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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16  20: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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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이후 마을목회를 통한 교회 선교 활성화 방안"

노영상 원장(총회한국교회연구원, 전 호남신학대학교 총장, 전 한국기독교학회 회장) 

   
 

1. 코로나19 시대의 마을목회
오늘 우리 인간을 위시한 지구생명체들은 예전 겪어보지 못한 심각한 위기 속에 빠져있다. 인구증가와 기아의 문제, 핵전쟁의 위기, 기후변화, 인수공통감염병, 가정의 붕괴, 경제 양극화, 자원의 고갈 등의 문제로 우리 인류가 더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를 하는 때가 되었다. 과학의 발전은 우리 인류에게 편리함은 주었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험들에 더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19로 모든 것들이 얼어붙었다. 경제는 이전 IMF 때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도쿄올림픽도 연기된 바 있으며 문화행사를 비롯한 모든 모임들이 줄이어 취소되고 있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들이 이번 감염병으로 인해 움츠리고 있으며, 그 기간이 얼마나 갈지 몰라 두려워 하고 있는 중이다. 인간은 달에 우주선을 발사할 만큼 그 힘이 커졌지만, 작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오늘의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는 엔데믹 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엔데믹’(endemic)이란 “팬데믹 단계에서 종식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풍토병으로 고착화된 감염병을 의미하는바 말라리아, 뎅기열 등이 이에 속한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가 나옴으로써 이 전염병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상태로 종식되지 않은 체 지속되리라 보는 견해들이 많은데, 우리는 이를 엔데믹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같은 코로나19 엔데믹 시대의 마을목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와 교회들이 어려워졌지만 할 일들은 더 많아졌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과 교회들이 적지 않으며,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지역에 밀착되어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목회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단은 그간 ‘마을목회’에 대한 연구를 진척해왔는바, 이를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마을목회를 통한 교회선교 활성화 방안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2. 지역사회 친화적 목회로서의 마을목회
‘마을목회’가 한국교회의 화두가 된 것은 대략 10년 전쯤 된 것 같다. 필자도 2012년 호남신학대학교의 총장으로 부임하여 호신대의 주 연구과제를 ‘마을목회’로 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교수들과 지역의 목회자들이 함께 마을목회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기획하에 여러 번에 걸쳐 모임을 가진 적도 있었다. 이 같은 마을목회는 마을만들기 운동과도 연결되는데, ‘마을만들기’란 용어는 1950년대부터 일본에서 나온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선 이 운동이 21세기에 들어 정치권에서 채용되어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방자치 단체들로 확산되기도 했다. 서구에서는 이런 마을만들기 운동이 ‘지역사회 개발’(community development)이란 개념으로 많이 다루어졌었다. 
몇 년 전 ‘마을목회’를 남인도교회에서 온 대표들에게 강의하며 영어로 표현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보통 영어로는 ‘community ministry’(지역사회목회)나 ‘small town ministry’(소도시목회)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표현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영어로 ‘village ministry’라는 표현을 채택하기도 하였지만 그 말로도 충분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총회의 변창배 사무총장이 한글 그대로 ‘maul ministry’로 하는 것이 적합한 것 같다는 말을 나누면서 영어로는 그렇게 표현키로 하였다.
6. ‘마을목회’는 서구의 선교적 교회론이나 지역사회목회와는 다른 보다 폭넓은 의미를 갖는 목회개념으로, 한국교회가 창안한 오늘의 시대의 새로운 목회방안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커뮤니티 또는 지역사회란 말은 행정상의 단위에 보다 연관된 반면, 마을이란 사람이 손을 뻗으면 달 수 있는 인간의 정감과 연결되어있는 단위로서, 물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삶과 연관된 개념이다. 아무리 물적인 거리상으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정신적인 공동체성과 하나 됨이 형성되어 있지 않는 곳은 마을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이런 견지에서 필자는 지역사회목회라는 개념보다는 마을목회라는 개념을 선호한다.
필자가 원장으로 있는 총회한국교회연구원은 총회의 정책과 미래전략에 대해 연구하는 기관으로 102회 총회로부터 총회정책으로서의 ‘마을목회’에 대한 연구를 수임하여 지난 4년여 간 마을목회에 관한 책 20권을 편찬하였는데, 그중 14권의 책은 『마을목회개론』으로서 이 글의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에 있어 우리는 이 같은 마을목회의 정신으로부터 지역사회 친화적 목회를 강조하고 싶다. 오늘 우리 지역들은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이럴 때 교회가 보다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살펴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한다면 교회의 대사회 이미지가 더 향상될 것이라 생각한다.

