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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기도회 간증 김명진, 장석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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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7.03  14: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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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진, 1974, “나의 기도”

편집자주/ 이 글은 1974년 9월 23일 교회여성연합회 주관으로 드려진 구속자들을 위한 목요기도회에서 새문안교회 대학부 소속의 두아들(서경석(서울대, 서창석(연대)을 위한 어머니 김명진 권사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기도문이다(『새가정』 통권 231호, pp.52~53) 정리 이숭리 권사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또한 저희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특권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옵니다. 이 자리에 많은 구속당한 사랑하는 아들들의 어머니들과 이 슬픔을 같이 나누는 많은 어머니들의 마음과 정성을 합하여 기도하오니 이 기도가 옛날에 솔로몬 왕과 같이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기도로 삼아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넘치는 축복을 내려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바라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희 사랑하는 아들들이 옥에 갇힌 지 어느덧 봄이 지나고 여름철을 지나 쌀쌀한 가을을 맞이하여 추석을 며칠 앞둔 저희 어머니들은 슬픈 마음과 눈물을 금할 길이 없읍니다. 이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때로는 높은 산을 헤매며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부르짖었읍니다. 또 철야기도로써 하나님 앞에 매달려 눈물의 호소를 하였읍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하지 하옵시고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고 저희 기도를 응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희 아들들의 중심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그들은 자기의 안일과 행복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그들은 진정코 이웃을 사랑하였읍니다. 이들 중에는 연희동 빈민가의 어린이들에게 야학으로 봉사하였읍니다. 또한 소외된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고 위로하였으며 또한 그들은 불쌍한 고아들의 벗이 되기를 자원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정직하며 불의를 싫어하며 참과 거짓을 구별하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하며 사랑을 실천하기를 노력하였읍니다. 지금도 저희 아들들은 옥중에서 믿지 않는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며 빵 한조각이라도 나누어 먹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그들에게 잘못이 있사옵거든 일곱 번씩 일흔번이나 용서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들이 회개하며 용서를 빌어 소원의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황인성어머니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는 시골에서 빨갱이 집 이라는 오해를 받아 낙심하여 자살을 기도하였아오니 그를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김경남의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품팔이를 하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아오니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시옵소서.

김영준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읍니다. 그 아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닷새 동안 금식을 하였답니다. 그의 유족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그 외에도 많은 어머니들이 고통을 겪고 있읍니다.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어머니들은 숱한 밤을 뜬눈으로 세웠읍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 아들을 생각하며 잠을 못 이룹니다. 길을 갈 때 그들의 친우를 만날 때는 목이 메어 말을 못합니다. 또한 매일 식탁을 대할 때 음식을 보고 어찌 아들 생각을 잊을 길이 있겠읍니까?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희가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과거에 내 자식만 잘 먹이고 잘 입히겠다는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깨닫지 못하고 내 자식이 세상에서 다 바라는 출세를 기대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가난한 이웃을 보면서도 그들의 이웃되기를 꺼려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나라에 불우한 과부들과 고아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모든 사치를 좋아하는 어머니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사랑하는 아들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저희 어머니들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깨달았읍니다. 남의 자식을 내 자식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희들에게 믿음을 허락하시사 이 어려운 시련을 능히 이기고도 내 이웃을 위하여 헌신 봉사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가를 깨달으며 저희 모든 성도들이 더욱 합심하여 하늘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세계로 울려 나간 어머니의 기도

새문안교회 역사 중에서 70년대를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회선교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서 소외된 이웃이 생기면서 사회문제가 대두되는 시대였다. 교회의 관심과 손길이 이 이웃에 별반 미치지 못하고 있을 때 새문안 여전도회는 적극 나섰다고 새문안 교회 100년사는 기록하고 있다.

교회 앞을 통과하는 시내버스 안내양들을 대상으로 공동체생활을 강습하고 전도하는 일, 무의탁 재건대원 100명을 돕는 등 사회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분들은 여전도회원인 박진성, 양순화, 박병숙, 왕기랑, 김명진, 김홍련, 김수길이라고 열거하고 있다. (새문안 교회 100년사 497쪽) 이 분들 중에 지금은 93세이신 김명진 권사님을 만나보면은 그 시대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회선교

“내가 1974년과 75년-2년간 여전도회 회장을 하고 있었지요. 그때는 아직 여전도회가 하나였어요. 1980년 이후로 장년과 청년여전도회로 나뉘어졌어요. 내가 회장하고 있던 그때 아들 둘이 감옥에 가서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1960년 중반부터 한국교회가 부흥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책임의식이 높아졌다. 따라서 새문안 교회는 산업선교를 추진하고 <구로동 선교 추진위원회>를 조직해서 공장밀집 지역에 선교, 야학, 탁아사업,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하고 구로동 ‘새문안 새얼의 집’에서는 한 해에 야학생 36명을 졸업시키기도 했다. 이보다 이전에 새문안 대학생회는 이미 연희동에서 판자촌 극빈아동들을 대상으로 안산공민학교를 열어서 배움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지역사회와 유대를 맺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일에 교사로 봉사하던 두 아들이 (서경석 목사, 서창석 집사) 감옥에 가는 일이 생겼다.

