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순교자 고 문용동 전도사 - 예장뉴스
예장뉴스
연못골 이야기(기획)I will miss your(추모)
광주의 순교자 고 문용동 전도사
예장뉴스 보도부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5.25  00:11:10
트위터 페이스북

              광주 호신대서 문용동 전도사 추모예배

제42주년 5ㆍ18민주화운동 및 고 문용동 전도사 순직기념예배가 5월 19일(목) 오전11시 그의 모교인 호남신학대학교 대강당에서 그를 추념하는 단체들과 동문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총회인권위원장 이광호 목사의 사회로 총회 부총회장 이순창 목사가 열왕기상 17:8~16을 본문으로 “사르밧 한 여인의 믿음과 광주 5ㆍ18민주화운동”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문용동 전도사에 대한 행적이나 자취는 광주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많이 알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동안 시대적인 상황과 환경으로 교회에서 조차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체 가까운 지인들 마음속의 의인으로만 남아 있었다. 이 일이 공론화된 것은 100회기 총회장이 된 채영남 목사(광주 본향교회)때다. 문전도사와 동문수학하기도 했지만 남다른 사명으로 지역과 총회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총회적으로 부총회장이 직접 광주에 내려와 설교를 한 것이다. 그간 채 총회장도 그렇고 같은 호남사람이라는 평가로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영남 출신 부총회장 이순창 목사가 내려와 문용동 전도사 추모예배 설교를 했다는 것은 이제 총회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된 것이라는 기대다. 

   
                                   * 좌로 부터 채영남 전 총회장 김광훈 목사 이순창 부총회장 

고 문용동 전도는 1973년 호남신학교에 입학한 뒤, 1979년 3학년 재학시 전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 파송으로 상무대교회 전도사로 시무중이었다. 5‧18 당시 상무대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에 붙들려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고 말리면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이후 부상자 구호와 헌혈운동 등으로 활동했고, 계엄군이 철수 한 뒤 도청 지하 무기고를 관리했다. 1980년 5월 27일 도청에 남아 있다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순교했다. 호남신학대학교는 문 전도사에 대해 2000년 2월 명예졸업장을 수여했으며, 2001년 5월 17일에는 모교에 추모비 건립과 추모집을 발간했다. 2017년 9월에는 총회에서 순직자로 지정되여 당시 총회장 이성희 목사가 직접 광주에 내려온다. 

문용동전도사기념사업회에서는 문전도사의 이런 행적을 총회 차원에서 인정받도록 순직자 추서를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 지난 2018년 제 22회 봄 광주동노회서 103회기 총회에 당시 광주동노회(노회장:공동용 목사)는 노회 인권위원회가 헌의한 고 문용동 전도사를 총회 순교자 지정을 위한 보고를 만장일체로 채택하여 103회기 총회에 헌의한 바 있다.

2020년 CBS-TV 5.18 4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그 해 봄> 7부작 릴레이 인터뷰에서'광주를 구한 의인' 문용동 전도사를 아십니까 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바 있었다. 또 오마이뉴스 조호진 기자의 보도로도 다음과 같이 자세히 소개가 되기도 했다.

   
 

오마이 뉴스 기사 인용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새벽 동이 다 튼 (아침에) 헬기에서 '투항하라'고 (계엄군이 선무방송을) 했었는데, (전남도청 지하 무기고를 지키다가 투항하기 위해) 문 전도사가 앞에 가고 제가 그 뒤를 따라가며 (전남도청) 문을 열고 막 나가는데 헬기에서 쏜 총격으로 문 전도사가 유명을 달리했죠."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 무기고 관리반(일명 폭약관리반)의 일원이었던 김영복(광주서석교회 집사)씨는 CBS-TV 5.18 4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7부작 릴레이 인터뷰 <그 해 봄>(연출 반태경 PD)에서 '광주를 구한 의인'으로 불리는 고(故) 문용동 전도사(1952~1980)가 계엄군의 조준사격에 의해 1980년 5월 27일 숨졌다고 증언했다.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전도사
고(故) 문용동(당시 27세) 전도사는 1980년 광주항쟁 당시 호남신학대 4학년생으로 상무대교회에서 시무했다. 상무대교회는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에 소속된 군인과 가족들을 위한 교회다. 문 전도사는 전남노회 여전회연합회에서 파송한 민간인 신분의 교역자로 전교사 소속 군인가족 대상으로 주일학교와 학생회를 지도했다. 전도사는 개신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기 이전의 교직 신분이다.

