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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소망교회 엘피스포럼(2)배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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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4  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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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한 공동체로서 교회: 한국적 개신교 영성을 추구하며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 느혜미아)
   
 
VI. 오순절적 영성
한국교회에 오순절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20년대 후반이다. 감리교의 이용도 목사가 인도했던 집회에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이 강렬하게 나타났다.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 아주사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평신도 여선교사 메리 럼지(Mary Rumsey)가 한국에 들어와, 한국최초의 오순절교회를 서울에 세웠다. 비록 이용도 목사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럼지의 사역이 큰 반향을 불러오진 않았지만, 이 시기를 통해 한국교회에 전통적인 부흥운동과 구별되는 은사중심의 성령운동이 출현했음은 사실이다. 한국교회에 오순절운동이 활성화된 계기는 6.25전쟁이었다. 전쟁으로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진 이 땅에 신유와 방언 같은 은사들을 강조하는 집회들이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니기 시작한 것이다. 용문산기도원의 나운몽 장로, 장로교의 박태선 장로, 성결교의 양도천 목사 등이 이 시기의 성령운동을 주도했으며, 1960년대부터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오순절적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로 활약했다. 이때부터 부흥회, 금요철야기도회, 기도원 등을 중심으로, 소위 은사집회가 성황을 이루게 되었고, 한국교회 내에, (교단의 구분 없이) 방언과 신유 같은 신비현상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신사도운동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순절운동은 개혁주의가 지배적인 한국교회 내에서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은사중지론을 신봉하는 장로교의 관점에서,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오순절운동은 신학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무속적 신비주의에 불과했고, 목회적으로도 권면할 수 없는 극단적 열광주의로 보였을 뿐이다, 장로교 통합측에 의해 여의도순복음교회가 10년 이상 이단논쟁에 시달린 것이 단적인 증거다. 물론, 그런 비판과 우려는 상당부분 설득력과 타당성이 있다. 순복음교회 신자들 스스로 “우리들은 말씀에 약하다”라고 고백하는 모습에서 문제의 핵심을 포착할 수 있다. 본래, 오순절신학은 복음증거를 위한 권능으로서 성령세례를 추구하고 그 체험의 물리적 증거로서 방언을 이해하지만, 그동안 한국의 오순절운동은 방언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방언 자체에 과도히 집착했던 것이 사실이다. 말씀보다 체험, 성결보다 능력, 고난보다 영광에 몰두했던 것은 항상 왜곡과 일탈의 위험을 안고 있다.

하지만 오순절운동이 한국교회에 남긴 긍정적 공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오순절운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가 초대교회에 한정되었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 중임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성도들에게 입증해 주었다. 기사와 이적은 초대교회에 한정된 것이라는 주장과 오순절운동이 말씀보다 체험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계속 이어졌지만, 오순절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성령에 기록된 은사들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전혀 다른 차원의 신앙생활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성경 속에 기록된 문자적 신이나, 초대교회에 한정된 과거의 신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지금도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권능의 주님이신 것이다. 그들은 이런 사실을 설명을 통해 이해한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오순절운동은 한국교회에 영적 동력을 회복함으로써, 부흥과 성장을 가져왔다. 개혁주의 전통이 건전한 교리, 인격적 성숙, 그리고 균형잡힌 목회라는 귀중한 선물을 한국교회에 전해주었지만, 체험적 신앙과 신앙적 열정 면에서는 분명히 약점이 있었다. 반면, 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오순절 그룹에는 성령체험을 통해 극적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감동적 간증들이 가득하다. 방언, 신유, 축귀, 예언 등은 일반적인 현상이자 일상적 경험이 되었고, 그렇게 성령을 체험한 신자들은 열정적인 전도자들로 변모하여 교회성장을 견인했다. 한국교회의 양적·질적 성장이 정체된 현재, 신사도운동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성과 합리성에 의해 종교적 열정이 폄하되는 현실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구호를 당당히 선포하는 일은 술에 취하거나 성령에 취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술에 취할 수는 없지 않은가

