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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아니라 ‘진료거부 담합’ 조기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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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31  11: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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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자에게 부여된 단체행동권 없는 의사
 
                                                              
조기숙(1958년, 이화여대 국제학부 국제학전공 교수) 이대 정외과 졸업, 인디애나 대학교 정치학 박사, 2005년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최근 활발한 페이스북으로 정치현안에 대하여 글을 쓰고 대화한다.

1
어제 내가 존경하는 한 교수님이 문화인류학자인 Eunhee Kim님의 글을 공유해 언뜻 보면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 이에 대한 반론을 썼다. Kim님의 다른 글도 읽어보았는데 그 동안 내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게 많아 반가웠다. 가령, 나는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유교적 페미니즘을 지니고 있다며 비판한 바 있는데, 운동권의 도덕적 사고가 근대 사회가 요구하는 이익 중심의 사고와 괴리돼 있다는 이 분 주장에 공감한다. 하지만 의료 갈등 관련 핵심인 다음의 주장은 여러 가지 논리적 허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의사들의 파업이 보여주는 정부와 의사들 간의 격심한 갈등은 전문가의 노동과 직업의 의미를 둘러싼 문화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교적 정의감으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운동권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갖고 있는 전문가에 대한 인식은 지극히 중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략...운동권의 유교적 세계관은 전문가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문가가 성실히 열심히 자기 분야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에 기여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운동권의 관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돈받고 일하는 것이지 사회정의 혹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권 정부는 "공공의료"를 행할 의사를 양성할 '공공의대'를 별도로 설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의사들은 이에 대하여 분노하게 된다."

<현정부와 의협의 갈등이 문화전쟁이라는 Eunhee Kim님의 해석은 타당한가?>

2.
첫째, 전제가 틀렸다. 대통령이 나서서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으로 의사의 공익 기여를 치하한 걸 그새 잊었는가. 현 정부가 공공의대를 설립하려는 이유는 의사가 공익에 봉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요즘 젊은 의사들이 아무도 지역이나 비인기과에 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기존 의대에서 학생 정원을 늘려 국가 장학금으로 지역의를 키울 수만 있다면 굳이 공공의대를 신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 최우수 학생이 의대로 몰리는 이유는 의사의 경제적 보상이 최상인 직업군임을 증명하는데, 과연 국가 장학금만으로 ROTC로 장교를 키워내듯 지역의를 키워낼 수 있겠는가. 의협이 당장 지역근무를 자원할 전공의 명단, 비인기학과 자원 명단을 제출한다면 정부도 공공의대 정책을 포기하리라 생각한다. 의협은 자체적으로 의사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계획을 무력화시키길 기대한다.
   
 
<운동권이 전문가를 무시하는 진짜 이유>

3.
둘째, 운동권의 유교적 세계관이 전문가를 무시하는 중세에 머물러 있어 무시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운동권이 전문가를 무시한다는 말은 나도 늘 해왔던 주장이다. 같은 사안을 바라봐도 일반인은 육안으로 본다면, 전문가는 현미경으로 보는 것과 같다.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전문가의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이 전문가를 무시하는 이유는 학습이 부족해 보는 눈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한 이유라고 본다. 사람을 써도 뭘 알아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권은 젊은 날의 도덕성이 승리했고, 성취를 이뤘기 때문에 그 때 정의의 길을 택하지 않고 비겁하게 공부해서 전문가가 된 사람들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지닐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전문가의 조언을 나도 다 아는 거라며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 전문가들이 힘 있는 자에 기생하며 얼마나 자주 곡학아세로 힘없는 자들의 수탈에 기여했는지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운동권이 전문가를 무시하는 게 근대적 의미의 이익추구를 무시하는 중세적 세계관 때문이며, 따라서 현 정부와 의협의 갈등이 문화 전쟁이라는 주장은 그 동안 민주 정부와 의협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협상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발견되는 전문가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수준의 적대감도 일부는 최근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되는 포퓰리즘 분위기에서 비롯되지만, 상당수는 Kim님이 주장하는 대로 유교의 나쁜 폐해로 인한 경험의 산물인 지배층에 대한 불신이다.

