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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관 교수 1일에 소천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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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1.01  23: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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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명관 교수 1일에 소천 

지명관 교수(1924-2022)가 2022년 새해 첫날에 98세로 세상을 뜨셨다. 평북 정주 출생으로 김일성 대학 1기생이지만 이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입대하여 국군 통역장교를 지냈다. 그후 늦게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오고 박사과정을 거쳤다. 9살 연하의 고 오재식 선생과는 동창으로 덕성여고 교사로 시작해 덕성여대 교수를 지냈고 1965년 사상계 간부들과 일본을 처음으로 방문한 이후 1970년부터 20여년은 망명자로 일본의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박정희 정권이 1960년 쿠테타로 집권하고 이에 저항하는 민주세력들을 탄압하면서 독립군 출신 장준하 선생이 창립한 사상계의 편집장도 지냈다. 이후 강제로 폐간당한 직후 70년 초 강원용 목사가 설립한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인간화’ 대화 모임에도 참가했다. 본래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신앙을 갖은 분이지만 오재식 선생 때문에 의식화가 된 셈인데 1962년 덕성여고 교장을 하던 지 교수에게 YMCA 다락원에서 강연을 부탁이 인연이란다.

주제는 ‘세속화에 대한 것’이었는 데 당시 지 교수는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은 나쁜 것이니 경건주의적 신앙을 잘 지켜야 한다는 요지로 평범한 강연을 했다. 그러나 당시 기독학생들은 세계적인 화제인 하비 콕스의 <세속도시>를 읽는 등 신앙과 세계관의 지평을 넓혀가던 시기였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얘기였을 것이다. 나중에 주최측의 의도를 모르고 ‘실수’를 했다고 오재식 선생에게 말했다고 한다.

지 교수는 4·19 혁명을 겪으며 한국 사회의 현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오재식 선생을 만나면서 사회참여의 필요성을 알게 된다. 또 김관석 목사가 주간으로 있던 <기독교사상>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의식의 세계를 넓혀간다. 그러다가 64년 장준하 선생이 창간한 <사상계>의 마지막 주간을 맡게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던 <사상계>는 사장과 편집인이 구속되는 등 탄압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70년 5월 폐간당했다. 억압의 현실에서 답답한 지 교수는 도쿄대에서 교환 교수 초빙을 받자 한국을 떠난다. 그리고 일본의 지성계를 만나면서 자신이 그동안 우물안의 개구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인문사회 과학 분야는 분야별로 필요한 연구자료도 많고, 세계의 여러 선진적인 사상을 활발하게 받아들이는 등 세계적인 수준의 학문 연구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한다. 도쿄대에서 그는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한국의 사상’에 대해 연구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한국교회를 후원하면서 지원한다.

   
 

가장 극적이고 역사에 남을 일은 당시 한국의 상황을 세계에 호소하는 일에 관여하게 된다. 한국의 정치상황과 민주화운동 특히 한국기독교의 저항과 양심수들의 상황을 일본에 전달하면 이를 토대로 일본어로 기사화하여 진보 성향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TK생'(TK生)이라는 필명으로 칼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15년간 연재하며 해외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당시 한국정보부나 일본 대사관은 이 글을 누가 쓰는 지를 찾고자 백방으로 뛰었으나 끝까지 찾지 못했다. 그만큼 보안이 유지된 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된 이후 2003년에 가서야 이 기사를 지명관 교수가 쓴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지명관 교수가 이런 상황에 참여하게 된 것은 CCA(아시아교회협의회)의 몇 개 부서가 일본 동경으로 분산되어 있었는 데 당시 도시산업선교(URM) 간사였던 오재식 선생이 동경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박형규 목사등 일본으로 출국하는 이들 편에 한국의 민주화운동 상황을 적은 원고가 넘어 가고 있었다. 한국의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에 진보단체인 NCCK가 앞장서고 있었고 이러한 일에 WCC(세계교회협의회)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후 지명관 교수는 귀국하여 한림대 교수를 지내고 학술원과 KBS 이사장, 일본학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고 당선되자 대통령 취임 사 준비위원장을 지낸다.  

단신이지만 그의 지성과 사고는 바다처럼 넓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의 동경대학과 동경여자대학(9년)재직중 동경을 방문하는 한국교회 인사치고 그의 대접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필자로 1982년 NCCK 청년대표로 방문을 했을 때 처음으로 동경의 밤거리에서 노랜이 달린 주점에서 오뎅과 사케를 대접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KBS 이사장 사절 KBS 후임 사장으로 정연주 사장을 청와대가 민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등 보수언론들과 같이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비판자가 된 것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저서로는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1996), '한국과 한국인'(2004), '한일 관계사'(2004), '경계를 넘는 여행자'(2006) 등을 집필했다. 지교수의 생애는 국민일본에서 “역경의 열매” 라는 씨리즈로 연재가 되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정숙 씨와 자녀 지형인(일본 게이오대 교수) 지효인(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임원) 지영인(미네소타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이며 발인은 4일 오전 7시로 장지는 경기도 이천 에덴공원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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