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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교회, 공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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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27  23: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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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교회,  공존하려면 

시민사회운동에서 한때 독점적인 대기업들을 감시하고 비난해왔다. 국가도 규제를 통하여 무한대의 확장을 막았다.  사람사는 세상이 정글처럼 되어서는 강하고 빠른 것들만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의 세계는 먹이사슬이라는 구조를 통하여 자연계를 조절하지만 인간사회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게 문제다.

그런 약육강식의 기업과 산업의 생태계를 조절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물론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국가를 대표하고 기업경영의 일선에서 앞장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 기업들에 대한 비판은 문어발식 기업경영도 문제지만 정경유착과 특혜, 족벌경영이 문제다. 그래서 국가는 상대적으로 중소기업과 밴쳐기업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편다.

그래서 최근엔 밴쳐기업과 청년창업을 적극장려하고 있다. 대 기업이 기업활동을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로 나가도록 권장한다. 선진국의 기업들과 경쟁하도록 하고 국가는 각종지원를 한다. 이유는 나가서 돈 많이 벌어오고 세금도 내고 고용도 늘리라는 말이다. 그런면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대형화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간 우리나라 대기업이 기업 생태계에서 그런 상호부조의 생태계를 만들어 왔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반대로 국가의 힘으로 성장하고 국민들로 부터 소비되어 돈을 벌고도 제 멋대로 소비하고 경영하는 기업의 행태를 규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지원을 이용하여 무리한 중복투자와 세금포탈, 외화도피로 비난받는 이유다. 결국 그런 피해는 그 기업의 임직원만이 아니라 지원한 금융기관이나 국민적 피해가 커서 함께 망하는 것이다.

대형 건물도 그렇다. 짓느라고 큰 돈들고 공실많아 손해라 대형화는 사실 필요악이다. 잠실의 제 2 롯데월드를 보면 겉보기는 우리나라의 건축기술이나 능력이 대단하다고 본다. 하지만 건축 당시부터 특혜의혹(성남비행장의 고도제한)에 지반침하와 주변 상권잠식에 사고불안으로 대기업의 랜드마크 위용 때문에 고생과 희생은 국민이 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

대형교회 필요악인가? 
교회는 어떤가? 슈바르츠라는 사람이 창시한 자연적 교회 성장론(NCD)라는 이론을 보면 교회는 문제만 없으면 저절로 성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자연적 성장보다는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성장을 추구해왔다. 그게 성경적이고 예수님의 사역의 목표가 아님에도 말이다.  성장 그 자체를 나무랠일은 아니지만 성장만이 목표라면 문제다.  

그럼  어디 까지 성장하면 좋을 까? 보통 한 5천명이 넘는 교회를 대형교회라고 할 수 있는 데 1 만명이 넘는 교회라면 그것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대단할 것이다. 그것을 기본비용이라고 하는 데 전기와 유지 인건비는 그냥 들어간다. 수용자들의 편리를 위한 공간과 부속건물, 관리와 주차등 유지비만 해도 만만치 않다.

물론 성장론자들만 탓할 수는 없다. 억지로 오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발성에 의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무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백화점이나 큰 건물을 비유한다면 싸거나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람들은 올 것이다. 사람들이 맘에 드는 것이 저렴하고 질이 좋다면 사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것으로 쏠리는 것은 거기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불편해도 돈을 드려서 라도 간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다중이 모이고 돈을 버는 백화점에는 교통 혼잡부담금도 내게 한다. 그곳으로 오기 위한 교통혼잡으로 인한 타인의 손해에 대한 것이다. 모 교회는 주일날 교인들의 들고 나는 문제로 그 인근의 아파트 주민들의 불만이 이루말 못한다고 한다. 교회인근에 사는 이들은 오히려 그 교회를 멀일하고 멀리서들 차량으로 오고가는 것이다.

건물도 그렇고 모든 것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일정하게 규제를 한다. 아파트 평수도 그렇다. 그것은 다중 이용시의 번잡과 위험성등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교회는 제한이 없다. 년전에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매년 3,4천명씨 오는 교인들을 앞으로 10년후에는 흩는 다는 선언을 한바 있다.

평균치는 있어야 한다. 
1만명도 10만도 좋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평균치는 있어야 한다. 군대로 치면 아무리 능력있고 용감한 장군도 1개 사단만 맡는 것 처럼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설교를 할 수 있는 지는 몰라도 밀도 있는 목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 초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주간중 많이 하는 일은 회의나 강연, 연합회등 교회 외적인 활동이 주다.

