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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실족에는 사모도 책임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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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1.04  11: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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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될 수 없는 자리 사모(1)

새해 첫글은 사모에 대하여 시작해 본다. 논쟁점도 있어 보이지만 언터쳐불인 사모의 역할과 현실에 대하여 심층적 분석을 통하여 갈길을 제시해본다.  그간 연재한 구 시대 여인들의 삶에서도 그렇고 여성에 대한 주제들을 공부하고 제기한다는 차원에서 기획되었다. 반대나 논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다행이다. 최근엔 가수 자두가 사모가 되었고 유명 탈랜트 이00도 목사 사모다. 사모가 토크쇼에도 나오고 사모의 역할이나 사회적 지위도 달라진 것에 대한 반영이다. 여기서 실족이란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염두에 둔 것은 목사의 과오나 실수로 인한 목회 단절을 의미한다. 많은 목회자들은 나름 성공적인 자기관리와 목회를 한다고 하기에 그런 분들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는 점을 밝혀둔다.   

카토릭의 성직자인 신부는 독신이라 그의 진짜 사생활은 비밀에 붙혀져 있다. 물론 그의 의식주를 돌보는 누군가는 있지만 아주 은밀한 사적 생활에는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개신교 성직자인 목사의 경우 그의 부인은 모든 것을 함께 하기 때문에 목사의 진짜 모습에 대하여 누구보다고 잘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목사의 부모나 자녀들도 어느 정도 목사의 사적 생활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동숙을 하는 사모보다는 모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의 사모는 개인적으론 혼인 관계로 부인이라는 역할을 넘어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이 파송하신 유일한 감시자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합당한 훈련이나 사명감을 갖고 있을 까? 하는 질문에는 그렇치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주관적으로는 주의 종을 섬기는 사모가 되고 싶다고 서원한 분들도 있고 주변에서 사모감이라는 종용으로 사모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목사를 지망하는 사람이 선택적으로 정하는 것이 다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모의 역할이나 책임에 대하여 기준이나 전형이 없어 비판이나 칭찮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논외가 될 수는 없다. 사모의 역할이나 사명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목사나 사모 그 자신은 물론 교인 누구도 주관적인 감성으로 평하지 깊이 있게 분석하거나 대안을 제기하는 것은 금기다. 외형으로 드러난 사모의 모습을 갖고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게 다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예장뉴스가 그동안 선행적으로 사모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글을 쓰고 방향을 제기한 분들의 연장선상에서 한번 분석해 보려고 한다. 그중에 목사로써 사모의 중요성에 대하여 기능적으로 분석하고 글을 쓰신 분은 무궁교회서 은퇴하신 장달윤 목사가 계시다.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 있지만 과거로부터 고착된 이미지와 틀을 놓고 거기 미흡하거나 어긋난 것에 대한 훈계와 비판이 주류다. 사모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분석도 없지 않으나 여전히 사모에 대하여 규정하는 일방적인 것이 주류다.

그 외 이건숙 사모(신성종 목사 사모)가 꾸준히 사모직에 대하여 글을 쓰고 발표했고 일반 목회 사모들에게는 큰 위로를 받고 독자층이 존재한다. 지성적으로도 많이 배웠는 데 서울대 사대 독문과를 나오고 미국에서 도서관학 석사까지 한 분으로 문단까지 데뷔한 분이다. 사모의 경험으로 내논 글들에 대하여 많은 사모와 목회자들 까지도 교훈으로 받고 참조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외 신학교 교수나 관심자들도 글을 쓰긴 했지만 일정한 틀을 갖고 분석했거나 보수적이거나 전통적인 틀을 갖고 규정하는 게 일반이다. 입체적이고 본질적인 분석으로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말이다.

교회도 이젠 특별한 곳이 아니다. 
지금 교회는 특별한 기관이나 조직이 아니다. 동종업종이나 교계에서는 유식한 말로 영적계보니 뭐니 니 하는 말로 치환하는 데 할말 없으면 날 죽이라는 말과 같다. 이런 말은 이원론의 산물로 신학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이미 비판받은 내용이다. 영권 물권 신권등은 모두 목회자들이 수사적으로 만들어 낸 말에 불과하다. 과거 무속에서도 용한 대감이나 신선등에서 오는 신비감을 더하려면 육이 아닌 영계를 말하기 일쑤인데 사기이기 일쑤다. 