“1974년 봄이지, 교계, 학계 인사들과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아마 4호일 거야, ‘국가내란 예비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했어요. 우리 아들 둘을 포함해서 우리교회 대학생이 6명(참고: 서경석, 김형기, 서창석, 권진관, 신대균, 이원희) 구속됐었지, 그걸 민청학련사건이라고 하지요, 김동길 교수도 들어갔고, 김지하 씨도 같이 들어갔고, 한 200명이 구속됐지 그때? 구속자 부모들은 똑똑한 아들이 그 당시만 해도 ‘무서운 죄명’에 구속이 되니까 놀라서 병상에 눕거나 홧병이 나서 다 아팠어요. 그렇지만 나는 이럴수록 더 기운을 내야한다 하고 씩씩한 김지하 어머니랑 열심히 석방을 외치고 다녔지요”

힘을 내기 위해서 일부러 빨간 원피스를 해 입고 방청이 허가 되지 않는 법정에도 가시곤 하면서 신앙으로 이겨내셨다. 새문안교회에서는 1974년 6월에 200명의 여전도회 회원과 구속자 가족이 모여 시대의 아픔을 껴안는 철야기도회를 열었고 그 후에는 기독교회관, 종로5가에서 목요기도회가 계속되었다.

회개가 앞선 어머니의 기도
“가을에 신, 구교 합동기도회였던 것 같아요. 구속자, 민주화 하는 사람이 다 모여서 그 중에 아들 둘이 들어간 엄마가 기도를 하게 되었지요. 공개 기도회였어요. 사람들이 빽빽이 500명 이상이 모였던 것 같아요.”  “--- 저희 자식만 잘 먹이고 잘 입히겠다고 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깨닫지 못하고 저의 자식이 세상에서 다 바라는 출세를 기대했던 죄를 용서하여주시옵소서. 많은 가난한 이웃들을 보면서도 그들의 이웃되기를 꺼려한 것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또한 이 나라에 불우한 과부들과 고아들의 고통을 외면하며 모든 사치를 좋아하는 어머니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어머니의 기도가 회개의 기도로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모두가 울었을 뿐 아니라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이 되어서 세계로 알려져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물었다. “그 원문을 좀 볼 수 없을까요”하고.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그게 아마 <새가정>이라는 잡지에 실렸을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고 그때 다른 언론 매체에서는 다 못 실었는데 새가정에서만 기도문을 받아다 실어서 유일하게 남은 자료가 되었어요. 그 때 새가정에 의식있는 기자가 있었던 것 같아” 하신다.

   
 

            동일방직 사건과 CBS방송 난입 사건

장석숙사모(원풍모방 노조원, 1980년 정부와 노총은 당시 민주노조인 원풍노조해체을 시작하기전 강성 노조원으로 지된 몇명을 먼져 분리초치 한다. 당시 공수부대들이 원풍에 난입해 장석숙등을 당시 합수사로 연행해 폭력과 공포로 강제사직서를 쓰게한다. 이 일로 2004년 민주화운동유공자로 지정된다.

   
 

여성 노동자 연대 투쟁의 시발 동일방직

인천 만석동 소재 동일방직은 1975년 최초의 여성 이영숙 노조 지부장이 탄생한 곳으로 1976년 2월 대의원 선거에서 지도부를 탄압하지만 외부엔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영숙 지부장과 노조 총무 이총각(훗날 노조 지부장) 언니가 단식농성을 하는 등 내부적으로 투쟁을 이어갔는 데 사측은 노노갈등을 유발하여 현장에 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남자 노동자들을 매수하여 똥물을 뿌리는 희대의 사건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1978년 3월 10일 근로자의 날에 조합원 80여 명이 TV 생중계 중인 노동절 기념식장에 들어가 정동호 한국노총 위원장의 연설 때 ”아무리 가난하지만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는 똥은 먹고 살 수 없다“ 라고 말하며 플래카드를 펼치고 전단을 살포하는 시위를 일으킨다.

이로 인하여 주동자 31명이 연행되자 노동자들과 신/구교 종교인들이 동일방직노조 문제 해결 및 산업선교회 탄압 중지 등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3월 20일요 기도회가 열리는 기독교회관에 모인 원풍모방 등 여성노동자 30여 명과 함께 CBS독교방송에 들어가 "광장에 크낙새가 죽은 건 크게 보도하면서 우리가 당한 건 왜 알리지 않느냐" 고 외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려면 방송에서 ‘기독‘자를 빼라는 구호도 외쳤다. 이런 내용을 주동자였던 내가 처음 기록하는 것인 데 당시 언론이나 자료에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당시 나는 영등포산선 노동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지만 목요기도회도 빠지지 않고 갔는 데 민청학련사건이나 남민전사건, 오원춘 농민사건, 함평고구마사건 등 시위 사건과 구속자들의 소식을 나누고 기도하는 자리였다.

