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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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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14  1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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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경영대 재학생 김예슬의 자퇴선언서

   
 

13년전인 2010년 한 언론은 이렇게 기사를 쓰고 있다. " 3월10일 이 땅에서 대학생이 한 명 줄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생이었던 김예슬씨(1987년생, 당시 25세). 그녀는 학교 교정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의 학생 신분을 스스로 버렸다" 라고 

누구는 가고 싶어 하고 가기 힘든 좋은 대학을 입학하고도 자퇴를 한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던지 천재던지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를 대변하기도 하는 데 "학벌사회" 의 자화사이다. 어떤 이는 이를 전태일의 분신에 이를 비유하기도 했는 데 당시 개설된 '김예슬 선언' 카페(http://cafe.daum.net/kimyeseuls)에는 3000명 넘는 회원이 가입했었다.

그렇다고 모두 김예슬을 지지한 것이 아니다. 김씨는 자퇴 선언 직후 "나 개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부담스럽다"라며 언론 인터뷰를 사양했으나 한 달 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라는 책 을 냈았다. 125쪽 분량의, 작은 책으로 당시 대자보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나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보다는 대자보의 메시지에 집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때는 이미 수많은 이가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어서 내가 덧붙일 게 없었다. 다시 인터뷰에 나서게 된 건 책을 썼기 때문이다. 책은 만날 수 있는 이들이 한정돼 있으므로 언론을 통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와 다시 회자되는 김예슬의 자퇴선언을 보면 우리사회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대학의 서열화와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곳없는 고급실업자, 최고의 진학율, 인구 저하와 지방 소멸로 인한 지잡대의 몰락이다.  

   
 

                                김예슬의 대자보 내용

명문대 입학은 '끝없는 트랙'의 첫 관문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25년 동안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는 의무교육의 이름으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고,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는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 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동시에 이 체제를 떠받쳐온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돌멩이 하나 빠져도 끄떡없다 하겠지만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됐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大學生)의 첫발을 내디딘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예슬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그후 김씨는 사회운동단체 ‘나눔 문화’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중동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교 건립 등 국내외 나눔 사업과 핵 반대, 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한다. 역시 자신의 철학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운동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의 이어진 촛불시위 현장을 기록해 『촛불혁명 2016 겨울 그리고 2017 봄, 빛으로 쓴 역사』(느린걸음·사진)를 출간했는 데 총 445페이지나 되는 책이다. 

촛불집회는 전 세계에서도 부러워하는 성취다.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을 시민의 손으로 무너뜨렸고 정권 교체를 이뤄 냈다. 전 세계적으로 성장이 멈추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더 성장을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 아이들이 위기에 처해도 가만히 있으라고 가르쳤던 우리 시대 가치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결론과 평가 

오늘날 이 땅의 대학은 더 이상 진리의 상아탑도 정치의 공론장도 아니다. 대학이 스스로 대학이기를 포기하고 있다. 설립자들과 교수들은 돈벌이로 직업화했다. 총장은 모금을 위하여 동분서주한다. 연구와 학문을 위한 활동은 없다. 근대 대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훔볼트는 대학이 ‘교수와 학생으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 공동체’라면, 이 땅에 진정한 대학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교수와 학생은 대학의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가 아니라 돈을 주고 지식을 사로 팔고 학교는 증을 파는 곳으로 전락했고 학사는 관리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학생들간에는 경쟁으로 승자 독식의 논리 속에 밟고 선자만이 살아남는 사회라면 학문 공동체는 붕괴된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고 정의를 구현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최고 학문 기관이 대학이라면, 이 땅에서 대학은 숨을 거둔 지 오래다. 진리, 정의, 연대의 가치는 낡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외면당하고, ‘경쟁력’, ‘효율성’, ‘수익성’, ‘선택과 집중’ 따위의 마케팅 용어들만 난무한다.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학생은 지식 소비자로, 교수는 지식 소매상으로 전락했다. 대학이 지녔던 도덕적 권위와 사회적 책임감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실용주의의 탈을 쓴 반지성주의가 대학의 이념을 질식시켰다. 대학은 이제 지성의 폐허, 정신의 황무지, 정치의 불모지가 되어버렸다.

훔볼트는 대학을 이상적인 소우주를 선취하는 곳으로 보았다. ‘대학 밖의 세상’에서 온갖 착취와 불의와 거짓이 판친다 해도, ‘대학 안의 세계’는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대학은 대학 밖의 세상보다도 더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화원과 경비원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와 파렴치한 착취는 대학이 볼썽사나운 몰골로 죽어가는 모습을 처연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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