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역은 질적으로 진보해야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칼럼/기고/강연
선교사역은 질적으로 진보해야
예장뉴스 보도부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4.01.28  14:15:48
트위터 페이스북

               "드림의 복, ‘따치’ 의 헌신"

선교사란 그 자신의 신앙과 헌신에 대한 사명감으로 실천하고 평가하는 자신의 양심의 내부검열외에는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자다. 우리교단 선교사의 경우 부부가 함께 훈련받고 파송을 받고 동역하기는 하나 남편 선교사가 사역의 전체나 재정 관계등을 오픈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다음이 중요한 것이  지역 선교사회로 거기서 소통하고 사역의 경험을 나누고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선교사들에게나 쥬니어들에게 그런 역할이나 내용을 전수하느 냐와는 별개지만 말이다.   

선교사역지의 나라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선진국이 아닌 경우 대체적으로 무언가를 주는 자가 가장 현지인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선교 초기 서구 선교사들이 학비를 주거나 학교나 병원 교회등을 지어주었다. 일본내 한인 동포들을 선교한 카나다 선교사(l.l YOUNG)들의 경우 초기엔 오직 주는 역할만을 하자 해방후 교육받는 교토교회 유석준 장로등이 돈만 주려는 선교방식에 항의한다. 받는 것 처럼 주는 판단도 같이하자는 것이다. 맘대로 주고 싶었던 영은 맘이 상해 본국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만년엔 화해하고 고베의 선교사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지금도 오직 선교사의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주는 선교가 있을 것이지만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 글은 합동측 태국 선교사로 있는 오영철선교사의 고백이다. 아직도 가난한 나라에서 사역하는 이들에게는 더 줘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언제 까지 얼마나 줘야 하는 지 판단은 누가해야 할까? 이 질문을 갖고 할 수 있을 때 만이 진정한 파트너쉽의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건물을 지어주고 먹을 것을 주는 선교로 일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치 않으면 더 많은 것을 주는 사람을 원하게 될 것이다. 

선교사는 현지의 교회와 지도자 교인들을 돌보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는 자로만이 아니라 그들의 미래와 영적성장과 자립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오영철선교사 처럼 받기에 급급한 이들에게 내라는 어려운 말을 할 수 있을 때만이 진정한 수평적 선교로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가 언제 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선교사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가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이 중요하다.    

   
                                                    * 오영철 선교사와 따지 전도사와의 예배 인도 

 

"주는 선교보다 신심과 정신을 줘야 하는 이유다. 성경에도 금과 은으로 하지말라고 했다" 

오영철 선교사(태국 카랜족 사역) 
.
선교지에 건물을 세우지 말고 사람을 세우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사람을 세우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세우고 건물까지 세운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교회재정이 어려워지고 선교자원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더욱 적절한 방향이다. 그런데 막상 사람을 세운다는 사역을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확신이 안 설 때가 있다. 우리 팀은 선교지 지도력을 세우기 위해 장학금을 주고, 미래 교수요원을 위한 석, 박사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분명히 의미 있고 필요하다. 그렇지만 질문이 남아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필요한 재정 지원이 수혜자들에게 의존성 강화라는 결과를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선교지에서 받기만 하면 ‘드림’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게 하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보쉬는 이와 관련된 적절한 단어를 만들어 경고했다. 선교사들 “부자 삼촌”처럼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선교사 방식대로 판단하고, 선교사 방식대로 지원하고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보쉬는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줄 수 있는 최대의 것은 “선교지 교회가 베푸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교사의 지원도 결국 현지 교회가 ‘베풀고 주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함을 의미한다. 선교사들은 학생들이나 교인들에게 돈을 지원할 때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사가 ‘돈이 많은 삼촌’처럼 대한다면 그들은 ‘주는 자’가 아니라 ‘받는 자’로서 익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신학교의 미래 교수를 준비하는 ‘따치’와의 약속은 이런 고민의 한 흔적인 것 같다. ‘따치’는 2023년 3월에 실로암 신학교를 졸업하고 파얍 신학교 신학대학원 1학년에 다니고 있다. 그는 헌신된 부모에게 신앙을 배웠고, 명석하며 상황 파악을 잘한다. 신학교에서는 그를 미래의 신학교 교수로 결정하고 신학대학원에서 준비하도록 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의 질문이 있다. “왜 우리는 헌금을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몇 년 전에 신학교예배 때 설교하고 내려온 나에게 질문한 것이다. 당시 미얀마 카렌 교회는 태국의 카렌보다 훨씬 가난하여도 훨씬 많은 헌금을 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 설교를 듣고 그는 자신들을 돌아본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다른 그의 반응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가지면 미얀마 카렌 교회와 같은 헌신을 할 수 있을 재목처럼 보였다. 그 이후 일부러 그를 데리고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선교하는 카렌교회, 헌신, 선교사들의 영향 등에 대하여 나누었다.