지금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나 문을 닫는 것은 목회가 안되서 그러는 것이지 영과는 상관없는 인간적인 방법이고 행정적인 절차다. 그런데 무슨 영을 말하겠는 가? 지금 크거나 작은 교회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 목사와 사모들이 존재한다. 사는 모습은 다르지만 교인들 속에서 그들과 생활하고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경쟁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교파와 목사가정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잘되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와 성장하고 싶은 교회로 나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두 종류의 교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그 교회 목사만큼 성장하고 그 목사는 그 교인들의 수준만큼만 성장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교회는 목회자의 비전에 따라 성장하는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목회자의 인격과 능력과 지도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의 비전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 교회의 본질을 논할 수 있다.

목회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교회성장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가? 일정한 조건의 학습을 하고 고시를 하고 안수를 받은 자들이라고 해도 목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자세 비전은 다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한 예로 어떤 목회자는 너무 가난하게 살아온 나머지 하나님께 성공을 빌고 그것을 교회성장으로 설정하여 성공의 자만감으로 그 성장의 열매를 누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외 개인적 여러조건들이 존재한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교회가 커지면 재정이 넉넉해지니 예산도 높게 세우고 자연히 목회자에 대한 부대비를 상향하고 외부 집회(사례비)나 잘사는 교인들의 기부로 통 큰 생활을 한다. 이러니 주변에서도 교회성장은 곧 목사 생활의 여유로움과 동반되니 꾕먹고 알먹는 일이다. 교회성장시켜 성공했다는 평가와 자신의 가정에 대한 여유로움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 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아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라고 하고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을 대리하는 주의 종께 하는 것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는 착시현상을 주입시킨다.

이런 작업은 본인도 그렇고 선택되는 강사들의 유형과 메시지서도 일관되게 유지되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모든 부흥회 외부 인사들의 단골 매뉴는 하나같이 목사에게 잘하면 축복을 받는 다는 것이며 그런 예화를 수도 없이 강조한다. 문제는 그런 말을 믿고 자신의 신앙행위를 오직 한교회와 목사를 위하여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선한 일꾼이 되도록 하는 것이지 한 교파 교회 목사의 양으로 전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목회자가 이런 인위적인 구도를 갖고 목회를 할 때 사모는 무엇을 할까? 아마도 주는 생활비에 연연하고 더 갖아오라고 채근하는 분도 있는 데 이건 같이 죽자는 일이다. 근검절약과 청빈으로 존경을 받아야 하는 데 제 치장이나 하고 명품이나 입고 화려하게 가는 분도 있는 데 안될 일이다. 사모의 할 일은 남편인 목사를 위하여 기도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경계할 일이 있다면 잔소리가 아니라 꾸짖을 수 있는 자가 되야 한다. 문제는 목사의 잘못된 사명과 사역을 해도 이를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나 훈련이 안되어 있다. 그러나 목사가 무슨 일을 해도 이를 조언이나 제지할 수 없고 결국은 사고나 나서 짐을 싸고 서야 알게 된다.

사모는 대체 될 수 없는 자리
이러한 왜곡된 목회를 그 자신이 설정하고 누리면 이를 막을 수 있는 구조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회도 아니고 교회안에도 없다. 목회를 열심히 한다는 모습만 비춰질 뿐이다. 무엇을 위한 열심히냐이기 보다는 교인을 늘리고 교회를 확장하고 예산이 늘어나면 부흥한 것이고 성장한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뿐이다. 그러나 이를 통제하는 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 역할이 바로 사모다.

신학대학 교수가 대형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았는 데 사모가 반대해서 못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똑똑하고 판단이 바른 사모는 목사의 일상 특히 경건생활이나 취미에 있어서 노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모의 역할이란 목사의 기쁨조로 그의 식생활과 건강, 자녀들을 잘돌보는 역할이라고 쇠뇌한다. 그러나 나는 사모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목회자인 남편과 교회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조언할 수 있는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 사모는 그져 뒷전에 머물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게 교육받지도 훈련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 물정이 있다는 사모들이 안타까워 개입을 하지만 주책없이 나서서 오히려 교회의 말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면 교회는 우리는 목사를 청빙했지 사모는 따라온 것이니 어떤 역할도 하지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모들은 있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득세하는 교인들 눈치나 보면서 주는 거나 받고 그져 웃고 목사 옆에서 밥이나 먹으로 따라다닌 다.

