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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바보들은 행진을 멈추지 않습니다조지송 목사의 80회 생신 축하모임
유재무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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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07  00: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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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바보들은 행진은 멈추지 않습니다”

“나는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는 데 유일한 방법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동조합을 노동자들의 교회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인간의 권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민주주의를 배우고, 이웃사랑을 배우고, 희생과 봉사를 배우고, 의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우며, 사회정의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것도 실천적으로 배우고, 참 평화가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은 산업선교 실무자들의 목회현장이고 노동자 구원의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조지송 목사 - 

 

조지송 목사의 80회 생신 축하모임

 
   
                                                          참석자 들과 기념 사진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산 증인 조지송 목사의 80회 생신 축하 모임이 6일(토) 4시에 영등포산선 회관에서 열렸다. 조 목사의 철학인 약한 노동자들을 통하여 이루려고 했던 산업평화에 대한 희망의 화두인 “우리 바보들은 행진을 멈추지 않습니다” 라는 주제로 1 부 예배와 2부 조지송 목사 평전(2010년 4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화운동 사건, 인물 기록수집사업의 일환 중 하나인 평전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업이 시작되었고 현재 원고는 완료된 상태) 대한 발표와 3 부 친교와 식사마당으로 진행되였다.

평소 조 목사는 생일이나 가족의 애경사나 교회가 목회자에게 대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을 싫어하시고 사신 분으로 이 모임도 적극 반대하셨다. 그러나 조 목사가 건강이 안좋고 마지막으로 뵙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겨우 허락을 받았는데 그 조건은 최소한의 사람으로 할 것, 노동자들 위주로 할 것을 주문하여 조촐한 행사로 준비가 되었다. 그래서 영등포 노회나 위원회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참석하신 옛 동지들과 후배들

그러나 요즘 오라고 해도 안오는 게 현실인데 주말에 초대받지 않았지만 아시고 여러 귀한 분들이 오셨는데 동 시대에 같이 산업선교를 하시고 은퇴하신 감리교 인천산업선교회 조화순 목사와 김용복 박사(전 한일장신대 총장), YMCA 이사장 안재웅 이사장(전 CCA URM 총무)  명노선 목사(전 실무자, 기장 총회) 조순형전도사(청주 산업선교회) 백도웅 목사(전 NCCK 총무) 박창빈 목사(전 사회부 총무, 월드비젼 북한 사업본부 부회장) 그리고 우리 총회에서는 이홍정 목사(사무총장) 남윤희 목사(국내선교부 총무) 윤신영 목사(해양의료선교회 총무) 와 마침 인도차이나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의 소수 기독교의 개발과 원조를 담당하는 일을 하는 CCA의 MEPP에서 사역하다가 최근 자리를 옮겨  CCT(태국 기독교 협의회) 의 Youth & Mission Co-woker로 사역하는 허춘중 선교사도 참여를 하였다.   
   
            감리교 인천 산업선교회의 산 증인 조화순 목사와 박길자 사모  뒷편에 명노선 목사

1부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
1부 예배에서는  인명진 목사가 “우리의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사회를 본 유재무 목사(일하는 예수회(PCK-URM) 회장) 는 인명진 목사를 소개하기를 순서지에 있는 대로 산선 2대 총무, 갈릴리교회의 목사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데 “우리가 조지송 목사에 대하여 말할 때 영등포산업선교를 빼놓을 수 없다면 영등포 산업선교에 대하여 말하려면 인명진 목사라는 이름이 들어가야 비로써 온전한 PCK 의 산업선교를 말할 수 있다" 고 소개했다.

인목사는 "조 목사와 같이 일한 14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성장했다" 고 전하며 당시 뉴욕타임지 표지모델로 영등포산선과 조지송 목사님의 얼굴이 실렸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그들이 분노할 때 나도 분노했다“ 하는 제목을 상기하며 조 목사는 노동자들과 같이 웃고 울었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조 목사는 총무라는 말도 한번도 안하시고 오직 목사 외에의 어떤 직책이나 자리도 맡지 않으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00이사, 대책위원장" 그 어떤 직급나 자리에 대해서도 연연하지 않으시고 오직 목사로써 족한 분이였다" 고 말을 어여 갔다.   

