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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섭 박사 남아공서 명박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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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6.01  11: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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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공화국 소식

   
 

지난 달 26일 부터 6월 5일까지 국내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48개국 정상들과의 릴레이 회담이 진행되는 중이다.  아프리카연합(AU)을 포함한 지역 국제기구 책임자들이 직접 혹은 영상으로 참가한다. 31일 아프리카 시에라리온·탄자니아·에티오피아·모리타니 정상 등과 대통령 오·만찬에 이어 2일에는 탄자니아·에티오피아 정상과 각각 오찬·만찬 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정상회의 공동주재국인 모리타니 정상과는 다음 달 5일 오찬 회담을 한다. 윤 대통령은 국왕·대통령 등 국가 원수가 방한하는 25개국 정상과는 모두 회담을 가질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많은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과의 외교는 전례 없는 일로 아프리카에 대한 중요도에 힙은 바 크다.

중국은 이미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경제지원등으로 바탕으로 한 외교에 서구 어느나라보다 진척되어 있다. 그간 북미나 유럽위주의 외교에서 탈피한 아프리카나라들의 실리외교에 우리나라도 늦었지만 정상 외교와 지원 경제협력들을 통한 자원 외교, 통상외교, 안보외교의 기반을 놓는 것으로 보인다.

   
                                                    * 스웨토 넬슨 만델라 생가 박물관  

남아공 총선 열려(최종 개표 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배출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지난 30년 단독 집권이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31일(현지시간) 남아공 총선을 주관하는 선관위(IEC)에 오후 2시 개표가 64.99% 진행된 가운데 ANC는 41.86%를 득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 총선 득표율보다 15%포인트 이상 떨어진 가운데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정책) 종식 이후 집권한 이래 ANC의 과반 득표실패는 처음이라고 한다. 2위는 민주동맹(DA)으로 2.72%로 2위이며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생 정당 움콘토 위시즈웨(MK)는 11.92%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원내 제2야당 이었던 경제자유전사(EFF)는 9.50%로 밀린 가운데 잉카타자유당(IFP)(2.99%)과 애국동맹(PA)(2.58%) 등 일부 군소 정당이 2%대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최종 개표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지 매체들은 ANC의 과반 득표 실패를 예상했다. 민심이 ANC를 외면한 것은 고질병으로 꼽혀온 높은 실업률과 물과 전력 부족 등 민생고를 해결할 능력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ANC는 그간 총선에서 60% 안팎을 득표했지만 올해 들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줄곧 40%대에 그쳤다. 과반 득표 실패가 유력해지면서 ANC는 당 대표인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연임을 위해서는 400석의 의회에서 과반(201표 이상)을 확보하려면 연정이 불가피해졌다.

18세 이상 유권자 2천767만여명이 등록한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지난 2019년 총선 투표율인 66%를 웃돌 전망이라고 IEC는 전했다. 이번 총선 최종 결과는 다음 달 2일 전후 공식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후 14일 이내에 소집된 새 의회에서 간선으로 후임 대통령을 선출할 것으로 보인다.

   
 

프래토리아대학(UNISA)서 명예 박사 학위 받아

CWM 총무인 금주섭박사가 지난 5월 30일 남아공의 수도 프레토리아의 South Afrika Univercity(UNISA)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의 명문대학으로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중 넬슨 만델라 전대통령(흑인 최초)이 나온 대학이다. 남아공에는 한국에서는 주로 고신계열의 보수주의 교단에서 많이 유학을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PCK 파송 선교사로 사역하는 김승범선교사가 Pretoria 대학에서 아프리카 흑인 해방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는 데 남아공 현지에서 이 소식을 알려왔다. 

   
 

이번에 명박을 받은 금박사는 WCC에서 선교국장을 지내는 동안 아프리카의 교회 지도자들과 교분을 쌓았다. 그런 가운데 올해 7월에 남아공에서 CWM 총회가 예정되여 있어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박사는 남아공의 다른 대학에서 이미 겸임를 지낸 바 있으며 헝가리의 데브라찬 대학에서도 명박을 수여받기도 했다. 

