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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동화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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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2.21  22: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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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영국의 튜더 왕조시대는 영국 크리스마스 역사에서 대중적인 축제가 된다. 이를 핑계로 과하다 할정도 먹고 마시고 즐기는 시대였다. 중세를 거치면서 발전해온 크리스마스 축제의 전통의 절정기이기 때문이다. 헨리 8세에서 엘리자베스 1세 시대까지의 종교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의 중세적 전통은 큰 단절 없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후 17세기 퓨리턴을 대표하는 정치가 크롬웰은 자신이 금욕주의자로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하면서 성탄에 대한 당시 먹고 노는 문회가 잠시 맥이 끊겼다가 왕정복고와 함께 되살아났지만 몇몇 전통들은 끝내 복구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현대적 이미지의 크리스마스가 재정립되었다고 한다.

중세-근대 초기의 크리스마스가 현대와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을 하나 골라보라면, 우선 축제모드로 들어가는 시점인데 현대 서구에서는 12월이 가까워오면서 길거리나 상점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변신하기 시작하며, 12월이면 벌써 흥겨운 축제 분위기가 시작이다. 이것은 백화점의 등장으로 인한 상술로 선물 파티등으로 타락된 문회로 "나 홀로 집에" 의 흥행을 보면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변천  
그러나 500년전에는 달랐다. 중세에서 근대 초의 대림 시기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다.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더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 시기가 지나간다. 대림 시기는 죄를 참회하고 단식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금욕도 적용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고기와 계란, 치즈를 먹지 않는다. 더 엄숙하고 금욕적으로 대림 시기를 보낼수록 성탄 축제의 기쁨도 더 크다는 것이 이 시기의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이러한 엄숙함은 12월 24일에 절정에 달한다.

왕국 내에 주요 대성당들은 저녁 시간부터 특별한 전례를 행한다. 대표적인 예로, 잉글랜드 남서부의 중요 도시인 엑시터의 주교 존 드 그란디슨은 14세기에 어두운 성당에서 촛불을 든 성가대가 성가를 부르며 성당 내부를 도는 아름다운 예식을 도입했는데, 매우 반응이 좋아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크리스마스로 지키는 12월 25일은 축제의 절정이다. 그리고 25일 저녁이 되면 슬슬 분위기가 식어서 다음날이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튜더 시기에는 정반대였다. 12월 25일은 축제의 절정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때부터 이른바 12 Days of Christmas가 시작된다. 중세-튜더 시기에 '성탄 시기'는 크리스마스 당일에서 1월 5일 밤까지다. 그리고 이 12일 내내 크리스마스 축제의 기간이다.

크리스마스 축제, 경건? 
중세 이후 서구에선 크리스마스를 엄숙하고 종교적으로만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그렇치 않다. 그들도 현대인들처럼 먹고 즐겼는 데 특히 부자들은 그렇다. 그러면서 일단 성탄 아침 미사를 엄숙하면서도 장엄하게 드리고 나면, 다시 미친듯이 노는 파티가 시작되는 데 다른 축제인 사육제나 가면축제등도 마찮가지다. 중세-근대 초 크리스마스 축제의 중요한 키워드는 '질서의 역전'이다. 사실 신학적으로도 크리스마스 시기는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비천한 곳에 내려온 것을 기념하는 시기이다. 중세-근대 초 사람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온몸으로 실현했다고 한다.

교회부터 이것을 앞장섰는 데 12월 6일, 성 니콜라우스 축일에 각 성당과 수도원들은 부속학교 학생들이나 성가대 소년들 중 한명을 '소년 주교'로 임명한다. 선출은 소년들이 투표로 결정하고, 본당 신부나 수도원장은 결과를 승인하고 정식으로 주교의 복장을 하사한다. 말도 안되는 짓 같지만, 이 소년 주교가 진짜로 12월 28일 죄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까지 교회의 전례를 집전한다.

중세-근대 초 유럽에서 가장 계서제가 엄격한 집단이 그 질서를 거꾸로 뒤집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왕궁에서 시골 지주의 영지에 이르기까지 이를 똑같이 따라한다. 왕은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동안 자기 대신 파티를 주재할 사람을 궁정인중에 선발하고, 각 마을들도 대리 왕을 한명씩 뽑는다. 이 사람들을 King of Misrule이라고 한다. 대체로 마을에서 가장 잘 논다고 소문난 사람이 선발되었다. 일단 뽑히면 왕도, 영주도 크리스마스 기간동안은 이 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물론 하는 일은 파티 사회자 같은 일이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이런 '질서의 역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데 이 시기는 신분질서가 엄격한 사회인 것을 감안하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의 탈춤과 연계해서 볼만 하다. 지도층은 하층민을 조이기만 해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1년의 단 며칠이라도 숨막힐 것같은 질서를 느슨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전근대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원리였을 것이다.