VII. 수도원적 영성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 내에 중요한 변화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보수적 개신교인들에 의해 정통 기독교로 인정받지 못했던 천주교의 영성신학 저서들, 특히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과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의 저서들이 개신교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면서, “영성”(spirituality)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책을 복음주의 출판사들이 앞 다투어 번역·출판하기 시작했고,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와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 같은 개신교 영성작가들도 한국에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기 시작했으며, 이동원, 방성규, 김영봉, 최일도 같은 개신교 목사들도 교파를 넘어 영성신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순식간에 영성은 개신교의 화두로 부상했고, 수많은 영성프로그램 및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이렇게 급부상한 영성운동들은 대체로 중세수도원운동의 복원적 성격이 강하다. 아직까지도 개신교 자신만의 고유한 영성신학·운동을 형성하지 못한 채, 천주교의 것을 소개․모방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영성운동이 처음 출현했을 때, 개신교의 일차적 반응은 대단히 부정적이었고, 최근에도 보수교단의 입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적 인식과 비판 속에도, 영성신학 혹은 영성훈련은 개신교 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영성이 대세다. 그렇다면 왜 이 시기에 일군의 개신교인들이 천주교적 영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복음주의적 영성, 보다 구체적으로 자본주의적·오순절적 영성에 대한 심각한 자기반성의 결과로 보인다. 지난 100년간 한국교회의 영성은 부흥운동의 지배적 영향 하에 있었다. 하지만 이 영성이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영성과 오순절적 영성으로 분화·진화되기 시작했다. 육체적 체험과 물질적 번영이 개신교 신앙의 궁극적 목적으로 부상하면서, 양적 성장에는 긍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영적 깊이는 간과되고 말았다. 종교학자 오강남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교회는 “심층적 종교”에 이르지 못한 채, “표층적 종교”에 머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주여삼창, 통성기도, 방언기도로 상징되는 기도생활은 신자들에게 영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성경을 다독하고, 암송하고, 공부하는데 힘을 기울였지만, 정작 성경의 깊은 뜻을 터득하고 삶 속에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단계에는 충분히 도달하지 못했다. 성도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각인하는데 성공했지만, 믿음과 선행의 필연적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실패했다. 예배와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체험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개인과 사회의 구원을 함께 추구하는 경지까지 이르지 못했다. 양적 성장과 경제적 풍요 속에 교회의 외양은 세련되고 거대해 졌지만, 성도들의 영혼과 내적 차원은 공허하고 건조해졌다. 결국, 한국교회의 영성이 크기와 속도에서 장점을 갖고 있었지만, 깊이와 방향 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이 천주교의 수도원적 영성에서 대안을 기대하며 주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 영성이 한국개신교에 끼친 영향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탄원이 지배하던 기도 문화에 침묵 속에 경청하는 기도방식이 소개되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신자가 자신의 뜻을 성취하는 영적 통로로 기도를 가르쳐왔다. “열릴 때까지 두드리라”는 구호가 이런 문화를 대변했던 것이다. 기도에 사귐과 대화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탄식과 탄원이 한국형 기도의 지배적 패턴이었다. 하지만 김영봉의 『사귐의 기도』, 배덕만의 『FM기도』, 리차드 포스터의 『묵상기도』 등의 책은 기도의 근본이 하나님과 신자 간의 인격적 사귐이고,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이며, 기도의 형식은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요구사항을 열거하는 대신 침묵하며 경청하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이처럼, 가톨릭 영성은 개신교 기도문화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둘째, 개신교인들과 성경의 관계가 “읽는 것”에서 “묵상하는 것”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개신교에도 1980년대 이후 QT문화가 유행하면서, 단순히 성경을 읽는 단계에서 묵상하는 단계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리차드 포스터의 영향 하에 lectio divina가 소개되면서, 묵상의 수준이 현저하게 상승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경을 중시했다. 그래서 통독과 다독이 은총의 수단과 신자의 책임으로 강조된 것이다. 물론, 다독과 통독이 성경에 대한 단순지식을 향상시키는데 일정부분 기여했지만, 신자의 영성과 삶에 변화를 유도하는 데는 한계가 자명했다. 또한 한국교회는 성경공부에 힘쓰고, 설교중심의 예배를 강조했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가 말씀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전통을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듣고 학습한 성경이 신자들을 깊은 은혜와 신비의 단계로 인도하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이 단지 암송, 독서,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묵상과 사귐의 대상임을 일깨우고 인도하는 방법이 소개되면서, 성도들의 영성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양과 길이의 관점에서 성경을 접근하던 태도에서, 질과 깊이를 추구하는 관점으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셋째, 개신교인들이 간과했던 성찬식의 가치를 회복시켜 주었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설교가 성찬식을 밀어내고 예배의 중심을 장악한 것이다. 말씀에 대한 배타적 강조가 예배에서 설교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성찬식이 중요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물론, 성찬식의 신학적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예배에서 제거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주교에 비해, 개신교 내에서 성찬식의 위치가 대단히 초라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영성신학의 영향으로 개신교회가 성찬식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예배 안에 잃었던 자리를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교회가 성찬식을 더 자주 시행하고 있으며, 성찬식의 신학적 의미를 더욱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소극적으로 성찬식에 접근했던 개신교가 은총의 수단으로서 성찬식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영성생활의 중요한 통로로 수용·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덕택에, 개신교 영성생활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다.