금박사는 장신대 학부와 신대원을 졸업하고 장청 총무를 지냈으며 학생시절 부터 CWM국제 훈련에 참가한 이래 영국 에딘바라대학에서 선교학 박사 학위를 받고 CWM스탭을 지내고 WCC에서 선교국장을 지냈다. 제네바에서 임기를 마친 이후 귀국해 장신대 특임 교수와 연대 송도캠퍼스 국제대학 겸임 교수를 지내다가 3년전 CWM 총무가 되여 본부가 있는 싱가폴로 부임했다. 

   
 

금주섭박사의 인사  

남아프리카 대학교 (유니사)에서 이 명예 박사 학위를 수락하게 되어 정말 영광스럽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Winnie Mandela Hall에 초대되어 감사하게도 남아프리카와 흑인 해방 운동의 지적 중심이자 고등 교육 기관으로부터 명예 철학 박사를 받게 된 것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150년 동안 유니사의 교육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의, 해방,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데 예언적이고 변화적이었습니다. 유니사는 아프리카 대륙이 당면한 과제에 맞서 집단투쟁을 향한 단결을 도모하는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우리는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향한 그 어떤 여정은 혼자서도 걸을 수 없다고 굳게 믿습니다. 연합의 힘, 협력의 지혜,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저는 변혁적 미션 파트너로서, 남아공과 한국 간 고등교육 연대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생명이 풍성한 지역사회와 함께 우리 사회를 건설하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세상은 무너지고 곤란한 세상을 조화시킬 대안적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예언자들의 터전인 유니사는 이미 이러한 리더십의 모델을 배출했습니다. Albert Luthuli, Nelson Mandela, Oliver Tambo, Desmond Tutu, Thabo Mbeki 등 다양한 리더십을 배출했습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이처럼 선지자의 사명에 동참하고, 삶을 향해 함께 노력하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살며, 여백에서부터 사명에 참여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불의와 폭력이 날로 증가하고 증오와 인종차별이 번성하는 세상에서 이를 종식 시킬 후예들이 필요합니다.

이 영광자리에서 저는 이 학위가 단순히 제 개인의 성취에 대한 반영이 아니라, 함께 이 길을 걸어온 모든 이들의 집단적 노력에 대한 동료애로 받아드립니다. 이 놀라운 영광을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안에서 맺어진 한 가족으로 한국의 대학과 교회 자라나는 학생들과의 지속적인 우정과 유익한 교류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아프리카 대학교에 축복이 있기를! 고마워요! 만델라

I am deeply honoured and truly humbled to accept this honorary doctoral degree from the University of South Africa (Unisa). It is, indeed, my privilege to be invited here at Winnie Mandela Hall to gratefully receive an honorary doctor of philosophy from this venerable institution of higher education as well as an intellectual centre of the Black liberation movement in South Africa and beyond. Throughout the last 150 years, Unisa’s education has been prophetic and transformative in promoting justice, liberation, human dignity, and democracy in Southern Africa. Unisa has been a beacon of hope for the African continent in promoting unity towards the collective struggle against the challenges the continent has been facing.
We strongly believe that any journey towards justice, peace, and life cannot be walked alone. It requires the strength of unity, the wisdom of collaboration, and the grace of God’s guiding hand. Therefore, as a partner in the transformative mission, I will continue to develop solidarity in higher education between South Africa and South Korea, working towards building our societies with life-flourishing communities.
The world is yearning for an alternative leadership that will reconcile the broken and troubled world. The Unisa, a temple of prophets, has already produced the models of such leadership, Albert Luthuli, Nelson Mandela, Oliver Tambo, Desmond Tutu and Thabo Mbeki, and many more. We are called to be disciples who are ourselves transforming, and as such, we are privileged to join in the mission of the prophets, working together towards life, living out the values of the kingdom of God, and engaging in mission from the margins. In a world in which injustice and violence seems almost insuperable, where hatred and racism seem to thrive, where suffering is so widespread and terrifying, our discipleship is costly.
As I accept this honour with deep humility, I am conscious that it is not merely a reflection of my individual achievements but a recognition of the collective efforts of all those who embraced such costly discipleship and walked this path with us. Thank you for bestowing this incredible honour upon me. I look forward to your continued friendship and fruitful exchanges with Korean universities, churches, and theologians as one family of God.
May God bless you and the University of South Africa! 
Thank you! Amandla!

   
 

남아공 어떤 나라인가?