3. 마을목회의 성경적 기반
마을목회는 한국교회가 함께 추구하여 온 자생적인 목회전략으로, 우리는 보통 그 마을목회를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으로 마을을 품고 세상을 살리는 목회”로 정의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사람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회개하고 주를 믿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마을목회는 양우리 안에 있는 99마리의 양을 놔두시고, 우리 밖의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시는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부각한다(누가복음 15장 4절). 하나님께서는 믿는 신자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만, 길을 잃고 헤매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많으시다. 이와 같이 마을목회나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면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을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초대하여 교제를 나누는 중 그들이 점차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되어나가는 순서를 강조한다.
로마서 3장 29절은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라고 말하는데, 마을목회의 신학적 기반이 되는 말씀 중 하나다. 당시 사람들은 야웨 하나님을 일종의 민족신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 되심을 깨닫고 선교의 일에 진력하였다.
우리는 기독교의 복음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한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포용적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2천여 년 전 사도 바울이 유대인의 벽을 넘어 기독교를 세계를 위해 열어놓았듯, 오늘의 우리도 교회 밖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마을목회’의 방안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며, 이러한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마을목회를 더욱 진작시켜 우리 교회들을 활성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4. 마을을 교회 삼아, 주민을 교인 삼는 포용적 목회
이에 우리는 마을목회의 모토를 “마을을 교회로, 주민을 교인으로”로 잡았다. 이와 같은 모토를 말하니 이를 잘못 이해하는 분들도 있었다. 주민을 교인으로 다 만들자는 것은 성장주의적 교회 모습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모토는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주민을 교인으로 품어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로 생각하자는 취지에서 그런 모토를 만든 것이다. 교회 안으로만 응축된 게토화 된 공동체가 아니라, 온 마을을 향해 나아가 마을심방을 하며 마을 전체를 돌보는 교회가 되자는 것이다. 우리의 목회는 교회 내의 목회로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 속으로 나아가 교회 밖을 포괄하는 목회가 될 때 구원을 향한 더 나은 접촉점이 생길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마을을 교회로, 주민을 교인으로”라는 모토는 “마을을 교회 삼아, 주민을 교인 삼아”란 명제로 바꾸면 더 명확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로 말미암아 교인이든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든 모두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 교회는 교인과 비교인의 차별을 두지 않고 섬기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듯, 우리도 교인뿐 아니라 마을의 주민 전체를 보살피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에 코로나19 시대의 목회는 교회만을 섬기는 리더십에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마을과 주민 전체를 아우르는 포용적 목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5. 공동체적 목회로서의 마을목회
마을목회는 개인적 행복과 함께 공동체적 행복에 관심을 갖는다. 이런 견지에서 마을목회는 지역사회를 공동체적 가치를 통해 구성해나갈 것을 강조한다(요 17:21-23). 마을목회는 오늘 우리 사회의 위기가 지나친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하여, 경제, 교육, 복지, 환경,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에 기독교가 강조하는 사랑의 하나 됨과 공동체성 및 공동성을 불어넣을 것을 주장한다.
이윤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된 구조들이 아니라 서로의 행복을 위해 함께 일구어나가는 적극적인 구성 주체들을 만들어 보려는 것이 마을목회의 주요 관심이기도 한 것이다. 마을교회, 마을학교, 마을기업, 마을은행, 마을병원, 마을복지, 마을협동조합, 마을은행, 청년들을 위한 마을 공유주택, 마을환경 지킴이 등 우리의 구조들을 공동의 유익을 위해 조율하려는 것이 마을목회의 의중이기도 한 것이다.
이 같은 마을목회 사역은 상호 간 하나 됨과 네트워크를 중시한다(고전 12:12). 마을 속의 주민들과의 연대, 지역 교회들의 연대, 교인과 마을주민 사이의 네트워킹, 관청과 다양한 거버넌스들 및 마을의 학교와 기업 등과의 폭넓은 사귐과 관계적 통전성이 마을목회에 활력을 더하게 하는 것이다. 마을목회는 교회의 봉사를 통해 교회 밖의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확장하여 그들이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쉽게 하는 목회전략이다.
고린도전서 12장을 특히 우리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임을 강조한다. 서로 나뉘어 각 지체로서 사역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 몸을 이루는 모습을 이 본문은 강조한다. 셋이라는 개별성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과 같이, 우리의 나눠진 지체들이 하나 될 때 그 안에 성령의 역사하는 생명력이 있음을 마을목회는 강조한다.