어려서부터 감리교를 다녔고 기독교신앙을 갖고 있었고 영등포산선에서 개인 영혼에 치우친 기복적인 신앙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와 복음의 건설이라는 신앙으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사실 공장생활과 산선활동을 하면서 매주 종로 5가에 나온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영적으로 늘 갈급했던 것들이 충족되였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일에 동참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는 남자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 기도가 이뤄지는 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남편은 1978년에 제대를 하고 송진섭 전 안산시장(전 영등포산선 간사) 교회 후배로 당시 장청과 EYC활동을 한다. 1981년 부산 수안교회서 열린 장청대회에 명노선목사와 노동자들이 같이 가 현장의 소리도 증거하고 원풍이 제작한 메달도 팔았다, 거기서 처음 본 후 사회선교협의회(총무 권호경목사)가 주관하는 노동 농민 주민운동의 차세대 실무들을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나 가깝게 된다. 그리고 당시 NCC 인권위원장이신 조남기목사(청담교회) 전도사로 있어서 1983년 1월 29일 청담교회서 조남기목사님 주례로 결혼식을 하게 된다.

   
 

목요기도회서의 나의 기도 이뤄져.

결혼 후에 서교동교회서 열린 행사에서 유인물을 뿌리다가 잡혀 남부서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는 데 신혼직후 기소가 되어 남부법원에서 재판을 받기도 하였는 데 당시 청담교회 장로였던 고 홍성우변호사가 변호를 해주신 기억이 난다. 이후 남편은 성수동에서 민중교회인 삼일교회를 세워 3년간 목회를 하다가 강원도 광산지역인 태백에서 9년 의정부에서 6년 그리고 일본 선교사를 지내고 2012년 PCK 인터넷 신문 편집인으로 2024년 교단 법상 70세 정년을 맞아 2024년 말 은퇴를 앞두고 있다.

목요기도회에 영등포산선에서는 조지송목사의 당시 이화여대를 다니던 딸 조향숙이 언제나 참석하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큰 동원행사 외는 거의 나만 혼자 참석했는 데 공장에서는 그런 나를 보고 지식인 만나러 가는 거 아니냐? 등 시건방진 애라고 핀잔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목요일 아마 동일방직에 대한 호소기도회로 다른 현장의 노동자들도 참석을 했는 데 평소 알고 있던 기장 허병섭목사가 세우신 동월교회 이철용 장로가 나에게 동일방식 노동자들의 억울한 소식이 방송에 나지 않는 데 기독교방송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노동자들이 한번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하면서 생방송이라도 들어가 외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지체 없이 바로 그래야 한다는 마음으로 같이 간 남영 나이론 노조원 유옥순에게 이런 취지로 전달하며 안에 가서 한 30명 쯤 애들 좀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지금 세종시에 살면서 특별한 활동을 하지만 SNS로 서로 정치소식을 주고 받고 있다. 내가 앞장을 섰고 미리 봐 둔 방송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마 양희은씨가 진행하는 프로로 기억된다. 들어가서 소리를 치자 스튜디오안은 즉시 불이 커지고 난리가 났는 데 여성 노동자들이 생방송에 난입을 했다는 소식이 2층에 알려지자 학생들 참가자들이 건물로 올라오고 경찰과 뒤엉켜 떨어진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아무도 잡혀가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

   
 

출구없는 노동자들의 투쟁

이를 계기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연대의 의지는 더욱 강해져 그해 3월 26일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때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2명과 남영나이론, 원풍모방(장남수) 등 노동자 4명과 함께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탈취하여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순 없다!",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다가 구속됐다. 이후 동일방직 사측은 관련자 126명을 해고하였고 섬유노조는 해고자 명단을 동일 업종 사업장에 이름을 돌려 재취업을 막는 다(최초의 브랙리스트)

또 나는 원풍 후배 고 신복수(아이쿱 이사장)와 같이 당시 정동에 있는 MBC 방송국에도 갔었는 데 유인물도 주고 뉴스에 이런 노동자들의 억우한 소식을 내 달라고 하려고 갔다. 수위가 잡아 방송국에 제보할 것이 있어서 왔다고 하고는 들어가 유인물을 뿌리고 사무실에 들어가 왜 노동자들의 뉴스가 방송에 안나오냐? 책임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자 깜짝 놀라며 나가 경비를 대동하고 와서 끌려나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양팔이 들려 나오면서 소리를 질러 건물 내 직원들이 다 나오는 등 한바탕 큰 난리가 난 적도 있다.

해고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 때문에 온갖 직장에서 받아주질 않았고, 동일방직 출신들은 '요시찰 인물'로 분류되 시집을 가도 시댁으로부터 학대를 받는 등 온갖 박대가 이어졌다. 이후 해고 노동자들은 노동단체, 생활협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지에 몸담으며 각자의 길을 걷다가 2000년 김대중 정부에 민주화운동 보상신청을 하면서 재집결했으며, 2001년에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당시 동일방직 노동자였던 김지선은 이후 고 노회찬 의원과 결혼을 하였고 정명자, 최연봉 등 앞서서 투쟁하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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