오늘 그가 나와 한 약속은 ‘특별 헌금’에 관한 것이었다. ‘따치’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비교적 넉넉한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선교사를 통해서 받게 된 지원이 그가 마땅히 해야 할 헌신을 약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받는 것도 은혜이지만 ‘드림의 복’을 실천할 방안을 생각했다. 오늘 그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솔직히 따치가 외부에서 받는 것에 습관화될까 걱정입니다.” “따치가 사람을 세우는 ‘신학교’와 ‘선교’를 위하여 좋은 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먼저 신학교를 위한 헌신에 제안을 했다. “신학교를 위하여 매달 200받을 헌금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따치는 신학교교직원 가운데 처음으로 정기적인 헌금을 하게 됩니다.” 

둘째는 선교 헌금에 관한 헌신이다. “우리 카렌교회도 선교를 해야 하는데, 따치가 본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보다 가난한 국가에서 온 선교사를 위하여 매달 200받을 헌금해줄 수 있나요?” 심각한 경제위기속에서 선교하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노애미’선교사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미얀마 카렌 교회가 헌신하는 것은 지도자들이 먼저 헌신의 본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따치’는 주저함 없이 대답하였다.

“네! 신학교와 선교를 위하여 헌금하겠습니다.” 

그의 헌신에 대한 답을 들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머뭇거리지 않고 약속한 따치가 고맙다. 어떻게 보면 약 200받(약 7천원)은 많은 액수는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에게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그가 사람을 세우고 선교사역을 위하여 구체적인 참여자가 된 것이다. 단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함으로 본이 되면 학생들은 그의 행동을 보고 닮고 싶을 것이다.

‘먀샬’이라는 현지 지도자의 고백은 선교사들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은 충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을 통제하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욕구입니다. 그들은 돈이 있고 (현지는)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입니다. 그들의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을 취약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돈과 영향력을 통하여 선교지 교회가 가야할 방향이 아니라 선교사의 원함을 이루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그렇게 관계된 현지 교회는 헌신을 통한 ‘자기 존엄’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선교사를 의지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샬이 경험한 미국 선교사들만의 현상은 아니라 한국 선교사들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임시적 존재이며 선교지의 주인은 현지 교회이다. 선교사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선교사의 행동과 태도가 현지 교회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선교사는 자신의 사역을 본인이나 후원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데이비드 보쉬가 이야기한 것처럼 현지 교회가 ‘베투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현지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선교사와 현지 교회가 주안에서 서로 의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서로 돕고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현지 교회의 헌신을 통한 ‘자기 존엄’과 ‘하나님 의존’에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 그들이 가난한 중에도 최선의 헌신을 하였다면 그들도 선교사도 그 헌신을 존경하고 귀하여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런 헌신에 대하여 현지 교회는 물론 선교사도 배워야 한다. 선교사는 그런 헌신을 더 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깊이 숙고해야 한다. 현지 교회가 정성을 다했더라도 선교사의 지원보다 액수가 작으면 그 가치를 평가 절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좋은 의도가 다 긍정적인 결과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따치’의 매달 ‘400받’의 헌신은 그의 액수보다 큰 의미가 있다. 신학교의 미래 교수로서 사람 세우는 일을 그도 이제 ‘재정’을 통하여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태국 카렌 교회 한 성도로서 태국보다 더 가난한 국가의 선교사를 돕기 시작하였다. ‘사람 세우기’와 ‘선교’사역에 본이 된 것이다. 태국 카렌 총회는 여전히 외부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한 카렌 성도는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헌신의 복’ 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베푸는 헌신의 복’이 태국 카렌 교회 속에서 구체화되기를 소망한다. ‘따치’가 그런 ‘베푸는 헌신의 복’을 자신을 넘어서 신학생들에게 도전을 주고 실천한다면 전환점의 계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따치’의 헌신은 엘리야 사환이 보았던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따치’의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5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6
장로교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7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