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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도 울고 있습니다. 그 아픔을 안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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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8  17: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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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도 울고 있습니다. 그 아픔을 안아주시길 바랍니다.

설수철 목사(서울역 쪽방촌 창대교회와 노숙인 하늘공동체 )

시민에게 고합니다. 교회의 아픔을 안아주십시오.
교회에 고합니다. 시민의 아픔을 안아주십시오.

혼란스러운 교회
지난 달까지 주일을 하루 앞둔 토요일만 되면 광화문 광장이나 청와대 앞 광야교회에선 문재인 퇴진 반정부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때마다 근처 서울맹학교 학부모들이 한기총 확성기 소음 때문에 시각장애아들의 학교 수업을 듣지 못할 지경이라면서 항의 집회를 열었습니다.   지금은 토요일이면, 주일예배 드리는 교회 앞에는 주민들이 전염병 확산이 우려되니 예배드리지 말아달라며 항의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전 국민이 싫어하기는 이번이 처음일 것입니다. 사실은 싫어한다기보다도 감염병이 돌까봐 두렵다고 하는 것인데 계속 예배를 강행하니까 싫어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코로나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고 한국에도 전염되었지만, 초기 대응을 잘해서 신속히 정리되는 듯 했으나, 갑자기 대구에서 신천지 집회 참석자들로 인해 후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전 국민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집단감염이 주는 공포는 또 다른 지역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왜 이런 상황에서도 예배를 드리려 할까요? 단 한 명의 환자가 그 교회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로, 환자가 발생하면, 교회의 정체성, 교회의 본질, 교회의 사명 등과 같은 의미는 맨 뒷 순위로 밀려나고 맙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의 문제는 교회의 본질을 따질 시기가 아니라 ‘교회의 역할’을 따져봐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 치료하는 교회 *
사실은 바이러스 감염환자도 환자이지만, 이로 인해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교인들의 상처와 고통도 더 크기 때문에 그들을 치유하는 것 또한 교회로서는 매우 중요한 사역입니다.
전쟁터에 아들을 보내고 맘고생하는 어머니들을 위해 교회가 기도회를 열어주는 것, 고3 수험생들을 시험장으로 보낸 어머니들을 위해 기도회를 열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염려와 공포, 시련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시기에 더욱 기도하고픈 열정이 본능처럼 밀려올텐데 성전문은 잠겨있고, 기도회나 예배 등의 다수 모임은 중단됐고, 오직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로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여태껏 교회 목회자에게 의존해왔던 신도들이 누구의 가르침이나 권고도 듣지 못하고,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직장을 쉬거나 식당 문 닫으면 돈을 좀 덜 벌면 되지만, 오랜 신앙생활을 갑자기 중단하면, 위기 극복의 의지나 용기가 나지 않고, 혼란만 가중되어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예배 금단현상
지금은 공포와 두려움이 극에 달하여 하루하루 걱정을 달고 살아가는데, 그런 날이 길어질수록 정신적 공황상태나 패닉 상태가 오는데 불안감 고조로 소화불량 등의 신경성 질환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증상이 바로 교회 못 다니게 하면 생기는 “교회 금단현상”입니다.   금단현상이란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특정 약물이나 기호식품, 행위 등을 중단할 경우 나타나는 여러가지 신체 증상 및 반응”을 말합니다.

교회 금단현상은 “지속적으로 드리던 예배 행위를 중단할 경우 여러 가지 신체 증상 및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일반 금단현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불안장애, 수면장애, 우울증, 소화불량, 두통, 불안, 구토, 이명, 경련 등이라면, 교회 금단현상도 비슷한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초조하고, 답답하고, 잠이 잘 안 오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불안, 초조하고, 소화가 안 되고, 두통이나 경련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교회라도 나가면, 시원하게 해답도 들을 수 있고, 기도라도 하면 큰 위로가 되고, 찬송이라도 부르면 답답한 것이 사라지는 것 같고, 성도들 만나서 격려하면 고통을 좀 더는 것 같고, 신앙의 힘으로 극복의 의지가 강해질 것 같은데, 성전문이 닫혀있어서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바이러스로 인해 장기간 학교를 못 나간 학생들도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학교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것입니다.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신도들도 나름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 중 소수라도 모여서 불안 심리를 완화시켜주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고, 엄청난 위기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보자고 의지를 불태워 주는 것이 주일날 예배를 통해 하는 것입니다.

외부에선 교회가 예배드리는 것은 헌금 때문이라며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공동체로 매도하지만, 그것은 일부 문제 많은 교회의 모습이지 흔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가 중시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21장 6절에 보면,  “기도나 그밖에 예배의 무슨 부분이 복음의 시대에 있는 현재 예배드리는 그 장소가 고정되어 있거나, 또는 장소나 대상에 따라서 그 예배가 더 훌륭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든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각 가정에서, 매일 드리든지, 혼자서 은밀한 곳에서 드리든지, 또는 공동적으로는 더 엄숙하게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씀이나 섭리에 따라서 부르실 때에는 공적인 모임을 겅솔하게 혹은 의식적으로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헌금 때문에 교인들을 소집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평생을 예배를 통해 생명의 생수를 공급받으며 살아오던 신자들이 갑자기 교회와 단절하고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과 관련 없는 생활을 하려니 얼마나 고되고 힘들겠습니까? 그들도 점점 병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게 의사의 일이라면, 신도들의 아픔을 치료해주는 게 목회자의 일인 것입니다. 교회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심리적, 신앙적 고통에 시달리는 신도들에게 여러 가지 금단증상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치유하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소수의 신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앞으로 전개될 위기를 극복할 의지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배 강행”과 “학습효과”*그러나,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동기와 목적이 선하다 하더라도 방법론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그 결과 감염병 확산이라는 안 좋은 결과를 낳았을 땐 엄청난 비난과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고집함으로써 이웃에게 불안감과 거부감을 주고 있다며 외친 말이 바로 “예배 강행”이란 말입니다.