오늘 우리는 너무 개인주의적인 파편화된 삶을 살고 있다. 이웃과의 하나 됨과 친교가 우리 행복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잊은 체 서로 분리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에게 밀려오는 모든 아픔과 불행들을 자기 혼자 감당하려 하니 그 짐들이 우리를 너무 짓누르게 된다. 이에 마을목회는 서로의 짐을 져주는 공동적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고 너의 아픔인 나의 아픔이 되는 공감의 삶을 마을목회는 강조하는 것이다. 기실 우리는 이런 불행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는 많은 방안들을 만든 바 있다. 보험제도, 신용협동조합, 사회복지 수당, 은행, 주식회사 등 많은 제도들이 이런 공동적 삶의 방식을 포섭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부분적인 공동적 대응 방식을 보다 폭넓은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내가 먼저 저축한 돈을 나중에 받게 되는 단순한 형식에서 더 나아가, 대책 없는 남들의 고통들에 상관하여 이를 덜어주고자 하는 사회제도들을 더 강화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미 출간된 책들에서 마을목회가 다른 여러 개념들과 연관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공동체 정신, 마을만들기, 주민자치, 협동조합운동, 지역사회복지, 사회적 목회(social ministry), 사회적 기업, 평신도 사역, 네트워크 사역, 공공신학, 선교적 교회, 커먼즈, 공공 디자인, 거주공동체, NGO, 희년사상, 건강도시 운동, 프런티어 목회, 카페 미니스트리 등이다. 본 연구원은 동료 교수 및 목회자들과 함께 지난 4년여 동안 마을목회의 지평을 확장하는 중 이런 다양한 주제들을 섭렵하며 각 주제별로 책들을 편찬해오고 있다.
‘마을’이란 사전적으로는 시골 지역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을 말한다. 그러나 ‘마을목회’는 농어촌 지역의 목회전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그곳의 주민들이 서로 도우며 살 듯 도시에서도 이런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이 필요한바, 지역공동체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동네 속에 세우기 위한 목회가 마을목회다. 그러므로 마을목회는 농어촌에만 해당하는 목회가 아니다. 오늘날엔 도시가 공동체성이 더 무너진 곳으로, 오히려 도시에서의 마을목회 운동이 더 필요하다. 도시에서는 동 정도의 테두리를 마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으며, 농촌에서는 면 정도의 단위를 마을로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 정도 크기의 지역을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목회가 마을목회다.

오늘 우리 사회는 도시건 농촌이건 공동체성이 상실된 곳들이 되었다. 서로 자기 살기 바빠 남에게는 눈길 한 번 주기 어려운 각박한 삶이 된 것이다. 마을목회는 공동체성이 상실된 오늘의 삶을 전환하여 우리의 동네들을 정이 있고 살가운 공동체로 만들고자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도움을 주고 마을의 일들을 함께 의논하며,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문화가 있는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마을목회다.
오늘 우리는 너무 개인주의적 행복에 익숙하여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이런 재난의 시대에 나만을 위한 삶의 철학을 가지고는 대처하기 어렵다. 우리는 공동체적 정신을 가지고 서로의 짐을 져주는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재난과 위기에 대한 공동체적 대처가 오늘의 어려움을 더 잘 극복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과 같은 재난의 시대에 필요한 목회는 공동체적 정신을 구현하는 마을목회인 것이다.

