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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 학술세미나 이치만 교수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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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8.24  22: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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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의 민주주의 이해에 대한 비교연구

이치만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한국교회사)

   
 

Ⅰ. 들어가면서

이 발제문은 목민연구소의 기획에 의해서 시작된 고영근 목사연구의 가운데 하나로 수행하는 것이다. 본 연구자가 고영근 목사의 민주주의 정신에 주목하게 된 것은 고영근 목사의 삶 가운데 그의 삶의 궤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영근 목사의 민주주의 정신을 연구할수록 한경직 목사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과 상당히 오버랩 됨을 느꼈다. 본론에서 논하겠지만, 그 내용과 성격이 매우 유사하다. 고영근에 대한 연구 혹은 한경직에 대한 각각의 연구는 선행연구로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의 민주주의 이해에 대한 비교연구가 없어서 이를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따라서 본 발제문은 고영근 목사의 민주주의 정신을 분석함에 있어 한경직 목사의 민주주의 관념을 비교하면서 고영근 목사의 민주주의 이해를 보다 명료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목적이다.

Ⅱ. 고영근의 민주주의 이해(5)

고영근 목사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자유, 정의, 평등, 인권이라고 꼽았다. 이 정신은 존 로크(1622~1704)의 자유주의 사상으로부터, 자유, 평등, 권리를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독립선언서(1776)에서 자유, 정의, 평등, 인권을,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1789)에서 자유, 정의, 평등, 인권을, 또한 유엔 총회의 인권선언(1948)에서 자유, 정의, 평등, 인권을 인용하고 있다. * 고영근, 이 민족의 나아갈 길』(서울: 한국목민선교회, 1982), 187.
그리고 이 네 가지 사상은 기독교 신앙의 원천인 성경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고영근 목사가 주장하는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구성요소를 세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 자유

고영근 목사는 누가복음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중략) ‧‧‧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4:19)을 인용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민중을 죄에서 해방하사 양심의 자유를 주셨다고 해석하였다. 그래서 ‘십자가를 믿어 구원하는 기독교는 율법의 속박에서 자유를 주는 자유의 종교’라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바울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고 하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 국민이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은 자유라고 역설하였다. 위의 책, 188.
그래서 고영근 목사는 민주주의 가장 큰 특권인 자유를 다시 세분하여, 1) 개인적인 자유, 2) 정치적 자유, 3) 경제적 자유, 4) 문화적 자유, 5)사회적 자유, 6) 종교적 자유, 7) 양심의 자유로 나누고 있다.
먼저 고영근 목사가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책, 188-193.

개인의 자유는 하나님께서 존중하시고 부여하신 것이므로, 어떤 누구도 개인의 자유를 박탈할 수 없다. 만일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자가 있다면 악마와 같은 범죄자의 악행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다양성에서 출발한다. 사람의 얼굴 모양이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듯이, 각 사람의 사상과 의견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자신의 기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는 위대하고 그 사회는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주장만이 옳고 자신의 의견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선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다양성에 위배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는 배타주의와 독선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얼마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거나 다른 사람의 주장을 묵살하는 것은 자신도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 독선이다.

한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보다 여러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을 한데 모아서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자 위대함이다. 무수한 개인이 저마다 제 소리를 내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겸손을, 타인에게는 관용을, 인간 상호관계의 조정에 있어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때 민주주의는 꽃을 피우게 된다.
다음으로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즉, 모든 국민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공정한 선거로써 국민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자유라는 것은 이른바 피선거권과 선거권의 자유로운 행사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책, 193.

덧붙여서 공산주의는 이러한 자유가 제한되어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음으로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는 거주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위의 책, 194.
즉 자기가 거주하고자 하는 곳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의 재능과 능력에 따라 스스로의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고영근 목사는, 공산주의 체계, 특히 북한은 거주이전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 그리고 농민에게 필수인 파종의 자유마저 박탈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는 식량의 문제를 해결해주니까 자유와 권리는 당에게 맡겨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어서 문화적 자유를 논하고 있다. 위의 책, 196.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누구나 학문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으면,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자유는 교육과 학문 그리고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회적 자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위의 책, 196-197.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가장 중요한 자유는 언론의 자유이다. 언론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를 막론하고 어느 영역에 대해서도 공종하고 자유롭게 보도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자유의 또다른 자유는 출판, 결사, 집회의 자유를 언급하고 있다.

다음으로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는, 정부는 국민이 믿고자 하는 종료를 믿지 못하게 탄압해서도 안 되며, 믿기 싫은 종교를 억지로 믿도록 강요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하고 있다. 위의 책, 198.

