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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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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5.26  19: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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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이란?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미 부정적인 뜻을 내포한 단어가 돼 버렸기에 온라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싸우지만 현실에서는 언급을 꺼린다. 여러 집단을 칭하는 말들과 혼용돼 정확한 뜻을 말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페미니즘의 정의는 사실 간단하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나아가 성별로 인한 차별을 멈추자는 뜻을 지닌다.

의미상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현재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는 왜 논란이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무엇이든지 제대로 알려면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 정석이다. 페미니즘이라 일컫는 사회 운동이 언제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오게 됐는지 살펴보자.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고 박원순 서울 시장의 자살로 빚어진 페미에 대한 분열때문이다.  

인문학으로 배우는 페미니즘 - YouTube (최진기 선생의 오마이뉴스 강의 영상)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으로 불거진 페미

전통적인 한국의 여성운동세력은 박원순 시장을 전형적인 미투로 규정하고 비난의 상징으로 삼았다. 여성운동가는 물론 심지여 여성가족부에 민주당 여성의원들까지 합세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충남도지사 안희정의 사건에서 보듯이 당시 김비서관과 로맨스로 규정하는 사인간의 스캔들이 과대포장되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박시장의 가족들과 정철승변호사등이 나서서 상황은 역전된다. 

그중에는 나꼼수로 유명세를 얻고 정치평론으로 큰 인기를 끄는 김용민목사까지 가세하여 박원순 전 시장은 과격 페미들에 의하여 두번 죽임을 당했다고 하면서 그를 옹호했다. 이로 인하여 김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벙커1 교회가 인권운동가들과 논쟁중이다. 이렇게 남성들이 반페미 운동에 가담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띈다. 그들은 박시장으로 부터 피해를 받았다고 하는 여비서를 오히려 비난했다. 논지는 권력과 힘을 동반한 힘과 질서를 이용한 성폭행이라는 주장은 페미들의 프레임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여 비서의 행위가 부적절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한밤에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꿈에서는 되요 라는 등의 무언가를 암시하는 문자를 주고 받았고 과도한 스킨쉽도 먼져 했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증언이다. 그러면 왜 박시장이 자살을 했는 가? 하는 얘긴데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확산되고 민주당에 어려움이 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살신성인의 자세라는 것이 중론이다.    

여성인권의 파도
서양의 본격적인 페미니스트 운동은 보통 4개의 ‘파도(waves)’로 구분한다. 우리말로는 1, 2, 3, 4 세대 페미니즘이라 의역되는데, 어떤 상황, 문제를 주로 해결하고자 했는가에 따라서 세대가 나뉜다. 

   
 

1세대: 참정권과 법적 불평등
여성 참정권, 여성 교육권, 그리고 더 나은 근로 조건을 추구했던 19세기~20세기 초 서양에서의 페미니스트 활동을 ‘1세대 페미니즘’이라 칭한다. ‘1세대’라는 말은 기본적인 정치적 불평등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2세대 페미니즘’과 구분짓기 위해 생겼다.

미국의 경우,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여성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노예제도와 금주제의 폐지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이 노예제도 반대 운동은 후에 페미니즘과 이념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명분이 됐다. 1840년, 두 명의 여성이 런던에서 열린 세계 노예 반대 협약에 ‘여성이어서’ 입장을 거절당했다. 이들은 분개하며 여성 독립 선언서를 초안, 여성 권리 대회를 열며 본격적인 참정권 운동을 시작했다.

보수 기독교 단체부터 급진주의자까지, 광범위한 참여자들의 지지와 협력으로 미국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게 된다. 1974년, 여성의 투표권을 명시한 수정 헌법 19조의 통과로 미국에서의 1세대 페미니즘은 끝난 것으로 간주된다.

2세대: 문화적 불평등, 성 역할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페미니스트는 ‘2세대’로 통칭된다. 1세대가 참정권을 비롯한 절대적 권리에 중점을 뒀다면, 2세대는 문화적 차별 종식에 집중했다. 이 시기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에게 생활에 깊게 박힌 성차별적 권력 구조를 이해시키려 힘썼다. 

