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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의 인물 송암·만우·장공 학술대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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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18  14: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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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신학대학 창립 70주년 기념 

한국기독교장로회 출범 70주년을 맞아 기독교장로회 총회(총회장 강연홍목사)와 한신대학교의 초석을 놓은 한신대(총장 강성영박사)은 13일 송암(함태영,1898~1951)· 만우 송창근(1898~1951), 장공 김재준(1901~1987)을 기리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총회 관계자들과 교직원 학생등이 모여 기독교장로회의 정신과 정체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학술대회는 장공기념사업회와 만우기념사업회, 송암교회가 공동으로 주관했으며, 발제자로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 원장,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김주한 한신대 신학부 교수, 박종화 전 장공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발표자로 섰다. 

발제자들은 송암 함태영 목사와 만우 송창근 목사, 장공 김재준 목사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인재양성이라고 보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교계에 파벌이 형성됐고, 선교사들로부터 독립된 제도 구축의 필요성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격동의 시기에 민족의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신학 교육기관이 세워져야 했다는 것이다.

박종화 전 장공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송암과 만우, 장공은 한신대학교의 주춧돌을 놨을 뿐 아니라 한신에서 출발한 기장 총회까지도 섬겼다”며 “세 선현은 관용의 덕성과 목양의 영성, 신학적 지성을 보여주며 한신과 기장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송암·만우·장공은 시간 차를 두고 한신대학교 교장 및 학장직을 역임했다. 만우는 1939년도에 한신대학의 전신인 조선신학교 설립 기성회를 조직했을 뿐 아니라, 납북 직전까지 교장으로 학교를 지켰다. 송암은 한국 첫 신학대학으로 인가된 한국신학대학 학장으로 부통령 재직 중에도 학장 업무를 겸직 수행하며 수유 동산의 터를 닦았다. 송암은 신학교 설립기성회 실행위원회 경성 지방 대표로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송암의 학장직을 이어 받은 장공은 퇴임할 때까지 수유 동산을 신학의 산실로 키워냈다.

김주한 교수는 “송암·만우·장공의 교육운동과 사회참여에서 나타난 민족성은 그들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이라며 “그들 활동의 심층에는 에클레시아, 즉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고 봤다. 이 외에도 발제자들은 송암 함태영 목사의 공헌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송암이 기장 교단과 한신대 설립에 초석을 놓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노석 김대현과 만우, 장공에 비해 위상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경재 명예교수는 “송암에 관한 연구 자료가 부족할 뿐 아니라 행적에 오해의 요소가 있어 진면목이 감춰졌다”며 “대한제국 시절에 송암이 법관양성소 판사로 복무한 이력과 이승만 정권 당시 부통령으로 정치에 관여한 이력으로 일부 목회자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비록 시대적 제약이 있었기에 완벽한 일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송암은 남강 이승훈과 3.1운동에 앞장섰고 이로 인해 3년 간 감옥살이를 했던 분명한 애국자”라며 “송암은 기장 교단과 한신대학교 총석을 놓은 4대 기둥으로 분명하게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한 교수 또한 “송암은 봉건적 질서와 근대적 국가 이상이 충돌하는 혼란과 갈등의 시기에 법조인이자 목회자, 학교 경영인이자 정치인으로 한국교회 개혁과 사회혁신 운동에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한신대는 1964년 향년 91세로 별세한 송암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송암 기념사업관 건립 후원회를 조직, 캠퍼스 진입구 근처에 기념관을 단층으로 지었다. 현재 송암교회로 발전했다.

   
 

PCK의 비슷한 지도자는 누구?'

그렇다면 PCK에서 3명의 지도자을 거론한다면 과연 누가 될까?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 교단의 정체성과 신학의 초석을 세운 인물들에 대하여 기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거론해 보면 아무래도 교단과 신학교 목회자 영역에서 한 사람씩 뽑으라면 영락교회서 목회하고 총회장을 거친 한경직목사와 총회 종교부 총무와 서기 총무 총회장을 역임한 안광국목사와 장신대 박창환 학장을 꼽을 수 있겠다.  

이북 신의주 출신으로 미국유학 까지 다녀온 당대 지성인 한경직목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언행일치의 목회자로 교회적으로느 교단적으로 에큐메니칼신학을 견지하고 기독교 학원이나 복지, 방송,언론등 다방면에서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기반을 다진 분이다. 물론 제주 4.3이나 서북청년단, 반공등에서는 다른 이야기들이 있지만 '공칠삼과' 라고 일단 공적인 면에서는 분명한 역할을 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또 청주가 고향인 안광국목사는 한국전쟁후 충청도 교육국장을 지내다가 이리 신광교회에 부임하여 목회하다가 총회 종교 교육부 총무와 총회 총무 총회장 까지 지냈다. 이 분이 활동할 시기인 1950년말 기장과 분열을 시작하여 60년 초 합동측과의 결별을 거쳤다. 당시 통합 교단이 되는 과정의 산증인이며 선교사들과 선교기관인 학교와 병원등을 PCK가 이양받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끝으로 박창환 학장은 최연소 총회 직영신학대 교수로 시작하여 오늘날 장신대 산역사의 증인으로 불릴 수 있는 분이다. 이종성학장도 유명하나 장신대를 나오지는 않았다. 박학장의 제자들이 한국교회의 중요기고한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선한 품성으로 가장 존경받는 목자상의 표본이시다. 특히 학구적인 면에서 그러한데 끝까지 연구하는 자세로 미국에 거주하면서 신약성서 학자이면서도 그 영역을 넓혀 구역성서을 해설하는 저서를 낸 바 있다.  

앞으로 학자들이나 관심자들이 개인별 기록이나 자취는 많이 연구되었으니 이 세 분을 종합적으로 비교 연구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자료들은 많이 기에 장신대나  총회 사료분과등에서 중요한 교단의 인물들을 개인사가 아닌 교단과 다른 지도자들을 연계하고 다 각도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기장의 큰 인물들을 놓고 볼 때 우리도 그런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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