자유에 대한 마지막 세부 항목으로서 양심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위의 책, 199.
민주주의의 국민은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정의

고영근 목사는 민주주의 4가지 구성요소 가운데 두 번째로 정의를 언급하고 있다. 로마서를 인용하여,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롬 15:3)을 말하면서 정의를 언급하였다. 고영근 목사에게 있어서 정의는, 1) 정치적 정의, 2) 경제적 정의, 3) 문화적 정의, 4) 사회적 정의, 5) 종교적 정의로 세분된다. 이에 대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책, 201-202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가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누리는 자유가 다른 사람이 누리는 자유와 충돌하였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의 자유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남의 자유를 억누르고 짓밟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도 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유린할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자유라기보다 방종이다. 그러므로 자유는 반드시 정의와 사랑이 동반되어야만 참된 자유가 된다.
먼저 정치적 정의는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고 집권해야 한다. 또한 그 권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신 실현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자세로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고로 정의로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해야 하며, 그를 두려워해야 한다. 결국 정치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적 정의의 핵심이다.
다음으로 경제적 정의는 나 혼자만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조화를 이루며 공생 공영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경제관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것은 인류 전체의 공동 소유이며, 우리는 그 자산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의에 의해서, 그리고 인류의 공동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경제적 정의가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부자는 더욱 부유하게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의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부조리가 발생하면 민주주의는 근본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곧 공산주의 세력이 사회부조리를 비집고 들어와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민주주의 또 다른 기초가 된다.
다음으로 문화적 정의는 자유로운 개인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학문, 예술, 교육을 상품의 도구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학문, 예술, 교육은 인류의 복리증진을 위해서 선하고 의롭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적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어서 사회적 정의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인류의 공생공영의 원리가 정의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이나 자본이나 군대의 위력으로 정의를 복종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정의는 종교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는 민중의 양심적 중추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사회가 부패하지 않는지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을, 혹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지 살피는 빛과 진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종교인의 시대의 파수꾼으로서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대해서 준엄하게 책망하고, 정의를 선포하며, 민중을 선도하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데 앞장서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권과 교권은 엄연히 분리되어야 하지만, 정치와 종교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3. 평등

고영근 목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평등하게 창조하셨고, 의인이나 악인을 평등하게 대우한다고 말하면서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 즉 하나님께서는 하물며 악인과 의인 그리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평등하게 대우하시는데,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내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9-50)을 인용하면서,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형제 자매라 말씀하셨고 차별을 두지 않으셨다. 그래서 하나님 앞의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참된 실현을 위해서는 평등의 민주주의 원리를 강조하면서, 1) 정치적인 평등, 2) 경제적인 평등, 3) 문화적 평등, 4) 사회적 평등, 5) 종교적인 평등으로 분류하여 역설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책, 208-215.

먼저 정치적인 평등은 앞서 언급한 정치적 자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정치적인 의미의 평등은 피선거권과 선거권의 평등을 의미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정치적 평등이 이루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찍이 민주주의가 시작된 유럽의 의회에서도 전 국민이 선거권을 가지게 된 것이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이루어졌다. 특히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불과 100여 년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적인 평등인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민주주의 요소로서 꽃을 피우려면 공명선거가 이루어져야한다. 선거부정은 민주주의 요소인 정치적인 자유와 정치적인 평등을 파괴한다. 개인에게 합당하게 주어져야 하는 정치적인 자유이며 정치적인 평등이 선거부정으로 훼손된다면 민주주의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적인 평등은 빈부격차가 축소되고 공생 공영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빈부격차를 해소와 공생 공영을 이룩하기 위해서 북한 공산당의 방식으로 총칼로 강압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앙심과 자선심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비유로 교훈하신 포도원 주인의 예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9시에 한 데나리온을 약속한 일꾼에게 일을 맡겼다. 그리고 12시에도, 오후 3시에도, 오후 5시에도 각각 다른 일꾼에게 일을 맡겼다. 저녁이 되어 하루 일과가 모두 마쳤을 때 포도원 주인은 모든 일꾼에게 한 데나리온을 지불하였다. 당시의 경제 관념에서는 한 데나리온은 하루의 일당에 해당하며 그것은 한 가정이 하루를 먹을 수 있는 화폐가치였다. 즉 포도원 주인은 몇 시간 일했는가와 상관없이 모든 일꾼에게 한 가정의 하루 생활비를 지급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업가는 노동자가 그들의 가정에 최소한의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임금을 지급함이 마땅하다. 기업가 혼자서는 이를 결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와 그리고 사회가 이를 위해서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산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산은 인류 공동의 자산이며 우리 모두를 위해서 사용하도록 허락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경제평등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실현을 완성해야 한다.
문화적 평등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또한 문화적 평등은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문화에 관여하며, 예술을 감상하고 창작하며,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평등하게 누리는 것이다. 즉 문화적 평등은 민주주의에서의 모든 국민은 어떠한 정신적 활동에 대해서도 참여할 수 있으면 또한 그 결과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평등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평등은 법률적인 평등을 의미한다.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며, 아무런 차별없이 동등하게 법률의 보호를 받을 자격을 가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평등은 종교의 자유에 기인하여 어떤 종교도 핍박을 받지 않고,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를 핍박해서도 안 되며, 평등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역설하고 있다.

