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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교수 별세(194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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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16  15: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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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은실 교수의 추모행사 참관기 

손은실 교수(전 장신대 교수, 현 서울대 종교학과) 

지상의 순례를 마치고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선생님의 adieu 인사는 아름답게 빛났다. 추모예배에서 선생님과 함께 진리와 사랑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걸어온 사람들(가족, 제자, 새길 교회 식구들, 도반들)의 헌신과 도움, 사랑과 존경과 추모의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넓고도 깊은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1. ‘심도학사 순례’를 가서 떠올릴 수 있었던 고 길희성 선생님에 대한 기억
고 길희성 선생님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한평생 구도자의 삶을 사시다가 지상의 순례를 마치시고, 하느님의 품에 안기신 후, 지인들과 작별을 하는 마지막 추모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어제 심도학사에 갔다. 오가는 8시간의 여정은 선생님과의 만남을 회상하는 순례의 길이었다. 길 선생님의 학문적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학문의 길에서 선생님과 접촉을 할 기회는 없었다. 그럼에도 새 학기초에 순례의 길을 가듯 먼 길을 나설 마음을 먹게 된 이유는 선생님께서 베풀어주신 관심과 환대, 선생님께서 몇 번 심도학사에 와서 토마스 아퀴나스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셨는데, 들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강화도 산속에 깊이 숨어있는 심도학사를 오가는 길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선생님과 박남미 사모님의 따뜻한 환대가 새록새록 기억났다. 남편과 함께 심도학사에 일박을 하라고 초대해 주셨을 때, 단아한 아침 식사와 정갈한 점심 식사를 함께 나누었던 기억, 명상과 공부를 함께 했던 시간, 자동차가 없는 우리를 위해 오가는 길에 자동차로 마중을 나오시고, 배웅해 주셨던 기억이 기억의 심연에서 떠올랐다. 두 분이 김포공항까지 배웅을 해 주셨는데, 어제 추모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심도학사와 김포공항이 꽤 시간이 걸리는 거리임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

2. 선생님이 심도학사에서 주셨던 책들과 우편으로 보내 주셨던 책들
마지막으로 집필하신 책인 <영적 휴머니즘>(2021)이 내 연구실 8층 책꽂이의 8층에 꽂혀 있다. 동연출판사(김영호 대표)가 선생님의 전집을 출판하기 시작한 때부터 선생님께서 김 대표님을 통해 출판되는 모든 책을 보내 주셨다. 하지만 내 앞에 닥친 과제들로 인해 선생님 책을 읽어볼 시간이 없었다. 선생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마침내 선생님이 심도학사에서 주셨던 책들을 열었다. 가장 먼저 펼친 책이 <바가바드 기타>와 <인도철학사>였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는 것은 없어질 수 없나니. 진리를 보는 자들은
이 둘의 차이를 보도다.” 37. <바가바드 기타>, 2, 16. 길희성 역주, 37.

“지극히 존엄한 자의 노래”라는 의미를 가진 바가바드 기타는 선생님이 <인도철학사>에서 정리해 놓으신 설명을 보면 요가의 고전으로, 앎의 요가, 행위의 요가, 믿음과 사랑의 요가로 구성되어 있다. 100여 쪽을 속독하고 선생님이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 연구하시게 된 배경을 엿볼 수 있었다. 위의 구절을 옮겨 쓴 이유는 이 구절이 존재자와 비존재자의 차이를 명징하게 꿰뚫어보시고, 존재하는 것을 평생 추구하며 구도자의 삶을 살아오신 선생님의 삶을 표현해 줄 수 있는 구절로 보였기 때문이다.

매우 흥미로운 이 책 내용에 관하여 선생님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고 슬프다. 그런데 선생님 저작 가운데 <바가바드 기타> 역주를 가장 먼저 펼쳐 본 이유는 이번 학기 기독교개론 수업을 준비하면서, 마흐트마 간디가 자신이 예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산상설교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고백한 말을 읽고, 이 책을 한번 살펴볼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예수의 복음은 산상설교에 담겨 있다. 내 마음의 지배권을 놓고, 산상설교의 정신이 거의 동일한 조건에서 <바가바드 기타>와 각축을 벌이고 있다. 내가 예수를 사랑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설교다.”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 비로소 열어본 두 책 외에 선생님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늘 발등에 타는 불이 좀 꺼지면 선생님의 책을 읽을 작정이다.