“강행”이란 말은 사전적으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일을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강행’이 반대나 저항을 무릅쓰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이므로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의미합니다. “예배 강행”이란 말이 정부 발표나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다보니 교회측에서 반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강행”이란 말이 “어려움을 무릅쓴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전염이나 비난이란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강행”하겠다고 했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의미로 전달되는 게 당연하겠지요.  교회가 철저하게 소독하고, 2m 이상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고 해도 그렇게 조치하는 이유가 “어려움을 무릎 쓰고 일을 행한다.”는 의미이므로 “강행”이란 말이 적합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학원수업 강행, 지하철운행 강행, 클럽 운영 강행, 동성애집회 강행, 회의 강행”등은 허용하면서 정부가 교회만 강력히 규제하는 것은 종교탄압이며, 신천지 이단 집단과 같이 취급하는 것이냐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분석해 보면, 사실 정부의 조치는 “학습효과” 때문입니다.

중국 우환에서 발생한 이래 국내에선 수그러지는 듯 했는데, 갑자기 대구 신천지 집회(당시엔 ‘예배’라고 표현했음) 이후에 대확산이 이뤄졌기 때문에 전국의 신천지 집회 장소를 모두 폐쇄 조치했습니다. 신천지 집회 이후 일부 교회에서 또다시 확진자가 발생하자 ‘학습효과’의 영향으로 유사한 집회의 성격을 띤 교회에 먼저 규제를 가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술집, 클럽, 회의장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 곳에서 수백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면 바이러스 감염 특성이 그런데서 빨리 확산되는구나 하고 그곳을 먼저 규제했겠지요. 사실 처음엔 확진 환자가 다녀간 극장을 폐쇄 조치했더니 다른 지역의 극장도 모두 폐쇄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학습효과 때문입니다.

학습효과가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긍정적인 학습효과도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19 대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을 받는 이유도 예전에 사스나 메르츠 사태를 겪어봤기 때문에 그 학습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유명한 모 목사님이 “이곳에 오신 분들은 감염병에 절대 걸리지 않고, 걸린 분도 다 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치료해 주실 줄 믿습니다.”고 하신 말씀처럼 교회 내에서 다 해결되면 뭔 말을 하겠습니까? 그게 아니고, 교회에서 감염되고 사회에서 번져서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하는 것이지, 교회의 예배가 잘못되었고, 기독교가 잘못됐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 강행”이란 말을 정부나 매스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교회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 즉 몇몇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한국교회 전체로 일반화시켜서 기독교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집단으로 매도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치유하는 예배
교회는 “예배 강행”이 “방역 방해”가 아니라 “치유하는 예배”, 즉 예배의 본질과 정체성은 성전예배나 인터넷 예배나 다를 바 없지만, 정신적 패닉상태에 빠져 고통당하는 소수의 교인들을 예배를 통해 치유하는 것 또한 코로나19 감염병 피해자들을 돕는 사역의 일환이라고 하는 것을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외적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시민들에 나눠줌으로 고통을 함께 하는 것만이 교회의 선한 행실이 아니라 내적으로, 방역조치를 철저히 하면서 신도들의 심리적 상태를 점검하고, 심적 고통과 금단증상 등을 치유하기 위해 작은 예배를 드리는 것 또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선한 행실인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자연스럽게 “예배 강행”이란 말은 사회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고, 교회의 선한 행실이 도리어 사회에서 칭찬을 받아, 신천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앞장서서 위기에 빠진 나라, 고통받는 백성들을 건져내고 도와줄 기회의 때입니다. 여태 뭘 해도 드러나지도 않았고, 알아주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선한 행실을 숨기려해도 드러날 것이고, 몰래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사회가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울 때, 침착하게 질서를 잡고, 사람들을 위로하고, 묵묵히 섬겨나갈 때, 신천지로 인해 추락한 이미지가 회복될 것이고, 이단들이 박멸되었으니 건강하고 건전한 교회는 수면 위로 확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여,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라
지금은 정부 욕할 때 아닙니다. 분열을 막고,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재난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 후에 비난하고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수고하는 의료진을 격려하고, 최악의 사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정부를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응원할 때는 응원해 줍시다.   국가 재난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악한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교회는 교회가 할 일에 힘 씁시다. 

지금은 욕 먹더라도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소금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녹아지는 순간 자신의 모양은 사라져 드러나지 않습니다. 맛본 사람도 무슨 반찬이 맛있다고 하지 소금이 맛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참 맛을 낸 역할을 소금이 했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는게 소금의 삶입니다.

등불은 세상 밝을 땐 됫박으로 덮어놨다가도, 세상이 어두울 때 높이 솟아올라 자신의 몸을 태우고 태워서 세상을 밝힙니다. 사람들은 밝아진 방 안에서 멋진 그림도 감상하고, 잃어버린 보물도 찾지만, 뜨거운 등불은 오래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태워져 어둠을 밝히고, 자신보다 주님을 더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등불의 삶입니다.

바로 지금 주님이 맛집을 찾아다니십니다. 딱딱하고 거친 소금 덩어리만 쌓인 소금창고가 아니라 소금이 녹아져 깊은 맛을 우려낸 그 맛집을 말입니다.  
(마 5:16, 개역)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벧전 2:12, 개역)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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