VIII. 총체적 영성
2000년대에 들어와, 개신교 내에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소위 ‘총체적 복음’을 추구하는 다양한 저서들이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복음주의 좌파’ 혹은 ‘급진적 복음주의’로 명명되는 일군의 목회자·신학자들의 저서들이 연속적으로 번역·출판된 것이다. 이들은 복음주의 전통에서 성장하고 사역하지만, 개인전도와 함께 사회참여를 강조한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정치활동을 강조하지만 기존의 복음주의자들과 달리 진보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낙태와 동성애 등을 반대하지만, 빈곤, 환경, 전쟁, 인종, 성 등에 대해서도 진보적 입장을 견지한다. 성경과 오순절영성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고대적 영성도 함께 추구한다. 복음주의 전통을 존중하지만, 동시에 진보진영 및 타종교와도 우호적 관계를 도모한다. 론 사이더(Ron Sider), 짐 월리스(Jim Wallis), 토니 캄폴로(Tony Campolo), 쉐인 클레어본(Shane Claiborne), 그리고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등이 핵심인물로 부상했고, 이들은 재세례파운동, 이머징교회(Emerging Church), 레드레터 크리스천(Red Letter Christians) 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이 2000년대에 한국교회의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최소한 두 가지 이유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정치적 민주화가 일정수준 이루어지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수용될 수 있는 정치적·신학적 공간이 형성된 것이다. 즉, 박정희 정권으로 대표되는 군부독재시절에는 이런 진보적 목소리가 한국교회, 특히 복음주의권에서 수용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민중신학을 주창했던 개신교 진보진영의 수난을 통해, 그런 현실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이념적 갈등이 뿌리 깊게 존재하고, ‘종북좌파’ 논리가 여론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이전에 비해, 이런 진보적 담론이 형성․논의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와 교회가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지난 120년간 한국교회는 생존과 성장에 온 힘을 쏟아왔다. 전통종교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개신교에게 생존 자체가 힘겨웠다. 따라서 타자를 여유롭게 바라보고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 성장이 정점에 달했고, 마침내 주류종교로 등극한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담당해야 할 책임이 크게 확장되었다. 즉, 교회가 생존과 성장을 위해 분투하던 단계에서, 사회적 책임을 담당해야 하는 단계로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에는 참고할만한 전거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미국의 선례들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들이 소개될 때마다 열정적으로 반응하며 수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먼저, 복음주의 교회가 진보적 관점에서 사회적 책임을 깊이 인식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같은 인물들이 역사적 모범으로 조명되기 시작했고, 론 사이더와 짐 월리스의 영향 하에 빈곤문제에, 존 하워드 요더 덕택에 평화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에는 복음과상황, 뉴스앤조이, 성서한국, 교회개혁실천연대, 청어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같은 진보적 복음주의 진영에서 교회와 사회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발언하며, 적극적 참여를 추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총체적 복음의 결정적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향 하에 복음주의 교회가 보다 통전적인 복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에 대한 배타적 이해, 특히 근본주의의 깊은 영향 하에, 대단히 편향적인 모습을 고수해왔다. 즉, 자유주의, 가톨릭, 타종교와는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신학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가 과도하게 밀착되어, 개인윤리에 비해, 사회윤리에는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했다. 반공친미에 대한 맹목적 옹호는 다른 이념과 정체에 대한 사고자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총체적 복음의 영향 하에, 복음주의 내에도 이런 이원론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시작되었다. 포스트모던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다원주의에 직면하여, 복음과 상황의 상관관계에 주목하고, 고전적 영성과 현대적 영성의 창조적 조화를 추구하며, 개인윤리와 사회윤리, 복음전도(영혼구원)과 정치참여(사회구원)의 적절한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즉, 복음의 총체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직은 도입과 검토의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향후 한국적 상황과의 적절한 접점을 찾고,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개발한다면, 더욱 큰 영향을 한국교회와 사회에 끼칠 수 있을 것이다.