   
 

4. 인권

고영근 목사는 성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며 인권의 정당성을 성경에서 찾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창 1:26-28)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을 것이라”(마 18:6)의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구절들이 인간의 권리의 소중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위의 책, 215-216.
이어서 고영근 목사는 「유엔의 인권에 관한 세계 선언문」의 전문을 그대로 싣고,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것은 바로 인권에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Ⅲ. 한경직의 민주주의 이해(4)

한경직 목사는 '건국과 기독교' 라는 설교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그 뿌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한경직, 「건국과 기독교」, 건국과 기독교 설교집 제1집, 1951, 193.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건국과 기독교」, 193-212.


옛 나라인 대한제국이 멸망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져가고 있다. 새로운 나라의 정신적 기초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기독교가 새로운 나라의 정신적 기초가 되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상의 핵심은, 1) 개인 인격의 존중, 2) 개인의 자유, 3) 만인의 평등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사상의 기저에는 평등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평등사상은 과학적인 근거로 본다면 인간은 동물에서 시작되니까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적인 근거를 보더라도 민주주의 사상의 뿌리라고 알려져 있는 헬라철학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철학은 그리스 시민에게만 적용될 뿐이었고, 노예들에게는 평등한 사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평등사상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그것은 성경에서 기인한다. 첫째는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으셨다는 창조신앙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나 분별이 없다는 신앙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엄하게 창조된 존재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엄한 존재이며 그 존엄함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경직 목사는 「민주국가의 정신적 기초」라는 설교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민주주의 관념에 더하여 ‘질서와 법에 대한 존중’그리고 ‘국민의 도덕적 품격’ 등을 추가하였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의 관념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경직, 「민주국가의 정신적 기초」,  민주국가의 정신적 기초 설교집 제10집, 1968, 99-108.
여기서는 한경직 목사가 「건국과 기독교」, 그리고 「민주국가의 정신적 기초」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의 다섯 가지 관념을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개인의 존중’에 대해서 한경직 목사의 논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책, 99-100.
한경직 목사는 ‘우리는 이 나라가 하나님의 뜻으로 자유의 새 삶을 갖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 땅에서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위의 책, 99.
링컨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여, 국민 하나하나의 생명, 그 재산, 그 인격, 그 의견, 그 양심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 하나하나가 존중받고 존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국가가 개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독재국가와 같이 국가를 위해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는 이와 같은 개인 존중의 관념은 다름 아닌 성경으로부터 기인했다고 말한다. 즉 창세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이 존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그리고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은 사람의 존엄함을 무엇보다 우선하시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존엄함이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임을 강조하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민주주의에서는 ‘평등관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위의 책, 100-102.
‘평등관념’은 만인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김새가 각각 다르고 그 재능이 다르고 그 능력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성경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동등한 인권이 있다. 동일한 천부(天賦)의 인권을 부여받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평등을 좀 더 세분하면 다음의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기회의 평등, 2) 법 앞에서의 평등, 3) 평등한 권리와 의미가 그것이다.

셋째로 민주주의에서는 ‘자유관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위의 책, 102-104.
먼저 루즈벨트 대통령의 4대 자유를 언급하고 있다. 1) 신앙의 자유, 2) 언론의 자유, 3) 공포로부터의 자유, 4) 궁핍으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또한 미국의 트루브러드(Eton Trueblood)의 󰡔자유의 선언󰡕에 나오는 6가지의 자유를 인용하고 있다. 1) 학문의 자유, 2) 변론의 자유, 3) 신앙의 자유, 4) 노동의 자유, 5) 생존의 자유, 6) 봉사의 자유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의 정당한 자유관념은 그저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방종이지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존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는 이 자유의 관념은 성경에서 근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61장 1절을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복된 해를 전하게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위의 책, 104.
또한 고린도후서의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갈라디아서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등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부여하신 근거가 되는 말씀이므로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고, 또한 그것을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위의 책.

