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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1.03  09: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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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재판 30년,교회권력에게 묻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소위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지향했던 고(故) 변선환 교수(1927∼1995)가 이단으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고 출교당한 지 30년이 흐른 3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그의 제자들과 신학자들이 당시 사건과 그의 신학세계를 조명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종교재판 30년, 교회권력에게 묻다’를 주제로 연 이번 학술대회는 변선환 교수의 제자들이 만든 ‘변선환아카이브’가 주최하고 ‘여해 강원용 재단’, 엄상현 목사 등이 후원했다. 농목, 새물결, 생명평화마당, 한기연, 크리스찬아카데미 등 30개 단체가 공동주관자로 참여했다.

   
 

이 행사의 실무를 하는 변선환 아카이브 소장직을 맡은 김정숙교수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로 시작했다. 

1992년 5월 감리교 서울연회의 종교재판위원회가 감리교 목사이자 감리교신학대학교의 학장이셨던 변선환 교수를 교단과 학교에서 출교시킨 이후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종교재판이란 그저 중세 유럽에서 교회권력이 저지른 부끄러운 기독교 역사의 유물로만 알고 있었던 당시의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은 중세도, 구한말 선교 초기도 아닌 20세기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일어난 초유의 종교재판 사태로 존경하는 학자이자 스승님을 잃었습니다.

종교재판이 있은지 30년, 그동안 심판자의 자리에 앉았던 감리교 목사님들 그리고 피고석의 자리에 앉아야만 했던 변선환 교수님, 종교재판에 관련된 대부분의 사람이 이제 세상을 떠나시고 안 계시지만 저희의 마음에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와 해소되지 않은 문제들로 남아있습니다. 충분한 신학적 토론이나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신학적 논리도 없이 마녀사냥처럼 몰아친 당시 교권의 종교재판은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덮고 지나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이제 종교재판 30년, 이 자리를 통해 가슴 속에 묻어둔 질문들, 해소되지 않은 문제들을 함께 묻고 대답하며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992년 5월 감리교 종교재판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는 왜 일어났는지, 그래서 무엇을 얻었으며 그 이후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어떠했는지 묻고자 합니다. 그리고 비록 30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변선환” 이름에 덧씌워진 오도된 사실을 바로 잡기를 원합니다. 이는 변선환의 이름은 단지 교권의 희생당한 과거의 한 인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미래도 계속되는 종교 권력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모형이 되기 때문이며 인류를 위한 성숙한 기독교의 상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좌로부터 김정숙 교수 민영진 박사 도울 김용옥 선생

1부 / 종교재판 30년, 회고와 성찰

발표 1 송순재(감신대 은퇴교수)
“사랑과 열정, 변선환의 신학 여정”
발표 2 이정배(현장아카데미 원장)
“죽어야 사는 기독교 ― 타자 부정에서 자기 부정으로”

2부 / 종교재판 30년, 그 ‘以後’

사회 장왕식(감신대 은퇴교수)
발표 1 한인철(연세대 명예교수)
“불가결의 상호보충 ― 하나의 시도”
발표 2 이호재(전 성균관대 교수)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의 화해를 위한 ‘풍류 담론’”
발표 3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소장)
“감리교 종교재판, 한국적 ‘보편종교’를 향한 진통과 선취” 

자료집 다운로드/https://drive.google.com/file/d/12moxuPUpjsr2GvBFNX4wtxeHlk-LUveT/view?usp=sharing

                  변선환 교수 종교재판 경과

작성: 최대광 목사(감신대 객원교수, 공덕교회 담임목사)

1. 1990년 11월 24일 가톨릭 문화원 주최, “기독교, 불교, 천주교 대화모임” 중, 변선환 교수 “불타와 그리스도” 논문 발표.

2. 1990년 12월 8일 「크리스챤신문」에서 “기독교 배타적 사고서 벗어나야”라는 제하에 변선환 교수의 “불타와 그리스도” 요약 게재.

