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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섭의 타원형세상 꿈꾸기작은이들에게손을 내미는 사회통합
양재섭 교수  |  www.philhum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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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02  11: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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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섭의 타원형세상 꿈꾸기

작은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회통합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1867~1945) 독일 화가·조각가. 쾨니히스베르크(현재의 칼리닌그라드) 출생. 1885년 베를린의 화가 칼 슈타우파 베른에게서 배웠다. M. 클링거·E. 뭉크를 사숙(私淑)하였으며, 소외되고 학대받는 민중의 삶을 작품으로 재현하며 사회변혁의 꿈을 키웠다. 1891년 베를린의 노동자거리에서 일하는 의사 카를 콜비츠와 결혼해 막내아들이 1차 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한다.  빈곤과 병고에 시달리는 노동자 생활과 밀착된 표현으로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전쟁체험에 바탕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한 조각작품과 판화 연작 《직공의 반란(1894∼98)》 《농민전쟁(1903∼1908)》 등이 있다.

                    

양 재 섭 (필휴먼사회통합연구원 원장• 대구대 명예교수)

대한예수교장로회 제97회기 총회가 “그리스도인, 작은이들의 벗”이라는 주제를 선언하고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그리스도인 정체성 확립을 향한 대장정에 들어갔다. 이 주제는 한 회기로 끝날 일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실천운동을 확산시켜야할 목표이며 또 작은이들(가난한 이, 다음세대, 장애인, 다문화가족, 북한동포)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을 보면 실천가능성이 높아 보여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 주제는 또 교회와 사회가 상호 소통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여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최근 우리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통상적으로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를 분석해보면 계층갈등, 이념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이 상존하고 있으며 이것들이 또 서로 얽혀있는 복합성을 띠고 있다고 한다. 양극화가 극에 달한 현실에서 갈등에 소비되는 에너지는 측량하기 어려운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각 분야에서 갈등 비용 절감을 위한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이 시대적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사회통합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간직해온 이웃사랑의 덕목에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기독교적 핵심가치만 자랑하고 자만심에 젖어있을 수 없는 것이 또한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마당에, 깨어나 깨닫지 못하면 회복할 수 없는 위기로 내 몰릴 수밖에 없다. 사회현상을 잘 관찰하고 분석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하여야 할 것이다. 선뜻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사회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힘 있는 자와 약한 자 등 이분법적 사고가 통용되고 있다. 교단 총회는 사회적 약자를 지칭하여 “작은이들”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작은이들의 벗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회적 약자 보호의 의무를 사회통합의 열쇳말(키워드)로 풀어볼 것을 제안한다. 일방적으로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정치 일각에서 불고 있는 경제민주화라든지 성장과 분배의 균형 그리고 사회복지 논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떤 정당이나 지도자가 성서적 가치관을 담은 공약을 제시하는지 면밀히 살펴볼 일이다. 21세기 인간의 생존방식은 더불어 삶 이외는 없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공동운명체라는 말이다. 에너지의 과도한 낭비, 그에 따른 기후변화가 지구촌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처절한 경쟁은 승자에게도 결국 멸망을 안겨줄 것이다. 부자가 가난한 자의 생활을 걱정하지 않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구조를 감안하여 경영하지 않으면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여파가 결국 사회 전체를 어두움으로 몰고 갈 것이다. 큰이가 작은이를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사회통합의 책임은 사회적 강자가 더 큰 몫을 담당해야 한다. 자기 혼자 따뜻하자고 얼음판 위에서 불을 지피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작은이들의 벗이 되기 위해 굳이 사회통합의 열쇳말을 거론하는 것은 교회가 사회와 관계하는 데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반성을 암시한다. 교회는 늘 교회만 사랑한다는 사회적 공격에 대해 무엇인가 응답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인식이다. 예장-통합은 태생적으로 명칭상 사회-통합의 전면에 나설 예언자적 사명을 가졌다고 한다면 무리한 상상일까? 작은이들의 벗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의 평신도 인적자원을 전면적으로 가동시켜야 할 것이다.

신학자와 목회자들만의 단독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학, 사회복지학, 경제학, 생태, 환경, 과학, 예술 등 모든 분야의 학자들과 사회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을 총동원하여 모든 지혜를 통합하여야 한다. 사회통합은 선교의 다른 이름이다. 인기 듀엣 해바라기의 노랫말이 우리의 마음을 일깨운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리라" (www.philhuman.org)

(양재섭 교수는 대학생시절 전북대 해직교수로 장신대에 재학중이셨던 남정길 교수(목사)를 도와 새롬교회를 창립한 이래 대구대에서 평생 가르치시다가 올해 은퇴을 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에서 신학공부도 하였다. 현재 대구 효목제일교회 장로이며 올 97회기 총회(소망교회)의 총대로 참여하여 올해 총회장 상을 수상했음, 이 글은 한국장로신문에 실린 필자의 글을 수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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