그러나 그것도 못하게 하는 교회도 있다. 교회의 규모나 전통에 따라서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라면 많은 부교역자들과 직원들로 인하여 사모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그런데 만약 사모가 나선다면 반드시 말이 나게 마련이다. 새문안교회 고 김동익 목사는 사별하고 어려서 알던 황산성 변호사와 재혼을 했는 데 황사모는 유명한 여성 변호사에 정치인으로 초대 환경부 장관도 지냈다.

그 교회 목회자 어떠했을 까? 김동익 목사는 일찍 세상을 떳고 황사모는 온갖 구설수로 교회의 짊이 되었다는 것이 들려오는 얘기다. 그렇치 않아도 말이 많은 교회인데 황사모라도 별수는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최고의 능력자고 목사 딸이지만 현존하는 교회의 사모 정서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상대적으로 조용한 목사에 비하여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모로 인하여 명을 재촉한 것은 아닌 지 하는 말들이 나왔다. 그러나 사모가 과연 얼만큼이나 교회일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 지도 사실 기준이 없어 정말 어려운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형교회 사모는 그져 있는 등 없는 등 하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부임을 하면 장로들이 사모에게 교회 일은 저희들이 있으니 그져 목사님이나 잘돌보고 뒤에서 기도해주시고 니 발전과 엔죠이를 하라는 투다. 그런데 그렇치 않은 게 화근이다. 많이 배우고 좋은 가정에서 성장한 사모일수록 무언가 하기를 원하고 가르치고 싶어 한다. 동역자라는 의식으로 같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목사가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사모가 한말이나 행위를 덮고 변명과 변호을 하느라고 바쁘다.

아주 작은 교회에서는 사람이 없으나 사모라고 앉아서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론 청소와 식사 뒤처리를 해야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난 이런 것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데 그렇게 했다가는 장기 목회를 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자기가 개척한 교회에서 라면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니 목회를 위하여 희생하는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목사들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사명은 지가 받았지 사모가 받은 것이 아님에도 무한희생을 강요하고 같이가자고 한다. 최소한의 협의와 상의 허락도 없이 임지를 옮기고 교회를 개척하고 다시 보따리를 싸는 등 사모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분들이 없지 않다.

   
               * 이건숙 사모 저 사모의 품격

목회자 부인의 정의
기독교 정신의학자 마리온 넬슨은 목회자 아내는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 중에서 가장 모험적인 것이다. 그것은 정서적으로 가장 안정되어 있고 어렸을 때에 충분한 사랑을 받았고 안정되게 자랐으며 뻔뻔스러운 사람만이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지 않고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목회자 아내가 되어 있는 누구도 그렇게 완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 아내는 목회 동역자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특별히 부르심을 입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조건이 있다. 목회자 아내로서 지도자의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기독교 문화의 익숙, 성경 지식의 풍부, 기도의 사람, 상식과 예의, 물질 생활의 관리능력과 조직력, 적극적이고 바른 지도력 등을 제시되고 있으며, 목회자 아내로서의 인품에 필요한 요건으로 믿음, 덕망(잠11:16), 겸손, 사랑, 말의 덕 등을 제시되어 진다.

이건숙 사모는 그의 저서인 「사모가 선 자리는 아름답다」에서 그 조건으로 목회자 아내가 가져야 할 것으로 인내의 훈련, 영적 체험, 어떤 형편에든지 대응할 수 있는 능력, 남편의 목회에 참여하여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마음가짐, 고독을 참는 훈련,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 항상 위로부터의 지혜를 간구하는 자세, 스스로 영혼을 잘 가꾸는 노력 등을 말하고 있다.  http://www.pen-hi.com/

   
                      * 이건숙 사모의 사모론은 사모이면서 냉철하게 구성해낸 교과서로 불리운다. 