교인들은 교인들이나 부목사, 직원들이 관리하는 것이다. 이건 양육이 아니라 사육이라고 비판한 분도 계시다. 그런 곳은 좋은 음향시설과 화면을 띄어놓고 설교를 할 수는 있어도 양들을 돌아보는 목양으로써의 목회는 아니다. 컴퓨터나 부서가 관리를 할 것이다. 위임목사는 오직 설교로만 소통한다. 심방과 면담은 극소수만이 나눌 수 있다. 교인들은 적당히 듣고 헌금내고 맘편하게 오고 가는 청중식 교회이다.

그럼 목사와 신자가 얼마의 사랑과 교감이 있어야 정상일까? 국가처럼 기준이나 규제를 둘 수는 없다. 자동차도 보면 자신의 부와 권위를 자랑하려고 화려하고 큰 차(험비)도 타지만 더 크게 보이려고 버스를 타지는 않는 다. 집도 마찮가지다. 아무리 넓은 집을 원해도 아파트의 경우 100평이 넘지는 않는 다.

그런데 교회만은 무한대인데 이게 정상일까요? 차고 넘치는 데도 계속해서 교인들을 오라고 전도를 종용하고 동원을 강조한다. 정말 한 영혼에 대한 구원과 인도를 위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켵에 있는 교회로 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직 자신의 교회로 오게하고 교인들의 편의를 위하여 공간을 짓고 부대시설을 하는 것은 이율배판이다.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야  
우리선조들도 대형화에 대한 규제는 있었다. 아무리 사대부 부자라도 99칸 이상의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 1칸 집이 서민이라면 100배를 넘는 부의 대형화는 안된다는 의미다. 또 경주의 최 부자집의 가훈인 육연(六然) 수신(修身)를 보면
자처초연(自處超然),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라
대인애연(對人靄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해라
무사징연(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내라
유사감연(有事敢然),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라
득의담연(得意淡然), 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하라

이외에도 *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높은 벼슬에 올랐다가 휘말려 집안의 화를 당할 수 있다. * 재산은 1년에 1만 석(5천 가마니)이상 모으지 말아라,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니 1만 석 이상의 재산은 이웃에 돌려 사회에 환원해라. *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 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매입하지 말라. * 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 *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특히 흉년에는 양식을 풀라고 했단다.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말의 뜻을 알수가 있다.

사람들이 일하고 받는 월급도 그 편차가 있지만 적어도 한 용역에서 1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면 그것은 윤리적으로 문제다. 사회적으로도 위화감이 커진다. 최대치와 최소치라는 합리성이 있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대형교회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이나 축복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이번에 정의당 공약중에는 사회지도층의 임금체계를 최저 임금과 연동하는 것을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 임금을 노사정이 정하는 최저임금의 7배를 넘기 않토록 하자는 것이다. 정의당은 국회의원 보수를 최저임금의 5배 이내로 제한하고, 외부인사로 구성된 국회의원보수산정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공기관 최고임금은 최저임금의 7배 이내로 한정하고, 민간기업의 경우 최저임금의 30배까지로 보수 상한을 제안했다.  그리고 돈잘버는 사기업이라도 30배이상은 규제하자는 것이다. 지금 최고 CEO들은 년봉 3-70억을 받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현재 최저 임금이 시간당 9천원으로 하여 임금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과 불만의 양극화를 해소해보자는 취지로 보인다.    

대형화 좋은 것만은 아니다.
200명 교회에 부목사를 1인 정도 둔다고 하자 3000명이면 10명을 두고 3만명에 100명을 채용하지 않는 다. 커질 수록 부교역자들의 채용은 줄어들고 목회업무는 가중된다고 볼 수 있다. 대형화는 목회자 시장에서도 고용과 복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얘기다. 교회도 나름 대로 사례비의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초대형 교회의 영향력이 어떤 결과를 갖아오는 지 예을 들어보자 매년 총회로 파송되는 총대의 숫자는 목사와 장로가 동수다. 서울의 한 노회에 총 38명의 총대가 배정되어 있다. 그중에 한 당회에서 목사 총대가 5명, 장로가 10여명이라고 한다면 총 15명이 총대다. 그러면 38명중 약 25%가 특정교회의 지도자들이다.