1963년 베티 프리댄의 <여성성의 신화(The Feminine Mystique>는 여성들이 대학 졸업 후 가정주부로 전락하며 느끼는 불만과 상실을 담았다. 프리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수직에 종사하던 여성들이 전쟁 후 가정으로 돌려보내진 과정을 조사하고, 여성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주도한 세력을 평가했다. 프리댄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글로써 성차별 문제를 다루는 페미니스트가 많아졌다. 케이트 밀렛은 <성의 정치(Sexual Politics)> 에서 남성 작가들의 편견을 통해 “성은 정치이고, 정치는 권력 불균형”이라 강조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 (Dialectic of Sex)>에서 남성의 지배가 "기록된 역사를 넘어 동물의 왕국 자체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여성 해방 운동이 활성화되며 새로운 관점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다. 그 중 벨 훅은 가장 억압받는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목소리의 부족, 인종과 계급 불평등에 대한 강조의 부족 및 여성 차별 문제의 거리감을 비판해 주목받았다. 헬렌 레디의 "I Am Woman", 존 레논의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등 70년대 페미니스트 곡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3세대: 다양성, 성적 자유
1990년대부터 2000년대의 페미니스트는 ‘3세대’라 불린다. 기존 2세대가 백인과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로 주를 이뤘다면, 3세대는 인종, 경제적 수준을 배제하고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페미니즘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3세대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피임권을 요구했다. 여성들이 피임약을 사용해 아이를 낳을지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임할 권리가 남성으로부터의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 필수라고 본 것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여성의 성적 자유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투쟁했다. 예로부터 사회 규범에 의해 남성은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가져도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았다. 성 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도 원한다면 성적 해방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4세대와 각종 분파
현재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을 ‘4세대’라 정의 내린다. 2010년경에 시작된 4세대는 SNS를 주요 창으로 활동하며 여성혐오, 성희롱, 폭력을 규탄한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문제로는 직장 괴롭힘, 캠퍼스 성폭행, 강간 등이 있다. 2012년 델리 갱 강간, 2017년 웨스트민스터 성 추문 등 여성과 소녀들을 학대, 살해하는 사건들이 4세대의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미투 운동 같이 해시태그를 사용한 SNS 캠페인이 번져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를 지지하고 정치권에서도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게 했다. 

페미니즘이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파로 갈리며 같은 페미니스트여도 상당히 다른 견해를 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기존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면 급진적 페미니즘은 체제를 뒤엎고 남성 우월주의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대 분류의 정당성
페미니즘을 ‘세대(waves)’로 분류한 것이 부적절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세대' 사이에서 후퇴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한 가지 예로 1960~90년대 미국에서 페미니즘이 서서히 사회에 흡수된 것을 들 수 있다. 이 기간은 따지자면 2세대와 3세대 페미니즘에 걸쳐있지만, 어느 세대에 속하는 지와 상관 없이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게 됐고, 다양한 직업군에 진출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페미니즘을 세대로 분류하는 것이 극도로 미국과 영국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소개한 ‘1세대 페미니즘’은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2세대 페미니즘이다. 미국과 영국의 2세대 페미니즘은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인들에게는 3세대에 해당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 범주에 포함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페미니즘의 역사와 기원
오래전 부터 이어져 왔던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을 가리킨다. 페미니즘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시대와 그 양상에 따라 크게 1세대·2세대·3세대 물결로 나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 이라는 뜻의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유래한 말로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을 가리킨다. 즉,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온 여성들이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등 ‘성(sex, gender, Sexuality)에서 기인하ㅛ는 차별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현대 페미니즘의 선구자는 최초의 ‘페미니즘 선언서’로 알려진 <여성의 권리 옹호(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1792)를 작성한 영국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이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여성에 대한 차별에 대항하고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조직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됐는데, 이러한 흐름은 크게 1세대(여성의 참정권)· 2세대(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평등과 성적 해방 추구)· 3세대(계급, 인종 문제 등으로 확대)로 나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 페미니즘의 변화/1세대 페미니즘
1세대 페미니즘 물결은 19세기부터 1950년대까지 전개된 페미니즘 물결을 가리키는데, 이는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일어났다. 이 시기 페미니즘의 핵심은 여성들의 정치 참여, 즉 참정권 획득이었으며 흑인들의 권리 신장 움직임도 함께 나타났다.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미국에서는 1870년 흑인들의 참정권 인정에 이어 1920년 여성들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 즉 서프러제트(Suffragette)가 등장했으며 이들의 활동 결과로 영국 정부는 1918년 2월 일정 자격을 갖춘 3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국민투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1928년에는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2세대 페미니즘/영국의 서프러제트(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2세대 페미니즘 물결은 1960~1980년대까지의 페미니즘을 지칭하는데, 이는 당시 사회에 만연해 있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벗어나자는 움직임이었다. 이들은 직장에서의 평등(노동 환경과 임금수준 개선), 가정에서의 평등,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배제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로 주장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특히 이 시기 사상적으로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실존주의 견해를 밝혔다.