또 목회자 아내가 지녀야 할 인격에 대해서 상식이 통하며 도덕적이요 윤리적인 사람이 되라고 말하면서 특별히 사모가 갖추어야 할 인격으로 영적 체험자로서의 인격,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인격, 평생 교육에 참여해서 사회와 발을 맞추는 지도자의 인격,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인격, 이웃의 허물을 덮는 평화 창조의 인격, 엄격과 자애를 지닌 선생으로서의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상현은 그의 논문 「목회자 아내의 자질과 역할에 관한 연구」에서 사모의 자질로 아래와 같이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먼저 목회자 아내의 자질로서의 내적 요인으로 인격적 요인과 신앙적 요인으로 구분한다. 목회자 아내의 올바른 인격적 요인으로서 진실성, 경건성, 침묵성, 믿음, 겸손, 사랑을 말하는데 두 번째로 목회자 아내의 올바른 신앙적 요인으로서 구원의 확신, 성숙한 그리스도인,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목회자 아내의 자질로서의 외적 요인으로 목회자 아내의 올바른 교양과 예의로서 언어에 있어서 목회자 아내의 올바른 언행과 외모의 단장에 있어서 목회자 아내의 올바른 치장을 할 것을 말하고 바른 예의 범절을 가질 것을 말하고 있다.

사모의 자질 갖고 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목회자 아내의 자질과 조건은 참으로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어떠한 목회자 아내라도 이 조건에 합당한 내적 외적 자질을 다 갖출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목회자 아내로 부르시고 일을 맡기실 때에 사모로서의 조건도 구비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아내는 항상 하나님 앞에 부족함을 고백하고 기도하면서 말씀에 대한 확신과 인격 훈련과 함께 무엇보다도 인내를 함께 배워야 할 것인데 다 좋은 얘기고 일반론으로 일리가 있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목회자 아내만큼 차신하기가 어려운 위치가 없을 것이다. 분명하게 명시된 역할이 없으면서도 교회의 사정에 따라 대처하면서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상당히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간다. 그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며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목회자 아내의 위치도 그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간다. 그럴 때 사모는 힘들다 다행히 목회자가 위로를 해주고 함께 해주면 좋치만 대게는 그렇치 않은 데 그 사람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슈퍼맨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목회자 아내들도 이 요구에 합당하게 그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부부가 서로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협력하여 이룰 수 있도록 하신다는 원칙론에 동의하면서도 때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돕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분들도 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신 대로 목회자에게 돕는 아내를 주셨지만 실제로는 사모도 인격자로 그 자신을 넘어서서 누구만을 위하여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가정에서의 역할

가정에서의 역할은 아내로서 남편을 돕고 가정 주부로서 모든 가족의 의식주를 돌보며 어머니로서의 자녀 양육과 아울러 딸로서 혹은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들 수 있다. 목회자 아내는 이러한 일반적인 역할을 사모의 위치에서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진다. 그리고 사모의 위치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가장 원만하고 모범적으로 해야 한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구를 받는다.

먼저 부부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교회에서의 그들의 사역을 위해서 함께 일해야 한다. 목회자 아내는 그녀의 인생에서 목회자와 같은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두 사람의 이상을 하나로 통일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보다 민주적이고 인격적으로 부부 윤리를 존중하면서 서로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한 길을 걸어야 한다. 또 목회자 아내들은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목회자의 자녀들은 당연히 그들의 부모로부터 합당한 양육을 받아야 한다.

아동 상담소장인 글라디스 프라운은 그들의 아버지가 긴 시간이 소요되는 교회 일 때문에 자녀들에게 서로의 건강한 관계 속에서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아버지 역할을 충분히 못하기 일쑤다.  자녀들이 정신적인 도움이 필요하거나 생활 전반에서나 특별한 일로서 목회자의 따뜻한 상담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으며, 그들의 어머니는 자녀 양육에서 거의 남편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다른 일에 시달려 자녀의 일을 자녀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는 등의 문제점을 말하고 있다.

또 그들의 자녀들은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서 제 2의 목회자로 취급되면서 그들의 행동을 제약 당하고 있다. 이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들에게 커다란 압박을 주게 된다. 목회자의 자녀이니까 이래서는 안되고 매사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모의 강박관념과 교인들의 감시하는 듯한 기대에 찬 시선은 자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사모들만 가입할 수 있는 카페로 비밀방에는 기상천외한 얘기들도 있어 

