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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기독교 사회개혁의 역사적 사례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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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31  09: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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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미 복음주의 기독교 사회개혁의 역사적 사례

박창수 목사(IPC:국제장로교), 서울대학교, 웨스트민스트 신학대학원, 기독교학 박사(기독교경제학&사회윤리), 희년사회 연구위원, 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
[시민사회 히든챔피언]세입자 보호 서명운동 펼치는 ‘주거권기독연대’ - 주간경향 (khan.co.kr)


<제5회 희년 사경회>
■ 주제: 희년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 일시: 2022년 1월 1일(토) 오전 10시-오후 5시
■ 장소: 줌(ZOOM) 화상
■ 대상: 참석을 원하는 모든 사람
■ 회비: 무료
■ 주최: 우면동교회, 희년사회
■ 시간표
- 1강. 오전 10시 - 12시: 출애굽과 희년, 그리고 성자 하나님 / 박창수 연구위원(희년사회)
- 2강. 오후 1시 - 3시: 마태복음과 희년 / 정준경 목사(우면동 교회)
- 3강. 오후 3시 - 5시: 누가복음과 희년 / 박창수 연구위원(희년사회)
* 각 강의 2시간 가운데, 1시간~1시간 30분은 강의 시간이고, 나머지 시간은 질의응답

   
 

한국 교회의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사회 개혁에 무관심하거나 반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복음주의 기독교의 역사에서 기독교 사회참여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회적 관심은 복음주의의 유산이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이에 대해 18-19세기 영국과 미국의 몇 가지 사례를 잘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존 웨슬리(John Wesley)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회적 대의를 추구하도록”(John Stott, 21) 만들었다. 웨슬리는 “복음 전파자인 동시에 사회적 의를 선포하는 선지자”(John Stott, 23)였던 것이다. “영국이 프랑스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혁명의 공포를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것”(John Stott, 21)은 바로 웨슬리가 끼친 영향 덕분이었다.

웨슬리 브레디(J. Wesley Bready)의 『웨슬리 이전과 이후의 영국』(England: Before and After Wesley)에 의하면, “앵글로 색슨 사회의 도덕적 분기점”은 바로 복음주의 부흥이었다(John Stott, 22). 그 책의 부제인 “복음주의의 부흥과 사회 개혁”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웨슬리가 섬긴 복음주의 부흥 운동은 영국 사회를 개혁한 원동력이었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비인간적으로 매매한 것”과 “감옥 제도와 형법의 잔인함”을 비롯하여, 당대 영국 사회의 심각한 사회 문제들이, 복음주의 부흥에 의해 개혁되었고, 그 결과 “노예제와 노예 무역이 폐지되었고, 감옥 제도가 인간다워졌으며, 공장과 광산의 환경이 개선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노동 조합이 생겨났다.”(John Stott, 22).

“그렇다면 이 두드러진 인간애는 어디에서 왔는가?―사회 정의에 대한 이러한 열정과,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한 이러한 민감함은? 굽힐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과 균형을 이루는 대답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적 양심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리고 그 사회적 양심은 일반적으로 인정하듯이 여러 기원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동감 있고 실제적인 기독교의 복음주의 부흥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 부흥 운동은 신약 윤리의 중심적 근본 원리들을 조명하고, 하나님이 진정 아버지이시며 사람들은 진정한 형제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으며, 재산보다 인간이 먼저임을 지적하고, 마음과 영과 생각이 모두 이 땅에 의의 나라가 확립되는 일을 향하도록 하였다.”(J. Wesley Bready, 405; John Stott, 22-23에서 재인용).