3. 추모예배 스케치-푸른 소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선생님의 유지에 따라, 빈소도 차리지 않고, ‘장례예배’도 아마 ‘추모예배’라는 이름으로 준비되지 않았나 싶다. 추모예배는 9월 10일 오후 6시 선생님이 소천하신 후에 지인들과 작별인사를 하시기를 원하셨던 자리, 심도학사 한 가운데에 있는 잔디밭, 푸른 소나무가 서 있는 곳에서 거행되었다. 빈소가 마련되지 않아 선생님을 조문할 시간도 당일 오후 3시에서 6시라 그 시간에 올 수 없었던 분들이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분들을 위해 여기 추모예배 스케치를 남긴다.

   
 


1) 추모예배는 심도학사 연구원이신 이진권 목사의 인도로 진행되었다.
애도의 침묵에서 시작하여 선생님의 제자 정경일 박사의 선생님의 생애와 마지막 날 증언이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새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셨던 정대현 교수, 심도학사 이사이신 허기석님, 서강대 종교학과 선생님 제자인 이윤미님 세 분의 추모사가 선생님이 작별의 시간에 함께 듣기 위해 정해 놓으신 간주곡 사이에 낭독되었다. 추모예배의 마지막 순서는 새길교회 홍인식 목사의 위로와 복을 비는 기도였다. 추모예배 후에 이어진 평장 예식은 가톨릭 교회 조광호 신부의 집례로 진행되어, 선생님의 adieu 예식은 에큐메니칼 차원으로 완성되었다. (추모예배 현장에서 찍어온 사진도 함께 붙인다.)

2) 선생님의 마지막 시간을 곁에서 지킨 정경일 박사의 증언
* “마지막까지 일생의 연구를 후학들에게 남기기 위한 집필 열정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모습” 정 박사가 전해 준 선생님께서 두세 번 고비를 넘기시고 다시 반짝 일어나시던 모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생님이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분투해 오신 학문을 지상의 순례를 마치기 전에 아직 순례의 길이 남아있는 도반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집필 열정의 끈을 놓지 않으셨음을 엿볼 수 있었다. 선생님 옆에서 머문 시간도 짧은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장신대에 재직하던 시절, 전화를 하셔서,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서는 신학생을 바로 교육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셨다. 이를 위해 선생님이 심도학사에 장학금을 주시면서 공부를 시키겠다고 학생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셨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강의하던 중세신비주의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학생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은 학부를 신학대가 아닌 일반대 나온 학생을 소개해 달라고 하셔서, 일반대 졸업생을 추천해서 학생이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하게 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선생님이 선생님 지상 순례 여정의 끝부분에 오셔서 길 선생님을 지켜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기도드리자, 갑자기 선생님은 두 손을 들고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 또렷하게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이 발언을 증언한 정경일 박사는 선생님이 연구하신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말을 인용하셨다. “당신이 당신의 평생에 드린 유일한 기도가 “감사합니다”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정 박사가 인용한 워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서 그냥 엨하르트 문장을 찾아서 번역했다. 정박사의 인용문 워딩은 좀 다를 수 있다.)

3) 정대현 교수의 추모사
워딩을 그대로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냥 내가 받아들인대로 써본다. 일단 정 교수님의 추모사는 선생님과 수십 년 이어온 대화의 연장선에서 두 분의 대화를 정리하는 글이었다. 내가 흡수한 내용은 2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길 선생님의 평생의 물음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였다는 것. 둘째, 예수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시고,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선생님은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시다가 하느님의 품에 안기셨다. 아마 매우 엉성한 요약일 것이다. 정대현 교수님은 내가 학창 시절에 교수님이 쓰신 분석철학 분야 책을 읽고 아는 분이다. 얼굴은 추모 예배에서 처음 뵌 것 같다.

4) 허기석 심도학사 이사의 추모사
공부와 명상 수행의 길을 걸어가신 선생님의 열정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선생님처럼 공부와 명상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시면서, 눈물을 참지 못하셨다.

