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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23  22: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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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노동주일 공모전 당선작 소개

영등포산업선교회(총무 손은정 목사)에서는 노동주일을 맞아 ‘노동주일 설교문’과 ‘노동주일 성도의 약속 10가지’를 공모했다. 이번에 당선된 설교문과 성도의 약속 10가지를 영등포산업선교회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

총회노동주일(4월 25일, 세계노동절 직전주일)은 제44회 총회에서 결의하여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우고,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일자리가 없어 고통당하는 실직자와 가족, 비정규직 노동자 및 일용직 노동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제정된 주일이다.

   
 

 

               성도의 약속 10가지 당선작_공동 2등(정혜진)

1. 교회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희생’으로 간주해온 행위들을 ‘노동’으로 관점을 바꿔 바라봅니다.

2.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노동에 대한 임금을 근로기준법에 맞춰 지급하고, 사정이 어려울 시에는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 있는 태도로 개선 방안을 모색합니다.

3.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등 불안정한 노동 현장에 있는 성도들과 노동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성도들의 삶에 공동체적 관심을 기울입니다.

4. 노동 환경에 성, 나이, 장애, 지위, 학력, 지역 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지는 않은지 성찰하며, 관습적인 성별분업을 경계합니다.

5. 친밀성을 위한 다양한 감정노동(정서적 지지, 배려, 경청 등)이 특정 성, 나이, 지위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합니다.

6. 가사노동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갖고 참여하며, 그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7.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고용관계를 맺을 시에 반드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내용에 대해 충실히 소통합니다.

8.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 근로기준법에 대한 이해를 갖고 이를 명확히 이행합니다.

9. 노동자는 노동 환경과 조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요구할 정당한 권리가 있음을 알고 이를 당당히 행사합니다. 고용인은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노동자 관점으로 노동 환경을 성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10. 가정과 교회, 사회가 노동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깨닫고, 노동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무임을 알며 이를 위해 노력합니다.

 

                    설교/ 예수,  노동,  공동체 (김신약)

1. 성경본문 / 요한복음 21장 1-14절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2. 작성 취지와 주제

예수 공동체는 제자들의 노동의 현장에서 시작 되었으며,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노동주일을 맞이하여 그리스도인은 예수 공동체의 가치에 동참하고, 노동주일이 제정 되었던 이유인 시대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3. 대상 / 본 설교문은 <노동주일 공예배>를 상정하여 작성되었습니다.

4. 설교 / 예수, 노동, 공동체

1. 인생은 전쟁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동의가 되는 말입니다. 삶 전체를 전쟁 같다고 하기는 어렵더라도 살다보면 전쟁과 같은 특정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죠. 가정에서, 직장에서, 때로는 교회에서 우리는 전쟁으로 비유 할 만큼 극렬한 상황에 처하곤 합니다. 그것은 과업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의견 충돌, 갈등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죠. 대상이나 장소, 이유는 다양 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전쟁과 같이 치열한 순간이 우리의 삶에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도 여러 차례 전쟁과 같은 시기를 겪었습니다. 선교 초기에는 갖은 오해와 차별, 질병 등과 맞서야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종교정책에 굴복하기도 했습니다. 태평양전쟁, 한국전쟁과 같이 비유가 아닌 실제 전쟁을 겪기도 했지요.

해방 이후 장로회 내적으로 가장 갈등이 심했던 시기를 꼽으라면, 저는 1959년 즈음을 말하겠습니다. 당시는 장로회가 선교 75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습니다. 그런데 선교 75주년 기념식이 계획 되어 있던,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44회 총회’는 첫날부터 소란에 휩싸입니다. 상대를 비방하며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당시 총회록을 살펴보면, 총회가 진행 되던 수일간 거듭하여 장내가 소란하였고, 회의가 중단되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극렬한 갈등의 종점에서 장로회는 둘로 나뉘고 맙니다. 오늘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의 분열이 바로 이 때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뻐하며, 주 안에서 한 몸이요, 한 가족임을 확인해야 하는 선교 75주년에 장로교회는 어느 때보다 큰 갈등과 분쟁에 휩싸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전쟁 속에서도 사랑은 꽃핀다.’는 말도 있지요. 아무리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아니 어쩌면 치열한 상황이기에 우리는 더욱,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집중 하게 됩니다. 가장 본질 적인 것, 가장 필요한 것, 전쟁 중일지라도 이것만큼은 꼭 해야 하는 것에 힘을 쓰게 되지요. 그렇기에 전쟁의 순간에도 여전히 삶은 이어지고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곤 합니다. 1959년, 전쟁터로 변해버린 총회 현장에서도 반드시 결의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쟁의 순간에도 반드시 해결해야 했던 일, 더 이상 미룰 수 없던 일,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노동주일”을 제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장로교 내부에서 가장 극렬한 갈등이 벌어지던 해, 우리의 “노동주일”이 제정 되었습니다.

