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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5.09  12: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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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4회기 안양노회 한성도목사(부노회장)

   
 

본문: 요 9:7                       제목: 번역하면

어떤 사람이 목사로서는 처음으로 노회에서 설교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선배 목회자들 앞에서 설교하려니 도무지 무슨 설교를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총회장을 하시고 은퇴하신 아버지 목사님에게 전화하여 여쭙니다.“아버지, 선배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설교해야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떨리기만 하고. 어쩌죠?”그랬더니 아버지가 대답하십니다.“걱정하지 말고 아무 말이나 해라. 목사들은 다른 사람 설교 안 듣는다. 특히 장로교 목사들이 심하다”저도 이 조언을 믿고 마음 놓고 아무 말이나 하고 들어가려 한다. 여러분께서는 그냥 듣는 척만 해 주시면 제게 큰 영광이 될 것이다.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강영안 교수가 올해 3월에 낸 철학자의 신학수업 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멋지게 사용하는 경구가 있다.“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이 말은 누가 했을까요? 스피노자. 정말 맞습니까? 하지만 스피노자의 전집을 다 읽어도, 스피노자의 기념관에 가도, 스피노자가 머물렀던 그 어떤 곳에도 이런 문구는 찾을 수 없다. 아마 종말의 때까지 못 찾을 게 분명하다. 팩트 첵크를 해보면 재미난 사실이 있는데, 이 명언을 스피노자의 것으로 알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구글에서 검색을 국외로 확장해보면 바로 발견한다. 이 경구는 스피노자가 아니라 마틴 루터의 말로 검색된다. 루터가 살았다고 하는 아이제나흐의‘루터 하우스’가 보면 돌비석이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돌비석에 이 문구가 정갈하게 새겨 있고, 맨 끝에“Martin Luther”라고 이름이 박혀 있다.

이런 오류에 대해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는 최기영 교수에 따르면 1962년 4월 5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에 이런 짧은 글이 실렸다. 여기서 필자는 나무 심기를 독려하면서“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스피노자인가 누군가가 말했다지만으로 불확실하게 표현했다. 그 다음 부터는 이 기사를 퍼 나르면서 모두 스피노자가 한 말로 단정해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전국민이 사기에 걸려든 것이다.  정확하게 해석을 하지 못한 결과인 것이죠. 바르게 해석해서 알지 못하면 이런 일들이 수없이 나타나게 된다. 목사들이 사용하는 예화의 사용도 이런 일들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

오늘 본문에는 독특한 단어가 나타난다. 번역하면. 성경에는 번역하면 이라는 본문이 10곳이 나옵니다.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골고다라 번역하면 해골의 곳,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다비다라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엘루마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굳이 번역하면 이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함은 그 사건이나 그 의미를 더 정확하게 알리려 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번역해 주시는 설교와 삶을 사셨다. 그 외에도 구원, 영생, 사랑 등 그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얻거니, 그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번역하여 말씀하시고 살아주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번역하여 오늘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저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장로교 목사와 장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장로교가 무엇인지, 장로교 목사와 장로로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바르게 번역하여 알게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교리적이고 법적인 것은 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를 자세히 보시면 된다. 저는 짧게 제가 경험했던 장로교의 정신들을 이 시간에 나누고자 한다. 3년 반동안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가장 큰 노회인 글래스고 노회원으로 사역했기에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나누고자 한다.

1. 장로님들의 가운 착용.
스코틀랜드가 천여년의 카톨릭 국가에서 존 녹스의 헌신으로 로교 국가가 된다. 하루 아침에 장로교로 변화가 쉽지는 않은 것이죠. 그러다보니 천주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장로교에 대한 불만을 품고 목사들을 테러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오면 목사들은 가운을 입고 있으니까 표적이 금세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님들이 가운을 입기 시작했다. 목사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사님 대신 테러를 당하기 위해서. 얼마나 훌륭하십니까?

2. Manse 이 단어의 뜻을 아십니까?
especially in Scotland, a house in which a minister of a church lives, provided by the church:
만스는 장로교 목사관이다. 그 동네에서 제일 넓고 전망이 좋은 집을 정한다. 그래서 장로님들께 물었더니 목사님이 넓은 환경에서 설교 준비하시고 목양해야 은혜를 받지 않겠는냐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참 좋았다. 지금도 유효하다. 제가 스코틀랜드 장로회 홈페이지에서 만스 운영에 대한 것을 프린트 했다. 모든 가재도구를 다 제공하며 일체의 관리 보수도 책임지는 것이라고 나왔다. 노회는 일년에 한 번씩 제대로 하는지 점검해서 보고해야 한다.

3. 클러지셔츠, 로만칼라
가톨릭에선 가톨릭 신부들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19세기 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로 부터 시작한다. 글래스고우 노회 소속인 도널드 맥러드 목사(Rev. Donald Mcleod)가 셔츠에 착용이 쉽게 흰 목띠 형태의 옷깃(칼라)로 발전시켜 처음으로 고안해낸 것이 오늘의 클러지 칼라, 즉 로만칼라라고 부르는 옷의 시작이다.

가끔 이 옷의 유래가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회가 아니라 영국 성공회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팩트를 혼동하신 것이다. Glasgow Herald 1894.12.6. 기사에서 이 내용이 처음 언급되었기 때문에 이런 혼동이 생겼다. 이 신문 기사는 현대적 형태의 클러지 셔츠를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가 시작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 이전 자료는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다.

19세기말 우리나라에 오신 스크랜턴 목사도 클러지 칼라를 즐겨 입은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그의 선교초기 사진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20세기 초만 해도 개신교 목사들의 일반적인 옷이었다. 이에 비해 가톨릭 교회에선 그 시작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가톨릭 교회에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인 1965년이 되어서야 사제들의 옷으로 정식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게 참 재미있는 것은 가톨릭 내부에서 클러지 셔츠는 꽤 논란거리였다는 점이다. 개신교 목사들의 옷이지만 이미 1960년대 유럽 가톨릭의 젊은 신부들 사이에선 이 옷이 크게 유행했었고, 이런 유행을 거부하기 어렸웠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사제들의 정식 제의복으로 결정된 후에도 가톨릭 내부적으로 찬반논란이 일었다. 가톨릭 신부가 개신교 목사를 따라서 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재미있다. 원래 개신교 목사의 옷이 가톨릭 사제의 옷이 되었는데, 개신교 신자들은 신부들의 옷이라고 희한하게 생각하고, 가톨릭 신자는 목사가 신부 옷을 입었다고 언짢아한다. 분명한 것은 정신이다. 근검 절약하고, 성직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하기 위함이다.

4. 사례비가 동일하다.
교회에서 안 받고 교단에서 받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400만원이다. 약간의 수당이 있겠지만 부목사든, 담임목사든, 은퇴목사든, 큰교회든, 작은교회든, 도시교회든, 시골교회든 똑같다. 목사로서 차이를 두지 않으려는 것이다.

5. 노회시 출입할 때, 반드시 단상을 향해서 목례를 하면서 드나든다.
이런 예의 있는 모습은 우리 노회에서부터 적용했으면 한다.

장로교를 잘 번역해서 좋은 전통, 좋은 모습, 잘 알리고 보여주는 좋은 노회원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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