넷째로 ‘질서와 법에 대한 존중 관념’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위의 책, 104-107.
옛날 군주 시대에서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군주에 대한 충성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즉 군주가 곧 국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국가에서는 군주가 없다. 정권을 잡았다가도 선거에 패배하면 정권에서 내려와서 평범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충성해야 할 군주가 없으니, 국가의 근간이 되는 법과 질서를 준수해야 한다.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준수하자는 것이다. 한경직 목사는 이 준법 관념도 성경에서 그 근원을 찾고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바로 준법의 원리가 된다고 논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로 ‘국민의 도덕적 품격’을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요소라고 강조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행사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민주주의가 구현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참자유가 구현되려면, 국민이 자유를 향유 할 품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그것을 완성하는 사람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기 때문에 품격있는 국민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품격으로 거듭나는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고린도후서의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한경직 목사는 위에서 거론한 모든 강조가 기독교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끝으로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말씀을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이대로 행하면, 집을 반석 위에 지을 수가 있다. 너희 한국사람들아! 너희가 내 이 말을 듣고 이대로 믿고 이대로 행하면 너희 큰 집, 국가라고 하는 것을 진리의 반석 위에 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무리 다른 방면에 애쓴다 할지라도 결국은 모래위에 세우는 것이다. 위의 책, 108.

Ⅳ. 공통점과 차이점

지금까지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공통점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에서는 민주국가에 대한 신념 그리고 반공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는 공통점을 나타내고 있다. 고영근 목사는 민주주의 기본정신을 논하기에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세계 인류가 6천 년 역사에 걸쳐 지금까지 경험한 정치제도 중에 제일 좋은 제도는 민주주의라고 판명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의 교훈을 종합해 보면 기독교는 민본주의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민중 본위로 역사하셨고 결단코 특권층을 위하여 역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고영근, 위의 책, 185.

한경직 목사의 경우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함을 다음의 언급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옛 나라가 없어진지 이미 四十년. 새 나라가 건설되려는 이 시기에 ’이 새 나라의 정신적 기초를 어데 두어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三千만의 중대 관심사입니다. 이 새나라의 정신적 기초를 반드시 기독교가 되어야 하겠고, 또 필연적으로 될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이 새나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한경직, '건국과 기독교', 193-194.

또한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민주주의에 확고한 신념만큼이나 반공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확고한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고영근 목사는 다음과 역설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진리의 반역이오, 우리 민족과 세계 인류의 적입니다. 이 세계 160개 국가 중에 공산주의 때문에 고통을 밪디 않는 나라가 없으며 공산주의가 이르는 곳마다 거짓과 폭력과 파괴입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되었는데 북한 동포는 공산주의의 압제를 받고 있으며 남한은 공산주의의 침략에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득세하는 데마다 기독교는 수난과 핍박을 받으며 선교활동이 마비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속히 공산주의가 이 땅에서,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도록 해야 하며, 북한동포와 세계인류를 공산주의 마수에서 해방해야 되겠읍니다. 고영근, 위의 책, 278.

한경직 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와 공산주의」 제하의 설교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설파하고 있는 논리의 핵심을 요약하고 또한 논파하고 있다.
유물사관을 사회철학으로 삼고 계급투쟁을 주창하는 공산주의는 푸로레타리아 독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계급투쟁과 혁명을 통하여 정권을 얻은 후에는 푸로레타리아가 독재하고 계급 없는 사회에 이를 때까지 무자비한 투쟁을 계속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자본 계급과 지식 계급과 그 외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인물은 다 숙청하고 봉건 제도의 잔재인 종교와 도덕도 다 전멸시키고 생산기관이나 소비기관은 다 국유로 한다. (중략) 이런 사회에 자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먹는 것은 혹시 근심없이 고루 먹을 수 있겠다. 아무런 자유도 없고 그저 일이나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먹는 사람을 전날엔 ’종‘이라고 불렀는데, 공산사회에서만 인민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한경직, '건국과 기독교', 209-210.

둘째,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는 민주국가의 구성요소에서 공통적으로 자유, 평등, 인권, 그리고 준법정신과 국민 개개인의 도덕적 함양을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보고 있다. 고영근 목사는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4대 기본정신으로 자유, 정의, 평등, 인권을 꼽았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준법에 충실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국민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합법적으로 제정된 모든 국가법률을 국민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민들은 자신이 선출한 지도자가 공의를 파괴하지 않고 올바른 정사를 할 때 지도자에게 순종하여 또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중략) 사회의 안녕질서를 위하여 제정된 모든 규칙과 질서를 잘 지켜서 상부상조하며 명랑한 사회를 형성해야 할 것입니다. 고영근, 위의 책, 245.