   
                                                설교하는 인명진 목사

기도를 한 송효순 집사는 당시 대일화학의 나이 어린 노동자로 조목사의 권유로 일기를 모아 “서울로 가는 길”(형성사 간) 이라는 책자를 출판했는다. 당시 어린 여공들의 공장생활을 이해하고 그들의 꿈과 소박한 미래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축도는 본 교단의 사무총장으로 올 97회기 총회까지 8년간의 임기를 마친 조성기 목사(직전 사무총장)가 하였다. 조 목사도 한때 산업선교를 할뻔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학교 시절 부터 산업선교회와 인연을 맺고 목회자 운동에 남다른 감각과 소질로 "현대목회 연구회" 를 또 중년 현장에는 “바른 목회연구회” 라는 목회자 대중운동를 통하여 목회자 예장 목회자 운동에 큰 발자욱을 남겼다. 

2부는 평전소개와 전문가들의 좌담회
2부 순서는 평전을 통해서 본 조지송 목사의 삶과 메시지라는 주제로 고애신 관장(전 구미산업선교회, 현 여교역자 안식관)의 사회로 진행되였다, 먼져 조지송 목사는 인사말 서두에 “대성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 이라고 입을 떼셨는데 그 말의 의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눈물지었다. 오늘 우리 집 사람이 울면 안된다고 해서 한다고 하시면서 “나는 노동자들을 위하여 살았다기 보다 살려고 노력했다” 지혜있는 것들 보다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신다는 믿음으로 바보들을 조직해서 무슨 일을 하면 될 것 같다는 심정으로 일했다고 하셨다. 

한편 현재 출판을 준비중인 조지송 목사 평전의 동기는 이렇다. 1998년 영등포산업선교회가 40년을 맞아 40년사를 출판한데 이어, 2010년에는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우리 총회 기독교역사유적지 8호로 지정되였다. 이것은 우리 교단이 7-8-년대의 산업선교 역사를 교회사적으로 재평가 한 것이다. 사실 총회는 한때 정부와 입을 맞추워 산업선교의 문을 닫게 하려는 시도들을 하거나 이름을 바꾸려고 하는 등 논에 가시처럼 여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사실 PCK의 유산이면서도 의붓자식 취급을 받고 조지송 목사나 인명진 목사는 노회와 동역자들로 배척을 당하는 분위기 였다. 

그러나 건물로는 사료적인 가치는 적으나 선교적인 역사로는 한국 노동운동사적으로 보나 선교역사로보나 오래 기억하고 기념할만한 일이라고 사료되여 지정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 정부 "민주화운동사적지" 로도 지정되여서 그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 내용과 비용을 갈릴리교회와 인명진 목사가 감당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역사 정리작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였다.

특별히 2010년 4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화운동 사건, 인물 기록수집사업의 일환 중 하나인 평전 공모에 목사로 써는 유일하게 선정되면서 작업이 시작되었고 현재 원고는 완료된 상태이다. 조지송 평전의 명칭은 “산업선교의 선구자 조지송 평전” <바보들의 행진>으로 내년에 정식 출간될 예정이다.

평전은 함께 활동했던 김갑준 권사(전 원풍모방, 영등포 교회 권사)를 비롯한 여러 여성노동자들과 동역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이뤄졌다. 특별히 김용복 박사와 유승희 의원(통합 민주당)이 녹취한 많은 분량의 자료와 2000년대 초반 민주화운동 인물 구술자료가 중요한 골간이 되었다. 대표집필은 일하는 예수회 회원이며 시인인 서덕석 목사(성남 열린교회)가 하였다.