6. 마을목회와 정행의 리더십
21세기 들어 한국교회는 상당히 위축되는 중에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러한 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교회들은 생존을 위한 노력들을 하였으며, 그러한 노력들 중 유의미한 수백의 사례들을 모아 신학자들이 분석하였고, 그 결과 찾아낸 개념이 ‘마을목회’이다. 우리는 그 같은 사례들을 신학화하고 매뉴얼화 하여 오늘의 시대를 향한 새로운 목회 틀거리로 제시하려고 하였으며, 그런 취지에서 처음 만들어진 책은 『마을목회 매뉴얼』(2017)이다.
7. 이와 같이 마을목회는 이론에 앞서 실천을 중시하는 목회다. 마을목회는 예장통합 교단의 교회들이 전개한 현실 목회에서의 노력들을 살펴 만들어낸 이론으로 실천성을 강조하는 운동이다. 이에 마을목회는 신학을 위한 신학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신학을 강조한다. 이전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던 신학으로 민중신학이 있었다. 사회현실과는 밀착된 신학이었지만 목회현장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엔 좀 거리가 있는 신학이었다. 이에 비해 마을목회는 목회와 선교현장에 충실한 사회봉사 신학으로, 사랑의 실천을 구체화하는 목회방안인 것이다. 일종의 정론(orthodox)의 신학이라기보다 실천과 행동을 강조하는 정행(orthopraxis)의 신학으로서, 이론을 먼저 만들고 실천한 것이 아니라 실천을 살펴 이론을 세운 신학이다.

이런 각도에서 마을목회는 이론적 신학의 전개와 함께 실천적 사례들을 중시한다. 이에 본 연구원은 도시의 마을목회의 사례, 농촌의 사례, 선교지의 사례, 기독교 기관들의 사례 등을 모아 꾸준히 책으로 출간하였다. 이론에 관한 책들을 반, 사례에 대한 책들을 반 정도의 비례로 책들을 편찬하려는 계획을 본 연구원을 갖고 있다. 마을목회는 신학자들이나 이론가들이 먼저 만든 신학이 아니며 일선의 목회자들이 먼저 찾아낸 목회방안이다. 그들이 먼저 전진해나간 길을 후방에서 정리하고 다지는 역할을 신학자들이 하였다 볼 수 있다. ‘마을목회’란 이름도 목회현장에서 먼저 나온 것으로, 우리의 이 같은 작업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응원이 되었으면 한다.
이상과 같이 오늘의 코로나19 시대의 목회는 말로만 하는 목회가 아니라, 실천적 정행의 목회가 팔요하다. 말로만 전하는 기독교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통한 사랑의 실천이 오늘의 시대엔 절실한 것이다.

7. 실증전도(demonstration evangelism)에 대한 제안
마치는 글은 요한복음 1장 14절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볼 때 엄청난 하강이셨다. 신이 인간이 되는 수모를 당하시며 그는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다면 이러한 일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말임과 동시, 그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의 우리의 삶에서 현실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줄곧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확실히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오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는 희생적 사랑을 온 인류에게 나타내셨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행동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하나님을 믿게 하며 그 사랑을 경험케 한다. 말씀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 말씀을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복음전파도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케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확실하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다. 말로 설명함을 통해 진리에 다다르는 것보다 그 사랑을 경험케 하는 것이 더 빠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웃에게 그 사랑을 행동으로 드러낼 때, 주님의 복음은 더 확실히 전파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전도를 실증전도(demonstration evangelism)라 하는데, 그 사랑의 말씀을 오늘의 삶에서 드러내는 데 앞장서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정말 험한 삶을 사셨으며, 종국에서는 십자가에서 그의 모든 피를 쏟으시며 운명하셨다. 비참한 최후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사랑 속에 주님의 영광과 구원이 있다. 그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과 열정의 행동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재현이라 생각한다. 사랑하면 행동하게 된다. 우리가 행동해보면 복음의 역동성을 감지하게 된다. 우리의 사랑의 희생을 통해 불행한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멸망의 구렁텅이 있는 사람들이 구원받게 된다면, 그러한 어려움을 마다할 일이 없다. 주님께서 피를 쏟으며 뼈가 부서지도록 이 땅의 삶을 사신 것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이 같은 사랑의 수고를 통해 주님의 복음은 더욱 널리 전파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더 높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 확신한다.