이것이 숫자에 불과한 일이 아닌 것은 조직의 결정을 좌우지 할 수 있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상회비나 기여도는 능히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  임원구성에도 그렇고 어떤 결정을 하던 이 대형화의 폐해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노회는 한 당회에서 목사는 1인, 장로 2인으로 제한을 두웠다. 총대만은 좀 골고루 가자는 것이다.  대 기업의 임원이나 이사회도 요즘은 다양성이라는 것 때문에 특정 지역이나 기관, 학교등 영향력을 받는 구룹을 배제하는 추세를 어긋나는 것이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다. 은혜가 되고 편안한 곳 가까운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교회를 선택하지 않고 있다. 유명한 곳 세속적인 파워나 능력이 있을 곳, 거기서 힘있고 능력있는 이들과 구룹이 되어 언젠가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곳을 찿는 다. 이런 허위의식으로 신앙행활을 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고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세속주의 축복주의로 인한 잘못된 목회관이 무심한 대중의 기복적 욕구를 자극하고 저들로 하여금 예수믿는 것은 복받기 위한 것이고 그래서 누가 출세를 하고 복을 받았다는 증거에 현혹되여 건강한 신앙의 마비를 가져오는 것이다. 물론 대형화 그 자체를 악마화하거나 비판할일은 아니라는 점은 밝혀둔다.

그렇기에 대형교회도 이제 함께 공존하려면 어디까지지라는 것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더 이상의 건물을 짓고 교인들에게 편익을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주변의 교회와 다른 동역자들과 공존할 수가 있다. 지역상권을 위하여 대형마트가 강제로 휴일을 하게 하고 백화점이 셔틀버스 운행을 중단했듯이, 교회는 몰려오는 이들을 위한 편의를 더 늘려지 말고 맡겨진 양떼들에게 최선의 목양을 해야 한다.

삼백집 콩나물 해장국집 
콩나물 해장국집 이름인데 아침 7시 부터 영업을 시작하여 오후 10시까지 운영되는 데 하루에 3백 그릇만 판다고 한다.   음식 재료도 300인만 준비하고 그것이 떨어지면 문을 닫는 다고 한다. 이런 일은 고객에 대한 써비스측면도 있지만 주인과 종업원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종업종 업자들과 공생공존하는 길이다. 장사꾼에게도 이런 의미와 도리가 있는 데 어째서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이런 인간적인 정과 의리가 남아있지 않을 까?

대형화를 하나님의 뜻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하나님이 그렇게 많이 모여서 예배하기를 원하고 계실까? 부대비용이 그렇게 드려서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을 희생하고 뒷밭침하는 것을 원하실까?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 일뿐이다. 대형화는 필요 악이다. 그래서 이로 인한 부작용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실 세습반대운동도 목회적 세습 그 자체보다는 대형교회의 파워(교권과 돈)에 대한 실패를 봐온 한국교회의 전례 때문인 것으로  안다.  그 교회들로는 부의 세습은 아니라고 해도 권한을 갖는 것이기에 반대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형교회라고 해서 아들이라고 해서 더 많은 권한이 없다면 아마도 가고 싶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권한 내려놓기가 절실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의미
자기과시와 허영심으로 멈출줄 모르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같이 질주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안된다. 대형화는 불법이나 적은 아니지만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대기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듯이 대형교회의 역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자들을 돌보고 도와주고 같이 성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대형화는 교인들의 쏠림현상으로 작은 교회의 교인들을 도둑질한다.

지금 처럼 대형화된 교회의 지도자들이 한국교회를 과잉대표하고 약한 교회 작은 교회와 목회자들을 대상화하고 객체화하여 지배하고 엽신여기고 횡포를 부리는 것은 안된다. 대형화로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희생하고 받은 축복과 은혜를 공공화한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키 크다고 더 일잘하고 운동 잘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적당해야 한다.

크다고 주님의 사명을 더 잘 감당하는 것도 아니다. 인위적인 대형화, 과시적인 대형화는 이제 그만해도 된다. 한 사람의 목회자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목양의 질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옛날의 학교는 콩나물 교실이었다. 지금은 한반에 15명 내외다. 질적인 수업과 돌봄을 위해서다. 대형화 누굴 위해서인가? 교인인가? 목회자 자신의 야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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