   
 

거룩은 포장
그렇게 해서 크리스마스 축제 12일간은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이 노동은 물론 신분질서로부터도 해방되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평소에는 맛보기 어려운 붉은 고기를 마음껏 먹고, 알코올도 잔뜩 섭취하고 다양한 게임을 즐긴다. 대림 시기 내내 단식과 금육한 덕분에 비교적 음식도 풍족하다. 설령 풍족하지 않더라도, 이 시기에는 영주와 지주들이 어느 정도는 베풀어야 하는 시기다.

탈춤에서도 양반들은 소위 상놈이라는 아랫 것들에게 1년에 한번은 떡과 고기 술을 내놓고 극중에서 조롱을 당하는 것을 허락한다. 양반사회와 이를 뒷 받침하는 종교를 비웃고 성직자의 이중성을 비웃는 다. 이런 조롱을 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얼굴을 가리고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것을 묵인한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억압으로부터 순간의 해방과 자유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도 1980년 전두환 장군의 12.12 쿠테와 군이 하극상으로 집권한 시대에도 당시 문화부 장관 허문도가 절망한 국민시선을 다른 데 돌리려고 한 여의도에서의 국풍 81 대중 축제를 생각해보라 국가 주도와 방송, 연예가 기획한 연출된 대중축제였다. 역사속에서는 언제나 지배층은 이렇게 국민을 스포츠와 우민화에 열광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중세-근대 초 사람들은 엄연히 종교적인 사람들이었고, 크리스마스 축제 12일은 동시에 종교적 축일이기도 하다. 즐길 때는 즐기고, 또 미사를 드릴 때는 경건하게 참여한다. 특히 28일은 헤로데 대왕에게 학살당한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기념하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로 엄숙하게 기념했다.

구슬픈 캐롤이 중세와 튜더 시대 사람들에게 유독 인기 있었던 이유는 당시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린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노래하는 그 “어리신 예수”등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크게 와닿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축일이 중세-근대 초기 크리스마스 시기에 특히 중요하게 기념되었던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축제는 마무리가 중요
현대에는 축제를 끝나고, 직장으로 복귀했을 시기에도 튜더 시대 사람들에게는 축제가 이어졌다. 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축제가 절정에 이르는 날은 1월 5일이다. 12 Days의 마지막날인 이 날 저녁은 특히 '십이야(Twelfth Night)'라고 날 밤을 까 중세인들과 튜더 시대 사람들들에게는 1년중 최대의 축제 중 하나였다. 이 날 저녁은 남은 음식은 모조리 다 차려서 또 한번 미친듯이 놀면서 보낸다.

밤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등불을 밝히고 캐롤을 부르며 행진한다. 집집마다 돌면서 캐롤을 부르고(지금의 새벽송) 또 들러서 얻어먹고 흥겹게 축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축제의 밤이 가고 아침이 밝으면, 일상으로 복귀할 시간이다. 뒤집어졌던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한 해의 사이클이 시작된다.

이 날을 Plough Monday라고 불리며, 농민들이 다시 쟁기를 잡는 첫날이다. 축제가 끝난 것은 아쉽지만, 또 한 해를 보내면 그 다음 축제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아쉬움을 달래며 일터로 돌아간다. 이것이 중세와 근대 초 농민들에게 성탄 시기가 중요했던 이유이다. 이렇게 모든 사회적 제약과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원없이 놀고 나면 어느정도 에너지를 얻어서 다시 고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전근대 농민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힘들지만, 때때로 이런 휴식과 해방의 시기가 존재했다는 것이 한해의 사이클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런 배경속에서 나온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크리스 마스 캐롤“을 분석해 보면 튜터 왕조이후 찰스 디킨스가 살던 즈음엔 크롬웰의 크리스 마스 억압으로 인하여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서는 시골에서 소소하게 기리는 정도로 몰락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사람들이 기념일이나 축제에는 관심이 점점 사라져 사회가 삭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영국 노동자들의 삶은 고단했다.
디킨스는 이 작품을 통해 삭막하게 살면서 돈과 일에만 집착하는 스쿠루지와 같은 냉혈한들의 풍조를 비판한 것이다. 동시에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일깨워 줌으로서 크리스마스의 원래적 의미를 부활시킨 것이다. 산업화 초기 갖은 자들인 부유층과 중산층은 재산을 증식하는 데 열중하였고 서민층은 명절을 기념하고 가족끼리 모일 기회도 거의 없었는데, 이 작품으로 디킨스는 크리스마스를 기리는 데에는 많은 부가 필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덕분에 많은 가족들이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모여 왁자지껄하게 지내고 힘든 하루하루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에 찰스 디킨스의 영향이 당시 얼마나 컸냐면, 디킨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영국의 아이들이 "이제 크리스마스는 없는 건가요?"라고 물어봤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이 작품은 단순히 크리스마스를 부활시킨 것 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의미조차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이전까지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의미가 더 강했으며 사회 단위로 기념하는 일이 많았었다. 하지만 디킨스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는 사회보다는 가족 중심의 기념일로, 상류층이나 종교 관련 기념일보다는 모두가 같이 즐기며,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날로 바뀌었다.