8. 그러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
위와 같은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전환기에 우리 교회는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에 대해 기독교 복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질문하게 된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교회의 할 일은 더 많아진 것 같다. 어려운 사람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재정을 풀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다. 앞으로 경제적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인데, 이에 대한 긴급구조 체계를 교회적으로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 이들이 그들의 생명을 잘 지탱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고령층이 경제적으로 큰 곤란함 가운데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고충을 잘 이해하고 적극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 코로나19로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학교들이 수업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려운 때가 되었으며, 회사들의 재택근무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회 예배당에 20%만이 앉을 수 있도록 하여 교회 출석률도 급감했다. 이런 시대에 비교적 규모가 있는 교회들은 온라인 예배 등의 대체적 수단을 만들어 대처하고 있지만, 작은 교회들은 그것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다. 이에 큰 교회들이 작은 교회들의 온라인 목회를 도와줄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온라인 교회개척 플랫폼도 만들어 새로운 교회의 출발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겠다. 특히 온라인 교회개척을 하며 이를 카페 미니스트리와 연결하는 기획을 하고 중인데, 이에 대한 노력들도 잘 결실하였으면 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이 지체되면서 젊은 목회자들이 갈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후배들을 위한 목회의 길을 찾아주어야 할 것이다. 본 교단 총회도 ‘프런티어목회센터’를 만들어 학교에 필요한 교목, 군선교사, 경목, 사목, 형목, 원목, 마을목회 전문가 등으로 훈련하여 일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작은 교회들이 붕괴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목회자의 이중직 문제를 거론하였으며, 이런 이중직의 직종으로서 본 교단은 마을목회에 관한 일자리를 권장하고 있다. 어린이집, 노인 보호시설, 방과후 학교, 공동육아, 마을기업 등을 본당 외의 교회 건물들을 사용하여 운영하면서 이에 대한 정부 기관의 지원을 받는 방안도 검토하면 좋을 것 같다.
오늘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병폐 중 개인주의적 행복론의 만연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만 성공하면 되고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들이 당연시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공동체적 행복에 대한 강조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마을목회에 대한 운동이 촉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마을목회는 공공성과 공유의 개념을 강조하기도 한다. 교회의 남은 공간들을 이웃과 나누어 쓰는 ‘교회 공간 나눠쓰기 운동’을 벌임으로 교회가 지역사회에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일만 사용하는 주차장, 교육관, 봉사관 등을 평일에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빌려주는 제도를 만들어 이를 운영하면 한다. 최근 ‘스페이스클라우드’란 앱이 만들어져 공간을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하는 사이트들이 있는데, 이런 사이트들을 함께 사용할 수도 있다. 오늘의 교회들은 이런 공공 디자인과 공공건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의 한 방을 도서관과 카페, 그리고 회의실 등으로 개조하여 지역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교회가 마을과 더욱 친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 나아가 최근엔 코로나19로 작은 교회들이 폐쇄되면서 예배실을 공유하는 공유교회 개념이 출현하게 되었다. 주일 시간을 달리하여 교회들이 예배실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기존 교회당을 더 사용할 수 없게 된 목회자들이 카페 목회를 하는 분들에게 공간을 공유할 수 없겠느냐는 문의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도 필요한 때라 생각한다.

금년 들어 통합 교단의 마을목회위원회에서는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라는 2022년 총회 주제의 실천지침으로 아래의 운동을 하기로 정하였는데, 오늘의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좋은 실례가 될 것이다. 야고보서의 말씀에서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으로서, 우리는 이 같은 재난의 시대에 하나라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목회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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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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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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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의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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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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