 집필자인 서덕석 목사는 농아인으로 자신의 노동자 교회의 경험을 토대로 당시 경험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살아있는 산언선교의 역사를 쓰면서” 라는 주제의 발제와 노동사 연구자의 관점으로 성공회대 이재성 박사가 “질문을 잘 해야 좋은 답을 얻는 다” 라는 취지로 같이 동역한 평신도 실무자인 신철영 선생(전 고총 처리 위원장. 아이굽 크러스타 위원장) 와 교회와 선교적인 관점에서 NCCK 훈련원장 이근복 목사(전 총무) 가 발표를 하였다.

끝에  김용복 박사(잔 한일장신대 총장) 도 인사말에서 당시에 녹취를 끝내고 책을 내려고 했지만 조 목사의 만류로 출판하지 못한 것은 실명이 공개되면 그들에게 불이익을 염려하였고 이제는 그 시간이 무르익은 감이 있지만 많이 내용이 부족하며 이 평전은 조 목사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다라는 확장성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당시 한국의 산업선교 운동과 한국교회의 에쿠메니칼 운동 구룹이 주장한 "사회정의" 의 문제가 지금은 약화된 점이 있다고 하시며 WCC 한국총회를 계기로 기독교 운동이 사회정의 문제를 가열하제 주장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축하 인사자로 조 목사가 활동할 때 국제기구인 WCC와 CCA의 스탭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URM 활동에 대하여 국제적인 지원을 하는 데 공헌한 오재식 선생이 건강이 좋치 않아 불참하여 대신 안재웅 이사장(전 CCA 총무)이 대신 인사를 전하셨는데 "두 분은 동년배로 강조점은  "현장"(Field) 셨다"  오 원장은 학생운동의 현장에서 세계교회의 현장에서 그리고 조 목사는 노동자의  현장에서 평생 수고하시고 오늘의 산업선교의 역사의 증인이 되신 분이라는 축하를 하셨다. 그리고  오 선생님의 자전적인 수기의 출판도  준비하고 있을 알리셨다.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역사는 더 연구되고 발굴되야 
또 하나 당시 영등포선업선교회의 발자취는 교회사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리이지만 특히  한국노동운사에 있어서 정확히 말해서 70년대 여성노동운동에 관한 독보적인 활동과 자료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지금 까지 부각된 조지송, 인명진 목사 못지 않게 평신도 실무자들의 고도와 특히 명노선 목사(당시 전도사)의 역할에 대하여 좀 알려져야 한다. 당시 산선회원의 거의가 20대 여성들로 남성 목사들에게 부족했거나 없는 것들을 위하여 어머니와 같이 때로는 큰 언니와 같은 따뜻한 미소와 맟춤형 돌봄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런 손길들이 모아져서 오늘의 산업선교 역사를 이룬 것이다.

이런 역사들은 앞으로 더 연구되고 쓰여져야 하겠지만 조지송 목사와 인명진 목사와는 년배도 다르고 성품도 다르시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서 보여준 조화로움에 대한 것이나 영등포산선의 최대 조직인 원풍모방 노조와의 결별과정의 진실문제, 교회에 관하여도 조 목사는 절망을 보았지만 인 목사는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하여 후배들을 모아서 시작한 다가 올 시대의 산업선교를 위하여 노동자목회의 교육과 훈련을 하고 확산한 점은 재평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조지송 목사라는 걸출한 인물에 다가 가기 위하여는  인명진 목사라는 다리를 반드시 건너야 한다.     

  
   
명노선 목사(기장 총회) 가 금관의 예수(조목사가 당시 좋아하는 던 곡)을 영등포산선의 현 총무 손은정 목사와 같이 부름

앞으로 나올 조지송 목사의 평전의 일부

2010년 1월 조지송,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북 전쟁이 일어난 그 해 12월 5일, 나는 수많은 피난민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 길을 떠나면서 “3, 4일만 피해 있다가 돌아오겠다” 고 어머니와 약속했지만,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1955년 5월 7일,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첫째 딸과 둘째 아들을 낳았으며 두 자녀들도 각각 결혼하여 아들 하나씩을 낳았다. 그러니까 사위와 며느리를 합해서 8명의 가족이 된 셈이다. 손자 하나는 서울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1963년 11월 21일, 1954년, 신학교에 입학했었지만 경제 사정으로 휴학을 했다가 몇 년 후에 복학했기 때문에 7년이 지난 1961년에야 졸업했으며, 63년 11월 21일에 장로교 목사로 안수를 받고 산업전도 (Industrial Evangelism) 목사가 되었다.