3세대 페미니즘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3세대 페미니즘 물결은 이전 세대의 페미니즘이 백인 여성들만의 전유물이었다는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이 시기 페미니즘은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하며 다양한 집단과 계층·영역으로 확대됐으며, 이에 성소수자(LGBTQ)들의 권리운동도 함께 일어나기 시작했다.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은 생태학(ecology)과 여성주의(feminism)의 합성어로, 자연의 억압과 여성의 억압이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자연에 대한 파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지배 문화 속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에코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산업문명 속에서 여성과 자연이 차별과 파괴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시각에서 출발, 환경 문제를 비롯한 현대 산업사회의 여러 측면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페미니즘,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발전했는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집필하면서 촉발된 페미니즘의 두번째 물결, 속칭 "제2세대 페미니즘"은 이전의 페미니즘 운동과 달리, 법적인 권리 외에도 일상적으로 여성이 당하는 폭력에 집중하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1968년, 자유로운 문화와 평등을 요구한 대학생들에 의해 전개된 사회 운동인 68혁명은 페미니즘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법적인 권리 뿐만이 아니라,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차별까지도 바로잡아야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던 우파 성향의 페미니스트들 중 일부는 상당히 특이한 계급론을 내세웠다.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계급이 나뉘어짐을 주장하는 사상이다. 반면, 어떤 여성운동가들은 그런 계급이 여성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여성에게는 오로지 "여성"이라는 계급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서구 사회 문명 자체가 여성을 차별하기 위해 존재했으며, 따라서 여성주의는 서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성격들을 전복시켜 새로운 판을 짜야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은 기존 페미니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은 물론, 서구 문명 자체에 대한 부정이기도 했기 때문에 매우 급진적인 성격을 띄었다. 그래서 이들을 래디컬 페미니스트(radical feminist)라고 부른다. ​

가부장제는 어떻게 여성을 노예로 만들었는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집중한 의제는 가부장제였다. 왜냐하면 가부장제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논리에서 가장 공격하기 좋은 소재였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부자든 노동자든 가부장제 하에서 남자는 가해자고 여자는 피해자였다. 두번째로 가부장제는 수천년간 내려져온 서구 문명의 특징이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가부장제가 곧 서구 문명의 근간중 하나였기 때문에, 지위고하 막론하고 여성들이 하나로 단결해 가부장제를 무너트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저메인 그리어/1970년 저술한 <여성, 거세당하다>는 어떻게 여성이 조숙한 캐릭터로 자라게 되었는지를 분석했다. 남성의 말에 고분 고분 따르는 "이상적인" 여성상은 사실 여성의 특징이 아니라, 각종 사회적인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라는 것이 저메인 그리어의 주장이다.​ 동화를 예시로 들 수 있다. 남자 아이는 도전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여자 아이들은 공주님을 기다리는 가녀리고 조숙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영웅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떠한가?

서구 문명의 각종 서사들은 잔 다르크와 같은 "성녀"와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창녀"를 구분지으며 여성들로 하여금 성녀와 같은 존재가 되라고 지속적으로 교육시켜왔다. 서구 문명은 교육을 통하여, 잔 다르크나 엘리자베스 1세, 이브처럼 종교와 조국에 충성하며 상냥한 아내가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이라고 왜곡한다. 그리어는 이런 방식을 통해 수천년간 서구 문명이 여성을 오로지 "가부장제에 충성할 수 있는 정숙한 존재"로 만들었다며 가열차게 비판했다.​

1970년 저술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도 훌륭한 책이다. 저메인 그리어가 "여성이 결혼에 알맞은 존재가 되도록 길들여진다"라고 주장했다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결혼이 여성을 자신에게 알맞는 존재로 길들인다"고 주장했다. 연애를 생각해보자. 연애를 할 때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열렬히 구애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는 이혼에 이르는 커플이 적지 않다. 왜일까? 파이어스톤은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이, 연애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연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남자는 여자를 붙잡고 섹스를 하기 위해 온갖 연기를 한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남자는 여자를 "가지게" 된 것이므로 더 이상 연기를 할 필요가 없고 자신의 야수적인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여자를 막 때리고 집안 일을 떠맡기는 등의 갑질을 하는 것이다. 결국, 연애를 통한 결혼이라는 과정은 남성이 사기를 쳐서 여성을 자신의 사유 재산으로 만드는 노예제도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 파이어스톤의 주장이다. ​

한편, 수전 브라운밀러가 1975년 저술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파이어스톤과 비슷한 관점에서 강간 문화를 해석했다. 성교의 과정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 안쪽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수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삽입을 당하는 것이고 남성은 삽입을 하는 것인데, 이런 차이에서 남녀의 차별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남성은 성교에서 공격자의 지위를 가지는데 반해, 여성은 수비자의 지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이 시도 때도 없이 강간을 당할 위협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특정한 여성을 소유하고 싶은 남성은 다른 남성들이 "자신의" 여성을 지키기 위해 결혼과 가부장제라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소유욕이 가부장제를 만들어냈으며, 그렇기에 가부장제도라는 것 자체가 그저 여성에게 붙여지는 "소유 증명서"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브라운밀러의 주장이다. (이 책은 내용이 길고 논리가 복잡해서 여기서 다 요약을 하지는 못하는데, 나중에 강간 문화를 다루면서 다시 언급하겠다) 이런 관점들을 통하여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서구 문화가 가부장제도를 이용하여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켰다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

