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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 인물들이 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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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3.16  21: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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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창만, 고시영 목사 소천  

장창만(1954-2023)
이북노회인 평양노회와 함해노회를 배경으로 하여 총회를 한 때 주름잡았던 인물들에게도 '죽음엔 장사없다" 라는 말 처럼 수한이 다되여 홀연히 떠났다. 그중 장창만목사(록원교회)는 장신대 학부를 거쳐 73기로 졸업하고 당시 우리교단의 최대 기업으로 안정적인 목회 길이 보장된 서울 영락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한다. 이정환(철원의 팔호), 용덕순(신길동), 우세근목사(캄보디아 선교사)가 73기 동기에 영락 동기들이다.   

총회 서기를 지내고 한 때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권세를 보였는 데 미국장로교 킨슬러 선교사 사모가 만든 북한 어린이를 돕는 등대재단을 설립자 신영순 사모를 제외한 가운데 정관을 개정하여 가로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진짜 목회는 총회 일을 끝내고 별내로 이주하여 교회를 건축하고 대지를 구입해 놓고 만년에 재미있게 목회에 전념했다. 설암으로 지난 해 부터 투병을 하다가 지난 주 세상을 떳다. 

   
 

별내로 이주해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고  만날 기회가 있었는 데 이제야 목회가 무언지? 그 재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젊은 시절 부터 안정된 음성과 서두르지 않는 천부적인 강단매너로  어른 횽내를 내더니 너무 일찍 갔다는 평이다. 동갑 내기 말띠로 느즈막한 교류로 교단정치에서 손을 뗀후 격의없이 지냈다. 마지막은 실실하고 성실한 목회자로 전념하다 주님께 갔으니 유종의 미는 거둔 셈이다.   

한 때 평양노회 만년 치리장으로 문제있는 교회마다 가서 일을 잘처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는 데 결과는 목사 내보내고 후임자 드리는 일로 인하여 원망을 듣기도 했다. 이런 된서리에 내 몰린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니 저승사자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학력 경력

영락교회 전도사,숭실고등학교 교목,장석교회 부목사,남대문교회 부목사,록원교회 위임목사, 평택대 교수,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 노회장(2000.9~2001.9),총회21C 위원회 서기,총회 남북한 통일선교 협력위원회 서기,총회연급재단 이사 및 이사장(2001.12~2005.12),한국 기독교 연합회관 이사(2005.5), 이북 4개 노회 협의회 회장(2005.5),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서기 (2008.9~2009.9),총회신학교육부장(2009.9~2010.9),총회기구개혁위원장,등대복지회 이사장),동화,염광학원이사 

고시영목사(1945-2023)

고시영목사는 제주도 출신으로 성균관 대학을 나와 도원동교회에 출석하면서 교사로 사역 중 뒤 늦게 소명을 받고 서울장신을 나와 목사가 된 후 염광여고 교목실장을 지낸 다. 이후 구의동교회(서울노회)서 목회하다가 인근에 부활교회(함해노회)를 개척해 성장시키고 교권정치에 뛰어들어 총회장 만드는 일에 전념하신다.  

자기 교회는 장로도 세우지 않고 교회도 노회에 가입하지 않은 체 자신만 노회 전도 목사가 되고도 총대가 되여 총회 활동을 하니 말들이 많아 나중엔 교회도 가입한다. 이후 총회장 만드는 교권정치에 천부적인 힘을 발휘하여 킹메이커가 되자 자신의 소원은 서울 장신 동문을 총장만드는 데 까지만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몇 분의 총회장을 실제로 만들어 내지만 그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내친 김에 '세기총' 도 만들고  제주도 출신으로 영호남이 아님에도 총회장 만드는 정치에 가담한다. 일화를 들어보면 처음 부터 교권 정치를 하려고 한 것은 아아닌 데 엮인 것이라고 한다. 염광여고 국어선생으로 다져진 인문학적 수양과 안목에 천부적인 친화력과 카리스마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분이라는 평이다. 

전국에 있는 지방신학교 출신들을 하나로 묶어 전국신학대학총연합회(신총연)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이 조직으로 전국구가 되여 총회 요직을 두루 거친며 개혁안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리 장사를 했다는 비판도 듣는 다.  년전 대할 기회가 있을 때 말씀하시기를 선출직에는 반드시 안된 분들도 있으니 그 분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으니 인생은 아무리 잘해도 절반의 성공인 셈이라고 고백도 하셨다. 

총회 기구개혁위원장 장기발전 위원장을 거치면서 목회자들의 권리신장에 애을 쓴 것은 사실이다. 담임목사가 전에는 임시목사라는 이름으로 1년 마다 당회 제직회를 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하여 3년제로 만든다. 또 전도목사 연한도 3년을 했으나 이후 2년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모두 고목사의 힘으로 이뤄 낸 것이다. 

   
 

늘 이기는 자 편에만 선 것은 아니다. 100회 총회 때는 신총연이 민 분이 안되고 와신상담 홀홀단신으로 재수를 한 채영남목사가 되여 신총연 구도는 깨진다. 은퇴도 되고 약발이 다한 것이다. 서울장신대 이사장을 지내며 지나칠 정도로 관여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도 있다. 

총회장 만들기에 고시영목사의 손길이 안간 곳은 없다. 지는 해도 강열하다더니 가는 길도 장엄하게 환송을 받으셨다. 장례위원이나 순서자들 면모를 보면 현역 못지 않은 예우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것으로 한참 노후를 만끽 할 나이에 이르게 떠나신 셈이니 아쉽다.

애증이 교차하는 어느 후배는 꿈에 고목사님이 공을 3개를 줬다는 데 아직도 해몽은 안되는 모양이다. 한 때 모두 우리총회나 이북노회에서 주어진 역할들을 하신 분들이니 사랑받은 분들도 그렇고 모두 좋은 일만 기억하고 추모의 마음을 모으기 바란다. 사후 고명(왕의 유언을 받은 자) 을 누가 받았으냐? 로 설왕설해들 하는 데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곧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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