3. 1991년 3월 18일 서울남연회에서, 박기창, 이성국, 김순태, 정동광 등 4명의 목사 이름으로 된 건의안 상정됐는데, 여기에는 변선환 교수가 “불타와 그리스도”에서 논했던 주장을 전체 논문의 맥락에서 논의 ‧ 이해한 것이 아니라, 6개 항으로 앞뒤 잘라내고 문제제기 함(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신학적 모색이 요청된다 … , 요단강 중심의 유대문화에서부터 다원주의를 상징하 는 태평양 한강 중심의 신학이 개발 되어야 한다 … ,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해야 한다 … , 기독교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 천동설에 불과하다 … , 종교는 익명의 기독교이다 … , 예수 를 절대화 우상화시켜 다른 종교적 인물을 능가하는 일종의 제의 인물로 보려는 기독교 도그 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울남연회는 총회실행위원회에 신학심의회를 두어 감리교 신학에 대해 심의할 것을 건의하기로 결의.

4. 1991년 10월 감리교 특별 총회, 회원수 1,385명 중 301명이 참석하여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신학의 입장은 감리교회 신앙과 교리에 위배되는 것임을 결의”.

5.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신학을 주장하는 변선환 목사와 홍정수 목사에 대하여 제재 조 처 방안을 논의하매 해당 기관 재단이사회에 면직하도록 하는 총회 결의를 통보하고, 당해자 가 소속한 연회의 감독은 장정 199단 제8조에 의거하여 심사위원회에 회부케 하자는 리승수 목사의 동의와 임덕숙 장로의 재청을 찬성(찬성 299, 반대2), 가결하다.”

6. 1991년 11월 21일 힐튼호텔에서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 조직, 공동회장으로 김홍도 목사와 유상렬 장로 선출.

7. 1991년 12월 2일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는 서울연회 감독과 심사위원 앞에서 “변선환과 홍정수 두 목사는 이단 사상을 교수하고, 통일교 거물급 인사를 5년 동안 비호, 졸업시켰다”고 고소.

8.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는 「 조선일보 」 1992년 1월 26일자에 “변선환, 홍정수 교수의 이 단 사상 및 통일교 연루 사실을 폭로한다”라는 광고에서 “감신대 변선환 학장과 홍정수 교수 의 주장은 적그리스도 또는 사탄의 역사이므로 반드시 추방해야 하며, 만일 이것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교단 분열도 불사할 것이다”라고 위협하며 여론 형성.

9. 1992년 2월 24일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위원장 나정희, 서기 조창식, 위원 이동우) 이름으로 변선환, 홍정수 교수를 서울연회에 기소

10. 1992년 4월 23일 감신대 교수들(김득중, 선한용, 이기춘, 김재은, 박창건, 이원규, 방석종, 장종철, 김외식, 타이스, 이정배, 박종천, 서현석, 왕대일, 김영민, 이후정, 송순재) 기독교대 한감리회 서울연회재판위원회에 두 신학자의 재판이 신학적으로 신중히 결정되기를 촉구하 는 성명 발표.

11. 1992년 5월 7일 금란교회에서 열린 종교재판(재판위원 15명 중 13인이 감리교교리수호대 책위원회 위원으로 구성: 최홍석 목사, 고재영 목사, 민선규 목사, 홍형순 목사, 임흥빈 목사, 금성호 목사, 박을희 장로, 김재민 장로, 곽노흥 장로, 신원보 장로, 이강모 장로, 김재국 장 로, 박완혁 장로)에서 변선환, 홍정수 교수 출교 선고.

12. 1992년 5월 28일 “감리교단을 염려하는 기도 모임” 발족하여 재판 결과에 문제 제기하고, “한국 감리교회의 전통과 웨슬리의 정신을 완전히 망각한 신학의 획일성과 배타주의가 지 배”하였다고 하면서, “교리와 신학을 토론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무시한 채 일부 임의단체의 힘이 교단 위에 군림하여 재판을 좌우하여 교단의 권위를 실추시켰음을 통탄”한다고 하면 서, 1992년 6월 1일 서울연회 재판위원회에 상고.

13. 그러나 1992년 10월 24일 감리회 총회에서 변선환, 홍정수 두 교수의 출교를 최종적으로 결정.

14. 1992년 10월 26일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는 「 국민일보 」 광고란에 “기독교대한 감리회 변선환, 홍정수 사건의 종결에 즈음한 성명”에서, “감리회 교역자들과 감리회 소속 대학의 교수들과 신학생들은 위의 사건(변선환 교수, 홍정수 교수 출교)과 관련하여 문제된 신학을 지지 및 옹호하는 경우에는 위와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됨을 명시”한다고 하면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신학생 등을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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