5) 서강대 종교학과 이윤미 제자의 추모사
대학에 갓입학하여 선생님의 종교학개론 수업에 반하여, 길 선생님을 만나 배우는 것이 서강대에 온 이유였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내 눈에도 퍽 사랑스러웠던 이 제자는 이상주의자이셨던 선생님을 이야기하면서, 제자들에게 이상을 추구하며 살라던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이상을 추구하면서 살겠노라, 사랑과 자비의 근원, 진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추모사를 마무리하였다.

6) 선생님이 직접 선곡하신 곡들
“amazing grace”, “내 맘의 강물”(내 맘에 강물 끝없이 흐르네, 종종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신 곡이라고 한다. 선생님의 음악 사랑, 아이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이 떠올랐다.), 임윤찬의 연주로 바흐의 곡 “Jesu, Joy of Man’s Desiring”, BWV 147, 존 노가 부른 the Prayer(Davia Foster). 활짝 열린 푸른 하늘 아래 이 음악들이 울려 퍼진 선생님의 작별식은 이 음악들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7) 심도학사와 귀가 버스 안에서 만난 분들
박남미 사모님, 따님 길영은, 선생님 동생 부부, 정경일 박사, 안기석 선배, 이명현 교수님(학창 시절 분석 철학 수업 들은 후, 졸업하고 처음 얼굴을 뵌 것 같다), 홍인식 목사님, 한인섭 교수님, 김이수 대법원 재판관, 우리과 심형준 박사, 이정은 박사, 철원에서 오신 정지석 국경선 평화학교 대표(버스 타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길희성 선생님을 “한국의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부르셨다) 버스 안에서 김이수 법관님을 마주치고 어디서 뵌 분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더니, 대법원 재판관이셨다고 하셔서 새길 교회에서 뵙고 말씀 나눴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새길 교회에 방문하러 갔을 때가 용기있게 세월호 유가족의 편을 들어주는 보충 의견을 제시한 주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보충 의견을 제시한 김이수 재판관과 이진성 재판관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엘리 위젤의 말을 패북에 옮겼다. “우리는 편을 들어야 한다. 중립은 억압자를 돕지, 결코 희생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박해자를 격려하지, 결코 박해받는 자를 격려하지 않는다.”

(나의 기억에 의지하여 쓴 글이라 선생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전하는데 빈틈이 많을 것이다. 오늘 학교에 와서 교수휴게실에서 마주친 최종성 선생님에게 추모예배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정진홍 선생님이 마지막 인사를 전하실 방법을 찾기 위해 전화를 하셨고, 결국 정 선생님이 직접 유족에게 인사를 전하셨다는 것을 전해 주셨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진홍 선생님의 넓은 도량을 엿볼 수 있었다.)

8. 선생님을 추모하며, 오늘 아침에 읽은 떼제 공동체 로제 수사의 기도문 두편을 옮겨 쓴다.

“성령, 위로의 성령이여
당신의 현존 안에,
평화로운 침묵 속에 머무는 것,
이것은 이미 기도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모든 것을 이해하십니다.
때때로는 심지어 단순한 한숨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모든 생명의 주시여,
아침의 별처럼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셔서
우리의 의심과 우리의 주저함을 비추어 주소서”

   
 


*언제든지 나의 기사가 되어 주겠다는 귀한 친구가 있어서 강화도 심도학사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친구에게 감사한다. 친구는 오는 길도 라이드 해주려고 했지만, 친구의 선의를 남용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뿐더러, 친구에게 야간 운전의 위험을 주는 것은 내가 정말 원하지 않는 일이라 오는 길은 버스로 왔다. 새길교회 버스로 공항에 내리니 저녁 9시, 온 종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날이라-심도학사에서는 좋은 식사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에 요기를 하러 갔더니, 그 시간엔 롯데리아만 따뜻한 음식을 팔았다. 그 시간에 수많은 승무원들이 비행기에서 내려, 저녁 식사를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롯데리아에 들려 햄버거를 취식 중이거나 주문하고 있었다. 저녁에 귀국한 승무원들의 고단한 일상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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