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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수 교수의 김교신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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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6.25  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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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교신 평전

최근 강서대학교 교회사 교수로 있는 전인수 교수가  “김교신 평전“ 을 냈다.  "세속성자, 일상에서 영원을 일구다" 라는 부제로 서로북스(대표:민대홍 )에서 2024년 6월 5일 출판했다. 책은 296 쪽으로 가격은 16,200원이며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 책을 쓴 전인수 교수는 그리스도대학교에서 신학릏 서강대학교에서 사학을 공부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민경배 교수에게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중국 난징대학교 박사과정에서 중국 근현대사를 공부하였다.

   
 

전 교수는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학술대회 개최는 물론 『김교신, 한국사회의 길을 묻다』(2016), 『김교신 일보』(2016), 『성서조선』영인본(2019) 등의 출판 작업에 참여하였다. 조선산 기독교, 전적 기독교, 성서조선사건 등을 주제로 김교신 관련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2011년 박사 논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김교신의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밝히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김교신을 학문적으로 재해석한 『김교신을 다시 읽다』를 준비 중이며, 쉬우면서도 깊은 『한국신학사』를 쓰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소망이다.

   
 

함석헌(咸錫憲.1901-89) 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김교신(金敎臣.1901-45) 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같은 해에 태어난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걸었다. 일본(동경고등사범학교) 에 유학, 같은 일본인 스승(우찌무라 간죠.內村監三) 에게 기독교를 배우고, 귀국해 교사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 운동을 벌인 한국 기독교의 선각자들이다.

무교회주의란 교회와 성직자로 대표되는 기성 기독교의 조직과 제도를 비판.거부하고, 원시 기독교의 순수한 복음신앙과 성서 공부를 강조하는 기독교의 한 분파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김교신이 해방되기 직전 44세로 급사(急死) 한 반면, 함석헌은 88세로 장수하면서 60.70년대를 통해 사회운동가.사상가로 명성을 얻었다는 점이다.

김교신이 '무교회주의' 라는 엄격한 신앙생활을 고수한 반면 함석헌은 해방후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면서 퀘이커교도로 개종한 점도 큰 차이다. 무교회주의를 이 땅에 알린 '성서조선' 이란 잡지를 창간한 것은 두 사람을 포함한 동인들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잡지를 꾸려간 사람은 김교신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무교회주의자들은 함석헌 보다 김교신을 더 높이 평가한다.

   
 

이들이 김교신을 재조명하며 한국교회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추모행사를 마련한다. 드러내기를 싫어하며, 성서 공부에만 몰두해온 무교회주의자들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은 다음 주말 김교신의 글을 모은 『김교신 전집』(도서출판 부키) 을 선보이며, 13일 오후 2시에는 서울 YMCA강당에서 '김교신 기념 강연회' 를 연다.

전집은 모두 8권으로 김교신이 '성서조선' 에 썼던 글을 인생론.신앙론.성서개요.강의 등 내용별로 재분류했다. 마지막 8권은 김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모사와 인물평을 묶은 것. 1권(인생론) .2권(신앙론) 과 마지막 8권이 1차로 다음주 선보인다. 

장신대 총장을 지낸 임성빈(任成彬) 교수는 "무교회주의는 기성 기독교계의 제도와 형식을 비판했기에 상당히 경원시돼 왔다. 또 무교회주의 신앙인들 역시 소규모로 상당히 전문적인 성서공부를 하는 식으로 활동해와 대중적인 신앙운동이 되기 힘들었다" 면서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장주의와 세속화가 심각한 시점에서 김교신의 순수하고 철저한 신앙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고 말했다.

   
 

생애와 사상

김교신 선생(1901-1945)은 한국 기독교의 암흑시대로 불리는 1930년대에 일제의 혹독한 검열을 견디면서 오직 ‘성서의 진리 위에 조선을 세우고자’ 『성서조선』 발행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조선 선비’로도 불리는 선생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조선 김치 냄새나는 기독교’만이 한국인의 심령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선생은 자기를 분명히 알아가는 것이 인생의 근본임을 학생들에게 강조한 민족의 교사였으며, 명논설 「조선지리소고」에서 보듯이 신앙과 학문의 합금을 성취한 지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은 ‘무교회학파’의 선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일기’에 잘 드러났듯이 단독자로서 절대자 앞에 순종한 선생의 삶은 그 자체가 ‘후세 최대의 유물’입니다. 특정 교단이나 조직에 속하지 않은 한 개인이면서도 온전히 공적인 삶을 살았던 선생의 삶은 세계와 우주를 교회로 삼는 ‘무교회주의 기독교’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김교신 선생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처럼 성서가 제시한 본질을 떠나 교회가 제도와 관행에 얽매여 형해화한 것을 비판하며 ‘무교회’라는 화두로 도전했다. 이는 본질로 돌아가자는 개혁운동으로, 성서에 입각한 더 순수한 교회를 추구했다.” 일제강점기 <성서조선>을 발간하며 복음과 민족정신을 보급한 김교신 선생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만열 교수)가 2024년 11월 28일 창립된다.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이덕주 교수(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감신대), 양현혜 교수(이화여대) 등 김교신 선생의 업적을 연구해 온 이들은 ‘신앙의 본질 회복’을 외쳤던 그의 정신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희망의 메시지로 전해지게 하기 위해 기념사업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창립총회에서 이만열 교수는 “그는 기독교적 민족주의자였고 민족의 행복을 이루는 근거를 복음에서 찾았다. 하지만 기성 제도권 교회가 식민지 제도권 아래 제도와 틀에 얽매여 역동성이 떨어졌음을 지적하고 무교회운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교회를 부인한다며 이단으로 정죄하고 무교회주의 딱지를 붙였던 것을 재검토해야 한다. 교회가 다시 성서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정신이 오늘날 기성교회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수렴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치무라 간조에게 배운 ‘무교회주의’ 운동