남아공의 역사는 다른 아프리카와 마찮가지로 서구의 침탈과 식민지를 경험했으며 이후에도 다른 나라와 달리 흑인들의 주권을 갖지 못한 체 소수 백인들이 다수의 흑인들을 지배하는 특이한 역사을 갖은 나라이다. 정부는 주민들을 백인, 유색인, 흑인으로 구분하여 3개 국가로 분리했다. 첫번째는 영국과 네덜란드계(보어인) 조상을 가진 백인 집단으로 이들은 정치적 지배권을 얻기 위해 몇 세대에 걸쳐 싸웠고, 그 투쟁의 폭력적 정점은 보어 전쟁(1899~1902)이었다.

2번째 흑인 집단은 북서쪽 사막지역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산족, 동쪽 고원에서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는 줄루족, 그리고 남쪽의 케이프 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코이코이족 등으로 구성된다. 유색인종 집단은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종인 컬러드와 인도·말레이시아·필리핀·중국계 아시아 인종으로 구성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국제사회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고 거센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자국이 세계의 최빈민국에 속해 있으며, 경제·문화적으로 배척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속에서 반체제인사로 오랫동안 투옥되었던 넬슨 만델라 석방이후 그를 정잠으로 한 흑인 다수당이 승리한 1994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바야흘로 흑인정권이 탄생한다. 남아공은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사회적 평등을 이루는 데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둔 나라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대 도시권이자 상업의 중심지인 요하네스버그는 인구밀집지역인 가우텡 주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인도양에 면해 있는 항구인 더반은 주요 산업의 중심지이다. 남쪽 해안을 따라 발달한 두 도시 이스트런던과 포트엘리자베스는 중요한 상업·산업·문화의 중심지이다. 특이 하게도 남아공은 수도가 3개인데 "여러 부족이 합쳐 나라를 세운 관계로 케이프타운(입법 수고), 블룸폰테인(사법수도) 프리토리아(행정수도) 다.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비옥한 농경지, 풍부한 광산자원, 관광명소, 고도로 발전하는 지적 자본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혼합경제를 향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층 개선된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안정이 사회적 안정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구는 2024년 기준 6,102만 명이고, 인구밀도는 50명/㎢이다. 15세 이하가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며, 도시거주자는 인구의 67%을 이루고 있다. 종교 분포는 그리스도교가 전체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며, 그 외에 무종교 16%, 이슬람교 2%, 힌두교 1%, 토착 신앙 1% 등으로 분류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 발전은, 오랫동안 광범위한 항의와 사회불안을 야기시킨 소수 백인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마침내 1993년에 채택되고 이듬해에 발효된 임시헌법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요약된다. 1996년 마침내 제헌의회에서 신헌법이 제정되어 이듬해에 발효했다.

1948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사회 체제는 '아파르트헤이트'에 기초하고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란 소수 백인집단의 정치·경제적 지배를 유지하고 백인과 컬러드, 아시아인(주로 인도인), 아프리카 흑인을 법률적으로 엄격히 분리하는 인종차별 정책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0개의 흑인 국가(반투 홈랜드)를 설정해 각각 특정 종족을 귀속시켰다. 1970년 모든 흑인은 자신이 그 지역에서 산 적이 있든 없든 지정된 홈랜드의 '시민'이 되어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 소수 백인정권은 모든 흑인의 시민권과 참정권을 박탈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고 있던 시기에 집권여당은 백인으로 구성된 국민당(National Party/NP)이었으며 흑인의 주요 정치단체인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 National Congress/ANC)였는데, ANC는 불법단체로 간주되었다.

백인의 문자해독률은 90% 이상으로 높은 반면, 흑인의 문자해독률은 32% 정도로 낮다. 학교교육은 7∼16세의 모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무상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아파르트헤이트 시기에 시행되던 인종분리교육제를 대체할 단일한 다인종 교육제도가 정착되고 있다. 언론에 대한 정치적·법률적 제약이 심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에서는 가장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148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남단을 항해했다. 1652년에는 네덜란드인 얀 반 리이베에크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무역선의 중간기착지로 이용하기 위해 희망봉 일대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네덜란드 이주자들은 처음에 보어인으로 불렸으나 나중에 네덜란드 본토어에서 파생된 아프리칸스어를 쓰게 되면서 그 이름을 본따 '아프리카너'라고 불리게 되었다.

