들은 작은교회 특히, 미자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목사님들을 위한 마음은 과부가 과부심정을 안다고 그 누구보다도 동역자 의식이 강렬했습니다. 아마 모든 목회자 그리고 조금만 성경에 관심을 가진 성도들이라면 사도바울의 기독교사상과 철학을 좋아할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 다닐 때 바울의 신학사상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의 신학사상 중에 제가 젤 좋아하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en christos 즉, 그리스도 안에라는 사상입니다. 사도바울의 서신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온다는걸 알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바울의 중요한 신앙사상이자 신앙철학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도바울의 서신을 보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동역자라는 단어입니다. 사도바울의 서신가운데 특징이 반드시 이 동역자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저도 사도바울의 이 동역자라는 말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작 목회하면서 이 동역자 사상을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동역자라는 말을 참 즐겨 사용했습니다. 오늘도 본문에 나오지만,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이 동역자 사상은 정말 중요한 사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도바울이 사도바울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은혜 중에 은혜는 바로 이런 동역자들이 사도바울 주변에는 참 많았기에 그 놀라운 일을 감당할 수 있었지 않았나.....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그 옆에 동역자들이 없었더라면 그는 과연 그 숱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저는 불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동역자를 너무너무 사랑했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심지어 복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서도 동역자로 여겼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도 동역자로 여겼습니다.

그에게 동역자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신분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회적인 힘이 있는 권력이 있고, 없고, 남자고 여자고, 배운자고 못배운자고 전혀 따지지 않았습니다. 복음 안에 있어서는 그 누구라도 다 동역자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동역자입니까? 좌우옆, 앞뒤에 앉아계신 분들은 과연 여러분들의 동역자이십니까? 아니면, 상하관계이십니까?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넌 안돼.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교회는 힘들어져. 그래서 넌 나에게 잘 보여야 돼, 난 당신에게 잘 보여야 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난 너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선배야, 기수가 너보다 높아. 그리고 장신대 출신이고, 지방신학교 출신이고, 넌 영남출신이고, 넌 호남출신이고 학벌과, 지역, 혈연을 우리 가운데서 따지지는 않습니까? 그런 우리가 과연 동역자이겠습니까?

서로 경쟁하듯이 교회를 확장하고 그래서 우월감을 가지고 작은교회 연약한 교회 목회자를 아랫사람 대하듯이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과연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동역자라 감히 말하실 수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한번도, 단 한번도 그런걸로 동역자를 폄훼하거나 아래로 보거나 차별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린 때로 동역자가 아니라, 사업하는 사업자들처럼 서로를 대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도바울 한번 보십시오. 오히려 그 당시 엄격한 신분제도가 성행하던 시절에도 도망친 오네시모라는 종에게도 동역자로 예우해 주었습니다. 그를 변호해 주었습니다. 주안에서 한 형제로, 동역자로 보호해 주고, 대변해 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동역자이십니까? 아닙니까? 사실, 이 설교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설교이기도 하지만, 제 자신에게 하는 설교이자 회개입니다. 왜냐, 과거 제가 그랬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안에 있는 한 형제요, 자매요, 동역자들입니다. 우리는 경쟁자도 아니고, 높고 낮음의 자리에 있는, 그래서 서로 높고 낮음의 우위를 자랑하는 그런자들은 더더욱 아닙니다. 어떤 교회의 규모나 어떤 여건을 가지고 동역자를 차별하는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의 종들이며, 그분을 위해 함께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들입니다.

주님이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에게 찾아와서 너 옆에 있는 사람이 너를 동역자로 여기냐고 물어 보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실 것입니까? 사랑하는 우리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서로 목회지와, 사역지, 섬기는 교회는 다를지 몰라도, 누구나 다 같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심을 입은 동역자입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옆에 있는 교회와 다른 곳이 아니고 그래서 서로 상관해서도 간섭해서도 안되는 교회가 아닙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의 문제가 곧 오늘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남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고, 우리 모두는 그 주님의 교회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 한가지는 이 동역자가 사라짐에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이 동역자 정신만 회복한다면, 우리한국교회는 달라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회는 내교회 니교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있어서도 안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우리주 예수그리스도가 주인이시기 때문이며 우리는 모두가 그분의 종으로 부름받은 종, 동역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회기에 너무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서부시찰경내에 미자립지원팀 설립을 우리회원분들이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미자립지원팀은 우리 서부시찰경내에 작은 교회들을 좀더 세심히 돌아보고 그리고 서로 짐이 있으면 서로 짐을 나눠지는 기구로서 우리 동역자들과 함께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고 앞으로 그렇게 나아가리라 믿고 있습니다.

시편133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의 복이로다......저는 우리 서부시찰경내에 있는 모든 교회와 우리 동역자들에게 이런 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서로 처한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우리는 주님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경쟁자가 아닌 주님안에서 한 동역자들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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