김교신 선생은 1901년 함경남도 함흥의 엄격한 유교 가문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가한 뒤 일본에 건너가 기독교를 접했다. 이후 일본의 대표적 복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에게 배우면서 애국과 복음의 상관성을 깨달았고 무교회주의 사상을 갖게 됐다. 귀국한 후 그는 서울 양정고보, 제일고보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뜻이 맞는 함석헌 등 5인의 동지들과 함께 조선성서연구회를 만들었다. 연구회가 헬라어, 히브리어 등을 직접 연구해 발간한 <성서조선>은 서구 교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한국문화의 토양 속에서 자란 순수한 교회를 추구했다.

김교신 선생은 1942년 <성서조선>의 권두문 ‘조와(弔蛙)’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함흥질소비교공장에 입사해 노무자들에게 민족혼을 불어넣었고, 이듬에 4월 발진티푸스에 걸린 이를 돌보다 전염돼 광복 네 달을 앞두고 목숨을 잃었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김교신 선생의 삶을 그대로 본받아 살기를 애써온 사람들, 선생의 신앙과 사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규명하여 세상에 알리려 애써온 사람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상황을 가슴 아파하며 교회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 기념사업회의 그루터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회 울타리를 뛰어넘는 김교신 선생의 통합적인 세계관과 균형 잡힌 삶은 한국 기독교인은 물론 한국인 모두가 본받고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에 ‘(사)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는 김교신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 학문 후속세대를 격려하기 위한 ‘김교신 연구 장학생’을 공모하여 후원하고 있다.

   
 

성서와 조선을 사랑했던 사람 

김교신에게 성서와 조선은 융합되어 있다. 그는 평생 민족혼과 성서라는 두 축을 잡고 산 사람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다시 새로워지기 위해 성서와 도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그는 동인들과 함께 〈성서조선〉을 펴낸다. 그가 바라본 조선의 문제는 정치나 경제가 아닌 영적인 것이었다. 조선에 성서를 주어 성서 위에 조선을 세우면 조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지고 갱신될 수 있다고 믿은 그의 생각을 살펴본다. 아울러 조선적 기독교, 김치냄새나는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상세히 설명한다.

‘일상의 영성’. 김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다. 그는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을 만나는 지점이라고 믿었다. 일요일이라는 특별한 시간에, 예배당과 같은 구별된 공간에서만 하나님을 대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여 지은이는 그를 ‘세속 성자’라 부른다. 김교신의 삶에는 성과 속의 구분이 없다.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거룩한 장소가 된다. 하여 그는 제도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기존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웠으며, 동시에 제도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곳이든 그의 일상은 영성을 일구는 무대가 된 것이다.

   
 

머리말

1장 기독교의 교훈은 좋으나
2장 일본 유학과 입신의 여정
3장 조선을 성서 위에 세워야
4장 공덕리의 특이한 집
5장 양칼 같은 자리 선생
6장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생生의 기독교
7장 기독교를 이 땅에: 조선산 기독교
8장 누가 일본인에게 복음을 듣지 말라 하더냐
9장 김교신과 장도원의 논쟁
10장 김교신과 최태용의 논쟁
11장 일본인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12장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13장 아사셀의 양처럼
14장 맺음말: 김교신 다시 생각하기

책 속으로

이 책은 단편적으로만 다루어왔던 김교신의 삶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은 개인적 욕구에서 출발하였다. 나는 김교신을 역사적·신앙적으로 살펴보려 노력하였다. 한 인물을 묘사하는 데 있어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하다. 또 김교신은 신앙적 접근을 하지 않고는 파악할 수 없는 인물이다. 기독교 신앙을 제외하고 그를 그려보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김교신에게 기독교 신앙은 삶을 움직이는 실체였기 때문이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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