문 전도사가 항쟁에 참여한 것은 계엄군의 만행 때문이었다. 1980년 5월 18일 상무대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광주 시내를 걷던 그는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원들에게 폭행을 당해 쓰러진 시민을 전남대 병원으로 옮기면서 항쟁에 참여했다. 문 전도사는 1980년 5월 22일 일기에서 당시의 상황과 심경을 이렇게 기록했다.

"도청 앞 분수대 위의 시체 관 32구. 남녀노소 불문 무차별 사격을 한 그네들. 아니 그들에게 무자비하고 잔악한 명령을 내린 장본인. 역사의 심판을,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리라.

계엄당국의 엉터리없는 오도(誤導). 불순분자들의 난동이라니, 그럼 내가 나도 불순분자란 말인가. 대열의 최전방에서 외치고 막고 자제시키던 내가 적색분자란 말인가. 우린 후세에 전 국민에게 광주사태가 몇몇의 불순세력에 의해 자행된 것이 아니라 무자비한 공수부대의 만행에 분노한 선량한 시민들의 궐기임을 알리고 증언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시민이 빵과 주먹밥과 음료수를 나르는 시민들이 폭도란 말인가. 뭔가를,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보여줘야 한다. 나의 불참이, 나의 방관, 외면이 수습을 더 지연시키는 것이다."

   
 

광주 시민의 생명을 구하려다 프락치로 누명
광주항쟁에 참여한 문 전도사는 '폭약관리반원'을 자원했다. '폭약관리반'은 시민군이 전남도청 지하에 구축한 무기와 탄약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남도청 지하에 보관돼 있던 TNT 양은 1977년 발생한 이리역(현재 익산역) 폭발사고의 두 배. 이리역 폭발사고로 사망자 59명, 부상자 1343명, 이재민 1만 명이 발생했다.

전남도청 지하에 보관한 TNT 시민군이 계엄군에 맞서기 위해 화순광업소에서 가져온 것으로 항쟁 최후의 무기이기도 했지만 이를 사용할 경우 광주 시가지의 절반이 날아갈 정도의 재앙을 불러올 무기였다. 계엄군이 시민군의 최후 보루인 전남도청 진압을 망설인 것은 이 때문이었다.

수도경비사령부 헌병으로 복무하면서 총기류와 폭약류 교육을 받은 문 전도사는 광주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 그는 한 살 아래로 공병하사관 출신인 김영복과 함께 5월 23일 전교사 부사령관 김기석 장군을 찾아가 다이너마이트 뇌관 700여개, 24일엔 폭약 뇌관 2288개를 넘겨주었고, 김 장군은 탄약전문가 파견을 약속했다.

전교사에서 파견한 배승일 기술문관(탄약검사사)은 5월 25일 전남도청 지하 무기고에 잠입, 문 전도사를 비롯한 5명의 폭약관리반원과 함께 밤을 새우면서 다이너마이트 뇌관과 폭약 뭉치 2100개와 수류탄 신관 450여 발을 해체했다. 문 전도사는 재앙을 막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계엄군의 프락치라는 누명이었다. 계엄군은 1980년 5월 31일 발표한 '광주사태의 전모'에서 문 전도사를 "군이 매수한 부화뇌동자'로 기록했고 광주 시민사회는 공작요원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 모교인 호신대 교정에 있는 고 문용동 전도사 묘비 