둘째, 웨슬리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에 영향을 받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가 정신적 지주였던 클라팜(Clapham) 공동체는, 의회와 언론으로부터 성도당(the Saints)으로 조롱받을 정도로(John Stott, 23)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로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처음에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처한 곤경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함께 모였다.”(John Stott, 23). 결국 그들은 영연방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사회를 개혁했다. 부유한 귀족들이었던 그들은, “대단히 후하게 자선을 베풀었으며, 아주 광범위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John Stott, 23). 그들은 형벌 개혁과 공장 관련 입법에도 관여했고, “결투, 도박, 음주, 음란, 짐승을 이용한 잔인한 스포츠 등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John Stott, 23-24).

“이 클라팜 그룹의 친구들은 점차 놀라운 친밀함과 유대감으로 굳게 밀착되었다. 그들은 결코 해산되지 않는 위원회처럼 계획을 세우고 일했다. 그들은 클라팜 지역의 대저택들에서 공동의 관심사와 욕구를 지니고 모였는데, 그 모임을 그들의 ‘내각 회의’라고 부르면서 자기 나라의 치욕거리인 악과 불의에 대해, 그리고 의를 확립하기 위해 치러야 할 싸움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의회 안팎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각자에게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맡겨 공동의 원리들이 유지되고 공동의 목적들이 실현되도록 했다.”(Ernest Marshall Howse, 26; John Stott, 24에서 재인용).

이 그리스도인 정치가들이 보여준 공동체적 형제애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Ernest Marshall Howse, 27; John Stott, 24에서 재인용). 이와 같은 클라팜 공동체의 치열한 사회 개혁 활동과 서로에 대한 따뜻한 사랑은, 기독교 경세가(經世家) 공동체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19세기 미국에서 부흥 운동을 섬겼던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는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는 복음주의의 쌍둥이 자식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John Stott, 25). 피니는 개인 신앙의 부흥뿐만 아니라 사회의 개혁도 중시했다(John Stott, 25).

“도널드 데이튼(Donald W. Dayton)이 「다시 보는 복음주의 유산」(Discovering an Evangelical Heritage, 대한기독교서회 역간)에서 보여 주었듯이, 피니는 복음이 “사회 개혁을 향한 강력한 추진력을 방출한다”는 것과 교회가 사회개혁을 소홀히 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동시에 부흥에 방해가 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피니가 부흥에 대한 23번째 강의에서 “교회의 중대한 임무는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교회는 원래 개혁자 집단이 되도록 조직되었다. 기독교를 고백하는 것 자체가 세상의 전반적인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고백이며 사실상 그러한 맹세다.”(Donald W. Dayton, 15-24)라고 말한 것을 읽어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John Stott, 25).

넷째, 테오도어 웰드(Theodore Weld)는 피니의 영향을 받아, 노예제를 폐지하는 투쟁에 자신의 모든 생애를 바쳤다(John Stott, 25). 웰드처럼 당대 미국에서 노예제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피니의 부흥 운동을 통해 회심한 사람들이었다(John Stott, 25).

“그 운동[즉 미국에서 일어난 노예제 반대 운동]은 개혁의 영웅들보다는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 사람들은 1830년 대부흥 때 시작된, 종교적 특징과 복음주의적 정신을 지닌 추진력에 자극을 받았다.”(The Post-American(March 1975)에 실린 Donald W. Dayton의 글; John Stott, 25에서 재인용).
이상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바와 같이, 복음주의 기독교의 역사에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노예 제도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나쁜 제도를 혁파하여 사회를 개혁하는 데 앞장서 왔다. 요컨대 기독교 사회참여는 복음주의 기독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복음주의 기독교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기독교 사회참여에 대해, 한국 교회의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무관심하거나 반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 사회에 이루어지도록, 기독교 경세에 기초한 사회 개혁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해야 한다.

참고문헌
John Stott,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정옥배 옮김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6).
J. Wesley Bready, England: Before and After Wesley (Hodder & Stoughton, 1939).
Donald W. Dayton, Discovering an Evangelical Heritage (Harper & Row, 1976).
Ernest Marshall Howse, “The ‘Clapham Sect’ and the growth of freedom”, Saints in Politics (George Allen & Unwin,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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