1961년, 8월, 나는 신학교 3학년 시절에 산업선교(UIM) 일을 시작했으며, 시작과 동시에 강원도 석탄이나 철광 등 여러 공장에서 노동체험을 했고 산업사회와 경제, 그리고 노동문제에 대하여 연구하는 과정을 3년간 이수했다.

1964년 2월 14일은 영등포 산업선교(Yong Dong Po UIM) 취임예배를 드린 날이다. 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만나며 그들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땀과 눈물로 일했다. 지금에 와서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면 노동자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온 수많은 날들이 벅찬 감격이며 보람이다. 이 산업선교 운동에 참여했던 국내외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1985년 3월 25일, 나는 영등포를 떠나 충청도 옥화리(Ok Wha Ri) 농촌으로 이사 갔다. 나는 소규모 농사일을 하며 농민들과 이웃 해 살면서 땀 흘려 일하며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살고 있는 농민들의 숭고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2009년 6월26일, 나는 서울 근방인 성남시 판교(Pankyo) 신 도시로 이사 했다.  현대식 첨단 기술로 건축한 아파트라서 일상생활에 불편은 없지만 가까운 이웃이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그러나 TV도 보고 음악도 감상하고 가까이 사는 자식들도 만나고 멀리 사는 자식과 전화대화도 나누고 옛 친구들과 만나 지난날을 회상하며 살련다.
   
                                                              필자 부부와 조지송 목사 내외

조지송 목사의 전기는 후일 소개가 되겠지만 그는 PCK 산업선교를 위하여 전도목사로 안수 받은 총회 최초의 전도목사로 총회 전도부 간사를 거쳐서 영등포 지구 산업전도를 위하여 파송받아 처음에는 공장전도에서 현재의 유산인 영등포산업선교의 초석을 놓는다. 조 목사는 6.25 전쟁시 미군 부대에 근무를 하면서 배운 영어로 한때 한때 미국 유학을 주선받기도 하였지만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배운 영어로 당시 세계교회가 주도하는 중요한 선교적인 흐름에 합류할수 있었다.  당시 서구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로 인한 도시문제와 노동자들의 문제로 많은 연구와 활동이 있었다. 이것이 한국이나 당시 후진국에도 올 것을 예견하였다. 그래서 미국 장로교회 지도자들은 연세대 안에 "도시문제연구소" 와 도시화와 산업화 시대를 맞는 산업선교(URBAN INDUSTRIAL MISSION) 에 대하여 실무자로 발탁하여 훈련을 시킨 것이다.  이를 위하여 WCC와 CCA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여러번 해외에 나가셔서 노동운동과 연구기관 운동단체에서 연수받고 교육받는  경험을 통하여 이미 신학적으로나 사회과학적으로 한국의 어느 누구 보다고 일찌기 개화되셔서 모든 것을 앞서 보시고 길을 개척하신 한국 산업선교의 선구자가 되셨다. 