평화의 순교자 문용동 전도사는 누군인가?
문 전도사의 호남신학대 동기인 윤상현 목사는 CBS-TV와의 인터뷰에서 "문 전도사는 자기 집에 찾아온 거지가 씻을 수 있도록 목욕물을 준비해주고 먹을 것을 챙겨준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다"면서 "집창촌 여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정도로 신앙적 열정을 가진 순수한 교역자였지만 당시 (계엄군이 저지른 만행에 의한) 광주 상황이 의분을 갖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며 문 전도사의 항쟁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벌어지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 26일 전남도청을 찾아가 문 전도사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 저녁에 계엄군이 들어온다고 하니 나와라. 위험하다. 친구(문용동 전도사)가 이야기하기를 도청 안에 들어가서 보니 회수한 무기들을 도청 지하에다 보관하고 있는데 특히, 화순탄광(화순광업소)에서 가져온 다이너마이트라던가 TNT를 보관하고 있는데 잘못하면 광주시가 큰일 날 것 같다. 만약에 폭발하게 되면 반경 5km 안은 다 날아간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무기와 탄약을 같이 지키던 몇몇은 떠났다. 나는 끝까지 지키겠다. 이걸 아는 신학도로, 예수는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끝까지 지켜야지.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다."

문 전도사를 연구한 호남신학대 최상도 교수는 CBS-TV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보면 TNT는 (시민군에게) 항쟁 최후의 보루였다. TNT 때문에 진압군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문 전도사가 TNT 뇌관을 다 분리, 항쟁 지도부에 반기를 든 것 같은 상황이 되면서 프락치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지만 (문 전도사는) TNT 폭발로 파괴되는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를 했다"며 문 전도사를 광주 시민의 생명을 지킨 순교자라고 평가했다.

윤 목사는 광주항쟁에 대해 "5.18은 민주화운동이자 평화운동이었다. 그때 당시에 도난사건이 있었나. 구타 사건이 있었나. 너무나 평화로운 평화시민운동이었다"면서 "문 전도사는 광주의 평화를 위해 희생했다"며 광주 시민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자기를 버린 친구 문용동 전도사를 그리워했다.

한편, 문용동 전도사의 소속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순교·순직자심사위원회는 지난 1월 104-2차 모임에서 문용동 전도사 순교자 추서 청원 논의를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해 연구를 지속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열린 103회기 모임에선 광주동노회의 문 전도사 순교자 추서 청원이 '가하다'고 판단했지만 일부 위원들이 새로운 증거나 연구결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따라 연구와 조사를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광주의 진실을 외면하는 기독교인
문용동 전도사의 이야기는 '무기고의 의인(義人) 고(故) 문용동 전도사'라는 제목으로 4회에 방영됐다. 1회는 5.18기념재단 이사장 이철우 목사의 '빚진 자의 마음으로', 2회는 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간호사 감독이었던 김복순 사모와 초보 간호사였던 박경희 사모의 '예수의 사랑으로 부상자를 돌보다', 3회는 5.18 당시 투사회보 제작에 참여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공동 저자인 전용호 작가의 '빚진 자의 심정으로 광주의 실상을 알리다'가 방영됐다.

<그 해 봄>은 5.18 광주항쟁과 한국 개신교의 역할을 재조명하기 위해 제작됐다. 광주에서 5.18을 연구해 온 호남신학대 최상도 교수는 "국립 5.18 민주묘역에 종교를 확인할 수 있는 묘가 199기(基)인데, 그 중 130기 이상이 기독교(개신교)인으로 추정될 정도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기독교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 해 봄>을 제작한 반태경 PD는 "인터뷰에 참여한 분들의 한결 같은 바람은 전 국민이 광주항쟁의 정신을 살려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라면서 "이 프로젝트가 광주항쟁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개신교인들에게 작은 공명(共鳴)이라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연출 소감을 밝혔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5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9
장로교회의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 성동구 성덕정 17길-10, A동 202호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