자녀와의 관계
또 교인들의 부모에 대한 험담과 함께 부모들이 교인에게 가지는 혐오감이 자녀에게 노출될 때 마찬가지로 목회자의 자녀들은 상처를 받게 된다. 부모가 아무리 완벽한 교육과 본을 보였을지라도 성령의 힘이 아니고는 안된다. 위대한 어머니들은 항상 기도의 손으로 자녀들을 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자녀들 스스로 사탄을 대적하면서 성령 안에서 승리할 때까지 저들에 대해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 아내들은 다른 가정에서와 같이 그 집의 가정 주부이다. 그러므로 맡은 가정을 꾸려 나가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평범한 평신도가 아무리 교회 일에 봉사하더라도 자신의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덕이 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목회자의 가정에서 더욱 지켜져야 할 것이다. 교회 환경에 따라서 목회자 아내의 살림살이가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교회가 소규모이거나 미자립 교회일 때 무척 힘이 들것이다. 그럴수록 짜임새 있는 살림을 하며 효과적인 재정 관리를 해야 한다. 또 가족의 건강 관리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정서적 생활을 함양할 수 있도록 집안 환경을 꾸미는 지혜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자라는 재정으로 힘겨운 가사를 꾸려 나갈지라도 그 모두를 주님께 의지하며 자녀들과 다른 가족 앞에서 덕과 본이 되는 주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분은 이것을 목회자의 수렁이라고 하면서 몇가지를 제시한다. 목회자가 빠지기 쉬운 수렁은 일 중독이 있다고 하는 데 맞는 말이다. 교인들 사정이나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전진에 제동이 되지 않으면 문제를 야기시키므로 사모가 그 제동을 적절히 걸어야 한다. 또 실망과 절망이라는 수렁이다. 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 반대에 부딪쳐서 일을 추진하지 못할 때의 불안감. 교인들의 반대로 일의 중단에 따른 좌절감. 그 일로 인한 교인들과의 갈등 등이 목회자를 무력하게 만든다. 이때에도 사모는 의지해 주며 위로해 주고 힘을 주며 기도로 붙잡아 주어야 한다.

다음은 고집과 오만의 수렁이다. 나뿐이라는 아집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을 충고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보에 쳐지는 수렁이다. 이것은 목회자 아내도 빠지기 쉬운 수렁이므로 늘 함께 공부하며 정보 수집과 교환을 하여야 한다. 또 기도와 말씀 보는 시간이 적어지는 수렁이다. 목회자가 기도할 시간과 성경을 읽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다른 데 허비하는 것을 사모가 용납해서는 안된다. 교권정치 같은 것인데 아예 모른척 하는 분들이 많은 데 부화뇌동 하지 말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수렁이다. 삶의 불감증에 걸려 말씀과 실행의 괴리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도와야 한다. 이것은 철저히 목회자 아내가 기도하면서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서 충고해 주어야 하는 수렁이다. 목회자도 항상 기도하면서 이 수렁에 빠지지 않아야 되지만 본인은 자칫하면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인들(목회지)에게의 역할
목회자 아내는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건설적인 야당의 자리에 서서 모든 문제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어야 하며, 목회자에게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 절대 심판하는 자세이거나 편견을 가지고 문제를 보아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목회자가 놓치거나 관과하는 것을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정보의 타탕성을 확인해야 한다. 또 목회자 아내는 성도와 목회자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들과의 인간 관계를 바로 할 때 남편의 목회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설교를 듣고 성도들의 반응을 파악하고 분석하여야 한다. 이 역할 역시 편견이 없는 분석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목회자 아내가 교인들과의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기 위한 자세로서 이건숙 사모는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다. 만나면 미소를 던지며, 먼저 인사하고 밝게 대답해 주면서 교인들의 말을 다소곳이 잘 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해 주며 따뜻한 관심을 가져 주고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해서 불러 주며 친근감을 주는 태도를 가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교인들 간의 돈 문제에는 절대로 개입해서는 안되고, 특정한 친구를 가져서도 안되며, 험담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말조심을 하고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 목회자는 양의 필요를 따라 채워 주고 섬기는 자이다. 또한 목회자 아내도 주님을 위하여 고난의 길을 선택한 자의 동역자로서 그 섬김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자이다. 목회자 아내는 남편의 교회에 대한 봉사를 받아들이고 궁핍한 자와 고난을 당한 자들을 보살펴 돌아 볼 것이며 교회의 안팎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여야 할 것이다.