조지송 목사 연혁
1933년 8월 28일 황해도 황주군 인교면 능산리 137번지에서 출생
1945년 일본 소학교 3학년 중퇴 공산치하의 인민학교 3학년에 편입
1947년 인민학교 졸업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8월 부친 작고
12월 5일 남쪽으로 피난, 어머니와 7남매가 뿔뿔이 헤어짐
1951년 미군부대 노무자로 시작, 군목실에서 일하게 됨 (미 8사단 865고사포대대, 김포 비행장 방위부대)
1955년 박길순과 결혼하여 1남 1여를 둠, 1958년 미 24사단 제6전차대대(문산) 군목실에 근무 중
군목의 장학금 지원으로 장로교 총회 신학교에 진학
1961년 3월 장로교 총회 신학교 졸업(야간)
1961년 2월 경기대학(초급) 국문학과 졸업(주간)
1961년 12월 장로회신학대학교(별과) 졸업
1961년 8월 산업전도와 만남 제1회 산업전도사 연구회에 참가
1962년 탄광, 철광, 제철, 방직공장에서 노동체험
1962년 총회 산업전도 연구원으로 일함(인턴), 산업실태, 경제문제, 행정에 관해 연구
1963년 산업전도 목사로 안수 받음, 신학생과 기독교 학생 훈련을 담당
노동체험과 산업문제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 1964년 영등포산업전도 목사로 부름 받음
(총회전도부, 영등포노회 산업전도위원회, 영락교회전도부 지원)
1965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노동교육 과정 이수
1966년 아시아 노동교육원(Asian Labor Education Center, University of the Philippine) 노동조합 간부교육 수료
1968년 아시아 산업선교 협의회 참가(태국)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1968년 대만(Committee of Church and Society)과 일본(Occupational Evangelism Committee) 산업선교  견학
1970년 미국 시카고 지역사회 조직 활동 본부 견학 (Alinsky's Industrial Area Foundation)
미국 시카고 루즈벨트 대학 노동조합 간부교육 과정 이수 (Labor Education Division, University of Roosevelt)
미국 시카고 도시문제연구소 연구 과정 이수 (Chicago Urban Training Center for Christian Mission)
미국 전국에 산재한 지역사회 주민조직 단체들 (Community Organization) 견학
미국 시카고 오스틴지역 주민조직운동 (Organization for Better Austin) 참가
미국 장로교 산업문제연구원 아시아 노동문제 Seminar 참가 (Presbyterian Institute of Industrial Relation)1971년 미국 농민노동조합운동(United Farm Workers) 참가
1971년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ridrich Ebert Stiftung)의 초청으로 독일 노동운동 견학
독일 개신교 원조기관(EZE : Evangelische Entwicklungshife)을 방문하여 영등포산업선교 회관 건립 협의 및 결정, 프랑스 파리 빈민가 주민조직운동 견학
1975년 장로교총회 산업선교 훈련 담당
1978년 영등포산업선교 회관 건축
1980년 호주 세계교회협의회 선교대회 World Council of Churches) 참가, 호주 세계교회협의회 산업선교 자문위원회의 참가 (World Council of Churches-Urban Rural Mission)
1982년 사회선교협의회 훈련 담당
1983년 영등포산업선교회 사임
1985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로 이주하여 “하나의 집” 운영
1990년 아시아 산업선교 정책협의회 참가(대만), (Christian Conference of Asia-Urban Mission)
2009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 거주

한편 이 모임은 영등포 산업선교회와 성문밖 교회, 7-80년대 노동자들의 모임인 산선동문회(회장 박점순)일하는 예수회(PCK_URM)가 공동으로 준비했다.

도움을 주신 분들
산선 역대 총무단 : 인명진, 이근복, 진방주, 손은하, 박진석, 신승원
산선 동문회 : 권익순, 김명순, 김미순, 김복실, 김석자, 김순회, 문옥순, 박노숙, 박득순, 박점순, 송효순,  순점순, 신미자, 신태웅, 안윤옥, 유옥순, 이경숙, 이복례, 이순원, 이순화, 장금숙, 장석숙, 전덕순, 정순희,
조명춘, 조영순, 주월화, 한상근, 허숙자, 황봉순, 김영희, 이신숙
■  일하는 예수회 회원 : 강우경, 서경기, 서덕석, 안기성, 안하원, 오규만, 오상열, 유재무, 윤창현, 이동규, 정태효, 허춘중, 김규복 

그리고 참석하셔서 직접 찬조를 하신 분들도 적지 않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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