   
 

어떻게 가부장제를 탈피할 것인가? ​
저메인 그리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등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궁극적인 가부장제의 탈피 방식은 가족 제도의 철폐, 혹은 기성 가족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다. 저메인 그리어는 가부장제도를 탈피하는 것으로 자유로운 성문화를 꼽는다. 여성의 성기나 성교를 말하는 것, 심지어 속옷을 입지 않는 것만으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이런 금기를 깨부시는 것이 여성차별적인 가부장제를 뒤엎는 것임을 저메인 그리어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금기를 어떻게 깨부실 수 있겠는가? 속박적인 가정에서 자라나봤자 결국 또다른 조숙한 아이가 될 뿐이다. 대안적인 가족이 필요하고, 대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명의 부모에게 양육되는 자녀가 아니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양육되는 형태의 가족을 저메인 그리어는 주장하고 있다. ​파이어스톤은 한발짝 더 나아가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져야하며, 심지어 남녀가 섹스를 해야할 의무마저 사라져야한다고 보았다. 언제 어디서 섹스를 해야하고, 언제 아이를 낳아야하고, 언제 결혼을 해야하고, 이런 것들이 결국 여성을 속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이어스톤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하는" 사회의 철폐를 외친다. 심지어 여성이 아이를 낳아야하는 의무까지도 폐지해야한다고 한다. 여성이 아이를 낳아야하는 것은 섹스를 할 때 남성의 지위를 여성에 비해 우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파이어스톤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상정한 성평등 유토피아는 남성과 여성이 섹스 파트너의 관계만을 가지는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고전적인 관점을 통하여 1970년대 후반까지 페미니즘은 여러가지의 대안책을 내놓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다. "여성은 모두 레즈비언이 되어야한다!"라는 주장이 아니다. 사실 그런 것보다 더 나간 주장이다. 레즈비어니즘은, 여성과 남성이 같이 있으면 무조건 남성이 늑대처럼 여성을 덮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결코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분파이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과 철저히 분리되어야하며, 여성은 여성끼리 남성은 남성끼리 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애는 누가 낳는가?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 보이는 방향으로 전개된 이들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가부장제를 "대체"하기 위한 유의미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며 크게 몰락했다. ​

문화 페미니즘의 대두 ​
1980년대, 래디컬 페미니즘의 폐허 속에서 문화 페미니즘이 부상한다. 문화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결혼 제도를 어떻게 바꿀지 논쟁하다가 결국 자멸해버린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빠져나와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안을 제시한 페미니즘의 부류이다. 문화 페미니즘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나 레즈비어니스트들처럼 막 남성과 여성을 분리시키고 결혼 제도를 없애야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은 하지 않는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성이 남성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천시받았기에 여성성을 보다 올바르고 새롭게 정의내려야한다는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문화 페미니즘이란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으로, 좌파적인 시각에서 성차별적인 경제, 정치, 문화의 관행을 바꾸려고 한 운동과는 상관이 없는 사조이다. 문화 페미니즘은 여성성이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 자체가 문화적 코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1960년대 좌파 페미니즘의 경향성과는 크게 다르다. ​

이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이라는 개념이 문화적으로 천시받았으며, 따라서 이것을 해방해야한다는 기존 래디컬 페미니즘의 노선을 부분적으로 계승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최우선 과제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여성성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에 있어, 여성성 자체를 묘사하지 않는 것보다는, 아예 여성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줘버리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여성성이란 무엇이고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기존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문제를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남녀 차별이 사라지면, 허상에 불과한 여성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조명받는 여성성에만 집중한 기존 페미니즘과 달리, 이들은 여성성이 한편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될 수 있음에도 집중했다. 여성성은 차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왜곡 받은 것"이며, 이 왜곡받은 것을 긍정적으로 되돌리는 것이 페미니즘의 과제가 되었다는 점이 래디컬 페미니즘과 문화 페미니즘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

문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성의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가부장제가 왜 여성에게 해악이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 의식으로 다시 돌아갔다. 왜 남성이 지배하는 가정은 폭압적이고 억압적일까? 이 결정적인 문제에 대해 파이어스톤이나 그리어가 미흡하게 답변하였다는 것이 문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다. 문화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성은 폭력적인 것이고, 여성성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남성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제도가 폭력적이었다고 주장했다. ​