그렇게 부활한 크리스마스는 사그라들지 않은 채 현재까지 내려와, 현대에 (특히 서양에서) 크리스마스와 관련짓는 것은 대부분 이 때 정립된 것이 많다. '모두가 즐기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든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것, 문가에 와서 노래를 부르는 캐롤 합창단,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 크리스마스 파티, 크리스마스 트리 모두 이 시대에 정립된 이미지다. 심지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조차 크리스마스 캐럴로 인해 유행하게 된 것이니 말 다 했다.

그 외에 언어적으로 끼친 영향도 다양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인 '스크루지'는 구두쇠의 대명사가 되어 현재에 이르러서는 구두쇠를 뜻하는 일반적인 표현이 되었다. 오죽하면 이 작품의 제목을 '크리스마스 캐럴' 이 아니라 '스크루지 영감' 이라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각 교회나 성당에서 성탄절 즈음에 진행하던 주일학교 성탄 예술제 때 연극으로 자주 써먹던 작품 중 하나다. 내용이 꽤나 교훈적인데다 지나치게 종교적이지도 않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그렇다. 연극으로 자주 활용되는 다른 이야기로는 마리아의 예수 잉태부터 아기 예수가 탄생하기까지의 일화 등이 있다.

크리스마스를 재해석

초판 6천부가 단 하루 만에 매진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작가로서의 확고한 위치와 명성을 얻고 있던 찰스 디킨스는 이 작품으로 이름을 떨치며 영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았다. 권선징악적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 산업화의 새로운 물결이 불던 출간 당시에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라는 비난과 함께 비평가들 사이에선 분분한 논란을 일으켰지만 누구나 명쾌하게 작가의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고, 알기 쉽게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스쿠루지 영감은 마음씨 고약하고 돈밖에 좋아하는 게 없는 천하의 구두쇠이며 열악한 작업 환경임에도 성실하고 즐겁게 일하는 직원을 구박하는 전형적인 주인이자 경영자를 대표한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래 전 죽은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인 제이콥 말리 유령의 방문과 함께 3명의 크리스마스의 영혼들을 만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며 개과천선해 구원을 받는 픽션이다.

이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종교의 의미를 개인의 영적 구원뿐만이 아니라 당시 산업혁명과 함께 희미해지는 크리스마스 전통을 되살리게 했고,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주었다. 특히 하류층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찰스 디킨스의 깊은 애정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스크루지는 구두쇠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찰스 디킨스의 재치 있는 만담은 이 소설의 매력 요소인데, 특히 출판 당시 미국에 대하여 작게 나마 은근히 까는 풍자용 장면들에서 드러난다. 죽은 친구 말리의 유령이 찾아온 다음, 잠에 들었더니 시간으로 다음날 아침인데 바깥이 어두운 것을 보고 놀라 시계를 봐도 시간상으로 대낮이어야 하는데 이를 곰곰히 생각하는 부분에 이런 묘사다. 

이 동화가 주는 교훈 
그는 불안한 생각에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으로 향했다. 잠옷 소매로 성애를 닦아내어야만 그제서야 뭔가를 볼 수 있었고, 그나마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여전히 짙다는 것, 날씨가 지독하게 춥다는 것 그리고 밤이 낮을 물리치고 온 세상을 지배했다면 으레 일어났어야 할 소동은 없었다는 것 만을 알아챌 수 있을 따름이었다. 미국 유가증권을 간접적으로 디스하면서, 한편으로는 해가 안 뜨는 전세계적 재앙이 왔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며칠 뒤에 받아야 할 돈을 못 받는거나 걱정하는 둥 목숨보다 돈을 더 중요시할 만큼 스크루지가 구두쇠적 기질이 심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유머다.

사실 산타크로스라는 것도 허구다. 그러나 허구인줄을 알면서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실제인 것 처럼 믿는 다. 그것은 어린이들을 위해서다. 착함 선함을 강조하고 종교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성탄절에 산타가 밤에 선물을 준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긴 양말에 몰래 선물을 넣는 다. 그러나 그 아이도 성장하면 그것은 모두 어른들이 만든 허구라는 것을 알지만 아무도 왜 거짓말을 했냐고 말하지 않는 다. 기독교에는 이런 요소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와 허구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산타와 선물은 허구지만 그 의미는 허구가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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