IX. 나가는 말
이처럼 한국교회는 다양한 영성전통이 공존하며 복잡한 종교적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각 전통은 각 시대의 절박한 요청에 따라 고유한 특징을 발전시켜 왔다. 시대의 요청과 개별 전통의 강점이 접점을 찾았을 때, 서로에게 강렬한 영향을 끼치며 무대중앙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접점이 더 이상 시대적 효율성과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때, 무대중앙에서 빠르게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자취와 기억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중앙을 차지한 영성과 후미로 밀려난 영성 간에 치열한 자리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순위는 언제든지 바뀔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혼란스럽고 가변적인 영성의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어떤 태도와 전략을 추구해야 할까?

무엇보다, 기존에 존재했던 다양한 영성전통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진지한 반성을 추구해야 한다. 모든 영성전통은 각자의 고유한 가치와 장점을 지닌다. 동시에 각 전통의 역사적·시대적 한계도 자명하다. 어떤 전통도 영원히 완벽할 수 없으며, 동시에 어떤 전통도 완전히 시효가 만료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각 전통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과감하게 포기할 부분과 적극적으로 수용·발전시킬 항목을 분류하는 것이다. 특히, 어떤 특정 전통에 모든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혹은 특정 전통에 모든 희망을 거는 것은 부당하다.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신학적, 목회적, 영성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영적 지혜와 수단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보다 정직하고 용감하게 과거의 유산들에 접근하여, 보다 지혜롭고 민감하게 대안창출을 위해 연구와 실험을 시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의 영성적 전통들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둘째, 복잡하고 급변하는 현재, 주님의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더욱 어렵고 무거워졌다. 교회가 담장 안에 안주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교리적 순수성과 영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성과 속을 배타적으로 구분하거나, 묵시적 종말론에 심취하여 하나님나라의 실천적 과제를 간과할 수도 없다. 수많은 이념과 철학, 다양한 문화와 민족, 그리고 융합과 해체를 반복하는 복잡한 종교적 지형 속에서, 타자에 대한 일방적 비난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전략도 더 이상 대중적 지지를 얻기 힘들다. 자신의 가치를 순결하게 보존하되, 복잡한 현실에 적실한 해법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가 처한 복잡하고 난해한 현실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정교한 해법을 탐구해야 한다. 교리적 정밀함의 추구에 현실과 현장에 대한 성찰을, 개인과 영혼에 대한 관심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그리고 교회의 현실적 필요에 역사와 문화에 대한 거시적 통찰을 각각 더함으로써, 한국교회의 목회와 신학이 보다 포괄적이고 총체적이 되어야 한다.

셋째, 이런 다양한 영성의 흐름과 변화된 낯선 환경, 그리고 그 사이에서 분투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포괄적으로 고려하면서, 개별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영성의 처방전을 작성하고 도전해야 한다. 최소한 지난 영성의 흐름 속에서, 공공성과 윤리성을 결핍한 무속적 영성, 물질적·세속적 번영에 집착하는 자본주의영성은 제일 먼저 경계의 목록에 올려야 한다. 돈에 대한 집착과 이기주의가 결합된 결과, 한국교회가 천민자본주의의 종교적 하수인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성령의 직접적 체험, 성결의 추구, 그리고 민중에 대한 관심은 이 시대에도 강력하게 붙잡아야 할 소중한 영성적 유산들이다. 최근에 유행하는 총체적 영성은 그것들의 창조적 종합을 실험하는 소중한 예다. 이를 위해, 보다 용감하고 창조적인 목회적 실험이 필요하다. 목회자나 공동체의 전문성, 지역사회의 필요, 혹은 시대적·문화적 이슈 등에 따라, 다양한 영성적·공동체적 도전을 실천해야하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동시에 만병통치약 개발에 집착하지 말고, 쉽고 가능한 것부터 과감하고 지혜롭게 시도해야 한다.

결국, 위기 속의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비상하기 위해선, 영성과 공동체성의 창조적 만남을 추구해야 한다. 이 시대와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한다. 진지하게 말씀을 묵상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용감하게 현실과 현장에서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행위는 성령의 도움 없이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동시에, 결코 혼자 갈 수 없는 길이기에, 형제자매가 함께 동행해야한다. 그렇게 영성과 공동체가 만날 때, 한국교회의 각성과 개혁은 헛된 망상이 아니라 거룩한 비전이 될 것이다. 아무리 개인이 무능하고, 현실이 망막해도, 우리가 계속 꿈을 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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