목사의 아내도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보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과거의 것을 고집하며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는 공룡이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됐듯이 사람도 그럴 수 있다. 요즘 사모들이 가정과 아이들을 목사에게 맡겨 두고 며칠씩 집을 떠나 여러 사모교육에 참석하는 분들도 있는 데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남의 설교를 분석해서 듣고 배우기를 힘써 목사 남편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을 나온 여자가 집 안에 틀어박혀 가사 일에만 전념하면 4년 후에는 고등학교 졸업생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6년이 지나면 초등학교 졸업생 수준으로 떨어진단다.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모는 목사의 영적, 지적 수준에 걸맞게 많이 읽고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배우기를 힘쓰라고 해서 드라마도 보지 않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선 곤란하다. 성도들과 대화가 통하려면 문화적 환경도 알아야 하고 시대 흐름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목사는 성직자지 성자는 아니다.
목사를 성자로 생각하는 사모들이 많다. 그렇게 기대를 하면 큰일이다. 대부분의 사모들은 남편이 천사라도 되는 듯 너무 많은 기대를 한다. 어떤 사모는 목사가 그런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다고 흉을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남편의 사생활을 발설하는 철없는 사모들이 있다. 집안 망하는 길이다. 그렇다고 목사의 흉이나 나쁜 습관을 묵인하고 심지여 가폭을 당하면서도 참는 분들도 있는 데 이것도 망하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에 실패한 목사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목회를 실패하도록 방치한 사모는 용서받지 못한다“ 는 말을 하고 싶다. 목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아는 사모는 그를 드러나지 않게 컨트럴 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평생을 가슴조이고 하는 수 밖에 없다. 목사의 유형은 여러 가지다. 명예와 자리에 대한 욕망으로 새벽부터 교단정치에 참여한다. 돈이나 시간 모든 것을 거기다가 올인을 한다.

어떤 유형은 낚시등 과한 취미생활인데 인박히는 것이다. 과도한 해외여행이나 주초를 하는 것도 그렇고 심지여 증권이나 포르노 노출, 불륜도 성직자들이 빠지는 유형중 하나다. 이런 것을 사모가 통제하거나 바꾸지 못한다면 반드시 큰 사고로 연결되여 망하는 길 밖에 없다. 어느 사모는 목사가 여자 교인과 의심이 간다고 당회원에게 고자질했는 데 결국은 교회서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목사는 사모가 못고치면 밥줄이 끊어지는 수 밖에 없다.

사모는 요조숙녀도 되야 한다. 남자가 어디가서 무슨 힘이 나서 엉뚱한 일을 하는 가? 모두 가정에서 풀리지 않는 것들을 발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모는 목사로 하여금 가정의 편안함 즐거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대체로는 그런 분들이 많치만 그렇치 않은 경우도 많다. 미워서도 그렇고 바빠서도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목회의 성공한 설교자 심방만이 아니라 목사와 사모의 일심동체로의 협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단의 남편과 집안에서 남편은 다르다. 
강단에서는 거룩하게 메시지를 선포한 제사장이라고 제 집에 오면 자연인 남편 또는 가장으로 더 나아가 인격을 지닌 한 남성에 불과하다. 집안에서도 목사 노릇을 한다면 그건 사모 책임이다. 그는 강단과 가정을 구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정신적으로는 동일한 인격체지만 장소에 따라서 가변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융통성은 만들어 줘야 한다. 사모가 목사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위선자로 만들게 된다. 자녀들에게도 집에서는 자연인 아버지로 보고 속 사정을 얘기하고 존경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옛날에는 모든 것을 목회자 위주로 통제된 삶을 살았지만 그건 시대적인 산물이다. 

그렇치 않기 때문에 일탈하는 자녀들이 나오고 마음을 닫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때론 큰 소리도 치고 화도 내고 불만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야 일반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매도 치고 속옷으로 다니고 애정표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신이 주신 자연본선의 인간이다. 사모가 그것을 다 순리로 수용하고 자녀에게 자연인 아빠는 교육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빠가 목사인데 왜 저래? 그래 너희 아빠는 잘못되어 먹었어 이쯤되면 자녀교육은 실패이다. 남편이 아무리 못나고 무능하여도 엄마가 존경하면 자녀들도 무능한 아바지인줄 모르고 존경한다. 그것이 산 가정 교육이다. 어떤 목사들은 집에만 들어가면 화가 치밀고 사모와 갈등을 빚는 다는 데 이것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사모에게 있다 하겠다(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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