이어서 고영근 목사는 ‘위대한 국민정신 창조’를 역설하면서, 정의로운 국민이 될 것과 성실한 국민, 창조하는 국민, 협동하는 국민으로서 도덕적 함양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 조국을 위대한 나라로 번영케 하려면 우리 민족의 위대한 국민성을 소유하게 해야 할 것이면, 우리나라를 참된 민주주의 국가가 되게 하려면, 민주 국민으로 손색이 없는 국민성을 창조해야 할 것입니다. 반석 위헤 집을 지어야 견고하듯이 반석같이 확고한 국민성 위에 나라를 건설해야만 나라가 견고할 것입니다. 위의 책, 223.

한경직 목사도 민주주의의 5가지 관념으로 1) 개인 인격의 존중, 2) 개인의 자유, 3) 만인의 평등, 4)질서와 법에 대한 존중, 5) 국민의 도덕적 품격을 역설한 것을 위에서 살펴보았다. 이 또한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의 공통점이다.
셋째,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는 민주국가의 근거를 성경과 기독교에서 찾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영근 목사는 민주주의 4대 정신으로 자유, 정의, 평등, 인권을 꼽으면서, ‘이 네 가지 사상은 기독교 신앙의 원천인 성경에서 우러나온 진리’라고 강조하였다. 위의 책, 187.
자유의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갈5:1)을 인용하여 그 근거로 삼았다. 위의 책, 188.
또한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을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롬15:3)을 인용하여 이웃을 자기보다 기쁘게 하려는 선한 뜻을 정의의 정신을 근원으로 보았다. 위의 책, 202-203.
또한 평등의 정신은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쫓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태인이나 할례당과 무하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느니라.”(골3:9-11)에 근거하는 것에서 기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의 책, 208.
인권의 정신은,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중략) 그러면 네 지식으로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8:9-21)을 인용하여 생명보호와 인권옹호가 성경의 말씀에 기초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위의 책, 215.

한경직 목사 또한 민주주의 3대 관념인 개인의 존중, 개인의 자유,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성경에서 그 근원을 찾고 있다.
이 사상의 근본은 신구약 성경입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되 그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그 신앙. (2)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나 분별이 없다는 그 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민주주의란 꽃은 기독교 문화의 밭에서만 아름답게 핀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기독교를 이해치 못하는 이는 민주주의를 이해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새 한국은 반드시 기독교가 그 정신적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한경직, '건국과 기독교', 194-195.

지금까지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의 공통점을 살펴보았지만, 여기서는 차이점도 살펴보고자 한다. 고영근 목사는 성경의 교훈을 ‘민본주의’라고 집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사역은 ‘어디까지나 민중 본위로 역사하셨고 결단코 특권층을 위하여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서 출애굽의 경우에도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간역자로 인하려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중략)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네 하리라.”(출3:7-12)은 하나님께서 민중을 적자(赤子)같이 사랑하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영근, 위의 책, 185.
또한 다윗의 경우에도,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사옵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하셨나이까? 예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삼하24:17)는 민중을 사랑한 모범적인 정치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위의 책, 185.
또한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희에게서 밀린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가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케 하는 자로다.”(암5:12)은 하나님께서 민중을 이처럼 사랑하고 아끼시어 악한 정치인의 폭정을 경계하며 민중 본위의 정치를 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역설하고 있다. 위의 책, 186.
다시 말해 고영근 목사가 말하는 민주주의 정신은 성경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그 성경에서 말하는 바가 다름 아닌 ‘민중 본위’의 정신을 말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민중 본위의 정신이 오늘날 민주주의 정신의 근원이 되는 성경적 정신의 기초라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고영근 목사는 한경직 목사의 민주주의 관념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정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생략하겠다.

Ⅴ. 나가면서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의 민주주의의 이해는 그 내용에서도 거의 일치할 뿐 아니라, 그 근거가 되는 성경의 인용하는 구절도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었다. 이 발제문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고영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의 민주주의 이해의 그 흡사함에 대한 교회사적 고찰이 수행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비교연구에 초점을 맞춰서 수행하였기 때문에 교회사적 고찰을 미처 수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따른다.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또한 고영근 목사의 삶과 한경직 목사의 삶의 차이는 아마도 두 목사의 민주주의 이해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 본위’와 ‘정의’라는 정신이 가미되는가 여부에 달려있지 않았겠는가 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이에 대한 연구자 제위의 많은 토론이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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