대표적인 문화 페미니스트인 마릴린 프렌치는 본래 인간의 사회는 자연과 어울려 살아갔지만, 폭력적인 남성들이 각종 도구와 구조를 이용해 여성을 배제하고 세상을 정복하며 인류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강변했다. 마릴린 프렌치는 여성이 지배하는 모계사회는 평화로웠을 것이라며, 가부장제를 여성 중심의 제도로 바꾸는 식으로 기존의 가부장제와 결별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런 마릴린 프렌치의 논변은 문화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표로 그려, 문화 페미니즘이 기존의 페미니즘과 보인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런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즘은 기존 래디컬 페미니즘에 남아있던 구조주의적인 면까지 모두 깔아 뭉개고 태생적이고 선천적인 차이에 모든 가치를 부여함으로서, 사실상 페미니즘에 남아있던 좌파적인 면들을 대부분 제거했다. 이로 인하여 1970년대 후반 페미니즘은 급격하게 우경화된다.

   
 

페미니즘 성(性) 전쟁의 전개와 래디컬 페미니즘의 분열

안티 포르노 페미니스트들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즘과 기존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1970년대 후반 들어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관점에서 크게 충돌했다. 포르노그래피를 문화로 치부해야하나 말아야하나로 격돌한 것이다. 당시 래디컬 페미니즘은 다음 두갈래로 나뉘어졌다.​ 포르노 긍정파 (중도우파): 이들은 포르노가 여성의 성적인 해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저메인 그리어가 <여성, 거세당하다>에서 말했듯이, 여성을 성적으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성적인 해방이며 이것이 포르노그래피나 바니걸 같은 "자발적 성 상품화"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의 성적 어필을 긍정했다는 점에서 성 긍정 페미니스트라 불린다.​ 

포르노 부정파 (극우): 이들은 포르노그래피조차도 남성의 산물이며, 설령 어떤 여성이 자발적으로 섹스 어필을 하더라도 이는 자발적으로 남성의 노예가 되는 것임을 주장했다. 남성이 만들어놓은 문화 코드에 맞춰 여성이 자발적으로 굴종하는 것이야말로 큰 재앙은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포르노 부정파들은 포르노를 포함한 여성의 모든 섹스 어필을 자발성의 여부 없이 금기시해야한다고 했다. 이들을 안티 포르노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맥키논과 드워킨에 의해 대표된다.​

페미니즘 성 전쟁은 두 의견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채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스트들과 기존의 래디컬 페미니즘 간의 간격을 크게 넓혀버렸으며, 결과적으로 래디컬 페미니즘의 체력을 크게 소모시켜 래디컬 페미니즘이 1980년대 이후 점차 몰락하는데 큰 원인을 제공한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한계점과 몰락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이 겪는 일상적인 폭력의 문제를 끄집어내 공론화시켰다는 커다란 의의를 가지고 있지만 이 의의는 역설적으로 양날의 검이 되었다. 여성이 차별을 받고, 폭력을 당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폭력이 오로지 여성에게만으로 향할까? 그 폭력은 때로는 노동자에게로, 이민자에게로, 심지어는 일부 남성에게로도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 자르듯이 "여성만이 폭력의 피해자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은, 가부장제와 같은 극히 한정된 상황 뿐이다.

심지어 가부장제에서도 폭력의 위계 질서가 확실하지 않다. 물론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폭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 남편이, 부유한 여성이 운영하는 하청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이고, 노동 착취에 시달린다면? 그 남편이 어떠한 경우에라도 강자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여성 회사 사장이 남성 청소 노동자에게 갑질을 할 때도 여성 회사 사장을 피해자로, 남성 청소 노동자를 가해자로 봐야할까? 래디컬 페미니즘의 논리대로라면 결국 편협한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이처럼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이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잘 지적해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간과했다. 결국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을 위한 사상일 뿐이게 되었으며, 이런 점은 후대의 페미니즘에게 큰 비판을 당하게 된다. 그 외에 문화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남성성보다 우월한 여성성 운운은 반박할 가치가 없다.