2. 우리는 사람이지요.
사전은 사람을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어떤 지역이나 시기에 태어나거나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자’라고 정의합니다. 다양한 말로 표현되지만, 사람을 정의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존재, 또는 살아갔던 존재라는 부분입니다. 사람에게서 삶, 생명을 제외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삶,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물건이나 재화를 얻으려는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노동’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사람과 노동은 분리 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우시던 장면도 이 노동의 현장, 치열한 일터와 맞닿아 있습니다. 성경은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던 그 현장에,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을 깁던 그 현장에, 세리 마태가 세관에 앉아있던 그 현장에 예수께서 오셨음을 기록합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노동의 현장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던 제자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 후 그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예수의 노동에 동참 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와서 보라.”, “나를 따르라.” 노동의 현장에서 예수께서 말씀 하실 때, 노동자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예수와 동행하는 어부, 예수의 가치를 따르는 노동자가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노동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의 생명을 위해 살아가던 노동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살아가는 노동으로의 변환을 말합니다. 어부들끼리의 노동에서 어부와 세리, 목수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노동을 말합니다. 나의 생명에서 나와 이웃의 생명을 추구하는 노동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노동은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노동,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노동, 연대하여 이웃들과 동행하는 노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가르침을 들려 주셨고, 그런 삶을 살아 내셨지요.

여러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까? 삶을 일구려 최선을 다해 노동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노동하는 그 현장에도 예수께서 다가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물을 던질 때, 그물을 정리 할 때, 세관에 앉아 있을 때, 나의 일을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가와 “이제 나와 함께 일하자”고 요청하십니다. 함께 살아가자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을 따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라도, 옳다고 여기는 일이라도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결국은 공공의 유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가장 먼저 추구하고, 직업을 차별하며, 노동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과도한 불로소득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노력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빼앗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가치를 따라 함께 노동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겠노라 다짐했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살아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가르침을 부담스러운 것으로, 내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심지어는 바보 같은 것으로 여기며, 투기와 거짓에 동참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떤 특정 직업을, 어부와 세리를 얕잡아 보기까지 합니다. “나부터 잘 돼야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일단은 성공한 뒤 선을 행하면 되지”, “선행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지”라고 말 할 때, 그 말에는, 그 성공의 과정에는 이웃이 빠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3. 오늘은 노동주일이면서 부활절 넷째 주일이지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예수의 가치를 뒤쫓던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노동의 현장에서 불러 세우신 공동체가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셨지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기자는 부활한 예수와 제자들의 만남, 예수의 승천을 기록하며 복음서를 마무리하지만, 요한복음의 기자는 오늘의 본문을 덧붙입니다.

본문은 예수의 가치를 쫓다가 실패하곤, 제자가 되기 전과 같은 노동의 자리로 돌아간 이들과 부활하신 예수가 만나는 장면입니다. 베드로와 도마, 나다나엘, 안드레, 요한 등 일곱 명의 제자들이 밤 새 물고기를 잡고 있는 장면은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첫 제자로 부르시던 누가복음 5장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노동의 현장에서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낙심하고 있던 이들을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라보시고 그들의 노동에 동참하시어 그물을 내려 물고기를 잡게 하십니다. 다시 제자들과 예수가 함께 노동하는 자리, 그 자리에는 식탁이 있었습니다. 밤 새 노동한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께선 숯불을 피우시고 생선과 떡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곤 자신과 함께 노동하기를 포기했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밤 새 노동하며 수고한 나의 제자들아, 나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자.”

예수와의 노동을 포기한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는 다시 다가오셔서 함께 일하시고 함께 식사하시며, 우리의 노동이 이와 같아야 함을 보여주십니다. 식사를 마친 후엔 베드로에게 거듭 “내 양떼를 잘 먹여라. 잘 돌보아라.” 말씀 하시며, 제자들이 다시 한 번 예수의 노동 공동체로 들어와 더불어 일하며 살기를 청하십니다. 이후 예수는 제자들의 곁을 떠나셨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쫓는 공동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공동체는 모두 더불어 사는, 생선과 떡을 나누어 먹는, 나를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 그런 노동을 하는 공동체여야 할 것입니다.

4.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노동은, 우리의 삶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나요?
무엇을 따라가고 있나요? 우리의 노동은, 나의 노동은 직업과 성별과 인종과 지역과 국가의 차이를 넘어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노동입니까? 모든 생명체가 동행하기 위한 노동입니까? 조금 번거롭더라도 조금 더 힘이 들더라도 우리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일 해 봅시다. 조금은 더 생태를 고민하며, 어떤 차별도 없이 동료를 대하며, 모든 직업과 직책을 존중하며,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어버린 이들과 연대하며 일합시다. 타인의 이익을 갈취하는, 공정하지 못한 방법을 취하는, 결과를 위해선 어떤 방법이라도 불사하는 그런 자리에선 벗어납시다. 그것이 우리가 행해야 할 노동이지 않겠습니까?

나아가 우리의 노동은 시대에 민감한 노동이어야 합니다. 1959년 노동주일을 제정해 달라며 <산업전도 위원회>가 올린 청원서에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있어야만 하는’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전쟁과 같던 44회 총회 속에서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제정 되었던 노동주일은, 노동주일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시대의 요구에 반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지나며 노동의 중심이 ‘일’에서 ‘사람’으로 바뀌는 것처럼, 당시의 ‘산업전도’가 ‘산업선교’로 바뀐 것처럼, 우리의 가치관도, 노동주일의 주제도 일과 실적 보다는 사람으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 제자들의 삶을 바라보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웃의 삶의 현장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의 노동의 현장에 참여하시고 그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신 것처럼, 깨어진 공동체를 다시 노동의 현장에서 세우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의 삶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노동의 현장에서 예수 공동체가 시작 됐음을 기억하며 그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런 공동체를 이루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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