<의사는 직업윤리가 우선인 전문가, 단체행동권 없어>

4.
셋째, 근대적 세계관에 따르면 의사가 이익추구를 위해 파업하는 게 정당하다는 이 분의 주장은 황당 그 자체이다. 나는 의사들도 당연히 밥그릇 싸움 할 수 있다고 본다. 의대생들이 의사고시를 거부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코로나 와중에 급작스럽게 공공의료 확대안을 낸 정부를 비판하고 의협의 편을 들었다. 학생은 아직 의사가 아니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할 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의협에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의협의 진료거부 담합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면서부터이다. 집단 진료거부를 해도 응급환자가 죽지 않을 정도의 책임의식만 있었다면 나는 불편해도 의협 비판에 가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언론의 농간에 넘어가 무심결에 ‘전공의 파업’이라는 말을 썼는데, 실수를 인정한다. 의사는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파업이라는 단체행동할 권리가 없다. 의사는 라이센스 하나면 죽을 때까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직능단체 소속이라 전문직에게 요구되는 윤리강령(히포크라테스 선서)을 지킬 의무가 있을 뿐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조에 허용된 근로3권 중 단체행동권은 헌법상 권리이지만 공무원과 주요방위산업체 종사자는 법률에 따라 단체행동권이 제한되고, 허용되는 경우에도 사용자에게 부당한 행위나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경우에는 일정한 행위의 제한 · 금지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물며 사회적 강자인 전문직 의사들이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자신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무시하고, 진료거부 담합을 하는 건 근대적 윤리강령으로 봤을 때 더욱 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전공의 진료거부 담합이 정치투쟁으로 보이는 이유>

5.
지금 의협이 주도하는 건 전공의 진료거부 담합이고, 병원의 휴진 담합이다. 단체행동은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가 자신의 밥줄을 걸고 강자인 사용자에 대항하여 근로조건의 유지 · 개선을 위하여 사측과 벌이는 행위이다. 그런데 현재의 전공의 휴진은 자신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조를 통한 사측과의 교섭도 아니고, 전공의협의회를 통한 뚜렷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치 투쟁이다. 정부가 공공의료확대안을 보류하겠다고 한 발 물러났는데도 실력행사를 한 이유는 의료위기를 기회로 자신들의 완력을 보여주겠다는 힘 자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정부정책에 화가 났을 것으로 이해한다. 코로나로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긴 의사로서는 배신감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후퇴한 후에도 실력행사를 한 것은 우리사회 의사가 얼마나 전문가로 불릴 자격이 없을 만큼 직업의식이 바닥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환자 한 명이 죽으면 의협을 비난하지만 환자 백 명이 죽으면 문재인정부를 비난할 것”이란 기대로 진료거부 지속을 주장하는 강경파들에게 경고한다. 조선시대 천시를 받던 상인도 상도를 지켰다. 직업윤리가 없는 한국 전공의들이 미국 의사 커뮤니티에 하소연했다가 당신들 미쳤냐고 욕먹는 화면을 공유한다. 코로나 방역과 치료로 한껏 올라간 한국 의사들의 명예를 국제적 망신을 당하며 스스로 추락시켰다.

<전문직의 직업윤리가 근대적 세계관의 핵심>

내가 미국 유학시절 뼈저리게 배운 게 이해충돌을 회피하는 전문가의 직업윤리이다. 근대 세계관의 핵심이 바로 직업윤리에 반영되었다. 의사로서의 자부심은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지, 의사자격증에서 나오지 않는다. 직업윤리에 충실함으로써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기 바란다!
정부도 강경일변도에서 벗어나 의사들의 서운함과 분노의 마음을 다독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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