앞선 모순점을 해결한 것이 1990년대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전개된 퀴어 페미니즘, 혹은 제3세대 페미니즘이었다. 이들은 남성도, 흑인도, 장애인도 여성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결국 이들조차 가부장제와 똑같은 형태를 한 우리 사회의 매커니즘 속에서, 어떤 때에는 가해자가 되겠지만 어떤 때에는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존재들은 여성이 아닐지언정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고, 천시받는 "퀴어"인 것이다. 그렇기에 3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뿐만 아니라 여성과 같은 이유로 차별을 받는 모든 이들과 연대하고자 했으며, 이런 3세대 페미니즘의 매력적인 주장은 래디컬 페미니즘이 갖고 있던 힘을 급격하게 악화시켰다. ​

결과적으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서양을 강타한 래디컬 페미니즘의 광풍은 1980년대 성 전쟁의 전개 이후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결국 2000년대 이후, 여성성의 우월함을 내세우는 문화 페미니즘은 물론 가족 해체를 주장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자체가 점차 사그라들어 현재 서양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은 비주류로 밀려났다. ​현재 래디컬 페미니즘이 페미니즘 계열에서 확연한 강세를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1927년에 나온 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다고 하는 데 그 뒤를 이어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 박인덕 등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고, 이들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주의적 페미니즘, 사회주의, 기독교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뉘었다. 개화기에 새로운 교육을 받고 여성단체를 조직하였습니다. 

페미니즘 뜻
페미니즘(feminism)은 여성적 특성을 가진다는 뜻의 라틴어 femi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에 저항하여 양성평등을 이루고 경제적 측면에서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고자 하는 사상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페미니즘 역사는 1세대 페미니즘의 핵심은 여성의 정치 참여와 참정권 획득이었다. 비슷한 시대에 흑인의 권리 신장 운동도 일어나는 데 1870년 흑인에게, 1920년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 부터 1950년대까지 주로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운용이다. 

2세대 페미니즘 물결은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샤르트르와의 계약혼을 선언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의 선언으로 이데올로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며, 보부아르는 여성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실존주의적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그 결과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당시 만연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제2의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났다. 나아가 가정과 직장에서의 평등,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를 요구하는 등 사회에 대한 요구의 폭을 넓혔다.

3세대 페미니즘 물결은 이러한 자유주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진화의 중요성을 가져오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성장하고 성인이 되면서 각자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립할 수 있는 삶을 꾼꾼다.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종속되지 않으며 또 속박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자발적으로 결정하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길 바란다. ​그리고 세상과 부딪치면서 때론 좌절하고 때론 희망을 품고 때론 무기력해기도 한다. 적든 많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유대하거나 갈등하면서 일희일비 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 서점이나 SNS에서 보면 확실히 '사람들로 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에 대한 책이 엄청 많은것도 사실이다. 어찌됐건 불평하거나 만족하거나 반대하거나 찬성하거나 세뇌당하거나 깨우치거나 세상에 대한 우리 생각의 길을 쉬지 않고 만들어 가고 있다. 나름대로 세계를 정의 하고 , 뭐가 좋은지 뭐가 나쁜지... 합당한지 아닌지 , 살만한지 아닌지 무엇이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가부장제적 사회에는 페미니즘이 있다. 다시 말해서 남성애 대한 여성의 종속을 거부하고 여성의 자유를 옹오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고정된 내용을 갖고 있는 강령이 아닌 하나의 태도라고 보아야 한다. 그외에도 페미니스트들은 아주 다양하고 때로는 대립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이는 항상 그 시대의 구체적인 문제에 의해, 그리고 당연히 관련 사상가나 행동가 자신의 주관적 사고와 관점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는 명백한 정의를 요구하지 말고 항상 맥락을 보아야 한다.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근대 초기의 가장 유력했던 페미니스트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크리스틴 드 피잔이다. 그는 1405년 책<여성들의 도시>에서 많은 동시대인들이 갖고 있는 여성 적대적인 관점 ,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재능이 부족하다는 관점을 섬세한 아이러니를 통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책은 14세기에서 18세까지 유럽 전역에서 벌어졌던 여성의 존재와 지위에 대한 논쟁인 소위 "여성논쟁"에 관해 여성이 입장을 밝힌 몇 안되는 알려진 텍스트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에 "여성문제"에 대한 시각이 급진화 됐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마리 드 구르네의 1622년 축간된 책<남여평등>은 현대적 평등 페미니즘의 아주 초창기 예시로 들 수 있으며 그 당시에는 진정 공상과도 같았다. 왜냐하면 평등사상은 (성별 간만이 아니라 인간 간의 평등 역시) 엄격한 위계질서를 갖고 계급에 따라 조직된 당시 사회에서는 완전히 이치에 어긋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구르네는 이로 인해 비웃음거리가 됐다. ​

계몽시대
인간평등 사상은 유럽에서 1789년의 프랑스 혁명과 결합된 18세기 계몽주의를 통해 널리 퍼졌다. 봉기에는 많은 여성이 참여했다. 전설적인 10월 5일의 "베르사이유를 향한 여성들의 행진"에는 8천여명의 여성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 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파리에서 책<여성의 권리 옹호>를 집필했다. 그의(장자크 루소) 의존성을 기르는 여성 교육을 비판했고 지금까지도 많은 페미니스트에게 중요한 논거-여성과 남성간의 실제로 존재하는 차이는 "자연적"원인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비로소 생겨났다는-를 강렬하게 각인시킨 선구자 중 한사람이었다.