1795년에 영국군은 지금의 케이프 주(당시 케이프 식민지)를 점령했다가 1802년에 그 지배권을 양도했으나 1806년에 이를 되찾았다. 영국인들은 국경을 따라 반투어를 쓰는 종족들을 정복하는 정책을 펼쳤다. 1830년대에 들어와서 아프리카너들이 노예들과 함께 오렌지 강과 발 강을 건너 대규모로 북상하는 이른바 '대이주'(Great Trek)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보어인들은 오렌지 자유국(1854)과 남아프리카 공화국(1838, 후에 트란스발 공화국이 됨)을 세웠다. 두 공화국 모두 1850년대에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독립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다이아몬드(1868)와 금(1886)의 발견으로 경제가 활기를 띠었다. 보어인들은 영국이 자신들이 세운 공화국을 남아프리카 연방에 포함시키려고 하자 이에 맞서 저항했고, 마침내 1899년 두 공화국과 영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보어 전쟁). 1902년 보어인들이 패하고, 두 공화국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20세기 내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를 지배해 온 것은 다수 흑인들에 대한 백인 지배권의 유지에 관한 문제였다. 1948년에 구성된 백인계 국민당의 신(新)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흑백인종차별정책을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했고, 이에 따라 기존의 인종간 계급제도는 모든 정치·경제 구조에서 백인과 흑인을 양 극단에 놓는 구조로 고착했다.

1991년 백인 정부와 흑인 정당 간에 인종을 초월한 새 헌법의 제정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사실상 완전히 폐지되었고, 정부와 주요 흑인 정당인 ANC는 다수결 원칙에 따라 민주주의로 이양하는 데에 협력했다. 이에 따라 1994년 4월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민주적 총선이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ANC가 완승을 거둠에 따라 ANC 의장인 넬슨 만델라는 즉시 NP와 함께 국민통합을 위한 정부를 구성했다.

1995년 5월 '진실과 화합 법'이 의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소수 백인정권하에서 저질러진 범죄적 행위의 진실을 규명하고 흑백간의 화합을 이끌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투투 주교가 이끄는 '진실과 화합위원회'가 설치되어 2년 6개월 동안 활동에 들어갔다. '진실과 화합위원회'는 3,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만델라 정부는 국제적으로는 아프리카의 정치·경제 문제와 이른바 '로커비 사건' 등의 굵직굵직한 국제분쟁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제적 지위를 전례없이 향상시키는 한편, 국내적으로는 경제에서 흑백차별을 종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동조합과 흑인 경영자들로 기업을 설립하거나 백인 회사들을 인수하고 인종·성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흑인과 여성의 고용 비율을 각각 75%, 50%로 규정한 새 노동법을 제정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1999년 5월 국민 앞에서 고별식을 가졌다. 1999년 6월 역사상 2번째로 자유총선이 실시되었다.

이어 만델라의 후계자인 타보 음베키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 겸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 취임했다. 350년간의 백인의 압제를 끝내고 흑백간의 평화정책에 성공한 만델라 정부에 이어 등장한 음베키 정부는 흑인들의 높은 실업률과 생활고, 주택난, 에이즈와 범죄 등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 인종간의 경제적 평등과 삶의 질을 향상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한국과의 관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6·25 전쟁 때 연합군의 일원으로 공군 1개 전투비행단과 수송기 7대를 파병해 참전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경기도 안성시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참전비를 세웠다. 1978년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UN 제재에 부응하여 모든 공식관계를 단절했다.

공식 외교관계는 만델라 정부가 수립된 이후인 1992년 12월 재개되었다. 양국은 각각 1993년 2월과 3월에 현지 대사관을 개설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친서방과 반공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하여, UN 총회에서는 한국에 관한 서방측 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1995년 7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방한해 대통령 김영삼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기업의 상호진출 및 교역확대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으며 1998년 4월에는 음베키 부통령이 방한한 바 있고, 한국에서는 1999년 6월에 김종필 국무총리가 만델라 대통령 이임식 및 음베키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바 있다. 이후 양국은 장차관급 고위인사의 상호 방문이 이어졌다. 1999년 6월 김종필 국무총리가 만델라 대통령 이임식 및 음베키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바 있다.

한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북한과 1998년 8월에 국교를 수립했으며 북한은 2002년 3월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을 개설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주 중국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4,369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하우텡주와 웨스턴케이프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3,585명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적의 등록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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