초기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19세기 초반 분명해진 것은 모든 남성들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상이 / 여성과 남성 사이의 심연만 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 빈자와 부자 사이의 간극 또한 그렇게 만든다는 점이다. 생시몽은 인간해방사상을 이어받아 완성 실천한 사회개혁자 사상의 총칭하며 "노동자들이여, 다음의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기 바랍니다. 여성을 억누르고 교육에서 제외하는 법은 프롤레타리아 남성도 억압한다는 것이다. 1843년 트리스탄의 주요 저작인<노동자 연합>이 출간 됐는데 여기에서 동업 조합과 직업 분야를 뛰어넘는 노동자들의 동맹을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억압과 무산자에대한 억압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유럽과 미국에서는 특정 주제나 직업 분야에 따라 결합한 페미니즘 활동가들과 여성단체들이 있었으나 조직화된 여성운동은 없었다. 1848년 "세네카 폴스 대회" 대회는 "권리와 시대사상의 선언문"을 채택하면서 끝났는데 이는여성에 대한 모든 남성적 지배권을 거부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명확하게 미국의 "독립 선언문"을 참조하고 있다. 

노예출신 순회포교사인 소주르너 트루스는 1851년 미국 여성회의에서 여성을 약하고 보호해야 할 성으로 보는 소위 "긍정적 차별"의 허구라고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적 성 클리쉐의 인종차별도 비판하여 깊은 인강을 남겼다. ​ 막 생겨나고 있던 여성연합과 단체들이 다루는 주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직업 노동에의 좀 더 나은 기회/ 고전적 결혼에 대한 비판과 불평등한 결혼법(자유연애 사상과 자주 연결되는) / 그리고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

여성의 직업 노동
공장 노동이 중요해질 수록 남성들로 구성된 노동조합들은 여성 공장 노동자들의 채용을 금지하거나 적어도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유럽 노동자들의 첫번째 상부 조직인 제1차 인터내셔널 또한 이런 식의 입장으로 첫번째 회의를 마무리 지었고 자후에야 온건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합당한 임금을 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직업 노동으로 향한 길은 그 시기 거의 모든 페미니즘 활동의중심 주제였다. 페미니스트들은 자립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만들고 이 주제를 경제적으로 논하고 상응하는 정지척 조치를 위한 로비 활동을 조직했다.

​자유연애 / 결혼에 대한 비판
19세기의 또 다른 주요 주제는 거의 권리가 없는 유부녀의 지위였다.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모든 권리를 남편에게 넘겨주는 상황이였다. 이러한 것과 관련하여 독일에서는 3가지 흐름이 나타났다. 전통적 가족제도를 완전히 없애고자 했던 급진주의 , 결혼의 강제성과 부당한 법률을 폐지하는데 찬성하는 온건파 그리고 전업주부로서의 직업을 높이 사고 결혼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은 하지 않는 보수주의가 주류다. ​ 

여성의 참정권과 정당정치
참정권을 둘러싼 투쟁과 관련한 페미니즘적 입장 또한 다양했다. 이 문제도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특히 중요했는데 19세기에는 많은 국가들에서 참정권이 재산과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롤레테리아 남성들도 대부분 선거로 부터 배제됐다. 1869년 남북전쟁이 끝난 뒤 흑인 남성의 참정권은 도입됐으나 여성은 그러지 못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점점 많은 페미니스트가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한 투쟁에 지지를 보냈으며 남성들과의 동맹도 늘어갔다. 특히 공격적인 행동으로 주제를 부각시켰던것은 영국의 서프러제트들이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있었던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20세기 이르러 거의 모든 나라들이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1902년 호주 1906핀란드 1913 노르웨이 1915 덴마크 1918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1920년 미국 1928 영국 1930터키 1944프랑스 1946 이탈리아 그리고 1971년 스위스등 참정권에 대한 논쟁의 결과, 여성과 정당들의 관계에 강하게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 어쨓든 이후로 정치적 노선과 여성 연대을 향한 소망 사이의 긴장은 관전의 차이를 넘어 페미니즘 내부의 (어려운) 문제가 됐다. ​

그는 여성들이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역할이 단순히 남성들로부터 부여된 것이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 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주저 하지 않았다. 보부아르는 특히 어머니의 역할로부터 여성이 해방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성들에게 직업적이거나 정치적인 경력쪽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성별의 차이가 점점 사라질 수 있도록 만들기를 요청했다. 그가 죽은지 20년이 지나서야 새롭게 발굴돼 여성 운동의 아이콘이 되었다. ​

보부아르의 문화 분석이 당시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페미니스트에게 공유되긴 했지만 모두가 그의 결론에 동의하는것은 아니였다 .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뤼스 이리가레역시 그랬다. 이 두가지 입장으로부터 평등과 차이에 관한 페미니즘 논쟁이 광범위하게 펼쳐졌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평등 페미니즘"과 "차이 페미니즘"사이의 갈등은 제한적으로만 자주 소개됐다. 평등 페미니스들이 가끔은 너무나 무비판적으로 남성적인 규범을 따른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일부 차이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태생적"본성 같은 것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도 맞는 소리다. 그럼에도 양자는 평등과 차이 사이의 해결할 수 없는 갈등 같은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갔다. ​

자율적 여성운동
1960년데 미국과 유럽에 퍼져 나간 학생 운동의 물결 속에서 다시 자율적인 여성 운동이 조직됐다. 여기에서 "자율적"이란 페미니스트들이 더 이상 그들의 조직, 정당, 종파에 일차적으로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여성으로서 자각하고 단결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인 성별에 따른 노동분화
1970년대 "분리주의"의 실펀은 중심지에서 뿐만 아니라 소도시에서도 여성단체 여성서점 카페등을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서로 경험을 나누고 이를 정치적으로성찰해보는 "의식화"작업을 고안해 냈는데 이른 다른 나라들에도 전파됐다. 내용적으로 특히 세가지 서로 연관된 주제가 이 시기에 중요하게 취급됐다.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 성적 폭력에 관현된 일을 적발하는 것 양육과 가사 및 가족에 관련된 일을 새롭게 규정하는 일이다. 

백인, 중산층 여성의 우세에 반대하여
이미 1960년대에 여성권에 대한 백인과 중산층의 관점이 지배적임을 비판하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인 오드리 로드의 경우 백인 페미니즘 이론이 우리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며 억압의 정도 또한 다르다는 것을 문제 삼지 말하야 한다고 생각하다면, 당신들이 페미니즘 이론에 관한 회의장에 있을 동안 당신들의 집을 청소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여성들이 주로 가난하고 '유색인종 여성들'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관심이다. 

1995년 베이징에서 189개 국가의 공식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제4차 세계여성회의가 그 절정이었다. 토의 결과는 각 국가들이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성평등을 촉진해야 하며 여성의 빈곤을 극복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임하지 않는 의무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이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섹스"와 "젠더" 즉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역할의 구분 그리고 사회적 규범과 행동 모델이 생물학적 여성이나 남성으로 부터 도출되지 않고 교육과 사회를 통해서야 비로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일어었다.

이후 개별 국가와 유럽 전체의 차원에서도 이러한 방향으로 많은 법률들이 제정됐다. "성주류화"라는 이상 아래 유럽 연합과 회원국들은 정책을 성별이라는 관점에서"주류화"할 즉 어떤 조치가 여성과 남성에게 차등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의식적으로 고려할 의무를 갖게됐다. 다수의 기관에서 여성과 평등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부서가 생겼다.

그러나 페미니즘적 요구의 제도화는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상반된 반향을 낳았다. 다수는 여성들이 남성과의 평등, 그리고 남성적 문화와 그들의 룰에 적응하는 것을 통해 자유로워지리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1984 오드리 로드는 여성들 간의 차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페미니즘 운동의 기점으로 삼을 것을 요청했다. ​
우리는 이 상호 관련성으로 부터 확신을 얻어 진정한 미래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차이는 우리 개개인이 힘을 지니도록 만들어 주는 자원이자 강력한 결속입니다.

제3의 물결 페미니즘
일부 여성들은 성평등이 실현됐다는 이유를 들어 페미니즘을 낡은 것으로 여기며 자신들을 "포스트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다. 이 트렌드에 맞서 1990년 미국에서는 새로운 운동이 조직됐는데 이를 "제3의 물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개념은 미국에서 왔으며 레베카 워커의 성명으로 부터 비롯됐다. 1992년 한 강간범이 무죄 판결을 받는 데 대한 반항으로 성명서를 썼다.

이 운동으로 다양한 프로젝트가 생겨났는데 <라이엇걸>이나 독일의 <미시>매거진 같은 잡지가 그 예다.
위대한 통찰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코스톨라니의 기사가 그것이다. 분야는 조금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주제는 주체이다. 고스란히 남이 만들어준 유산과 길을 따라가지 말고 살고 분노할 수 있는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페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가부장제, 남성성으로 부터 기우러진 여성의 지위나 감성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자아로써의 인간이 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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